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가장 쓸데없는 조사의 걱정(3)2020.04.18.
닷새. 서컹!!!! 조사의는 자신이 열다섯 번째로 보낸 부대가 철저하게 한 명에 의해 와해되는 것을 보면서 이를 뿌드득 갈았다. 얼마나 세게 이를 간 것인지 조사의의 입가로 혈흔이 번졌다. 삼천. 지난 닷새 동안 죽거나 다친 병사들의 수가 천 명이 넘었고 사흘 째부터는 적만 보고도 도망쳐 온 병사가 이천에 달했다. 한 번에 이백씩 열다섯 번에 걸쳐 병사를 보냈음에도 한 명씩 나오는 적에 의해 패퇴한 것이다. 그나마 나아진 점이라면 병사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극대화되어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병사들이 도망을 쳐왔기 때문에 사상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정도?
“말도 안 된다! 고작해야 칼잡이일 뿐인데. 어찌하여, 어찌하여 한 명을 뚫지 못하는 것이냐!!!!”
허형은 입을 꾹 다물었다. 허형도 충분히 놀랐다. 원래 아무리 개인의 무예가 뛰어나다고 해도 수백, 수천이 맞부딪치는 전장에서 개인의 용력은 쉽사리 대군에 의해 휩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허형은 그 개인의 용력이 지나치게 뛰어나면, 충분히 전장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초패왕 항우의 고사나, 여봉선, 가깝게는 고려의 척준경이나 조선 태조인 상왕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히 소문이 아님을 꺠달은 것이다. 용병술에 일가견이 있는 허형에게는 지금 이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차륜전도 소용이 없다. 저들은 서너 명이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나올 뿐이지 않더냐.”
“……예.”
“그리고 나타나서 휘젓는 놈들은 또 누구고?”
“송구하옵니다, 장군.”
조사의는 분통을 터뜨렸다. 마교에서 온 그 놈들을 그냥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는 후회가 계속해서 남았다. 앞에서 막아내는 저 놈들뿐만이 아니라,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계속해서 병사들을 교란하는 세 명의 고수들도 문제였다.
“병사들을 물려야 합니다. 병사들의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진지를 단단하게 쌓은 뒤 경비망을 강화하면 아무리 적들이 뛰어나다고 하여도…….”
“말도 안 된다!!”
허형의 말은 타당했고 이치에 맞았지만 조사의는 이를 악물고 거부했다.
“열 명도 안되는 적이다. 상왕이나 가별초는 나선 적도 없어. 그런데 우리가 후퇴를 한다면 병사들의 사기가 어찌 되겠느냐?”
“허나 이미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란하는 적들로 인해 병사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습니다 장군.”
아무리 허형이 날고기는 용병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작정하고 철저하게 약점만을 파고드는 소수의 고강한 적을 상대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뭐라도 통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병사들이 적들을 막아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함정을 파서 적들을 끌어들여도 그 적을 상대하는 것이 일반 병사이니, 함정에 빠진 적들은 마치 무인지경을 넘나드는 것처럼 유유히 빠져나갔다.
‘적들이 마음을 먹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거늘.’
허형은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차가운 물을 머리에 뒤집어 쓰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난 닷새 동안 관찰한 적들의 무위는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뛰어들어 자신들의 머리를 간단하게 베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임금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겠지. 임금을 위해서.’
상왕과 세자를 보호하고 있는 자들은 임금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임금이 부리는 사람들 중 저렇게 대단한 실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조선제일검 권희달의 소문이 자자했으나, 친정을 위해 북진하고 있는 임금이 권희달을 보냈을 리 없었다.
“물러설 수 없다. 조금만, 조금만 밀어붙이면 될 것이다. 적들은 그래봤자 몇 명 되지 않으니까!!!”
“장군!!!”
“회유! 그래, 동탁이 정원을 베게 하여 여포를 끌어들였듯 저들을 회유할 수만 있다면…….”
조사의의 두 눈이 탐욕이 서렸다. 저들을 회유하여 저들이 상왕과 세자를 생포하여 이쪽으로 전향할 수 있게만 할 수 있으면 된다. 허형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조사의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때 부관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낭인, 낭인이 왔습니다 장군.”
