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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세자의 고모(4) (120/400)

120. 세자의 고모(4)2020.02.22.

16553218084784.png“9살 꼬마를?”

16553218084788.jpg“세자저하를 꼬마라고 부르기에는…….”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16553218084784.png“에라이!!”

16553218084788.jpg“왜, 왜 그러시오?”

만우는 혀를 쯧하고 찼다. 권희달도 그렇고, 이찬도 그렇고 뭔가 하나씩 부족했다. 무예를 익혔지만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한양에서만 살아왔을 이찬은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빼먹었다.

16553218084784.png“여기, 곰이랑 호랑이 나온다고 하던데. 늑대…… 아니 들개 같은 것들도 나오고.”

방매가 설명해 준 내용이었다. 그러자 이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해가 지고 난 산속에 혼자 떨고 있을 9살 꼬마는 맹수들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된다.

16553218084788.jpg“이럴 시간이…….”

16553218084784.png“쯧. 어서 가자고. 호랑이 밥이 되기 전에.”

이찬이 굳은 두 팔과 다리의 근육을 풀었다. 둔중한 통증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하지만 이찬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런 통증은, 세자가 겪고 있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파앗!! 만우는 경공을 써서 달려가는 이찬의 뒷모습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그런 이찬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던 만우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18084784.png‘감령 이놈은 괜찮으려나?’

하오문이라 자신을 밝힌 괴한이 밝힌 것은 세자의 경로만이 아니었다. 왕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동군영과 만우 일행의 경로까지였다. 그렇다는 것은, 문주에 있을 조사의의 조력자인 박양이 만우와 감령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16553218084784.png“……알아서 잘 빠져나오겠지.”

열 살 먹은 꼬마도 아니고, 만우는 감령에게 신경을 껐다. *****

16553218084817.png“…….”

감령은 옥사에 갇혀 두터운 나무 창살 밖을 멍하니 쳐다봤다. 자신의 처지가 아직도 단박에 머리에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18084817.png“안 오네.”

감령이 문주의 포졸들에게 순순히 잡힌 이유는 바로 만우 때문이었다. 만우는 시선을 끌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동안 시간이 지나도 만우는 오지 않았다. 덜컥!

16553218084788.jpg“나와라! 부사 어르신께서 친히 네놈을 국문하신다 하였으니.”

16553218084817.png“국문?”

감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어려운 용어는 감령에게는 무리였다. 하지만 국문이라 쓰고 고문이라 읽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감령은 단박에 이곳을 부수고 탈출했을 것이다. 어쨌든 감령은 포졸들의 우악스런 손에 끌려 문주 관아의 마당에 끌려나갔다. 그러자 숯이 가득 들어있는 화로 안에서는 시뻘걿게 달아오른 인두가 김을 피워내고 있었고, 장틀이 놓여 있었다. 주리를 트는 형틀에 앉힌 감령의 팔과 다리를 포졸들이 묶었다. 감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팔과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16553218084788.jpg“에, 엣흠!”

잠시 후, 관아 내부에 앉아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박양이 이방의 안내를 받아 거만한 표정을 지은 채 걸어나와 자리에 앉았다. 건물이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박양이 감령을 내려다보고, 감령이 박양을 올려다보는 구조였다.

16553218084788.jpg“죄인은 들으라!”

16553218084817.png“죄인? 내가 왜 죄인이야?”

박양이 첫 말을 내뱉었지만 감령이 곧바로 소리쳤다. 갑자기 우르르 몰려들어 다짜고짜 포박을 한 뒤 심문도 없이 곧바로 옥사에 갇혔던 감령이다. 그런데 끌려나오고 나니 죄인이 되어 있었다.

16553218084817.png“명에서도 이런 식으로 안 해. 어? 산적이라고 나 무시하는거야? 너! 그래 너! 거기 너 이새끼야!”

감령은 산사나이다. 산사나이 중에서도 휘하에 열 여덟개나 되는 대채를 밑에 두고 십만 산적을 말 한 마디로 호령하는 대채주 옥면산군이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감령은 번듯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온갖 잡기들을 다 익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익힌 것이 바로 욕이다.

16553218084817.png“^!%@!%[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감령이 그 기술을 아낌없이 발휘하기 시작하자 박양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 때문이었다. 그러자 박양이 의자의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16553218084788.jpg“저, 저놈의 입을 막아라! 주리를 틀어!!!”

1655321811509.jpg“예이!”

이방이 손짓을 하자 건장한 덩치의 포졸들이 감령의 다리 사이에 굵고 기다란 나무 두 개를 교차해 넣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주리를 틀기 시작했다.

16553218084817.png“이건 또 뭐야?”

