소설리스트

145. 추격의 묘미는(4) (145/400)

145. 추격의 묘미는(4)2020.05.19.

16553224446404.png“언니지.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아하니 조씨 부인은 방매가 옹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언니라고 부르겠다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6553224446412.png“그런데 마님이 장사를 하신다고?”

16553224446404.png“응! 언니가 개경 출신이시잖아. 그래서 여쭤봤더니…….”

1655322444642.jpg“제 아버님이 상단을 운영하십니다. 덕분에 아시는 분들이 한양에도 있어 그분들을 통하면 많은 이문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조씨 부인이 싱긋 웃어보였다. 방매가 박수를 짝하고 쳤다.

16553224446404.png“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돼. 송상(松商)이라니!”

개경은 송악(松岳)이라고도 불리며 고려의 수도였다. 그곳에는 대대로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주로 의류, 인삼, 도자기 같은 값비싼 물품을 취급하며 전국적인 판매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16553224446404.png“안국방 조씨 할아범이 손재주는 끝내주니까 상등품일 거예요, 언니. 그게 열 덩어리니까…….”

방매가 눈을 굴렸다.

16553224446404.png“큰 덩어리 하나에 500병은 만들 수 있다고 했어요. 상등품으로요. 열 덩어리니까 5,000병을 만들 수 있겠죠?”

1655322444642.jpg“딱 맞아떨어지진 않을 겁니다.”

16553224446404.png“괜찮아요. 5,000병이면…… 흐흐흐. 250,000냥인걸요???”

만우의 눈이 커졌다. 방매는 허리에 손을 척 하고 올려놓았다. 방매가 모아놓은 은병 100개, 그러니까 1,000냥이나 되는 돈을 모조리 털어서 산 열 덩어리의 사향이다. 그게 상등품 향액으로 만들어서 팔면 250,000냥으로 불어나는 것이다.

1655322444642.jpg“그걸 전부 소화할 수는 없어요.”

16553224446404.png“그걸 다시 희석해서 기생들에게 팔면 되잖아요.”

1655322444642.jpg“그렇다면…….”

조씨 부인과 만우는 새삼스런 눈으로 방매를 쳐다봤다. 돈을 벌 수 있는 쪽에서는 머리가 장원급제를 한 유생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듯했다.

1655322444642.jpg“그러면 전부 소진하고도 남겠죠…….”

상등품 향액으로 하등품 향액을 열 병 만들 수 있다. 물론 가격도 1/10이다. 대신 기녀들이 양반가 부인과 규수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조씨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2444642.jpg“충분하겠네요. 아버님을 설득하기에는.”

16553224446404.png“부탁해요 언니. 나는 또 가봐야 하니까요.”

1655322444642.jpg“네. 그럼 전 아버님께 보낼 서신을 쓰러 가야겠네요. 은공도 쉬십시오. 여독이 쌓이셨을 테니…….”

16553224446412.png“네, 부인.”

조씨 부인은 윤도를 불렀다. 그사이 조금 더 의젓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윤도는 칭얼거리지 않았다. 대신 까만 눈으로 만우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16553224446412.png“흠.”

이렇게 조건 없는 관심을 처음 받아봤기 때문에 만우는 볼을 긁적였다. 저 꼬마가 대체 왜 자신을 이리도 좋아하는 것인지 만우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1655322444642.jpg“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은공.”

16553224446412.png“…….”

1655322444642.jpg“윤도에게 주고 가신 선물…….”

조씨 부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입선건(入仙鍵). 그 단검의 가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녀가 대상인을 아비로 둔 여인이라면 입선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1655322444642.jpg“은공께는 갚을 수 없는 은혜만 받는 것 같습니다.”

16553224446412.png“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는 법입니다. 전 저 물건의 주인이 아니었을 뿐이고.”

만우는 저 귀여운 도련님이 아무런 병 없이, 큰일 없이 건강하게 자라달라는 마음을 담아 준 것이다. 그러니 저건 저 도련님이 물건의 주인이다.

16553224446412.png“물건이 주인을 잘 만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 도련님?”

1655322444642.jpg“맞아!!!!”

윤도가 목에 걸린 입선건을 고사리 손으로 꼭 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16553224446412.png‘김향에게도 저런 걸 줬어야 했었나.’

윤도가 어린 것처럼, 김향도 어리다. 나이는 김향이 더 많았지만, 만우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다. 둘 다 애인 것이다.

16553224446412.png“방매. 슌스케. 준비해. 동군영만 돌아오면 바로 떠난다.”

16553224446404.png“행선지는?”

