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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하룻강아지 검주 무서운 줄 모르고(3) (123/400)

123. 하룻강아지 검주 무서운 줄 모르고(3)2020.03.03.

16553218896867.jpg“잊지 마십시오. 저희가 조선에 온 것은 황금 팔십만 냥을 받아내기 위함입니다.”

16553218896867.jpg“그러기 위해 조사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오?”

웅풍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의를 찾아간 투귀대다. 그를 돕고, 그 대가로 은월루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이다.

16553218896867.jpg“이제 필요 없게 되었소. 하오문에서 연락이 왔으니까.”

마일은 쪽지를 들어 보였다. 하오문에서 보낸 전서구를 통해 받은 서찰이다. 주창의 표정이 변하자 마일은 주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16553218896867.jpg“너무 급박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받은 연락입니다. 때문에 바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일의 무공 수위는 투귀대 중 가장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마일만 놓고 먼저 갔던 주창과 위문이었다.

16553218896867.jpg“한양의 하오문에서 온 연락입니다. 은월루, 원하면 저희에게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16553218896895.png“……그 쥐새끼 같은 놈들이?”

하오문은 좋게 평가해 줘야 쥐새끼였다. 개방은 실력이라도 있지, 하오문은 삼류 인생들을 끌어모아 머릿수만 늘린 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오문의 연락이 마일에게는 반갑기만 했다. 아무런 끈이 닿지 않는 조선에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이 움직이려니 여러모로 불편하고 막막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일의 머리는 정보가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투귀대는 조선에 황금 팔십만 냥을 받아내러 온 것이지 이성계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16553218896867.jpg“군자의 복수는 십 년을 지나도 늦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16553218896895.png“내가 군자인 것 같더냐?”

주창이 서늘하게 웃었다. 하지만 마일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주창은 바보가 아니다. 악궁의 죽음은 안타까우나, 그 때문에 복수심에 사로잡힐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마일 스스로가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16553218896867.jpg“군자‘도’ 십 년을 참는다 하였습니다. 대주께서는 고작 ‘군자’로 만족하실 생각이십니까?”

16553218896895.png“…….”

마일의 한 방에 주창이 당했다. 마일은 군자를 주창보다 높게 치지 않았다. 마일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주창이 반박할 말이 궁색해졌다.

16553218896867.jpg“은월루와의 은원을 해결한 다음, 이성계에 대한 복수를 하면 됩니다. 이 조선은 그가 세운 나라이니, 복수의 이자를 갚을 것들은 도처에 깔려 있을 것입니다.”

16553218896895.png“……이길 수가 없구나.”

16553218896867.jpg“대주!”

웅풍이 소리쳤지만 주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일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었다. 가슴 속에서는 열불이 끓어올랐지만 그것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주창은 크게 심호흡을 몇 번이나 했다.

16553218896895.png“악궁의 복수는 나중으로 미룬다.”

16553218896867.jpg“대주!”

16553218896895.png“일산! 나라고 네 마음을 모를 것 같으냐?”

주창의 두 눈에서 불길이 쭈욱하고 뻗어져 나왔다. 웅풍은 이를 까득하고 깨물었다. 자신의 경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 정도 실력으로 자신이 대단한 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던 것이 창피해졌다.

16553218896895.png“오늘의 수치를 네 가슴에 새겨라. 네가 당한 수모를 머릿속에 새겨라. 그것을 땔감으로 삼아 불타올라라.”

주창은 웅풍에게 말했다. 웅풍은 고개를 푹 숙였다.

16553218896895.png“이제, 조선을 경시하지 않겠다. 중원에 나선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볼 것이다. 그러니 뒤쳐지지 말고 잘 따라오도록.”

16553218896867.jpg“예, 대주!”

16553218896867.jpg“예!”

주창의 마기가 서린 말에 웅풍과 위문은 고개를 숙였다. 주창은 마련검을 검집에 꽂아넣은 후 옥령을 손수 들쳐 업었다.

16553218896867.jpg“대주, 제가…….”

16553218896895.png“됐다. 넌 어서 몸이나 추스르도록 하라. 마일. 그대는 기무에게 연락을 넣어라.”

광호검 기무는 만약을 대비해 조사의의 곁에 붙여놓았다. 조사의가 쓸모있다고 생각했을 때 취한 조치였다.

