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가장 쓸데없는 조사의 걱정(2)2020.04.14.
후아아아앙!!!! 쏟아지는 화살비 아래서도 이성계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화살을 피하지 않고 모조리 쳐냈다. 반군의 앞에서는 화살이 날아든다고 해도 등을 돌릴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쫘자자자자작!!! 그런데 그때, 이성계의 귓가에 화살들이 쪼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이성계는 고개를 돌려 만우가 탄 수레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성계의 눈이 커졌다.
‘저 여아는?’
이 정도 화살비라면 초절정인 세자 호위인 이찬이나 수레를 끄는 왜놈도 막아낼 수 없었다. 눈 먼 화살들이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물어뜯기 위해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당연히 만우가 나섰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선 것은 만우가 아니었다. 콰아아아아!!!! 쩌저저적!!!! 좌검우도. 왼손에는 검, 오른손에는 도를 든 척사영의 주변으로 수백 개의 검광과 도광이 번뜩였다. 그 때문에 화살은 수레 근처로는 다가오지도 못 했다.
“후우.”
한차례 화살비가 그치자 척사영의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척사영은 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몸이 제대로 풀린 것이다. 그런데 척사영의 검과 도를 보는 이성계의 고개가 갸웃했다.
‘부러진 검과 도?’
원래부터 부러진 검과 도를 썼다면 모를까, 척사영의 검과 도는 누군가 강제로 잡아 부러뜨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때 만우가 척사영에게 하는 말이 이성계의 귀에 들렸다.
“훨씬 낫네.”
“감사합니다 은공.”
“그러니까 네 몸에 맞는 무기를 써야 한다는 거야. 곡산척가가 조선제일무가라고 하더니,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줘?”
“소녀를 가르칠 정도의 어른께서 가문에는 없으셔서…….”
이성계의 눈이 커졌다. 솔직히 방금 전 척사영의 무위만 놓고 보면 전성기 때의 이성계가 상대를 한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척사영의 무공을 손봐준 사람이 만우였다.
‘대체 네놈의 실력의 끝은 어디냐?’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지만 역시 실력 하나만큼은 발군이었다. 그때 만우가 이성계를 향해 말했다.
“노인장! 덕주로 뚫겠소! 부하들 잘 간수하시오!”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척사영이란 아이의 무위가 범상치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니 이젠 조사의가 불쌍해질 지경이다. 조사의는 알고 있을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한 명만 나서도 칠천의 군세를 뚫고 들어가 자신의 목을 꺼내는 것이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것을?
“슌스케! 적당히 속도 내면서 달려! 적당히 쫓아올 수 있게. 알았지?”
“예! 주인님!”
만우의 명령에 슌스케가 이끄는 수레가 쏟아지는 화살비를 뒤로한 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성계는 가별초에게 명령했다.
“뒤쳐지지 않고 따라붙는다! 지형지물을 이용하라!”
“예! 전하!”
가별초들도 만우 일행에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으나, 화살비 정도에 당할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덜덜덜덜!!! 수레의 바퀴가 불안하게 덜덜 떠는 소음을 만들어냈지만 이성계는 위기감이 없는 얼굴로 만우의 뒤를 따르다가 히죽 웃었다.
“조사의, 그놈의 얼굴을 반드시 내가 보고 싶은데 말이야.”
*****
“원중포로 향할 것이다. 좌군과 우군, 후군에 전령을 보내라.”
“예, 전하!”
문형일은 임금의 앞에서 부복을 하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할 일을 다 끝마쳤기 때문이다.
“그럼 소인은 이만…….”
“잠깐.”
상왕과 세자가 위험하게도 함주에서 나와 원중포라는 곳으로 향하고 있어 스스로 미끼가 되었음에도 임금은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만우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 전하.”
문형일은 자신을 부르는 임금의 목소리에 허리를 숙여 보였다. 임금의 옆에 선 권희달에게서는 무각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 사이에 권희달은 한 번 더 성장한 듯 했다.
“천축국에서 왔다 들었다. 맞는가?”
문형일은 권희달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각에서 몇 달을 함께 보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임금에게 그것을 이야기해 준 사람은 권희달일 것이다.
“예, 전하.”
천축국에서 왔다는 것이 숨길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이 씩 웃었다. 임금은 별다른 공력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만우가 주는 위압감과는 또 다른 종류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군림하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다. 그 때문에 문형일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조심했다.
“내 스승님께서도 천축국의 승려께 사사받았다 들었지. 그대를 만난다면 기뻐하실 것 같은데.”