16553224446412.png“남쪽. 계속해서 정보를 받기로 했으니…… 가면서 정하도록 하지. 호선!”

16553224508445.jpg“네.”

지붕 위에 올라 햇빛을 쬐고 있었던 듯 호선이 허공에서 뛰어내렸다. 만우는 호선에게 말했다.

16553224446412.png“축지법을 사용해야겠다.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테니까 각오해 둬.”

16553224508445.jpg“……네.”

만우가 ‘각오’라고 할 때는 정말로 혹독하게 몰아붙인다는 뜻이기 때문에 호선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16553224537487.png“저, 전 그럼…….”

16553224446412.png“운 좋은 줄 알아. 급하지 않았더라면…….”

만우는 슌스케의 하체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만우의 눈에는 보였다. 아직도 그의 하체 근력이 부족했다. 만우는 혀를 쯧 하고 찼다.

16553224537487.png“…….”

슌스케가 만우의 못마땅한 얼굴을 보고는 눈치를 보며 티내지는 못 했지만,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165532245375.jpg

  ***** 엿새 뒤, 부여현. 백마강 유역의 부소산에 자리한 부소산성 아래로 관북리에 읍치가 있어 그 주변으로 객사와 동헌, 향교가 자리하고 있는 그곳의 저잣거리는 늘 상인들로 인해 활발했다. 비옥한 평야를 가지고 있어 곡식이 풍부했고, 금강을 끼고 있어 물류의 운송이 자유로운 탓에 움직이는 물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한양에서 멀기는 했으나 옛 백제의 수도로써 한 지역의 중심지를 자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그곳은 요즘 들어 눈코 뜰 새 없이 일어나는 폭력 사건으로 인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와장창창!!!!

1655322444642.jpg“이 몸이 바로 산동지방의 관일창이니라. 흐하하!!”

1655322444642.jpg“크윽…….”

몇 달 전부터 육로로, 해로로 중원에서 넘어오기 시작한 무림인들의 수가 어느덧 천을 넘어가면서부터 사실상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국왕의 권위가 날 서 있는 한양이나, 곡산척가가 있는 북쪽 지방과는 달리 조선의 서남부는 오랜 평화에 젖어 있었다. 조선의 동북면이나 서북면이었다면 제아무리 무림인들이 천, 이천이 있다 하더라도 훈련 받은 뛰어난 정예병들과 뛰어난 장수들이 있어 함부로 준동할 수 없었겠지만 부여는 아니었다.

1655322444642.jpg“이 새끼가!”

1655322444642.jpg“하! 감히 사파 놈이 고개를 들고 다닌단 말이냐?”

1655322444642.jpg“오냐! 어디 한번 너 죽고 나 죽자!!!”

쉴 새 없이 부여현 전역에서 병장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견원지간 같은 정파와 사파의 무인들이 섞여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대문파 소속의 무림인들이 아니라 중소문파의 무림인들이었기 때문에 중대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중원에서 몰려든 무림인들로 인해 지역 경제가 반짝하고 살아났지만, 그들로 인해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상인들이 오는 것을 꺼려해 문제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곳에서 관아와 현감이 있고, 공주목사가 버티고 있었지만 무림인들은 관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뇌물. 관과 무림이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은 명에서도 관리들에게 이런 뇌물을 먹여 눈을 감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부여현의 현감 같은 경우에는 무림인들이 건네주는 뇌물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한 관직을 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림인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또한 무림인들은 절대로 선을 넘지 않았다. 관의 영역이나, 관의 시야 안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황실과 관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중원에서도 그 선을 기가 막히게 탔던 중원의 무림인들은 그 선을 정확하게 지켰다. 그 때문에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커지고 있지만, 관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림인들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들을, 사람들이 많아지면 으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작은 사건사고로밖에 보지 않은 것이다.

1655322444642.jpg“아가씨. 술 한잔 하는 거 어때? 아니. 애비를 찾아가야 하나?”

무림인들은 조선을 깔보고 있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아녀자를 희롱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조선을 깔보고, 조선의 백성을 눈아래로 보는 것은 정파나 사파 무인들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대국에서 온 상전이고, 조선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머슴 따위로 부렸다. 그게 억울하다고 백성들이 덤벼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칼을 차고, 자기네들끼리 싸우면서 공포 분위기를 충분히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초를 겪은 백성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들의 분노가 커져갔지만 관에서는 침묵했다. 아니, 그들로 인해 활황인 시장을 보면서 땅이나 파먹는 백성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라 칭하며 무시했다. 그리고 그곳에 만우 일행이 도착했다. 쿠르르르!!

16553224446412.png“후우.”

