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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하룻강아지 검주 무서운 줄 모르고(1) (121/400)

121. 하룻강아지 검주 무서운 줄 모르고(1)2020.02.25.

절뚝거리느라 많이 느린 이찬을 데리고 숙영지로 돌아왔을 때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18348266.png“뭐야. 세자?”

16553218348272.jpg“저, 저하!!!!!”

16553218348272.jpg“이찬!!!”

모닥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처량하게 앉아 있던 양녕을 발견한 만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찬이 벼락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16553218348266.png“야. 뭐야. 그 정도로 움직일 수 있었으면 진작 움직이지!”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문형일이 만우를 향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16553218348284.png“대장. 어떻게 벌써…….”

16553218348266.png“그럴 일이 있었어. 저 양반을 만나는 바람에 말이야.”

만우는 턱을 한번 손바닥으로 스윽 훑고는 딱딱하게 앉아 있는 동군영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나 몸이 딱딱했던지 누가 보면 막 군에 들어온 신병인 줄 알 것이다. 동군영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다 못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16553218348266.png“어사 나리. 뭐 해?”

16553218348296.png“……저하께서 계시지 않느냐.”

16553218348266.png“그래서. 각 잡고 뭐 하려고.”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놈의 소심증, 세자가 있다고 여기저기에 부목을 대놓은 것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16553218348266.png“어사 나리. 휘두르기 연습은? 했어 오늘?”

16553218348296.png“여, 여긴 야영지인데 여기서…….”

16553218348266.png“그럼 가서 그거나 하고 있어. 몸이나 풀고 와. 그렇게 굳어 있다가 움직이면 다치니까 잘 풀고.”

16553218348296.png“그게…… 힉. 알았다. 알았어. 가마. 연습하러. 간다고!”

만우가 빤히 쳐다봤기 때문에 동군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일어섰다. 양반인 동군영도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라는 것에 필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물론 만우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자 언제 웃었냐는 듯 올라간 입꼬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만우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는 이마를 쳤다. 무언가를 놓고 왔다 싶어 찜찜했는데, 그 찜찜함의 원인을 깨달은 것이다.

16553218348266.png“아. 감령. 두고 왔네.”

16553218348284.png“어디에 말씀이십니까?”

16553218348266.png“저기. 문주에.”

16553218348284.png“무슨 일이길래…….”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문형일과 필두에게 문주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었다. 누군가 이동경로를 조사의 쪽에 건네줬다는 심증까지 함께 말해주었다.

16553218348284.png“확실히. 하오문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만우가 중원에서 떨치고 있는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문형일과 필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오문은 만우를 달래기 위해 명예호법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직함까지 만들어 안겼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만우를 다시 도발한다? 그냥 짚을 짊어 메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보다 무모한 일이다.

16553218348284.png“그보다 하오문이라면 조사의 정도로 대장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사의가 지방의 권력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병사밖에 없었다. 내공 한 줌 다루지 못하는 병사들이 아무리 많아봤자 만우의 털끝 하나 다치게 할 수 없다. 이걸 모를 리 없는 하오문이다.

16553218348266.png‘그건 은월루도 마찬가지인데.’

만우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신의 강함을 알고 있는 은월루나 하오문이라면, 만우의 실력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16553218348266.png“이 새끼들이, 나를 또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는 뜻이네.”

만우는 차갑게 웃었다. 만우를 이용해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했을 확률이 높았다. 살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만우의 얼굴을 본 문형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18348284.png‘어떤 미친놈인지는 모르지만 명복을 빌어야겠는데.’

만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자신을 이용해 먹는 것이다. 중원을 유람할 때에도 만우의 명성을 꺾기 위해 덤벼든 놈들 중 억하심정을 품은 놈들이 만우를 이용해 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경쟁자를 없애기 위해 호승심을 자극해 만우의 손에 목숨을 잃게 한 후, 빈자리를 자신이 차지한다든가 아니면 내부의 혼란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만우를 공적으로 지목한 것이다.

16553218348284.png‘그런 놈들 중 아직 자기 간판 걸고 영업하는 놈들은 없으니까.’

