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너처럼 강한 여자는 처음이야(5)2020.03.24.
촤차창!!!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이방원의 개들을 쓸어버려라!!!”
이천우는 가까이에서 들리는 반군들의 고함소리에 대경했다. 멀찍이서 숨어서 화살만 날리던 놈들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천우의 군대를 들이친 것이다. 이천우는 전장이 철저히 난전 상황이 되버리자 이를 악물었다. 진형이 이미 흐트러진 상태에서 선공을 그대로 얻어맞고, 그 다음에 들이닥친 후속타다. 버틸 수 없었다.
“이 내가. 내가 또다시…….”
이천우는 달려드는 반군을 검을 휘둘러 베어냈다. 그러자 옆으로 부장이 말을 몰아와서는 간언했다.
“장군! 말에서 내려서 도망치셔야 합니다. 이미 선봉은 궤멸 직전이고 이곳으로 적들이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고작 반군에게…….”
고작 반군이라 저들을 경시한 것이 패배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겨우 반군이라고 하기에는 안변과 문주, 영흥부 등에서 일어난 조사의의 군대는 호족들의 도움으로 무기와 식량이 풍족했다. 고작 안주의 군대를 몰아온 이천우는 수에서도, 질적인 면에서도 조사의의 반군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임금도 이천우의 선봉에게 기대하는 것은 국지전을 통해 적들의 발목을 붙잡아 놓는 것이었다. 그사이에 제대로 된 군을 소집하여 올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임금이 간과한 것은 이천우의 승진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천우는 선봉에 선 군졸들이 항복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그때, 조사의의 군대 뒷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레 울려퍼졌다.
“장군!!!”
번쩍!!!!! 이천우의 눈이 커졌다. 눈 앞에서 벼락 같은 것이 번쩍이더니, 장판파를 내달리던 조자룡처럼 이천우를 옥죄어 오고 있던 반군들 사이로 쩌억하더니 길이 생겨난 것이다. 두두두두!!!!
“설 부장!!!”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반군 네댓 명이 피를 뿌리며 나가 떨어졌다. 그렇게 만든 길로 추행진을 만들어 파고든 설운의 이름을 이천우가 소리 높여 불렀다.
“이랴!!!!”
이천우의 위치를 파악한 설운이 검을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번쩍거리는 검광과 함께 피보라가 일었다. 그러자 반군들이 감히 설운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거리면서 길을 터주었고, 그 사이로 설운이 말을 몰아 달려들어왔다.
“장군.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그런데…….”
“역적 조가의 뒤로 돌아가 은밀히 따르고 있었사옵니다. 병력이 적어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고작 이백 여 기로....”
이천우는 할 말을 잃고는 고개를 숙인 설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설운이 데리고 나간 기병은 고작 200기다. 반면 이천우는 척후로 내보냈던 기병 100기를 조사의에게 몽땅 잃어버렸다. 아마 사로잡혔을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소장이 앞장 서서 포위를 뚫겠습니다. 따라오시옵소서.”
조사의의 반군은 촘촘하게 포위망을 형성해 좁혀오고 있었다. 하지만 설운이 말에 박차를 다해 달리기 시작하자 조사의의 반군들은 감히 설운의 앞을 가로막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비켜나기에 급급했다.
“네 이놈! 이 몸이 바로 아장…….”
서컥!!!
“막는 놈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설운에게서 어마어마한 투기가 쏟아져 나왔다. 한가락해 보이는 듯했던 아장을 설운이 무처럼 베어넘기자 반군들이 아예 무기를 버리고 옆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스거거걱!!!! 검광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수많은 반군들이 피를 뿜으며 죽어넘어졌다. 설운의 검은 냉혹무비했다. 반군을 용서치 않는 설운의 활약에 마침내 설운과 이천우, 그리고 이천우의 아들인 이밀은 포위망을 뚫고 나왔지만 남은 이들은 고작해야 기마병 열 기가 전부였다. 대패.
“이럴 수가. 어찌 이리도 패할 수가 있단 말이냐.”
이천우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도 참혹한 대패였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의 방자함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것이 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내 잘못이네. 설 부장. 그대의 말을 듣지 않은 내 잘못이야.”
함께 출병한 조영무와 김영일, 이귀철 등의 장수들과 함께 동행한 은주 지사 송전 등의 생사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설운은 눈물을 흘리는 이천우에게 말했다.