만우는 이마를 소맷자락으로 닦는 시늉을 했다. 설미수를 통해 구한 튼튼한 수레를 개조한 커다란 수레는 만우와 호선이 전속력을 발휘해 칠일 밤낮을 달렸음에도 다행히 부서지지 않고 굳건히 버텨냈다. 삐걱, 삐걱. 쿠르르.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인 듯, 삐걱거리던 수레의 바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그 수명을 다했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수레에 탄 이들을 쳐다봤다. 동군영과 방매, 그리고 척사영과 슌스케. 척가에서 먼 남쪽까지 내려간다고 했음에도 척사영은 만우를 쫓아왔다. 돈도 많은 집안의 여식이 왜 고생을 자처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화경의 고수가 함께하면 도움이 되면 됐지 짐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흔쾌히 승낙했다.

16553224565057.png“여기가 부여현이라구?”

16553224446412.png“그래. 마패랑 잘 가지고 있지 나리?”

16553224565057.png“여기 있지.”

동군영이 수레에서 폴짝 뛰어내리면서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만우는 어차피 그게 그거인 동군영의 옷차림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24446412.png“그러고 가면 집안에서 안 놀래, 어사 나리?”

동군영도 자신의 집에 다녀왔을 것이란 생각에 만우가 말했다. 그러자 동군영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24565057.png“어. 별로.”

16553224446412.png“흠. 뭐야 설마. 보고 놀래줄 사람도 없는 거야?”

동군영의 표정이 어색했기 때문에 만우가 말했다. 동군영이 뜨끔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감한 이야기였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민감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차피 다 같은 신세였기 때문이다.

16553224446412.png“양반 팔자도 기구하네. 어사 나리도 부모님이 없다니 말이야.”

만우도, 방매도 부모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동군영은 만우와 방매 눈치를 슬쩍 살폈다. 만우는 피식 웃으면서 동군영의 어깨를 툭하고 건드렸다.

16553224446412.png“무슨 눈치를 봐. 부모가 없는 건 나리인데. 그리고 그게 뭐 대수라고.”

만우는 뒷짐을 척 하고 졌다. 이룡검이 그의 허리에서 달랑거렸다. 만우는 겉으로 보기에는 활발해 보이는 부여현을 쳐다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24446412.png“어차피 조선의 백성들 중 절반은 부모가 없을 걸.”

16553224565057.png“……그렇지? 하하. 괜히 내 이야기 때문에 분위기 이상해질 줄 알고 말이야.”

동군영은 만우의 말에 씩 웃어 보였다. 부모가 없다는 것에 슬픈 표정을 짓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기억도 안 날 정도의 나이에 일찍 부모를 잃은 모양이었다.

16553224446412.png“설미수. 사신 양반에게 도움을 받은 것인가?”

동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동군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만우의 귀에 들렸다.

16553224565057.png“안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아주 작게 말한 것이라 다른 사람은 듣지 못했다. 아니, 척사영은 들었다. 만우는 척사영을 쳐다봤지만 척사영은 별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16553224446412.png‘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

다들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사는 하나둘씩 있는 것이 정상이다. 동군영의 경우에는 그게 가족과 관련된 일인 모양이다. 그때 만우가 동군영을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16553224446412.png“뭐 하는 거야?”

16553224565057.png“응? 왜. 이상한가?”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매는 그런 동군영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16553224446404.png“당연하잖아요. 그런 이상한 걸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데.”

16553224565057.png“왜, 왜 말인가. 삿갓인데.”

16553224446412.png“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데. 삿갓을 쓰고 다니면.”

삿갓, 또는 죽립이라 불리는 것을 쓴 모양새가 입은 옷과 어울리지 않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얼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수상해 보인다는 뜻이다.

16553224565057.png“됐네. 난 이게 편해.”

16553224446404.png“아니, 어사 나리란 걸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방매가 동군영에게 물었지만 동군영은 답하지 않았다. 만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기가 원한다는데 무슨 수로 말린단 말인가. 부여현의 읍치(邑治)는 관북리에 있었는데 과거에는 부소산성에 있던 것을 그 아래 위치한 관북리로 내린 것이다. 만우는 한양보다 작지만 활기를 띈 성내 분위기를 느끼면서 입꼬리를 쭉 끌어 올렸다.

16553224446412.png“여기…….”

와글와글 사방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그 분위기를 느끼던 만우가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16553224446412.png“작은 무림 같은데?”

투캉!!!! 우당탕탕!!!! 만우가 중얼거림과 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주막에서 울타리가 펑하고 터지더니 술병과 함께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16553224627473.pn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