“낭인?”
조사의의 눈에 커졌다. 마교의 낭인들은 모두 떠난 것이라 생각했던 조사의다. 열린 막사의 문을 넘어 광호검 기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무를 본 조사의의 눈이 커졌다.
*****
“어? 너?”
만우가 호선의 등에 실려온 김옥겸을 보고서는 눈을 크게 떴다. 만우가 호선을 쳐다봤다. 펑! 설운을 내려놓은 호선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호선은 손부채질을 하면서 김옥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갑자기 마기가 느껴져서 그곳으로 가보니 이 사람이 쓰러져 있었어요.”
“마기?”
“네. 마기. 저번에 느꼈던 그 더럽고 끈적끈적한 기운이 느껴졌거든요.”
만우의 눈이 반짝였다. 마기가 느껴졌다는 것은 근처에 마교 고수가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투귀대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투귀대는 조사의와 손을 잡았다.
“만우! 설마…….”
“아니. 조사의 그놈이 그렇게 참을성이 많거나 똑똑한 놈은 아니요. 노인장에게 복수를 하러 온 놈들일 확률이 높지.”
동군영의 말에 어색한 존댓말로 받아준 만우가 호선을 빤히 쳐다봤다. 김옥겸은 볼이 움푹 들어가 있었고 꾀죄죄한 것이 보통 고생을 한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에 가슴팍에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치료는 가능하지만 마기는…….”
“그건 내가 하면 되고.”
마기가 까다로운 점은 마기가 실린 무기에 당하거나 권격에 당하면 마기가 몸 속으로 침투한다는 점이다. 마공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마기는 계속해서 몸을 축내고 생명력을 깎아먹는다. 그 때문에 마기에 당한 상처를 치료할 때는 마기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럼…….”
호선의 두 손에서 선기가 뿜어져 나왔다. 만우에 의해 낙선이 되었던 호선은 순수한 선기를 바탕으로 도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김옥겸의 상처가 빠르게 호전이 되자 만우는 설운의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장심을 김옥겸의 등판에 가져다 댄 뒤 눈을 감았다. 우웅!!!! 쓰러진 채 실려온 김옥겸 때문에 무슨 일인지 보러 왔던 이성계나 슌스케, 이찬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척사영은 오늘 당번이었기 때문에 몰려올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뒤였다.
‘대단한 공력.’
‘마르지 않는 샘 같구나.’
‘격체전공(隔體傳功)이라니.’
타인의 몸에 자신이 가진 공력을 투사한다는 것은 시전자와 피시전자 모두에게 대단히 위험한 수법이다. 사람마다 세멕과 기혈의 위치가 모두 다르고, 내공심법 또한 모두 다르기 떄문인데 자칫하다가는 공력이 역류하여 주화입마나 내상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격체전공은 주로 같은 유파나 문파에서, 같은 내공심법을 익힌 사제지간에서 많이 일어난다. 그런데 만우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치고 있었다. 쿵!! 들썩! 김옥겸의 몸에서 북이 울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김옥겸의 몸에 들썩했다. 동시에 김옥겸의 입이 벌어지더니 김옥겸이 까만 피를 왈칵 토해냈다.
“쿨럭!! 쿨럭!”
정신을 잃었던 김옥겸이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쇠약해진 김옥겸의 몸 안을 침투했던 마기가 일소되었기 때문이다. 김옥겸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대, 대협!!!!”
만우를 알아본 김옥겸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김옥겸이 잠시 휘청거렸다. 호군에 뽑힐 정도로 무예와 체력이 뛰어난 김옥겸이지만 체력을 한계까지 소진한 상태에서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왜 그쪽이 여기에 있는 거야? 궁에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김옥겸을 철권 교수의 추격에서 구해준 것이 바로 만우였다. 그런 김옥겸이 어느새 이곳까지 와있었는지 만우는 신기한 눈으로 김옥겸을 쳐다봤다. 하지만 김옥겸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김옥겸은 입을 열었다.
“무…… 무림인. 무림인이 조사의를 죽이겠다며 움직였습니다.”
