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하룻강아지 검주 무서운 줄 모르고(4)2020.03.07.
[돌아가라! 그대들에게 허락된 곳이 아니니!]
이무기는 자신이 느낀 강렬한 기운들이 안개구름으로 만든 진법과, 안개구름의 공격을 받아 허둥대는 것을 보면서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강한 인간들.’
지금까지 이무기가 봐온 인간들 중에는 강한 축에 속하는 인간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만 못한 인간들이다. 이무기는 최대한 인간들을 죽이지 않게 조심을 하면서 안개구름을 조종했다.
‘아이와 여아는…… 어엇?’
아이와 여아, 양녕과 방매를 제하려고 했던 이무기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라면 안개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목검을 빼들고 오히려 안개구름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아는 또 어떠한가. 안개구름을 발로 짓밟고 쳐내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 중 하나가 겁에 질려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있었다. 갓을 쓴 남자를 안개구름으로 둘러싼 이무기가 혀를 쯧쯧 하고 찼다.
[끈질긴 인간이로고.]
강한 인간들이 제각기 재주를 부려 안개구름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안개구름은 그 형태가 없다. 아무리 베어도 사라지지 않고 아무리 싸워도 지치지 않는다. 안개구름과 싸운다는 것은 허공에 혼자 손을 내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
[인간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이무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천달산 초입에서 느꼈던 인간들의 수보다 머릿수가 하나 작았다. 이무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이무기가 입을 떡하고 벌렸다. 무언가 대단히 강렬한 기세가 안개구름을 통째로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안개구름에는 이무기의 도력이 꽤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슴이 죄이는 느낌에 이무기가 헉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뒤, 인간의 사자후가 구름골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와! 이 뱀새끼야! 구름 뒤에 숨어서 수작질 부리지 말고오!!!!!!!!!!”
***** 우르릉!!!! 만우는 자신의 사자후(獅子吼)에 구름골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끼며 괘검으로 허공을 거칠게 그었다. 쩌저적!!!! 구름골의 절벽이 쩌억하고 갈라졌다. 그러면서 갈라진 절벽이 우수수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우는 만족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네.”
자신을 지켜보던 시선이 그곳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우는 그것이 이무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호선과 비슷한 기운이 얼핏 느껴졌기 때문이다.
“검주!!”
“대장!!”
“만우!!!”
만우는 안개구름을 일거에 날려 버렸다. 진을 파훼한 것이 아니었다. 이무기는 안개구름을 이용해 진법을 만들어놓은 것뿐이다. 만우는 멀리서 스멀스멀 다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몰려드는 안개구름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쓰읍.”
안개구름을 일거에 날려버린 덕분에 구름과 싸우느라 헐떡이던 이들이 나타난 만우를 보고 반색했다.
“뭉쳐 있든가. 아니면 안개구름을 날려버려. 알았어? 받아치지 말고. 구름을 왜 가르고 있는 거야.”
만우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이무기가 만들어놓은 진법은 확실히 화경 미만의 고수들에게는 까다로운 진법이었다. 감각을 교란시켜서 혼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우가 없었더라면 초절정인 사인방도 공력이 고갈될 때까지 구름과 싸우다가 결국 먼저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검을 휘둘러도 시간을 버는 것이 고작.’
안개구름은 만우도 베어버릴 수 없었다. 지금처럼 공간 전체의 안개구름을 날려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시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몰려드는 안개구름을 보던 만우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콰앙!!
“만우야!!”
동군영이 놀라 만우를 불렀다. 집채만 한 바위가 하늘에서 만우의 머리 위로 뚝하고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만우가 부서진 바위를 헤집고 하늘로 솟구쳤다.
“이 새끼가! 장난을 치자고!”
만우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서렸다. 그사이 만우의 일행들은 모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등을 맞댔다. 몰려드는 안개구름을 향해 싸울 기세로 무기를 치켜든 것이다.
“내 살다살다 구름을 상대로 싸울 줄은 몰랐네.”