“마음을 굳게 다잡으십시오. 이제라도 돌아가서 방비를 해야 합니다.”
설운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천우가 눈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자성(慈城)이 있다. 그곳에 가면 오백 정도가 주둔하고 있다. 그곳에서 병사들을 수습할 것이다.”
안주에서 이끌고 나온 병사가 삼천이었다. 삼천이 전부 반군의 손에 넘어갔을 리 없으니, 자성에서 패잔병들을 추스리고 다시 병사를 일으켜야 한다.
“조사의의 기세가 참으로 강하구나.”
“적들의 발을 붙잡아야 합니다 장군. 소장이 결사대를 이끌고 낙오된 자들을 수습하여 자성으로 보내고, 적들의 동태를 살핌과 동시에 후방에서 교란 작전을 펼치겠습니다.”
설운의 용기 넘치는 말에 이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에 설운의 말을 들었거나, 설운이 곁에 있었더라면 이 정도로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된 후퇴를 해보기도 전에 적의 함정에 빠져 궤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천우는 설운에게 말했다.
“설 부장만 믿겠네. 주상전하께서 괜히 그대를 보낸 것이 아니었어.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 자초한 일. 그대에게 사과를 하겠네.”
“아닙니다, 장군.”
“무리하지 마시게. 적들의 보급로와 식량 창고를 위주로 철저하게 대규모 교전을 피해가면서 산을 타 이동하면 될 걸세.”
설운은 고개를 숙였다. 이천우는 전면전은 꽝이지만 국지전은 조선 최고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조언을 마음에 새긴 설운은 포위망을 뚫고 나온 기마병 중 다섯을 이천우에게 맡기고 다섯을 이끌고 다시 전장터로 향했다. *****
“후우.”
만우는 주먹을 어루만졌다. 그런 만우의 발치에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혀를 쭉 내민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백호가 쓰러져 있었다. 백호의 신체 여기저기에는 주먹 자국이 박혀져 있었는데,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마구잡이로 때린 것처럼 보이지만 맞은 당사자인 호선은 알고 있었다.
‘뭉쳤던 응혈이 퍼진 것처럼, 도력의 흐름이 원활해졌어.’
호랑이의 혈은 인간과는 다르다. 하지만 만우의 눈에는 도력이 흐르는 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막힌 부분을 두들겨 팬 것이다. 겸사겸사 호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련을 한 것이고. 그런데 그 때 가별초 복장을 한 이가 달려와 만우 앞에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만우가 태연하게 그 가별초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별초가 당황한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나리.”
만우는 굳이 자신이 꼿꼿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이 머슴 출신이란 것을 잊지 않았다. 필요할 때야 얼마든지 꼿꼿해질 수 있는 허리지만 가별초 앞에서 허리에 딱 힘을 줄 필요는 없었다.
‘건방지게 나오지 않는다면야.’
“사, 상왕전하께서 그러니까…… 음, 그쪽을 모셔오라고…….”
이성계에게 거침 없는 언행을 하는 만우는 가별초에서 특별 경계 대상이었다. 감히 함주본궁을 습격한 왜놈에게 수레를 끌게 해 다시 데려오고 나서는 특히나 더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음, 옛 맹주 근방의 애전이라는 곳에서 반군과 관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는 첩보 때문에…….”
“호오.”
만우가 히죽 웃었다. 맹주 근방의 애전이라면 함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곳까지 조사의의 반군이 진출했다는 뜻이다.
“만우. 왔어?”
대전으로 향한 만우는 벌써 완전무장을 한 채 앉아있는 이성계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누가 보면 마치 전쟁을 기다린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사 나리는 왜 여기에 계십니까?”
“됐네. 어색하게 이제와서 경어를 쓰는 척은.”
이성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만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이성계와 가별초 수장, 그리고 동군영이 전부였다.
“그런가?”
만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남은 자리에 앉았다. 이성계가 만우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해 논하려 하네. 좋은 생각이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하시게들.”
이성계는 가별초 수장과 동군영, 그리고 만우를 차례대로 쳐다봤다.
“환도는 생각해 보시었습니다 전하?”
동군영이 기대에 찬 얼굴로 이성계를 쳐다봤다. 환도라 하면 수도로 돌아가자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성계와 가별초 수장의 얼굴이 별로 좋지 않았다.
