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추격의 묘미는(1)2020.05.09.
쿠쿠쿠쿠!!!
“비켜요! 비켜! 비켜요오오오!!!!”
한양도성으로 들어오는 커다란 대로(大路) 위. 조선의 임금이 기거하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 때문에 서슬 퍼런 군기를 뿜어내는 수문장과 수문병들의 존재로 인해 소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히에엑!”
“이크!”
“비키세요! 비켜요오오오옷!!!”
달구지를 타고, 두 발로 걷던 사람들이 기겁하면서 대로 옆으로 몸을 날렸고, 그 사이로 거대한 수레 하나가 바큇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위에서는 앞에 가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보부상 차림새를 한 여자, 방매가 소리를 빽하고 질러대고 있었는데 그 수레를 끄는 것이 말이 아니라 사람이란 것이 특징이라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지! 정지!!!”
“저런…….”
“막아라!!!”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오는 거대한 수레를 본 수문장과 수문병들이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아세우면서 창과 검을 뽑아들었다. 한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의 병사들에 의해 검사를 받는 것이 수순이었는데, 달려오는 저 수레의 기세로 봐서는 도저히 멈출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콰직!!!! 콰르르르 우당탕탕!!
“꽤액!!!”
“꺄악!!!”
하지만 바큇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오던 수레 안에서 검은 인영 몇 개가 하늘로 치솟더니 수레의 바퀴가 뽀각하고 부러지면서 수레가 산산조각이 나 그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데굴데굴 처저저적!!!! 하지만 모두가 그 수레 안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다. 수레가 박살이 나면서 꾀죄죄한 차림새에 찌그러진 갓을 쓴 동군영이 데굴데굴 굴러 수문병과 수문장의 발치까지 굴러갔고, 그런 동군영의 얼굴 위로 창날이 드리워졌다.
“헤엑, 헤엑, 헤엑…….”
그런 동군영의 옆에는 실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슌스케가 11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타닥.
“으헛헛. 고마우이 제자!!!”
“다친 곳 없으면 됐다. 스승.”
그리고 박살이 난 수레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난 후 그곳으로 수레가 박살 나기 전 뛰어올랐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착지했다. 가장 처음으로는 거대한 덩치의 간장을 안고 뛰어올랐던 마익후가 착지했고, 그 뒤로 양녕을 안아든 이찬이 착지했다. 놀란 것인지 양녕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져 있었다.
“이, 이거 놔아아아!!!”
“가만히 좀 있어라.”
그 뒤로 척사영과 호선이 하늘거리며 가뿐하게 착지했고, 맨 마지막으로 방매의 뒷덜미를 낚아챈 만우가 땅바닥에 착지했다. 방매가 하도 버둥거려서 그런 그녀를 땅에 던지듯이 내려놓은 만우를 향해 수문장이 배에 힘을 모아 소리쳤다.
“웬 놈이냐!!!!”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놈들이었지만 수문장은 수문장으로서의 기개를 잃지 않았다.
“헤에. 별이다, 별. 낮인데 벼얼…….”
“우, 우웨에에엑!!!!”
아무도 잡아주지 않은 불쌍한 동군영은 어지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슌스케는 여기까지 강행군을 계속한 턱에 토사물을 진득허니 토해냈다. 감령과 필두가 떠나고, 문형일도 왕의 곁에 남았기 때문에 남은 인원은 이게 전부였다. 한 명이 더 추가되긴 했다.
“세자익위사 좌익찬 설운이다!! 왕명을 수행 중이니 어서 비켜라!!!”
설운. 조사의를 죽이지 못하고 눈 앞에서 만우에게 가로막혔던 그가 만우와 함께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원래 직무인 세자의 호위를 위해 양녕과 이찬을 따라 온 것이었다.
“헉! 예, 예!!!!”
설운의 표식을 알아본 이들이 기겁하면서 그 자리에서 비켜서자 만우는 방매의 뒷덜미를 다시 움켜쥐었다.
“놔, 놔줬잖아!!!”
