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추격의 묘미는(2)2020.05.12.
덜그럭. 만우는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은월루 안가의 잔해를 발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철저하게 완파가 된 흔적이었다.
“이게…….”
“…….”
밤매와 동군영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단순히 집이 무너져내린 정도가 아니었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 이곳에 있던 집을 때려부셨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흠…….”
하지만 만우는 놀라지 않았다. 이곳을 습격한 것이 마교의 투귀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별로 놀랄 만한 풍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우는 발로 이리저리 잔해를 밀었다. 그러자 만우가 잔해들을 밀어버린 곳의 땅바닥에 새겨진 깊은 상흔이 드러났다.
“한 치(3cm).”
땅바닥이 한 치 깊이로 파여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도 검을 조금 휘둘러봤다고 동군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땅이 이 정도로 파이려면…….”
“일격에 이 저택을 무너뜨렸다는 소리지. 그리고 이건…….”
투귀대의 마교 고수들은 전원 초절정이다. 그리고 땅에 새겨진 상흔은 깊이가 한 치였고 폭도 컸다. 검이나 창, 도로는 만들 수 없는 모양새였다.
“이 정도의 흔적이라면 대부(大釜)란 소리인데. 거의…….”
만우는 고개를 돌려 방매를 쳐다봤다. 방매는 눈을 땡그랗게 뜨고 만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소한 도끼의 크기가 방매 네 몸통 크기는 되겠는데?”
“히엑! 그렇게 큰 도끼를 쓰는 사람이 있어?”
방매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이란 곳은 온갖 종류의 무기가 판치는 곳이다. 그곳에서 대부 정도면 꽤나 평범한 무기에 속한다.
“그 정도 도끼를 쓰는 마교의 고수라면…… 곤명웅가(昆明雄家)의 고수인 모양이네.”
일격에 이 정도의 흔적을 남겼다면, 이 일격으로 이 커다란 집이 무너졌을 것이다. 확실한 마교 고수의 흔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핏자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향이.’
이곳의 안가는 김향도 함께 살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혈향이나 송장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김향이 죽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다음 장소로!”
만우가 동군영과 방매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놔, 놔달…….”
쿵!!!! 만우의 신형이 두 짐을 매단 채 허공으로 치솟았다. *****
“일검(一劍).”
만우는 손가락으로 한창 보수가 진행되고 있는 궁의 담장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매끄럽기가 흡사 겨울철 꽁꽁 언 강을 보는 것 같았다.
“투귀대주란 놈이겠군.”
궁의 담장은 그 담장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의 두께만 해도 한 자가 넘는다. 그런데 그걸 일검에 베어버렸다는 건 초절정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검기를 자유롭게 운용할 정도, 그러니 화경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만우. 뭐가 보이는가?”
동군영 덕분에 사고가 난 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만우였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나리.”
주변에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았기 때문에 만우는 깍듯하게 대답했다. 그럴 때마다 동군영은 체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방매는 어디갔습니까 나리?”
말 끝마다 나리라고 붙이는 것이 묘하게 비꼬는 것처럼 들렸지만 동군영은 굳이 그것을 깊지 않았다. 그래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궁이나 한번 돌아본다고 갔네.”
“아직도 궁인들에게 화장품을 팔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군요, 나리.”
“뭐…… 옹주이니 누가 탓하기라도 하겠는가?”
비록 왕실 예법 따위는 알지 못했다. 이성계도 그런 것을 바라고 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
만우는 땅바닥에 떨어진 기왓장을 줏어들었다. 깨진 기왓장인데 그 위에 흙이 묻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이게…….”
만우는 그 기왓장이 원래 붙어 있었던 곳을 찾았다. 무너진 담장 위에 놓인 기왓장이었다. 만우는 그대로 담장 위로 뛰어올라갔다.
“흠.”
팡!!!
만우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바람소리와 함께 사라지더니 전각 위에 나타났다. 광화문(光化門) 위였다. 아래서 동군영이 기함하는 얼굴이 보였다.
“마, 만우 자네!!!!!”
“알아서 말해주시죠 나리. 왕명을 수행 중이시지 않습니까.”