주릿대 한 개의 굵기가 감령의 종아리 굵기와 비슷할 정도로 두꺼웠다. 하지만 감령에게는 깃털로 간지럽히는 것 만큼의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초절정 고수의 육체다. 화경이라는 지고의 경지의 올라가기 전에, 인간이 단련할 수 있는 육체의 극한이다. 거기에 내공까지 담고 있었다. 내공을 실어서 주먹을 날려도 웃으면서 맞아줄 수 있는데, 그냥 두껍기만 한 주릿대라니. 그냥 뽑아서 그걸로 후려치는 것이 더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

16553218084817.png“간지럽히냐? 어?”

와작! 감령이 용을 쓰고 있는 포졸들을 비웃고는 허벅지에 힘을 줘서 주릿대를 조이자 주릿대가 수수대처럼 부러져 나갔다. 박양과 이방, 포졸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16553218084788.jpg“아, 압슬을!”

우지직, 우직. 도자기를 깨뜨려 깔아놓고, 그 위에 무릎을 꿇려서 앉혀놓은 다음 거대한 돌로 무릎을 누르는 형벌이 내려졌지만 감령은 웃으면서 소리쳤다.

16553218084817.png“지압도 되지 않는다! 더 시원한 것 없나?”

16553218084788.jpg“자, 장을 쳐라!!!”

떠억! 떠억! 우직! 감령을 일으켜세워 장틀에 묶었다. 그리고 포졸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장을 쳤지만 몇 대 치지도 않아 우직하고 장이 부서졌다.

1655321811509.jpg“…….”

1655321811509.jpg“…….”

형장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원래라면 국문을 받는 이의 피와 비명으로 가득 차야 하는데, 그 죄인이 웃으면서 안마를 받는 것처럼 형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18084788.jpg“지져라! 인두로 지져!”

박양이 인두로 지지라면서 침을 튀기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포졸이 숯으로 달궈놓았던 시뻘건 인두를 빼들었다. 그리고, 인두를 본 감령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16553218084817.png“저건 좀.”

초절정 고수의 육체라고 해도 달군 철을 몸에 지지는데 고통을 느끼지 않을리 없다. 작열통이라 하지 않았던가. 몸이 불타는 고통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16553218084788.jpg“쳐라! 죄인을 매우 쳐라!”

변하는 감령의 표정을 본 박양이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16553218084817.png“뭐, 웬만하면 당해주는 척을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뚜, 뚜두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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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18084788.jpg“이, 이놈이 어디서!”

16553218084788.jpg“가, 가만히 있어!!”

가만히 앉아서 당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감령이 손과 발에 힘을 주자 포승줄이 뚜둑하는 소리를 내면서 너무나도 쉽게 뜯어졌다. 애초에 처음부터 감령은 이들의 장단에 맞춰서 놀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포졸들이 달려들어 창으로 감령을 일어나지 못하게 누르려고 했지만, 내공 하나 익히지 못한 일반인의 힘이 감령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리 만무했다.

16553218084817.png“이 몸이 요즘 여기저기 치이고 다녀서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감령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옥면산군이라는 그의 칭호처럼 감령은 매우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미소에 살기가 물씬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딱딱딱. 덜덜덜 지금까지 감령을 때리고 팼던 포졸들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개중 심약한 몇몇은 털썩 주저앉더니 바짓가랑이 사이가 노래졌다.

16553218084817.png“뭐, 당할 만큼 당했으니 내게 뭐라 하시진 않겠지.”

감령은 만우를 떠올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분명 참아줄 만큼 참아주고, 당해줄 만큼 당해주었다. 감령은 석상처럼 굳은 표정이 된 박양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16553218084788.jpg“쳐, 쳐! 죽여라! 저놈을 죽여!”

박양이 감령의 살기에 놀라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지만 움직이는 포졸은 없었다. 이미 감령의 기세에게 본능이 이성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감령은 자신에게 지지려고 했던 인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박양을 보면서 입가를 주욱하고 벌려 보이며 웃었다.

16553218084817.png“녹림대채주를 잡은 놈은 네가 최초이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지?”

감령이 잡혀준 것이라고 해도, 녹림 대채주를 잡은 것은 어쨌든 기정사실이었다. 감령은 그런 박양에게 그 대가를 톡톡하게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 휙! 감령의 신형이 스윽하고 사라지는 것 같더니 박양의 앞에 허깨비처럼 나타났다. 사람이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속도를 훌쩍 뛰어넘은 움직임이었다. 감령은 박양의 앞에 서있는 이방을 힐끗 쳐다보고는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이방, 소위 말하는 향리가 어이쿠하고 죽는 소리를 내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16553218084817.png“너. 조사의, 알아?”