“넌 느리잖아!”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방매가 버둥거렸지만 만우는 가볍게 무시하고는 방매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김향에게 변고가 생겼다면, 어서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변고가 생기게 만든 그 원흉, 마교를 만우는 찾아나설 생각이었다. 그래도 김향은 김약항, 만우가 어르신으로 모신 분의 마지막 유언이다. 그런데 그런 김향이 평온한 삶을 살게 해줘도 모자를 판에 건드렸다는 것은 만우에 대한 도발이고 도전이다.
“마교. 이 새끼들.”
만우는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그와 함께 쾅하는 소리와 함께 만우가 서있던 땅이 움푹 패였다. 그리고 만우의 신형이 바람처럼 변해 일진광풍을 남김채 사라졌다.
“흐에에에에에에-!!!”
물론 그러면서 동군영을 채간 만우다. 궁에 들어가 그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교지를 받은 동군영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 따닥, 딱, 따닥! 휘황찬란한 전각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이 난을 칠 때가 가장 평온했다. 과거에는 중원이 좁다면서 중원 전역을 돌아다녔던 역마살이 낀 운명이었지만 그 운명도 나이가 들면 변하는 모양이었다. 이곳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십만대산이었다. 십만대산(十萬大山). 십 만개의 봉우리가 있어 나는 새도 지쳐서 산을 넘을 수 없고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숨쉬는 십만대산에는 무림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공포의 존재가 군림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천마신교(天魔神敎). 통칭 마교. 수천, 수만의 피를 탐하는 악마가 살고 있으며 호시탐탐 중원을 피로 물들이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악의 축. 하지만 난을 치는 노인에게는 쓸데없이 자신에게 화려한 전각만 내어주는 곳일 뿐이었다. 마교의 빈객. 본래 빈객이라 함은 귀족가나 무가 등에서 같은 가문에 속한 이들은 아니지만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 대성한 이들을 초빙하여 가르침을 얻기 위해 모셔오는 이들을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 가문의 빈객이라 하면 학문으로 유명한 학자인 경우가 많았고 무가의 빈객이라면 뛰어난 무인인 경우가 많았다. 빈객은 그렇게 손님으로 초대를 받아 그곳에 머물면서 숙식 등을 제공받고, 명성을 쌓는 대신 자신의 가르침을 나누어준다. 그렇다면 마교의 빈객은? 마교에는 오로지 한 명의 빈객만이 존재했다. 일패(一覇) 혈세천마(血世天魔)가 교주로 있는 마교의 빈객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실력이 돼야 할까? 그와 같은 줄에 있는 무림십좌는 마교에 빈객으로 올 필요가 없었다. 홀로 독보하는 검주 만우를 제외한 이왕, 삼존, 삼주는 전부 소속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림십좌를 제외한 무림인 중 마교에 빈객으로 머물 수 있는 이는 몇 명이나 될까. 은거기인들이 아니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중원 모든 낭인들의 황제. 낭황(浪皇) 우결지. 빈객으로 마교에 머무르고 있던 그가 받아들인 유일한 제자가 바로 광호검 기무다. 우결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그는 초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해 화경에 발을 걸치기 직전으로, 화경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낭황으로 불릴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무림십좌 중 사주(四主)와 비무를 펼쳐 그중 삼 인을 꺾은 것이다. 화경으로 알려진 그 셋을, 초절정인 낭황 우결지가 비무를 펼쳐 승리를 거둔 것이다. 경지의 차이가 마치 절대적인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던 무림인들에게 낭황의 승리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가 낭인으로 무림에 출도한 것이 스물 다섯이다. 그런 낭황 우결지가 어릴 때, 다른 후기지수들이 대문파에서 받은 것처럼 그런 훈련과 가르침을 받았으면 과연 그의 경지는 어디까지 닿았을까? 낭황은 그런 세간의 호기심을 자신의 유일한 제자인 광호검 기무를 통해 증명해냈다. 초절정. 서른의 나이에 광호검 기무를 초절정의 경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낭황 우결지의 가르침은 혹독하기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가 겪어온 수라의 길은 웬만한 훈련도 눈에 차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련이 혹독한만큼 그 결과는 확실했다. 광호검 기무는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즐비하다는 마교에서도 당당히 투귀대 팔 인에 들어감으로 인해 낭황의 명성을 더 높인 것이다.