“돌아가라? 한양으로?”
“예. 그러시는 것이 순리라 사료되옵니다.”
동군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이성계의 말에 대답했다. 만우는 이성계와 가별초 수장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들인데, 그러면 괜히 우리 어사 나리보고 말하라고 하지 말고 노인네가 말해보지? 무슨 생각이 있는지?”
이성계도 귀가 닫혀 있지 않은 다음에야 돌아가는 상황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의가 왜 안변과 문주, 영흥부에서 군을 일으켰는지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이성계. 상왕을 손아귀에 넣어 반군의 명분을 확립하는 것이 조사의의 노림수였기 떄문이다.
“그럴 수는 없다.”
“전하. 어찌하여…….”
동군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성계는 임금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급 상황이었다. 당장 반군들이 이성계를 놀리고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전한 곳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나보도 조사의 따위가 두려워 피하라?”
이성계는 코웃음을 쳤다. 동군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성계는 고려 최고의 무장이었다. 하지만 전력은 그 누가 보더라도 이성계의 열세였다.
“함주의 관군들은 상왕 전하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아시지 않사옵니까.”
동군영은 간곡하게 이성계에게 말했다.
“주상전하께서도 상왕전하를 몹시 걱정하고 계시옵니다. 허니 측은하게 생각하시어 환도를 고려해 보심이…….”
“주상은 대체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성계는 오히려 분노를 터뜨렸다. 동군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사의를 안변부사에 임명한 것은 전부 이성계의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조사의는 현비 강씨의 조카이기 때문에 이성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조사의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었다.
‘한 번 눈 밖에 나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게로구나.’
동군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성계는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환도니 뭐니 하는 약한 소리만 하지 말고, 좋은 계책이 없는가? 조사의 그 개잡놈의 반군을 막아낼 병법 같은 것 말이다.”
“……전하.”
“가별초는 최소한 일당 십의 정예들이다. 그런 가별초가 백이나 있다. 그렇다는 것은 함주의 관군이 오합지졸이라 하여도 최소한 천 이상의 병력이 있는 것과 같음이다.”
이성계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구려의 양만춘 장군은 당의 수십만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을지문덕 역시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에 머릿수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다.”
전쟁을 많이 치뤄본 이성계였다. 하지만 동군영은 이성계가 조사의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사의의 반군은 일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승리까지 거둬 사기가 매우 드높사옵니다. 거기에 안주의 이천우 장군이 고작 열 기의 기마만을 끌고 간신히 포위망을 뚫었다고 하더이다. 그 수가 족히 일만에 다다른다고 하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만우의 눈이 커졌다. 일만. 많아야 오천쯤 될 줄 알았던 조사의의 기세가 매서웠기 때문이다. 만우는 킁하는 소리를 냈다.
“상왕.”
“만우. 네가 강현의 군대를 단기로 격파하고 척가의 준영을 구해왔다 들었다. 네가 나선다면 어떻겠느냐?”
이성계는 아예 이곳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만우는 그런 이성계에게 비릿하게 말했다.
“상왕. 본주보다 그대가 더 강한가?”
“……뭐?”
난데없이 회의를 하다말고 한 판 붙자는 듯한 만우의 시비에 이성계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당장에 가별초 수장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노오오옴!!!”
가별초의 수장은 이성계에게 충성심이 깊은 자였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만우는 지금까지 충분히 가별초 수장을 봐줬다고 생각했기 떄문에, 이번에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본주가 말을 하는데 어디서 감히.”
만우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동시에 커억하는 소리와 함께 가별초 수장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무형의 공력이 가별초 수장을 후려친 것이다.
“이제 좀 조용해졌군.”
만우는 그 한 수에 기절한 가별초 수장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동군영이 기겁하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 자네! 상왕 전하 앞에서 무슨 짓을 하는겐가!”
“왜. 어사 나리도 막게?”
만우의 평온하기 그지 없는 말투에도 동군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만우의 신위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동군영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만우, 너는 역졸이다. 네가 검주고,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예의와 법도는 지켜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너를 막는 것이다.”
동군영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만우는 살포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군영의 소심증을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이 놀랄만 했기 때문이다. 만우는 잠시 동군영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쯤 져주는 것도.’