16553218084788.jpg“…….”

박양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감령의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감령은 그런 박양을 보면서 웃었다.

16553218084817.png“그래. 쉽게 대답하지 마. 제발. 내가 당한 것만큼 너도 당해야지?”

뒤늦게 감령의 말뜻을 알아챈 박양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감령의 주먹이 박양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뻐억!

16553218084788.jpg“커, 커어억!”

후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박양의 이가 우수수 튀어나왔다. 박양은 말하겠다면서 손을 내저었지만 감령은 초승달처럼 눈을 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18084817.png“대단한 놈이군. 내공이 한 줌도 없으면서 내 주먹질을 버티다니.”

일부러 손속에 사정을 잔뜩 둔 것이지만 감령은 사악하게 웃어보였다.

16553218084817.png“그럼 어디 한 번 더 버텨 보거라!”

16553218084788.jpg“커, 커억…….”

박양의 낯빛이 삽시간에 검게 물들었다. *****

16553218084788.jpg“제길, 제길, 제길!!!!”

쾅, 쾅, 쾅! 조사의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내려쳤다. 기껏 긁어모아 보낸 신검조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은 지 삼 일이 지났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16553218084788.jpg“역시 왜놈들은 믿을 것이 못 돼!!”

조사의는 씩씩거렸다. 이방원에게 맞설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거의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했다.

16553218084788.jpg“한 놈! 한 놈을 처리하지 못해서!!!!”

조사의는 두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무려 세자였다. 상왕도 손이 뻗으면 닿을 곳에 있고, 세자까지 손에 넣는다면 확실하게 명분과 국왕의 약점까지 함께 손아귀에 움켜쥘 수 있었다.

16553218084788.jpg“중원의 그 낭인 놈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나?”

16553218084788.jpg“없습니다.”

16553218084788.jpg“제기랄.”

조사의는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세자의 이동경로에 대한 첩보도 입수했고, 국왕이 상왕을 보호하기 보낸 개의 이동경로도 입수했다. 그런데 정작 조사의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6553218084788.jpg“박양은? 문주 근처를 지나간다고 하지 않았더냐.”

문주부사 박양은 가진 바 능력에 비해 야심이 큰 남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조사의는 그를 장기판의 말로 써먹기에 딱 좋은 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부려먹었다. 하지만 그 박양에게서조차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16553218084788.jpg“아무런 연락도…….”

16553218084788.jpg“으아악!!”

조사의가 와장창거리며 탁자 위에 놓인 벼루를 내던졌다. 그러자 와작하는 소리와 함께 벼루가 박살이 났다. 그 벼루에 맞을 뻔한 부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조사의는 광기 어린 눈으로 부관에게 소리쳤다.

16553218084788.jpg“이천우는? 이천우가 움직이고 있다하지 않았더냐?”

16553218084788.jpg“예. 안주에서 이곳까지 멀지 않으니…….”

16553218084788.jpg“박만은?”

박만은 동북면 도순문사이자 영흥부의 판윤이었다. 박만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라면 왕이 보낸 선봉군 정도 쳐부수는 것은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16553218084788.jpg“출정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허니…….”

16553218084788.jpg“되었다. 그렇다면…….”

조사의의 눈이 살기를 흩뿌렸다. 부관은 자신을 오싹하게 만드는 조사의의 살기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16553218084788.jpg“다른 놈들을 믿지 못하겠다. 거병을 하겠다. 그리하여 박만을 도와 놈들을 빠르게 쳐부술 것이다. 가는 길에 문주를 거쳐 세자를 쫓을 것이다. 너는 소윤 김권에게 이르라. 빠르게 함주의 상왕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박관을 보낼 것이다.”

영흥 소윤 김권와 박관은 조사의가 특별히 재물을 안겨 자신을 따르게 만든 이들이었다. 영흥은 안변에서 문주를 거쳐 함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러니 그곳에서 군사를 일으켜 함주까지 내달린다면 필히 상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관은 일찍이 왕명으로 인해 정주 목사에서 해임되었는데, 안변에 머물며 조사의와 교류하면서 한양으로 돌아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제 조사의가 거병을 한다면 그들이 합류할 것이다.

16553218084788.jpg“그 외에도 도진무 박문숭, 경력 허형, 지의주사 황길지에게 일러 거병을 하고 진격할 채비를 하라 이르거라.”

16553218084788.jpg“예! 어르신!”

부관이 서둘러 나갔다. 조사의는 야망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눈을 한 채 주먹을 꾸득 소리가 나게 쥐고는 이를 악물었다.

16553218084788.jpg“후회할 것이다.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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