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추격의 묘미는(3)2020.05.16.
콰자자작!!! 우당탕탕!!!
“무, 무슨 일이냐!!!!”
우당탕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삼복이 자신의 호위로 삼고 부리던 하오문도 하나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개구리처럼 뻗었다. 삼복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평화롭기만 하던 자신의 삶에 자꾸만 마가 꼈다. 스륵
“야! 냄새! 좀 치우고 살아라. 어?”
“허…… 허어어어억!!!!”
우당탕탕!!!! 하오문 한양지부는 마포나루 근처에 있었다. 그곳에 유동인구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값이 워낙 비싸 뒷골목에 있는 가장 허름한 건물 한 채를 빌려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때문에 무화와 간부들은 이곳으로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숙식은 하오문이 가지고 있는 기루에 가서 해결했다. 데구르르르
“거, 검주 대협!!!”
만우는 문자 그대로 삼복이 굴러나오자 혀를 쯧하고 찼다. 하지만 삼복이라고 좋아서 그렇게 나온 게 아니다.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머리에서는 인사를 해야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멕아리가 없어. 밥 안 줘, 무화가?”
“아, 아닙니다, 대협. 놀라는 바람에…….”
‘으흑. 내 신세야.’
만우를 못 알아본 죄로 만우에게 가져다 바친 재물이 수레로 하나였다. 그 재물이 있다면 결사장을 다시 재건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괴물은 중원에서 온 소문주와 간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물이다.
“무화. 어디 있어?”
“초, 총분타주께서는 장보도 일로 인해 남쪽으로…….”
“없다고? 에이…….”
만우가 혀를 쯧 하고 찼다. 조사의에게 세자 양녕과 만우의 행로를 알린 것이 하오문이라고 해서 그것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 물어볼 사람이 없어졌다. 만우는 다시 나가려다가 고개를 휙하고 돌렸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성심성의껏…….”
“은월루. 걔네 난리난 거 알아?”
“예. 한양에서 일어나는 일은 저희 하오문의 눈을…….”
“시끄럽고.”
귀찮다는 만우의 목소리에 삼복의 입이 한 일 자로 다물어졌다. 속으로는 온갖 욕을 다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만우는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그래서. 어디로 갔는데?”
“남쪽. 남쪽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
만우의 몸에서 공력이 일어났다. 고작해야 삼류인 삼복이 받아내기에는 전신이 짓눌리는 듯한 거대한 기세였다. 삼복은 서둘러 침을 튀기며 입을 열었다.
“예. 뒤쫓는 것이 마교이다보니 보내는 족족 죽음을…… 그리고 관도가 아니라 산길로 도망치고 있어서…….”
“……흐음.”
스으윽. 삼복의 대답이 일리가 있다 생각한 만우는 공력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삼복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절대로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삼복의 눈에는 까마득하게 강해 보이는 총분타주와 그 간부들이 왜 삼복에게 검주에 대해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할 일을 알려주지.”
“예? 예?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우는 하오문의 명예호법이다. 어디까지나 명예직이었지만 그래도 명예호법이 부탁하는 것은 다 들어주는 것이 맞았다.
‘멸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었지.’
중원에서 만우와 하오문 사이에 작은 오해가 불씨가 되어 하오문이 멸문까지 갔었던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만우는 홀로 독보하는 이였지만, 그를 하오문은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그의 앞에 납작 엎드리면서 항복을 했고, 그 성의로 명예호법직을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
“남쪽으로 가고 있다고 했으니까 아주 작은 흔적만 나와도 전서구나 인편에 그거 알려. 특히나 마교 그 새끼들.”
은월루의 안가 속 잔해에서 김향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어리가 데려갔거나 마교 놈들이 데려갔다는 뜻이다.
‘왜?’
만우가 아는 한 마교 놈들은 상대가 여자고, 어리다고 해서 손속에 정을 두는 놈들이 아니다. 거기에 쓸모 없는 여아를 데리고 갈 정도로 인정이 넘치는 놈들도 아니었다. 거기에 복수에 눈이 뒤집혀 궁궐까지 습격했을 정도인데, 김향이란 짐을 달고 갈 필요가 없다. 쓸데가 있으니 데려간 것이다.
