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도주(1)2020.03.28.
“전하. 친정이라니요. 너무 위험한 처사이십니다.”
새하얀 백마를 탄 채 번쩍이는 갑주와 두터운 모피로 만든 피풍의를 걸친 임금은 무릎을 꿇고 간곡하게 호소하는 좌정승 민제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데 위험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전하!!!”
임금이 친정을 선포한 것에 대해서 조정이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임금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강력하게 선언하여 대신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좌정승과 신석린에게 맡기고 가는 것 아니오? 무엇이 그리 걱정이란 말이오?”
임금은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뒤에서 갈색마를 탄 채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권희달을 쳐다봤다.
“조선제일검이 내 뒤를 따르는데.”
“전하!”
“좌정승! 반란이오. 반란! 감히 이 조선에서 반기를 든 적도란 말이외다!”
임금의 눈에서 빛이 쏘아져 나가는 듯했다. 좌정승 민제는 그런 임금을 보고서는 고개를 떨궜다. 민제는 고려 말부터 영향력을 행사했던 조정대신이다. 하지만 그런 그라고 해도 임금의 저 단호한 눈을 보고 나니 단념시키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대감.”
좌군과 우군을 맡은 김영렬과 신극례 대신 토벌대의 후군을 맡은 장군 조영무가 좌정승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제 아무리 적들의 기세가 드높다고 해봤자 반군의 무리일 뿐입니다. 전하께서 친정을 하신다면 사기가 올라가면 올라갔지 패배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조사의를 토벌하기 위해 편성한 군대가 일만 오천이다. 안변에서 아무리 많이 군사를 이끌고 거병했다고 해봤자 일만이 채 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북상하면서 병력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니, 조사의의 반군 따위에게 질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리고 조사의가 거병을 했다고는 하나 그에 동조할 지방관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조영무의 호기로운 말에 민제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설 부사와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이시게.”
임금은 민제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걸어 나갔다. 그러자 임금의 옆에 선 권희달이 목소리에 공력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전구우우운!! 출진!!!!!”
둥, 둥, 둥! 커다란 북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약 오천 명으로 이뤄진 임금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대도 내가 걱정이 되는가?”
임금은 말 위에 앉아 오천 명의 군세 앞에서 그들을 이끌면서 권희달에게 넌지시 물었다. 권희달은 사방을 경계하기 위해 키워놓은 기감을 풀지 않고는 임금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니옵니다, 전하.”
“그렇지. 자네가 있으니까.”
임금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궁에만 갇혀 있다가 나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구나. 안 그런가?”
“예, 전하.”
피 비린내 나는 전투를 앞둔 출정이었지만 임금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의 말마따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궁에만 있다가 출진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함주로 곧바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 전하거라.”
“예, 전하.”
어디까지나 임금이 행차를 나선 이유는 상왕을 궁으로 모셔오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한 왕의 교지가 파발과 함께 좌군과 우군, 후군으로 출발했다.
“이 부사가 제대로 적들의 발목을 붙잡아야 할 텐데. 그곳의 상황을 모르니 답답하구나.”
임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때 권희달이 검병을 움켜쥐었다.
[은월루이옵니다, 운검 나리.]
권희달의 귓가에서 울려 퍼진 전음 때문이다. 권희달은 고개를 돌려 오와 열을 맞춰 행군하고 있는 군졸들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 권희달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전하. 은월루이옵니다.”
“그래? 전장의 소식을 가져온 것인가?”
조사의가 군을 일으켰다는 소문은 궁에서 통제를 하려고 해도 민간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조선이 개국한지 고작 십 년이다. 안 그래도 임금은 상왕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과 형제를 죽였다는 것 때문에 백성들의 신뢰를 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역모이기 때문에 임금은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직접 친정을 결정한 것이었다.
“예. 헌데…….”
권희달의 안색이 변했다. 임금은 그런 권희달을 보면서 침음을 흘렸다.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이천우 장군의 선봉군이 패배하였다 하옵니다.”
“뭐라? 패배?”
임금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승패는 병가지상사였다. 문제는 토벌대의 선봉군이 패배를 하였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일어날 군 전체의 사기의 변화였다.
“대패라고…….”
“대패…… 그러면. 이 부사는?”
그냥 패배가 아닌 대패라는 소리에 임금의 안색이 변했지만 임금은 침착한 눈으로 권희달에게 말했다. 권희달은 은월루 조직원의 전음을 듣고서는 침음성을 흘렸다.
“좌익찬 설운의 도움으로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왔다 하옵니다. 그리고는 인근의 자성으로 돌아가 수습을 하고 있는 와중이라는데…….”
“그런데?”
조사의가 이천우를 격파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조사의는 전장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천우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다.
“적의 수가 족히 칠천은 된다고 하옵니다.”
“…….”
적의 수가 칠천. 여전히 토벌대의 군세가 더 강하기는 하나 문제는 안변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천혜의 요새라는 점이었다. 만약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방어에만 전념한다면, 일만 오천으로는 조사의의 군대를 뚫을 수가 없었다.
“허나 희소식도 있사옵니다. 세자저하께서 검주의 일행과 합류하였다고 하옵니다. 곧바로 함주로 향했다고 하니…….”
“함주, 함주…….”
세자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기뻐할 만도 하건만, 임금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세자의 정보를 조사의 측에 흘리기로 결정을 하는 것은 임금도 승낙했다. 검주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의의 군세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컸다. 함주에 있는 상왕과 세자가 조사의의 손아귀에 넘어간다면, 그리고 자신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방어에만 전념하는 저들을 뚫어내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왕과 세자가 적도들의 손에 넘어가는 동안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을 반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통성에 이어 명분에서도 완벽하게 밀리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막아야겠구나.”