문형일이 투덜거리면서 초승달 같은 곡도를 휘둘렀다. 안개구름을 베어버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후아아아앙!!!!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우가 말한 대로 따른 것이다. 이찬과 슌스케까지 포함해 초절정 고수 6인이 내뻗은 무기나 팔, 다리에서 일어난 바람이 다가오는 안개구름을 쭉 밀어냈다. 그사이 만우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아래로 떨어졌다. 몰려오는 안개구름의 한가운데였다. 쉬시시싯!!! 만우는 마치 당가의 고수가 뿌린 암기처럼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안개구름을 보면서 검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허공을 벤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기를 일으켜 허공을 후려쳤다. 그러자 안개구름이 쭈욱하고 찢어졌다. 질량이 없는 안개구름은 만우의 경력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물리력을 실어 공격한다고는 하지만 그 힘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본체를 찾지 못하면 그냥 소모전이야.’
만우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호선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때는 호선이 자신감에 차 인간이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뛰쳐나온 것이지만 이무기는 정반대였다.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있었다.
“소모전?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열이 뻗친 만우가 괘검을 고쳐 잡았다. 이무기가 소모전을 원한다면, 그에 응해주면 그만이다. 이무기는 만우의 체력을 소모시킬 생각이었다면, 만우는 이무기의 집인 이곳을 부술 생각이었다.
“네놈이 모습을 안 드러내고는 못 배길 정도로 부숴주마!”
콰직!!! 만우가 짓밟은 땅이 얼음조각처럼 와작하고 쪼개졌다. 동시에 만우의 신형이 뇌전처럼 구름골 계곡을 향해 폭사했다. ***** 콰자자자자작!!!! 세 시진. 만우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지 무려 세 시진이나 지났다. 들어올 때는 해가 머리 위에 걸려 있었는데,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기에 해는 진작 져버렸고 어둠이 내려앉은 계곡에서 만우의 검기만이 정신없이 번쩍거렸다.
“저게 말이 돼?”
만우가 난동을 부리면서 구름골 계곡을 부수기 시작하자 안개구름들이 그쪽으로 쑥 몰려갔다. 그 덕분에 다른 이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세 시진이라고. 세 시진 동안 검기를 뿜어대면서 싸울 수 있다고?”
감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기는 공력의 소모가 매우 심한 기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살짝 뿜어서 쓰지 만우처럼 저렇게 긴 시간을 유지하면서 싸우는 이는 없었다.
“저게 화경…… 아니. 화경 고수들도 저 정도는 아니야!”
필두가 고개를 저었다. 화경 고수들은 그 넓은 중원에서도 열 명, 은거고수까지 쳐줘서 스무 명 남짓이다. 그러니 화경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쩌저저적!!! 만우가 괘검을 한 번 휘두르자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만우가 계속해서 쳐대고 있던 산등성이 부서지면서 토사가 계곡으로 쏟아져 내렸다.
“저게, 저게 만우…….”
동군영과 방매는 만우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세 시진째 보고 있는 것이지만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런 만우와 지난 세 달 동안을 같이했으니,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검…….”
양녕은 만우에게 푹 빠진 얼굴을 한 채 만우의 검기가 번쩍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양녕의 옆에서 간장은 두 주먹을 쥔 채 벌떡 일어서 팔을 하늘 높이 뻗어올렸다.
“우오오오오오오!!!!”
“……?”
이찬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간장을 쳐다봤다. 간장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만우의 검이 번쩍이면서 구름골 계곡이 폐허로 변해갈수록 간장의 흥분은 고조되어만 갔다.
“내가 만든 검이. 내가 만든 검이. 아직도 멀쩡해!!!”
간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만든 검이 세계제일의 검이 되길 원하는 간장다웠다. 간장은 만우의 무위에 경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검이 자연을 부수고 있다는 그 자체에 환호했다.
“거기서 위로! 아오 대장!”
“뒤. 뒤. 대장!”
문형일과 마익후는 만우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보면서 슌스케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멀쩡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참다참다 폭발한 이무기의 목소리가 계곡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캬아아악! 인간!!! 인가아아아안!!]
쿠르르르릉!!!!! 갑자기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계곡물들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놀란 이들이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쓰는 사이, 만우는 능선 위에 발을 걸친 채 히죽 웃었다.
“드디어 튀어나오는구나!!!”