“그 새끼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려. 그놈들이 지나가면 반드시 누군가는 죽으니까 이유 없이 죽어나간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정보를 모아.”
“예, 옛!!!”
“그리고 무화에게도 알려.”
만우는 몸을 돌렸다.
“만약 은월루와 마교가 향하는 곳에 하오문이 있다면…… 마교 놈들이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그렇게 전해.”
“여자아이…… 예, 대협.”
펑!!!! 후욱!!
“콜록, 콜록!!!!”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만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대신 그 후폭풍으로 인해 작은 건물 안에 흙먼지가 몰아쳤다. 삼복은 밭은 기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아이? 검주가?”
*****
“남대문. 그곳까지는 흔적이 이어져 있었는데.”
만우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그 이상은 너무 유동인구가 많아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네. 남쪽으로 내려갔다면…….”
만우는 궐의 담장과 광화문 위에 찍혀 있던 발자국으로 광문자의 경공을 가늠했다.
‘살수. 그것도 아주 절륜한 수준의 경공을 가진 살수. 하지만 옆에 혹을 하나 달고 있다면.’
광문자가 혼자라고 가정한다면 투귀대는 절대로 광문자를 추격할 수 없다. 광문자의 경공 실력은 투귀대의 모두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문자에게 챙겨야 할 어리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슷한 수준. 아니, 은월루주의 체력을 생각해 보면 미세하게 따라잡힐 수준.’
투귀대는 전원이 화경과 초절정이다. 만우는 살수인 광문자의 체력과 정신력이 그들보다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리는 익힌 무공이 광문자나 투귀대에 비교하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보다는 나은 수준. 무화랑 비슷한 정도.”
무화 임수미도 어리와 비슷한 경우였다. 둘은 무공으로 겨루는 것이 아니라 정보로 서로를 향해 칼을 날리는 정보단체의 수장이다. 그러니 밥 먹고 무공만 익힌 이들에 비해 무공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정도의 경공을 펼친다면 이곳에서…….”
거기에 광문자는 적들의 추격을 떨쳐내기 위해 험준한 산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하오문에서 모르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관도가 아니라 산을 넘어 일직선으로 관통을 한다면.’
경공과 경신법이 말보다 나은 점은 지형에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이다. 물론 극한으로 단련한 무인이라고 해도 가파른 경사를 달리면 체력이 빠르게 소모된다. 하지만 말은 울창한 산길로는 아예 갈 수가 없다. 길이 나 있어야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공을 익힌 무인의 체력은 평범한 일반보다 수십 배는 뛰어나다.
‘열흘의 차이가 생긴 것인가.’
한양에서 변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출발해 달려온 것이다. 슌스케가 거의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몰아붙이고, 호선과 만우까지 나서서 강행군을 거듭한 뒤에야 한양에 도착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딱 일주일이다.
‘벌써 멀어졌겠군.’
그렇다면 못해도 열흘 이상의 거리가 벌어진 것이다. 아니, 호선의 축지법을 써서 빠르게 간다면 그 열흘의 거리는 닷새로 줄어들 것이다. 축지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호선의 속도는 한 줄기 빛이라고 해도 과언이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덜컹. 만우는 오랜만에 오는 북촌을 빠르게 지나쳐 설미수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는 역시나 오랜만에 보는 일복이 싸리빗자루로 문 앞을 쓸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일복이 만우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맨 처음에는 만우를 편하게 대한 일복이지만 만우가 조 부인을 사기꾼으로부터 구한 순간부터 일복은 깍듯하게 만우를 대했다. 만우는 고개글 꾸벅 숙였다.
“어르신은 아직 퇴청하지 않으셨습니다.”
“괜찮습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예. 도련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일복이 만우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만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만우의 머릿속은 그대로 복잡한 상태였지만 설미수의 저택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긴. 변할 게 뭐가 있겠느냐만은.’