16553218896895.png“조사의에게서 우리가 일한 대가를 받아오라고.”

16553218896867.jpg“예, 대주.”

마일이 희미하게 웃었다. 주창은 놀랍도록 냉정을 빠르게 회복했다. 일한 대가에는 투귀대가 조사의의 밑에서 낭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참았던 것까지 포함이 되어 있었다. 기무라면 주창의 이 한 마디를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만약 조사의가 또다시 무도하게 군다면?

16553218896867.jpg‘떨어지는 것은 호위의 목이 아니라 조사의의 목이겠지.’

조선의 왕도 은월루와 한패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의의 목을 베는 것은 조선의 왕에게 보내는 마교의 경고가 될 것이다.

16553218896895.png“가자.”

주창이 옥령을 들쳐 업고, 위문은 백영을 업었다. 그리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들을 테무르의 묘 위에 앉은 적설청이 빤히 쳐다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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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18955669.png“운림이라. 말 그대로 절경이로다.”

만우가 운림의 절경을 내려다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문주에서 닷새가 걸려 도착한 이곳 운림은 말 그대로 구름의 숲이었다. 운림의 천달산은 산세가 높고 험준했는데,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도 뿌연 구름이 주변으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게 답답하게 사람을 감각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포근하게 껴안아주는 것 같았다.

16553218955669.png“간장. 그래서 구름골이 어디라고?”

16553218896867.jpg“천달산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 내려오는 곳. 그 물줄기를 따라가면 구름골이라는 계곡이 나온다 했수다, 형님.”

이무기 가죽과 고려강 주변의 이깔나무로 만든 검 손잡이는 천년한철을 제련해 만든 검신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장은 긴장감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16553218955669.png“감령. 들었지?”

16553218984195.png“예, 대협.”

16553218955669.png“가봐.”

감령은 숲속으로 슥 하고 사라졌다. 산에 한해서만큼은 감령보다 전문가가 없었다. 슌스케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고 잠시 쉬자 사라졌던 감령이 다시 나타났다.

16553218984195.png“한 시진 거리에 폭포가 있는 듯합니다.”

16553218955669.png“한 시진? 얼마 안 머네?”

만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간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이 어떤 모양일지 만우 역시 기대가 잔뜩 되는 표정이었다.

16553218896867.jpg“이무기…… 이무기를 볼 수 있는 건가요, 고모님?”

이무기가 산다는 구름골이 코앞까지 왔다는 것에 양녕이 잔뜩 기대된다는 얼굴로 방매에게 말했다. 고모라는 소리에 방매가 진저리를 쳤지만 양녕은 방매를 끝끝내 고모라고 불렀다.

16553218896867.jpg“꼭 보고 싶었어요. 이찬. 그대도 기대가 되겠지?”

16553218896867.jpg“예, 저하.”

슌스케가 끄는 수레 옆에서 바짝 붙어 달리는 이찬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같은 초절정이라고 해도 지난 세 달을 무각에만 갇혀 자신들끼리 비무를 하느라 실력이 진일보한 사인방에 비해 이찬은 실력에 손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오 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은 강행군에 이찬은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16553218896867.jpg‘질 수 없어.’

만우면 그래, 인정할 수 있었다. 조선제일검인 권희달도 한 수를 접어준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인방이나, 수레를 끌고 있는 슌스케는 아니었다. 종이 한 장 차이였지만 그 종이 한 장 차이가 꽤나 컸다. 하지만 넘으려고 하면 못 넘을 것 같지도 않았다.

16553218955669.png“자. 가자!”

만우가 슌스케에게 소리치자 슌스케가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꿈틀! 그렇게 만우 일행이 구름이 자욱한 천달산 안으로 들어간 순간, 커다란 솜뭉치처럼 뭉쳐 있던 구름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하고 움직였다. *****

16553219018072.png“저게 구름골?”

만우 일행에게는 천달산의 험준한 산세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슌스케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콸콸콸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구름골 계곡의 물줄기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6553219018072.png‘죽는 줄 알았네.’

슌스케가 끄는 수레가 험준한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천달산 깊숙한 곳에 있는 구름골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만우의 무식한 무공 때문이었다.

16553219018072.png‘나무들을 그렇게 싹 다 베어버릴 줄이야.’