구름골 계곡은 맨 처음 그 모습을 잃어 버린 지 오래였다. 계곡물은 중간중간 끊겨 있었다. 만우가 계곡을 무너뜨려 물줄기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막힌 부분들이 꿈틀거리더니 막혔던 구멍이 뚫리듯 물이 위로 솟구쳤다. 크롸아아아아!!!! 그러더니 구불구불한 구름골 계곡에서, 계곡의 폭과 딱 맞는 크기의 어마어마한 덩치의 이무기가 몸을 일으켰다. 부리부리한 두 눈은 뇌전을 담아놓은 것처럼 안광을 번쩍거렸고 짙은 묵빛의 비늘 위를 따라 계곡물이 흘러내렸다.
쿠르르르!! 그렇게 거대한 크기의 이무기가 몸을 일으키자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들이 인외(人外)의 영물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 것이다.
“야. 땅 속에서 나오네. 미꾸라지냐?”
하지만 만우의 얼굴에는 티끌만큼의 긴장감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덩치는 거대하고, 등장할 때의 효과가 대단하기는 했지만 이미 상대의 겉모습에 현혹이 될 경지는 한참 넘어선 만우다. 이무기가 지니고 있는, 영혼을 이루고 있는 힘의 크기는 호선보다 작았다.
“너. 오백 년도 못 살았지?”
[닥쳐라 인간! 이 몸을 왜 이리도 괴롭히는 것이냐! 그냥 얌전히 물러나면 될 것을!]
이무기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만우는 귓구멍을 후볐다. 실제로도 이무기는 수양을 쌓고 있는 와중이었다. 여의주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 이무기는 만우를 해하지 않기 위해 치명적인 살수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가 그렇게 마음껏 구름골 계곡을 부수고 다닌 것이다.
‘계곡물 자체가 이무기일 줄은 몰랐지만.’
이무기는 억울하다는 듯 부리부리한 안광을 토해내며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씨익 웃었다.
“안 나온다고 했던 네가 나왔으니, 소원 들어주나?”
[네놈은 내가 산신령이라도 되는 듯하더냐?]
이무기가 기가 차다는 듯 만우를 내려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이 호랑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만우의 눈에는 그냥 커다란 미꾸라지처럼 보일 뿐이다.
“미꾸라지야 진짜?”
미꾸라지가 천년을 묵으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진짜 이무기는 딱 미꾸라지 모습이었다.
[이 몸은 이무기다!!!!]
커다란 미꾸라지가 이무기라고 우겨도 우스울 뿐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다른 이들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러니까 부를 때 딱 나와서 우리가 원하는 것 들어주면 되잖아.”
이무기에게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낙선이 된 호선과는 다른 것이다. 그 때문에 만우는 이무기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간장을 쳐다봤다.
“간자아아아아아앙!!!!”
우르릉! 만우의 사자후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무너진 산등성이에서 토사가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이무기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거, 인간 맞아?’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위축되지도 않고, 실제로 마주하니 그 힘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 이 정도로 강한 인간이 있나 싶었지만 이무기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네놈들도 나를 사냥하기 위해 온 놈들이냐!!!]
이무기가 소리쳤지만 만우는 이무기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잠깐 기다리라는 뜻이다. 이무기는 두 눈을 꿈벅였다.
“비늘! 몇 개!!!”
“두 장! 두 장이면 되오, 형니이이이임!!”
이무기가 등장한 순간 그 박력에 기가 눌렸으면서도 비늘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기가 살아난 간장이 입나팔을 만들어 크게 소리쳤다. 만우는 이무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히죽 웃었다.
“야. 내놔.”
[........?]
이무기가 고개를 갸웃하자 만우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들었잖아. 내가 왜 이 개고생을 했는지.”
무려 세 시진 동안 검기를 뿜어내며 계곡을 종횡무진한 만우다. 그 때문에 만우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만우도 인간인 것이다.
“비늘. 두 개. 두 개만 주면 그냥 갈게.”
[.............]
이무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인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탐욕스러운 동물이었다. 하나를 주면 두 개를 원하고, 두 개를 주면 열 개를 원한다. 그런데 자신의 비늘을 딱 두 개만 바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믿어. 그리고, 못 믿으면 어떻게 할 거야?”
투확! 만우의 머리카락이 거꾸로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소맷자락이 터질 것처럼 붕하고 펄럭였다.
“한 따까리 더 할까?”
[…….]
이무기가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앞으로 영원히 인간과는 다시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