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복잡한 일이 생기다보니 이런 평온하기 그지 없는 분위기가 어색했다. 만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원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쉰 적이 한 번도 없구나.’
중원 전체를 유람하고 다닐 때와 별다를 게 없었다. 조선에 돌아와서도 검과 다리는 쉴 새가 없었다. 그 때 누군가 도도도하고 뛰어나와 만우의 다리에 철썩 붙었다.
“……응? 도련님?”
“만우 왔다!!!”
빵싯거리며 웃는 윤도를 보자 만우는 놀랍게도 터질 것 같았던 머리가 평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에서 느껴지는 윤도의 고사리 같은 손에 만우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잘 있었어 도련님?”
“응. 글공부가 심심한데 그래도 했어.”
만우는 윤도가 목에 차고 있는 입선건을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애 목에 단검이라니. 자신이 준 선물이라고 해도 맨날 차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잘했어. 그래도 열심히 뛰어놀아야지. 그래야 몸도 튼튼해져.”
“응! 알았어!”
만우는 윤도를 그대로 자신의 다리에 매달고는 행랑채 쪽으로 향했다. 그곳이 손님을 위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만우의 눈에 행랑채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는 슌스케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수레를 끌더니 정말 말이 됐나.”
그냥 멍 때리고 있는 모습의 슌스케는 이전에 일월조의 조장으로써 머리를 굴리던 영악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쉬냐?”
“주, 주인님.”
“방매랑 나리는?”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만 했다. 물론 그만큼 더 죽어나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휴식 없이 다시 강행군을 시작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만우나 호선 정도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더 뒤쳐질 것이다.
‘골라서 데려가야 하나.’
마익후와 간장은 이곳에 남겨둘 예정이었다. 설미수에게 부탁을 해 나중에 값을 치른다고 하고 만우가 나중에 머물 곳을 마련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대장간도 세우면 간장이 머물 수 있으니 대장간도 지어놓을 생각이었다.
‘운종가 근처에 있으면 좋겠네.’
대장간에는 은근히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철광석 등을 구입하려면 마포나루 쪽에 자리를 잡는 것도 좋겠지만 기타 물품을 구하기 위해서는 운종가에 있는 것이 나았다.
“잠깐 자리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슌스케는 펄럭이는 소매를 질끈 묶어놓았다. 흔들리는 것이 성가셨던 모양이다. 만우는 다리에 들러붙은 윤도를 들어올려서는 마루에 앉혔다.
“저 아저씨는 누구야?”
“이 아저씨?”
슌스케가 움찔했다. 하지만 만우가 친근하게 대하자 윤도의 눈치를 슬쩍 봤다. 어쨌거나 지금은 만우가 그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내 부하.”
“부하? 진짜? 나도 부하 있는데. 저기 아랫골목에 사는 개똥이도 있고, 옆집에 사는 희성이도 있어.”
윤도는 골목대장이었다. 또래 중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것을 보니 설미수처럼 글공부가 아니라 무과를 급제할지도 모른다.
“윤도야.”
“앗! 어머니!!”
그 때 조씨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우가 일어나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조씨 부인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예, 마님.”
슌스케의 눈이 커졌다. 조씨 부인의 미색 때문이다. 아이까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개경제일미녀인 그녀의 미모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이가 조금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놀라운 미색이었다.
“헷, 만우. 왔어?”
그때 조씨 부인 뒤에서 방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옹주께서 제게 부탁하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조씨 부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만우는 방매를 쳐다봤다. 방매는 뭘 쳐다보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만우의 시선을 받아넘겼다. 만우를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대하는 건 방매밖에 없었다.
“이번에 함주 가서 구해온 사향. 그거 언니한테 부탁해서 향낭이랑 향액 만들어서 팔려고. 나보다는 언니가 나을 것 같아서.”
“언니?”
만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언제 봤다고 언니 타령이란 말인가. 방매는 베에 하고 혀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