하지만 임금도 한 나라의 지존이다. 그리고 임금은 여러 수라를 거쳐서 조선의 정점에 우뚝 선 거인이다. 그런 거인에게 위기를 탈출할 묘안 한두 가지가 없을 리 없었다.
“은월루주 어리에게 전하라. 과인이 보고자 한다고.”
“예, 전하.”
권희달은 고개를 숙여 보였고, 이내 군영에서 한 인형이 슬쩍 빠져나와 옆길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바마마께서 고집을 부리시면 안 될 텐데…….”
모든 조치를 다 취해놨지만, 임금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마지막 한 조각을 상왕이 움직이지 않고 버틴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만우. 그 치를 믿는 수밖에…….’
*****
“왜요. 쏘시게요?”
만우는 자신의 미간 사이에서 화살촉이 예기를 뿜어내며 흔들거리고 있었지만 눈에 담은 살기를 풀지 않았다.
“전하! 진정하시옵소서!!”
“닥쳐라! 내 이 놈을…… 이 놈을!!!!”
동군영이 그런 이성계를 말리기 위해 소리쳤지만 이성계는 분기탱천한 얼굴로 만우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글쎄. 어디 한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만우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런 만우의 손가락 위로 검기가 고요하게 피어올랐다. 만우는 자신의 손가락을 검 삼아 검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만우의 검기는 지극히 정제되어 있어 이글거리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고고하게, 마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시린 예기를 여과 없이 흩뿌릴 뿐이었다. 그런 만우의 검기를 본 이성계의 눈이 흔들렸다.
‘실로 괴물이로구나.’
속으로 탄성을 터뜨렸지만 여전히 만우에게 분노한 이성계였다. 다른 이들도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가별초를 인질로 잡고 협박질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선의 상왕인 자신에게 말이다.
“그 화살이 빠를지, 내 검기가 더 빠를지 말입니다.”
만우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얄미워 보였다. 마치 놀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로만 존댓말을 쓰면서 행동은 방자하기 그지없었으니 더욱더 그랬다.
“그리고.”
만우는 살기 어린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자신의 미간을 노리고 있는 화살촉을 똑바로 노려본 만우가 이성계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 화살 한 대가 여기에 꽂힐 것 같습니까?”
만우는 자신의 이마 정중앙을 톡톡 건드렸다. 테무르가 화살을 얻어맞고 죽은 바로 그 미간이었다. 이성계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힘을 더욱 줄 뿐이었다.
“한번 해보시지…….”
짜악!
“……?”
만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성계가 말을 듣지 않으니 본보기로 가별초 수장부터 시작해 몇 놈을 반 죽여놓고 시작할 셈이었다. 웬만한 말로써는 이성계의 자존심을 꺾을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뺨에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만우!! 자네 정말로!!!!”
동군영이 만우의 뺨을 친 것이다. 만우는 멍한 표정으로 동군영을 쳐다봤다. 동군영을 본 이래 처음으로 그는 진지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다니. 아무리 자네가 무인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그리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세!!”
“…….”
내공 하나 없는 동군영에게 뺨을 얻어맞을 줄이야. 만우의 입에서 절로 실소가 새어나왔다. 동군영은 그 소심한 성격에 만우의 뺨을 치고서도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면, 어사 나리는 여기서 모두가 죽자는 소리야?”
만우가 동군영에게 말했다. 동군영은 고개를 저었다.
“만우 자네 말이 틀리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무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알지 않나! 상왕 전하시네. 상왕 전하야!”
아들을 꼴 보기도 싫다고 함주로 훌쩍 떠나버린 이성계다. 그런 이성계의 고집은 쇠심줄이나 다름없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뺨을 쳐?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뺨을?”
이성계도 동군영의 돌발 행동에 적지 않게 놀란 듯 싶었다. 이성계의 활이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러면. 상왕 전하의 뺨을 쳤다가 삼족이 멸하라고?”
동군영은 이성계를 쳐다보지 않으며 만우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마치 동군영은 간을 배 밖에 내놓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동군영의 말인즉슨, 이성계도 칠 수만 있었으면 뺨을 쳤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자네…… 미쳤나?”
“안 미쳤사옵니다, 전하.”
이성계가 동군영에게 간신히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동군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께서 다투신다 하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옵니다. 만우가 가별초를 모두 죽인다고 하여 움직이실 전하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사생결단을 내실 터이지요.”
“그렇긴 하네만…….”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동군영의 모습에 이성계는 말끝을 흐렸다.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자 이성계도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하께서 만우를 죽이실 수도 없을 것 같고 말입니다.”
“…….”
“…….”
이성계는 침묵으로 긍정했고 만우는 말하면 입 아픈 일이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동군영은 떨림 없는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열었다.
“허나 전하께서도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함주, 이곳이 방어를 하기에는 대단히 열악한 곳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알고 있네. 허나…….”
“또한.”
만우의 눈이 커졌다. 방금 동군영은 무려 상왕의 말허리를 끊었다. 소심증은 어디로 팔아먹었는지 동군영은 마치 거친 장군들을 통솔하는 냉철한 책사처럼 입을 열었다.
“저희가 데려온 곡산척가의 척사영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렸으니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역도들이 함주를 멀쩡히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하시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