“무림인?”
김옥겸이 말한 무림인이란 그를 공격한 투귀대의 마교 고수를 뜻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걔가 왜?”
“그건 저도 잘…….”
김옥겸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난리를 당하고도 호군 중 발이 가장 빨랐기 때문에 척후 겸 전방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파견이 된 김옥겸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살피던 김옥겸은 정확히 말하면 광호검 기무에게 기습을 받았다.
“간신히 몸을 빼서 도망을 치긴 했지만 멀리 못 가서 쓰러진 것인데…….”
실력 자체가 차이가 나는데 기습까지 당했으니 김옥겸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이다. 하지만 그의 빠른 발은 사림곡의 교수를 애를 먹일 정도였으니 확실히 준족임에는 틀림 없었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잘된 것 아닙니까? 그자가 조사의를 죽이고, 반군이 와해가 된다면…….”
동군영이 옆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절대로 잘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하께서 직접 친정을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조사의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다면 전하께서 나서신 명분이 사라지게 됩니다.”
동군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만우를 빤히 쳐다봤다.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보고 지키란 말이요 어사 나리?”
“그래. 만우 자네가 나서야 하네.”
“조사의를 지켜라?”
“그놈은 죽어도 전하의 손에 죽어야 하니까.”
“……진짜. 정치란 게 더럽게 복잡하네.”
만우는 인상을 팍 썼다. 순전히 김향을 위해서 움직이는 만우다. 이렇게 해서 조선의 임금에게 빚을 씌워놓으면 앞으로 김향이 조선에서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노인장이 나설 생각은?”
“만우!!!”
만우는 이성계를 쳐다봤다. 동군영이 그런 만우를 보면서 기겁했다. 상왕이 나선다고 하면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문제가 된다. 상왕과 세자는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
“알았어. 알았다고.”
만우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룡검을 허리춤에 찬 만우는 하품을 쩍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허리를 좌우로 한 번씩 돌려보더니 반군의 진영을 슬쩍 쳐다봤다.
“움직인다. 벌써 난리가 난 것 같은데?”
“……벌써?”
동군영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만우의 말대로 반군의 진영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만약 조사의가 잘못 됐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임금에 의해 진압된 것이 아니라 명에서 온 낭인에 의해 이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부탁하네 만우.”
“쳇. 예예. 역졸 따위가 어찌 어사 나리의 분부를 거절하겠습니까요.”
만우는 투덜거렸다. 그와 함께 일진광풍이 사방에 몰아쳤다. 갑작스런 광풍에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갓을 부여잡은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 서있었던 만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옥겸이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것을 본 동군영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조사의의 진영을 쳐다봤다.
“내 살다살다 역모를 일으킨 수괴의 안위를 걱정할 줄은…….”
이성계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놈의 국내 정치가 무엇인지, 지금으로서는 조사의가 살아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상왕과 세자를 노리고 포진해 있던 칠천의 병력이 주둔한 군진이 벌떼가 쑤신 것처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조사의는 기무가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칠천의 군세의 발목을 붙잡아놓고 있는 무공을 쓴다는 거 낭인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은월루를 넘겨주는 조건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한 마교의 고수들은 그 기도가 범상치 않았지만 조사의가 하는 말에 두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제 곧 조선의 국왕이 될 자신의 위엄 때문인 줄 알고 있었던 조사의는, 그 착각에서 마침내 빠져나왔다. 허형의 목이 떨어져나가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얼굴에 끼얹어진 다음에 말이다.
“적이다!!! 적!!!”
“쳐라!!!!”
광호검 기무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조사의의 호위병을 보면서도 소름끼치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조사의!!!!!”
쩌렁쩌렁!!!! 기무는 자신을 향해 검을 꼬나쥐고 달려드는 호위병 앞에서 톱날 같은 검을 늘어뜨린 채 광오하게 소리쳤다. 조사의는 그런 기무의 고함소리가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가 포효를 터뜨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그냥 호랑이가 아니었다. 살의를 가득 띈 채 웃고 있는 미친 호랑이. 광호검(狂虎劍).
“소교주께서 네놈의 목을 가져오라 하시었다! 크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