동군영이 신분에 대한 편견이 크게 없어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군영의 손해였다. 조선은 신분을 중시하는 나라였고, 동군영은 양반인 반면 만우는 천인이었다. 그러니 손해를 보는 동군영에게 한 번 져주기로 한 만우다.
“그러면 상왕 전하.”
만우가 ‘전하’를 뒤에 붙이자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내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에 만우가 따라준 것이 은근히 기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기 때문에 그것을 티내지 못하는 동군영을 곁눈지롤 힐끗 하고는 만우가 이성계에게 말했다.
“본주보다 상왕 전하가 강하십니까?”
임금 앞에서도 자신이 그보다 중원에서 낮지 않았다면서 말을 높이지 않았던 만우다. 임금이 본다면 꽤나 억울해할 테지만 이성계는 허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건…… 모르지.”
이성계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단 한 번의 검도, 논검(論劍)조차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우는 굳이 그런 이성계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뭐, 생각은 자유지만 백 번 양보해서 상왕 전하가 저와 비슷하다고 칩시다.”
만우의 말에 이성계가 인상을 살짝 썼다. 하지만 이성계도 솔직히 말해서는 만우에게 승리를 장담한다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슬쩍 넘어가기로 했다.
“일만의 군대. 그 일만의 군대를 저 덜 떨어진 놈들 백 놈을 데리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못 할 것도 없다!”
이성계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만우, 너는 무림이란 곳의 경험밖에 없기 떄문에 군에 대한 것은 모른다. 하지만 난 평생을 전쟁터에서만 살아온 무장이다.”
이성계의 눈에서 정광이 흘러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성계는 조선의 상왕이었지만, 전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빛이 났다.
‘천상 투쟁을 하다가 죽을 위인이야.’
이제는 하다 못해 자신의 아들과 투쟁을 벌이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이성계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린 만우가 이성계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쨌든 뭐가 됐건 들어봐야 그게 개소리라고 할 수 있는 법이다.
“소수의 병력으로 대규모 적을 물리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조사의도 결국 그저 그런 먹잇감이 될 것이다.”
“소수의 병력?”
만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성계는 어깨를 쭉 폈다. 이성계에게는 가별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별초가 있다. 백 명. 네 수준에는 아무 것도 아니겠으나…….”
만우 같은 절대고수와 비교하면 물론 가별초 백 명은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집단전과 난전의 달인들이다. 이성계를 쫓아다니면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가족과 유사한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협동심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계는 자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무위와 가별초 백 명이라면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글쎄. 본주가 귀찮은 걸 싫어해서 말입니다.”
만우의 몸에서 자욱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군영은 또 만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불안하다는 얼굴로 만우를 쳐다봤다.
“본주가 임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은 어디까지나 상왕 전하의 보호이지, 적을 깨부수겠다는게 아닙니다.”
“겁쟁이군. 그렇다면 네놈도 물러서라. 나와 가별초만 함께 할 것이다.”
동군영은 대체 어쩌려고 이성계를 자극하냐는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만우는 여전히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누구 마음대로?”
화악! 이성계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분신처럼 늘 놓고 다니는 대룡궁을 집어들었다. 만우의 살기가 그만큼 농밀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기를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하지만 이성계는 자신의 옆에 앉은 동군영이나, 가별초 수장이 멀쩡하다는 것이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저 둘은 느끼지 못 하는 살기를, 자신만 느낀다는 것은 만우가 기세를 마치 수족처럼 다룬다는 뜻이기 떄문이었다. 그리고 이성계는 아직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본주는 상왕 전하만 무사히 한양으로 모셔가면 됩니다. 만약 저 가별초들이 상왕 전하로 하여금 조사의의 반군과 필요도 없는 전쟁을 벌이게 하는 이유라면…….”
“네 이놈!!”
이성계가 노성을 터뜨렸다. 이성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허연 수염이 푸들푸들 떨리는 것은 덤이었다.
“만우! 입 조심 하시게!!!”
동군영도 놀라 만우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만우는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이성계의 노기 어린 눈을 피하지 않고 직시했다. 아니, 만우의 눈에서 흘러나온 살기가 오히려 이성계의 노기를 찍어눌렀다.
“본주가 친히 죽여드리지. 그 가별초란 놈들. 그러면 상왕 전하께서도 본주를 따라오시겠지. 아니 그렇습니까?”
“이노오오옴!!!!”
이성계의 대룡궁의 시위에 화살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