그렇게 만우를 이용해 먹으려 했다는 것이 만우의 귀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만우는 반드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만우가 방문한 곳들은 더 이상 제 이름을 유지할 수 없었다. 간판을 바꿔 달든가, 아니면 만우가 내건 조건대로 봉문을 하든가 둘 중에 하나였다. 이런 만우의 행보는 정, 사, 마를 가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만우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만우의 뒤끝은 생각보다 길었을 뿐더러, 만우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건드리는 것도 무섭지만 건드린 후에가 더 무서운 인간. 그게 바로 만우였다.

16553218348272.jpg“고모! 고모!”

그런데 그때 양녕이 누군가를 불렀다. 만우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방매가 겨울이 오고 있는 이 산중 어딘가에서 구한 뿌리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16553218348266.png“고모?”

16553218348284.png“네. 저기 저…… 세자 꼬마가 자기가 세자니 뭐니 했더니 방매가 자기도 이씨라고…….”

16553218348266.png“…….”

뭐,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만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형일의 눈이 커졌다.

16553218348284.png“그게 정말입니까? 저기 저 대중없는 여아가 왕의 핏줄…….”

퍽!

16553218432766.png“다 들리거든?”

방매가 던진 칡뿌리가 문형일의 뒤통수를 때렸다. 방매는 새침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휙하고 돌렸다.

16553218348272.jpg“이게 칡인가요, 고모?”

양녕은 처음 보는 방매가 고모라고 했는데 넉살 좋게 방매를 고모라고 불렀다. 만우는 양녕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16553218432766.png“그래. 여기 이렇게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칡뿌리는 이렇게 동장군이 찾아오고 있을 계절에 굶주린 이들에게 소나무 껍질과 함께 유일한 식량이 되어주는 작물이다.

16553218432766.png“씁쓸하지만 먹을 만하단다. 오래 씹으면 단맛도 나고.”

방매가 먹는 것을 본 양녕의 두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양녕이 방매를 고모라 부르자 이찬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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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18348272.jpg“저…… 저하. 이런 걸 드시려고 하십니까?”

흙이 묻어 있는 칡뿌리를 쳐다보는 이찬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존귀한 세자가 백성들이 먹는 이런 뿌리를 먹을까 봐 걱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양녕은 이찬의 표정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16553218348272.jpg“애초에 내가 출궁한 이유가 무엇인지 잊었는가, 이찬?”

16553218348272.jpg“하지만 저하…….”

16553218348272.jpg“그대는 나를 신경 쓰지 말고, 그대가 날 따라 나온 이유나 해결하시게. 저기 본인이 있지 않은가.”

양녕은 만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만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감령이 야영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감령의 손에는 거의 피곤죽이 된 박양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16553218463087.png“……뭐냐 그건?”

감령이 웬 떡이 된 사람을 데리고 돌아오자 필두가 일어나 감령에게 아는 척을 했다. 감령은 그런 필두에게는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만우에게로 걸어가 만우의 발치에 박양을 내려놨다.

16553218348266.png“뭐야 이 더러운 건?”

만우가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양녕과 이찬은 아니었다. 박양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어도, 그가 입은 관복은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18348272.jpg“네 이놈! 감히 조선의 관리를!!”

이찬이 분노를 터뜨리려는 순간 감령이 그의 말을 먼저 잘랐다. 그리고는 감령이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18500253.png“이놈. 박양이란 놈으로, 문주부사라 제 입으로 불었습니다.”

16553218348266.png“불었다고?”

만우는 엉망이 된 박양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절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알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죽이지 않은 것이 어디인가.

16553218500253.png“조사의란 놈과 한 손 잡고 있던 놈이라 했습니다. 조사의면 지금 난리를 피우고 있는 그놈 아닙니까? 반란군의 수괴?”

감령에게 호통을 치려 했던 이찬과 양녕은 눈을 굴렸다. 조사의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조사의가 보낸 왜인들에게 쫓긴 이찬은 눈치를 챘다.

16553218348272.jpg“설마…… 반역…… .”

16553218348272.jpg“반역이라고?”