놀란 수문병의 시선이 느껴졌다. 담장을 보수하는 일꾼들의 시선도 모두 만우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만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광화문의 기와 위에 서서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저곳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삼 장.”
그곳에 담장 위에서 발견한 발자국과 똑같은 발자국이 찍혀있는 기왓장이 보였다. 살짝 어긋나 있는 기왓장이었다. 저 아래에서 이 위까지 한 번의 도약으로 도달했다는 소리다.
‘기왓장이 깨진 흔적은 없었어.’
그렇다는 것은 고절한 경공을 가지고 있고, 경신법에 매우 능숙하다는 뜻이다. 만우에게도 이 정도 거리를 한 번에 도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도약한다면 담장 위의 기왓장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만우가 아까 아래에서 발견한 기왓장은 담장이 무너지면서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깨졌을 뿐이지 발자국 때문에 깨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절정의 경공술을 가진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놈을 잡기 위해 검을 휘둘렀고.’
은월루에서 그 정도 실력이 있는 놈은 한 놈밖에 없다.
‘광문자란 놈이겠지. 루주를 호위하던 그놈.’
빼어난 암살자로 보인 그놈이 은월루주를 데리고 도주한 모양이었다. 만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에 공력을 실어 소리쳤다.
[방매!!!!!!!]
찌르르르르-!!!! 만우의 목소리가 궁궐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놀란 수문병들이나 광화문 위에 올라선 만우를 쳐다보던 사람들이 다리가 풀려 넘어질 정도의 커다란 소리였다. 동군영은 하얗게 변한 안색으로 만우를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튀어나와! 안 튀어나오면 놓고 간다!!!!!!!]
투다다다닥!!!! 방매가 화장품을 팔기 위해 들어갔다고 말했지만 방매도 바보는 아니다. 김향. 방매에게 수박희를 알려준 이이자 방매를 아껴주었던 안국방의 조 씨 할아범이 아끼는 그 아이를 만우가 찾고 있다는 것을 방매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뭔가를 알아보기 위해 궁인들에게 물어보려 사라진 것이리라.
“시끄러!!!!!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방매가 빠르게 뜀박질을 하면서 달려나와서는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내공도 하나도 없는 애가 웬만한 삼류 경공만 한 속도를 냈다. 저것도 수박희에 속한 경신법 중에 하나라고 했다. 내공 대신 체력을 쓰기 때문에 오래 쓰지는 못한다고 했다.
“가자고. 흔적 찾으러.”
만우의 시선은 광화문의 왼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또 다른 발자국이 찍혀있을 것이다. 이렇게 발자국을 쫓아가다보면, 저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스팟!
“알았으니까 이번엔…… 꺄악!!!”
“우억!!!!”
방매와 동군영의 신형이 허공으로 둥실하고 떠올랐다. 어느새 허공을 도약해서 나타난 만우가 둘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허공으로 뛰어올라갔기 때문이다. 퉁!!!! 퉁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 허공을 남은 이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쳐다봤다. *****
“움직이겠습니다 아가씨.”
“후우…… 알았어요. 움직이죠.”
어리는 이를 악 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안색이 파리하기 그지 없었다. 광문자는 그런 어리를 보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많이 힘드십니까?”
“아니에요. 힘들 리가요.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고 늘 말했잖아요 오라버니가.”
어리는 애써 웃어 보였다. 오주야(五晝夜)를 가리지 않고 지속된 적들의 추격 때문이었다. 다행히 광문자가 추격전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적들과 거리를 벌리면서 도망가고 있었으나, 문제는 어리였다. 어리의 무공 경지는 광문자나 추격자들에 비교하면 높지 않았다. 그녀의 재능은 무수히 난립하는 정보를 취합하여 쓸모 있는 부분을 골라내고, 그것을 모아서 거대한 판을 짜는 데 있었다. 정보 단체의 수장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었지만, 무공 쪽에는 그리 눈부신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은월루 자체의 무력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광문자처럼 혹독한 훈련을 은월루주가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황금 팔십만 냥. 큰 돈이죠.”