“예?”
“지공대사라 하시던데. 아는 바 있나?”
천축국이 어떤지 임금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임금이 문형일을 붙잡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탐이 났기 때문이다. 검주의 사람이란 것을 알지만 검주의 성격 상 부하들을 옥죄고 다스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니 문형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검주는 잡지 않을 것이다.
“……예.”
임금의 눈이 뜨였다. 별로 기대하지도 않고 던진 이야기였다. 임금의 스승인 무학대사는 천축국의 지공대사와 안면이 있었는데, 그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런가? 어떤 사이인가?”
“…….”
문형일의 눈가에 그리움이 스쳐지나갔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절 거둬주시고…… 길러주신 은인이십니다.”
임금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서렸다. ****** 조사의는 용케 포위망을 뚫고 도망갔던 상왕과 세자 일행이 마침내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것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머금었다.
“멍청한 놈들. 도망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다니. 상왕도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것이 틀림 없다.”
조사의가 흥분한 듯 보이자 허형이 조사의를 말렸다. 허형은 조사의의 부관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는 자였다. 용병술이 뛰어나 칠천이나 되는 반군의 포위망을 유지하며 상왕과 세자 일행을 추격하여 저들을 막다른 길에 몰아넣은 것이 허형의 작품이었다.
“허나 조심하셔야 합니다. 도진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다.”
조사의의 두 눈에서 뱀처럼 죽 찢어졌다. 조사의는 허형에게 살기가 어른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왕 그 늙은이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고는 하나 날카로운 발톱 하나는 있겠지. 틀림없이 나를 비롯한 지휘관들을 노릴 것이다. 하지만 적들의 수는 고작 백이다.”
100 대 7000. 가별초가 정예라고는 하지만 머릿수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 때문에 조사의는 상왕과 세자를 벌써부터 손에 쥔 것처럼 스산하게 말했다.
“상왕과 세자를 제외하고는 전부 죽여라. 말려죽여도 좋고 한꺼번에 들이쳐서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조사의는 잔인했다. 그는 애초에 상왕과 세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살려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상왕과 세자의 기를 꺾기 위함이다. 그런 조사의의 말에 허형은 약간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안변 호족들의 지지와 실질적으로 반군의 수장인 조사의의 심기를 거슬려서 그에게 좋을 것은 없었다.
“개경을 지나 이방원, 그 개 잡종의 군대가 북진하고 있다고?”
“예. 첩보가 들어왔사옵니다.”
허형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왕과 세자를 잡지 못하면 되레 위험해지는 것은 반군이었다. 하지만 상왕과 세자는 막다른 길에 몰려있었다.
“겁도 없이 친정을 나오다니. 왕이 되어서는 안 될 놈이었다. 상왕과 세자를 앞세워 그놈의 군대가 보는 앞에서 그놈의 목을 벤다면 볼만하겠구나. 크흐흐.”
조사의는 음침하게 웃음을 흘려댔다. 상왕과 세자까지 손에 들어오게 되면 조사의에게는 명분이 차고 넘치게 된다. 아직 조선에는 고려의 재건을 꿈꾸는 이들도 남아있었다. 그러니 이방원과 상왕, 세자를 처리하고 그들과 손을 잡으면 건국된지 얼마 안 된 조선은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조사의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기껏해야 동북면에서 활이나 잘 쏘고 말이나 달리던 장수와 그 핏줄이 어떻게 때를 잘 만나 새로운 왕조의 혈통이 된 것이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조사의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만이 그려지자 조사의는 자신도 왕이 될 수 있다는 행복한 상상에 젖었다. 그런데 그때, 조사의의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어이!!!!! 주상전하께 살려달라고 빌어서 안변으로 도망간 쥐새끼!!!!!]
“…….”
조사의와 허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려퍼진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찌그러진 갓과 꾀죄죄한 두루마기를 걸친 거지 같아 보이는 양반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서있었다.
[무릎으로 기어와서 다시 한 번 살려달라고 빈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저 빌어쳐먹을 놈이…….”
조사의의 두 눈이 분노로 물들었다. 임금에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것은 조사의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도 현비 강씨의 조카인 그를 불쌍히 여긴 상왕이 아니었더라면 조사의는 안변 부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사의가 안변으로 간 것은 유배의 성격이 짙었다.
“죽여! 저 새끼 잡아 죽여! 죽여어어어어!!!!!!”