양녕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올해 고작 아홉 살이었지만, 어거지로 빈객들을 불러 쑤셔 넣은 것 때문에 나이에 비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조선에서 왕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마치 부모를 죽이겠다며 부모를 향해 검을 휘두른 패륜과 똑같은 일이었다. 양녕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을 공격한 이들은, 자신이 세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을 인질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16553218348272.jpg“이찬.”

16553218348272.jpg“예, 저하.”

양녕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16553218348272.jpg“궁으로 돌아갈래.”

16553218348272.jpg“저하?”

16553218348272.jpg“저들이 나를 공격한 이유는 나를 아바마마의 약점으로 잡기 위함이 아니더냐.”

16553218348266.png“호오.”

만우가 양녕의 어른스러운 태도에 흥미롭다는 듯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이찬은 그런 양녕 앞에 부복했다.

16553218348272.jpg“송구하옵니다 저하. 소장의 능력이 부족하여…….”

16553218348272.jpg“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 덕분에 한 번 내 목숨을 구하였으니까.”

이찬은 자신을 대신하여 적들을 유인했다. 상처 가득한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겪은 고초가 보통이 아님을 어린 양녕도 알 수 있었다. 양녕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16553218348272.jpg“돌아가겠다. 가서…….”

16553218348266.png“글쎄. 돌아갈 수 있을까?”

만우가 웃으며 양녕의 말을 끊었다. 이찬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상대가 검주라는 것에 이찬은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16553218348272.jpg“그게 무슨…….”

16553218348266.png“꼬마 세자. 이미 꼬마 세자는 적들의 과녁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이지? 저들이 돌아가는 길을 막고 있기라도 하면?”

조사의는 바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자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16553218348272.jpg“그대들 중 한 명이라도 나와 함께 돌아가면…….”

16553218348266.png“그러려고 데려온 애들이 아닌데? 그리고 난 네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함주행에 나선 거야.”

만우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동군영이 그런 만우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만우가 한발 더 빨랐다.

16553218348266.png“꼬마 세자도 나한테 부탁했지. 네 아버지가. 조선의 국왕이.”

16553218348272.jpg“그대는…… 그대는…….”

자신을 꼬마 세자라고 부르질 않나, 아바마마를 국왕이라 부르질 않나, 양녕은 9년의 인생을 살면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처음이었다. 만우는 충격을 받은 듯한 양녕의 얼굴을 보면서 히죽거렸다.

16553218348266.png“꼬마 세자의 호위는 지금 제 몸도 못 가눌 지경인데. 말도 없고. 걸어가겠다고 한양까지?”

만우는 쯧하고 혀를 찼다. 꽤나 힘들 것이라는 표정도 함께였다. 양녕은 만우가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16553218348272.jpg“나를 조롱하지 말라!”

16553218348266.png“그러니까.”

덥썩. 만우는 양녕의 어깨를 붙잡았다. 동군영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이찬의 손도 함께 움찔했다. 하지만 이찬은 검을 뽑아들지 못했다. 만우가 곁눈질로 이찬을 한번 힐끗 쳐다봤기 때문이다.

16553218348272.jpg“가, 감히 내 몸에 손을…….”

16553218348266.png“꼬마 세자. 기억해.”

만우는 양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16553218348266.png“너의 철없음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지 기억해 둬. 넌 세자니까, 왕의 핏줄이고 뭐고를 따지는 저 호위 같은 놈들이 널 구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테니까.”

16553218348272.jpg“그, 그건…….”

16553218348266.png“내 눈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핏줄만 타고 태어난 꼬마 세자, 너보다는 저 호위가 백 배는 더 가치가 있어. 하지만 넌 왕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널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질 거야.”

16553218348272.jpg“…….”

양녕은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이찬이 바로 옆에 있었다.

16553218348266.png“기억해.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것의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금처럼 움직이면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16553218348272.jpg“…….”

16553218348266.png“더불어 본주를 만난 걸 행운으로 생각하고.”

만우는 양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이라면 몇 번이나 목이 떨어져도 시원찮을 일이 눈앞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동군영은 충격에 입을 벙긋거렸고 이찬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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