“군사. 어쩐 일이시오?”
어깨와 등이 굽은 우결지는 자신의 뒤에 선 마군자(魔君子) 마원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낭황.”
“클클클. 그러게 말이야. 교주께서는 아직도 비무를 해주지 않겠다 하는가?”
“교주께서는 부재중이십니다.”
마원은 부드럽게 대답했고 낭황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황(皇)이라는 광오한 호칭을 쓰면서도 일흔이란 나이까지 살아남은 낭황의 웃음소리는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기무에게 일이 생긴 모양이군.”
낭황은 평생을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기무는 원말명초 혼란기에 버려진 아이였다. 그 아이를 한 순간의 변덕으로 데려다가 기른 것이 낭황이었다.
“예. 조선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서신이라. 기무와 관련된 연락이라면 하나뿐이겠지.”
낭황은 손에 들고 있던 천을 옆에 내려놓았다. 난에서 손을 뗀 후였다. 낭황은 눈을 빛냈다.
“그래.”
마군자 마원은 마교 최고의 지낭이었다. 무림맹의 제갈명공과 견주어도 결코 뒤쳐지지 않은 심계와 지략으로 무장한 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장 꺼려하는 인물이 바로 눈앞의 낭황 우결지였다. 책에서 배운 것보다 현실에서 구르면서 배운 것이 더 많은 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교주가 명령을 내리면 주저하지 않고 움직이는 마교의 다른 고수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죽인 이가 누군가?”
낭황은 화경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화경이지만, 그 벽에 머무른 지 이십 년이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낭황은 세월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점점 굽어가는 그의 등과 어깨가 그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무의 죽음을 담은 낭황의 두 눈에서는 살광이 번뜩였다. 마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혈세천마의 예상이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원은 낭황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홀가분하게 버릴 수 있었다.
“검주 만우.”
“검주…….”
낭황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러더니 낭황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내 낭황의 두 눈에서 광기가 번뜩이더니 낭황이 고개를 뒤로 꺾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검주! 그자가, 그자가!!!!!”
마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낭황이 마교에 빈객으로 머물게 된 것 자체가 바로 검주 만우 때문이었다. 사주 중 삼 인에게 승리를 거둔 낭황을 처참하게 깨뜨려버린 이가 바로 검주 만우였다. 이에 낭황은 그를 다시 이길 방법을 찾고자 만우와 부딪쳤으나 승패가 소문이 나지 않은 마교 교주인 혈세천마를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하지만 혈세천마는 그때의 결과를 입에 담지 않았다. 누가 물어봐도 그저 웃어 보일 뿐이다. 이에 낭황은 혈세천마와 비무를 통해 그 결과를 알아보고자 하였지만, 혈세천마는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낭황은 오기가 생겨 마교에 빈객으로 머물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검주 만우가 이제는 낭황의 제자마저 죽였다.
“안 그래도 죽기 전에 그자와 다시 한번 검을 나눠보고 싶었거늘.”
낭황의 전신에서 살기가 뭉클거리면서 새어나왔다. 낭황의 기무에 대한 애정이 마원이 예상한 것보다 더 컸다.
‘낭황의 살기.’
숱한 고수들을 만나봤고, 마교 최고 고수이자 무림십좌 중 일패를 차지하는 혈세천마를 옆에서 수년간 보좌해온 마원이지만 낭황의 살기는 그런 고수들과는 달랐다. 날 것 그 자체의 살기. 정제된 고수의 살기가 아니라 정말 길거리에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오는 미친놈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살기가 느껴졌다.
“역시 그놈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살 놈이 아닌 모양이었구려. 검주 만우! 그자를 죽이기 위해 날 조선으로 보내주시오.”
낭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원은 그런 낭황을 향해 고개를 깊숙하게 숙여 보였다.
“살풍대(殺風代)를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살풍대…… 테무르라는 녀석이었나?”
“네.”
마원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낭황은 재밌겠다는 듯 살기 어린 웃음을 흘리면서 낡은 철검 한 자루를 챙겨들었다.
“가지. 조선으로.”
낭황 우결지와 멸망한 원 황실의 최정예 살풍대. 그들이 조선으로 기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