***** 우와아아아아아!!!!
“대, 대협. 정녕 저리해도 괜찮은 것인지…….”
이찬은 개미떼처럼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한 반군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검병을 꽉 움켜쥐었다. 이찬은 그대로 세자를 자신의 뒤에 두었다.
“괜찮아 괜찮아.”
“히익! 마, 만우!!!!”
기세 좋게 조사의에게 소리친 거지 양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동군영이었다. 목청은 좋았고 기세도 당당했지만 동군영은 조선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소심쟁이였다. 그 때문에 동군영은 자신을 죽이겠다며 달려오는 수백의 군사들을 보고는 안색이 허옇게 질린 채 만우의 뒤를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여! 잘했어, 잘했어!”
만우는 씩 웃었다. 이성계는 그런 만우와 동군영을 보고 있다가 만우에게 말했다.
“어쩔 셈이냐? 그냥 가만히 있어도 모자를 판에 막다른 길로 오지를 않나, 적을 도발하질 않나.”
“조사의란 놈의 성격이 영민하기는 하나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이 높다고 했지 않았소?”
만우는 씩 웃어 보였다. 그들이 막다른 길에 몰렸다고 함은 다름이 아니라 살수가 굽어흐르는 곳이 보이는 절벽 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길을 잘못 들어 이곳에 들은 것이 아니었다. 만우는 일부러 덕주 인근의 이곳으로 방향을 잡을 것임을 방매에게 부탁했다. 지리에 빠삭한 방매는 만우의 부탁대로 일행으로 막다른 절벽으로 이끌었다.
“여기만큼 좋은 진지가 어디 있다고. 잘 보십쇼. 여기 지형이 어떤지.”
만우는 턱끝으로 주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뒤는 떨어지면 그냥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살수의 지류가 흘렀지만 앞쪽은 아니었다.
“적절한 경사면이 있어 화살을 쏘기 쉽지 않고. 사방에서 공격하기에는 건너올 수 있는 길의 폭이 정해져 있어 전면으로밖에 못 오지.”
그렇다 해도 족히 쉰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 수 있을 정도의 폭이었지만 전방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것은 맞았다. 거기에 완만한 경사 때문에 위치상으로만 따지면 만우 일행이 더 윗쪽에 있었다.
“적이 칠천이라는 건?”
이성계는 대룡궁을 꺼내 활에 시위를 걸었다. 전마를 잃고 두 발로 이동해야 했던 가별초들도 목궁을 꺼내들었다. 가별초는 딱히 병과가 정해지지 않았다. 말을 타고 창을 쓰면서 말에 내리면 칼을 쓰고, 활을 날릴 수 있도록 궁과 화살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쟤네들 놀라게만 하면 되는 것 아니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척사영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인 척사영이 앞선에 나섰다. 슌스케도 남은 한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초절정 둘에 화경 셋. 이 정도면 적을 막아내는데는 차고 넘치는 전력이지. 거기에 호랑이도 한 마리 있고. 미리 보낸 초절정만 셋에 하나는 국왕을 데리고 돌아올테고.”
만우는 히죽 웃어 보였다. 절대적인 머릿수는 만우 쪽이 불리했다. 만우의 말대로 이쪽에 초절정이니 화경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는 하지만 경지가 높다고 해도 인간인 이상 한계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는 마치 자신들이 칠천이나 되는 적을 포위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수가 부죽한 대신, 그 하나 하나가 압도적으로 적들보다 강하니 적을 괴롭혀야지. 그래서 애들을 보낸 거니까.”
국왕이 군대를 몰아 올라오기까지만을 기다리면 해결되는 일이다. 좌검우도를 꼬나쥔 척사영이 흙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수백의 군사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쇼. 편하게. 방매. 그렇지 않아?”
만우는 바짝 긴장한 이성계와 가별초들을 보면서 픽하고 웃었다. 그러면서 방매를 쳐다봤지만 방매가 보이지 않았다.
“방매?”
“만우 넌 미쳤어! 난 살 거야! 그러니까 찾지 마!”
만우는 일행에서 멀리 떨어져 수풀 속에서 들리는 방매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찬과 세자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만우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다들 담이 저렇게들 작아서야…….”
마교에도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갔던 만우다. 그곳에서 혈세천마와 싸워보겠다며 며칠을 버텼는지 모른다. 그런데 고작 무공을 익힌 이들도 아니고, 일반 군졸들을 상대로 저리 긴장을 하다니. 자신이 지나치게 간이 비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만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