“예, 루주.”
“무슨 생각으로 그 큰 돈을 내건 것일까요 전대 루주께서는?”
어리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토록 거대한 돈을 의뢰비로 주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그냥 입을 닦아버렸다. 중원의 마교와 조선은 대륙을 횡단해야 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것을 과연 몰랐을까? 돈을 주겠다고 한 사람은 몰라도, 떼먹힌 사람은 끝까지 기억한다. 마교가 딱 그 꼴이었다.
“여덟이던 그들 중 두 명이 죽었다 합니다. 이 조선에서요.”
어리와 광문자에게는 그들이 도주하는 와중에도 전서구를 통해 계속해서 정보가 들어왔다. 그 중에는 추격자들에 대한 정보도 물론 들어있었다.
“투귀대…… 마교란 곳이 이리 무서운 곳일지는 몰랐어요.”
일부러 어리와 광문자는 도주로를 인적이 없는 산으로만 잡았다. 사람이 있는 고을은 추격자들의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궁궐도 가리지 않고 덮치는 순간 도주로를 그렇게 잡기로 결정한 어리였다.
“동료를 둘이나 잃었으니 눈이 뒤집혔을 겁니다. 하지만…….”
광문자의 두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
“우리의 정보를 넘긴 놈들은 하오문이란 것은 확실합니다.”
“남쪽으로 간다고 달라질까요?”
“저들의 관심을 흩트릴 것이 필요합니다, 루주. 남쪽에는…… 무림인들이 모여들고 있지 않습니까. 마교의 천적이라는 무림맹의 무인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오주야의 추격전으로 인해 그녀의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광문자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러니, 그곳에 갈 때까지만 버티십시오.”
광문자는 이런 추격전을 한 달이라도 할 수 있었다. 동방제일살객(東方第一殺客)이란 별호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리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쪽으로 가야만 했다. 부여. 옛 백제의 도성으로 사비(泗沘)라 불리기도 하여 찬란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곳은 지금은 공주목의 속현이 되어 부여군이 되었다. 부여군은 부여현, 홍산현, 임천군, 석성현 4개 군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광활하고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하나였다.
“백마강의 낙화암(落花巖)에 가면 다 해결이 될 것이옵니다. 아가씨. 그러니까 견디시옵소서.”
광문자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 하오문 한양지부. 삼복은 깊숙한 곳에 숨긴 나무 궤짝을 열어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사장(決死場)이 있을 때가 좋았는데.”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검계의 운영자금은 삼복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그가 하오문에서 내려오는 운영금을 빼돌려 착복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양 뒷골목 파락호의 대부가 삼복이었는데 그곳이 누군가에 의해 싹 다 털려버리는 바람에 삼복의 수중에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벌어들였던 수익이 짭잘했기 때문에 다시 살려내기 위해 재물을 모으고 있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천년한철! 그것만 있었더라면…….’
명나라에 보내는 밀수선에 실어보내면 그 귀중한 재물은 수십 배로 불어서 돌아왔을 것이다. 삼복은 그 천년한철을 훔쳐간 놈들을 찾아내면 능지처참을 해버리겠다며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재물을 모은다. 어떻게 모으지? 소문주가 남쪽으로 내려간 김에 재물을 모아야 하는데…….”
거기에 그동안은 하오문의 무화와 간부들이 와 있었기 때문에 같은 간부라고는 해도 서열상 가장 막내에 속하는 삼복은 찍소리도 못 내고 죽어지내야만 했다.
“또 우리 도련님과 아가씨들 연애사업이라도 도와줘야 하나…….”
삼복은 하오문의 정보력을 이용해 중매 사업도 진행했다. 서로 마음에 드는 남녀들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하오문이 돈을 받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삼복이 뒷목을 긁적였다.
“에이 간지러. 왜 이렇게 간지러운거야?”
손으로 뒷덜미를 슬슬 만져보니 오돌토돌하게 피부가 성이 나 있었다. 삼복은 뭔가에 물렸나 신경질을 내며 목을 긁었다. 하지만 그게 소름인 줄은, 삼복은 한참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