만우는 안 그래도 험준한 산세에 울창한 숲이 거슬린다면서 수레에 앉아 검을 휘휘 휘둘렀다. 분명 장난처럼 휘둘렀을 뿐인데, 만우가 휘두른 괘검 위로 검기가 서리더니 검풍이 전방으로 발출이 된 것이다. 그것도 그냥 검풍이 아니었다. 검풍 하나가 높게 솟은 나무 네 다섯 그루를 한 번에 베어버릴 정도였다. 문제는 만우가 검풍을 날리는 방향에, 수레를 끄는 슌스케가 달려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한 번 멈췄던 슌스케는 인상을 찌푸린 만우의 얼굴을 보고는 제풀에 쫄아서는 그대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검풍을 수백 번을 넘겨 뿌려대고, 검기를 뽑아내었으면서도 만우는 조금도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새삼스레 저런 괴물에게 달려들었던 자신의 용기가 가상한 슌스케였다.

16553219018072.png“……응?”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뒤에서 만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슌스케가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슌스케의 눈이 커졌다.

16553219018072.png“주인…… 주인님?”

만우는 물론이고, 그 수레에 타있던 동군영과 방매, 조선의 세자를 비롯하여 이찬에 사인방과 간장까지 모두가 사라져 있었다.

16553219018072.png“.......”

슌스케는 멍한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들이 전부 연기가 되어 사라진 듯 사라질 수 없다. 쉬익!!!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갑작스런 기습에 대경한 슌스케가 발을 움직여 예기를 피해냈다. 그 기습을 피해내면서 공격을 가한 상대를 확인한 슌스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6553219018072.png‘……안개?’

구름골을 뒤덮고 있는 희뿌연 안개, 안개이기도 하고 구름이기도 한 이 예기가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슌스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예기 때문이었다.

16553219018072.png“미친!!”

쉬시시시싯!!! *****

16553218896867.jpg[불의 냄새가 난다.]

구름골 계곡 바닥에 거체를 뉘인 채 도를 닦고 있던 이무기의 눈이 번쩍 뜨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구름골은 자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구름골에 들어선 이 강렬한 기운을 느끼지 못 한다면 구름골의 이무기의 자격 미달이다. 이무기는 그중 강렬한 불의 냄새를 맡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불의 냄새는 이무기와는 상극이다. 이무기는 수(水)를 다루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를 닦고 수양을 쌓아 승천을 하면, 용(龍)이 된다. 용은 호풍환우(呼風喚雨)를 다스리는 지고한 전설 속 존재. 그렇기 때문에 용이 되기 위해 수양을 닦는 이무기도 수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이무기에게 불은 상극이다. 그리고 불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이들을 이무기는 지난 수백 년 간의 경험으로 인해 잘 알고 있었다.

16553218896867.jpg[욕심 많은 인간 놈들.]

이무기는 눈을 부라렸다. 그가 이 구름골을 영역으로 삼은 것이 어언 삼백 년이다. 영성이 생겨 눈을 뜬 것이 삼백 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등선을 하기 위해서는 꼼짝없이 칠백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무기의 가죽을 구하겠다고 전설을 좇아 구름골에 찾아오는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불신이 깊어진 이무기였다. 처음에는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가, 자신이 틈을 보이면 칼을 꽂아 넣는다. 그렇게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인간의 사냥꾼들은 그 정도로는 자신의 가죽에 흠집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번은 왜 그렇게 자신의 가죽에 욕심을 내는지 궁금해 자신을 사냥하러 온 사냥꾼을 붙잡아 놓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16553218896867.jpg[검의 손잡이를 만들 때 이무기의 가죽으로 만들면 천만금을 받을 수 있는 검이 된다.]

물론 도를 닦고 있는 영물이었기 때문에 사냥꾼들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껏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가 돈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자 이무기는 인간들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구름골 주변으로 도술을 이용해 진법을 친 것이다. 그리고는 구름골에 자욱한 안개구름을 뿌렸다. 그렇게 해서 찾아오는 인간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쫓아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게 효과를 봤기 때문에 요즘 근래 몇 십 년 동안에는 감히 함부로 구름골 안에 발을 들이는 인간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몇 십 년 만에 태연하게 불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구름골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쿠릉! 구름골의 계곡의 물길 자체가 이무기였다. 이무기가 한번 꿈틀거리자 천달산 전체가 찌르르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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