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이성계 대(對) 투귀대(4)2020.02.08.
‘무슨 말도 안 되는.’
동이, 그러니까 저 멀리 조선에 있는 이들 중 활로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물소의 뿔로 만든 그들의 각궁은 몽고의 기술보다 뛰어났고, 활의 민족인 것처럼 활을 다루는 기술 자체가 원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이 원에도 정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유명하여 초빙을 한 이들 중 테무르의 실력을 뛰어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름난 궁사(弓師)를 초청하여 겨뤄보면, 늘 테무르가 이겼다. 테무르 앞에서는 고려가 자랑하는 각궁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활을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테무르의 등줄기가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갔다. 쐐애애액!! 이성계와 호선이 합치자 테무르는 마치 이성계가 사방에서 화살을 쏘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테무르는 이를 악물고 몸을 굴렸다. 꽈아앙!!! 귓가에 삐이하는 소리와 함께 이명으로 인해 소리가 순간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테무르의 몸 위로 땅이 터지면서 치솟은 흙먼지가 쏟아졌다. 텅! 꽈릉!! 그렇게 몸을 굴려 간신히 피한 테무르가 이를 악물고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테무르가 쏘아보낸 화살이 이성계의 화살을 격추했다.
‘셋. 넷.’
한 대를 피하고, 한 대를 격추했음에도 네 대가 넘는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테무르는 손가락이 얼얼했다. 이성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쏘아낸 화살을 격추하기 위해 테무르는 한 발 한 발에 제대로 힘을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활을 다루는 실력 자체가 이성계보다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테무르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터더더덩!!! 테무르는 날아오는 네 대의 화살을 향해 자신의 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공력을 무리하게 끌어올려 동시에 네 발을 사방으로 발사했다. 꽈과과광!!
“크음…….”
테무르는 자신의 검지와 중지를 내려다보았다. 시위에 살갗이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흘려보는 피였다. 활을 자신의 몸처럼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손가락이 벗겨져 피가 흐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테무르의 귓가에 백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테무르! 조심!!!”
“……?”
테무르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무리를 한 덕분에 날아오던 네 대의 화살을 모두 격추시켰다. 그런데 다음 순간, 테무르의 눈이 커졌다. 푸욱!!!
“커……커어…….”
테무르의 가슴팍을 뚫고 대룡궁이 쏘아 보낸 화살촉이 뒤로 빠져나왔다. 비틀거리는 테무르의 눈에 호선 위에 올라타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성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무영…… 시.”
정제된 검기(劍氣)가 화경의 상징이라면, 활의 궁극은 무영시(無影矢)다. 화살이 가지는 치명적인 단점인 ‘소리’를 지우는 데에 성공한 것이 바로 무영시다. 이성계는 피를 입으로 뿜으면서 뒤로 쓰러지는 테무르를 보면서 차갑게 눈을 빛냈다.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까불었구나. 애송이.”
텅! 부르르. 뒤로 넘어간 테무르의 눈에 검게 물든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초원을 달리다가 죽을 줄 알았던 자신이 조선에 와서, 화살에 맞아 죽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빼액-!! 주인의 변고를 알아챈 적설청이 부러진 날개에도 불구하고 날아올랐다. 뻐억!!
“크윽!”
적설청이 날아오른 순간, 호선의 묵직한 일격이 백영의 언월도를 두드렸다. 백영이 뒤늦게 그런 호선에게 언월도를 휘둘렀지만 호선은 이미 뒤로 물러나 꼬리로 옥령의 시뻘겋게 물든 손을 쳐냈다.
“테무르!”
웅풍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성계과 호선과, 웅풍과 백영의 상성은 최악이었다. 웅풍과 백영은 무슨 수를 써도 호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살을 주고 뼈를 자르려고 해도, 이성계가 있는 이상 그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호선을 멈춰세운다고 해도 이성계의 화살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호랑아. 뒤로.”
투귀대 4인은 무림에 출도하면 당장 작은 중소방파는 하루 아침에 멸절을 시킬 정도의 강자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 네 명 중 한 명은 가슴팍에 화살이 꽂힌 채 죽어가고 있었고, 세 명은 완연한 패잔병의 몰골이었다. 이성계는 그들을 쳐다보면서 서늘하게 웃었다. 커허어엉! 호선의 두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나찰사화라 불린 옥령도 호선에게 최초의 일격을 먹인 이후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호선의 몸놀림이 너무 표홀하고 빨랐기 때문이다.
“조사의가 이 몸을 잡아오라 시키더냐?”
이성계는 차갑게 웃었다. 마교의 졸개들을 조사의가 끌어들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호랑이만 없었어도.”
웅풍은 대부를 땅에 쿵하고 찍었다. 여기저기에 붉은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치명적인 것은 없었지만, 그 상처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체력을 급속도로 앗아갈 것은 분명했다.
“…….”
백영은 아무 말하지 않고 이성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혹시나 그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이상징후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성계는 그런 백영의 시선을 느끼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조사의. 그놈이 미친 것이 틀림 없구나. 내 어여삐 여겨주어 안변부사가 되었거늘, 나를 노려?”
이성계의 진노는 대단했다. 이성계가 자신의 선택으로 함주에 머무르고 있다고는 하나 그는 상왕이다. 상왕인 자신을, 조사의는 아낙네 보쌈을 하듯 데려갈 생각이란 것이 그의 분노를 부채질한 것이다. 거기에 자신을 잡으러 온 이놈들은 건방지게 자신을 도발까지 했고 말이다.
“그만 봐라 아해야. 네놈들을 상대하는데 내 호흡 하나도 아까우니. 어쩔 것이냐?”
이성계는 대룡궁을 흔들었다. 그러자 마치 귀신처럼 화살통에서 화살 세 대가 활 시위에 걸렸다. 웅풍은 대부를 땅에 쿵하고 찍었다.
“마정! 대주님의 명이오. 차라리 이곳에서 죽는 것이 낫소.”
대주인 주창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강자존인 마교는 강자에게 절대복종한다. 거기에 주창은 차기 소교주가 확실히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죽더라도 여기서 죽는다. 죽음을 각오한 웅풍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정말 동귀어진을 해서라도 이성계를 죽이고 말겠다는 다짐이었다. 크허어어엉!
[웃기는 소리 하고 있어. 누가 싸워준대?]
호선이 웅풍을 비웃었다. 곰 같은 놈이 곰 같은 소리만 하고 앉아있었다. 이성계는 그런 호선의 투덜거림을 듣고는 말을 진정시키는 것처럼 호선의 목덜미를 두드려 주었다.
[어딜 만져요 노인장!]
“엇. 민감한 부분인가? 몰랐지.”
이성계는 히죽 웃었다. 그는 호랑이를 처음 타보는 것이지만 호선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호선을 타고 싸운다면, 솔직한 마음으로는 만우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호선이 없었다면 이성계는 저들 중 하나, 많아야 둘을 상대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이성계는 호선처럼 빠르지 않았고 체력도 무한이 아니었다.
“어찌하였건.”
이성계는 서릿발 같은 기세를 투귀대에게 쏘아보냈다. 그때 옥령의 눈에 서렸던 혈기와 귀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손에 서렸던 혈수가 사라졌다.
“아!?”
강제로 혈기를 끌어올려 혈성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지속 시간이 끝난 것이다. 옥령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길.”
그것을 본 웅풍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혈성이 나온 옥령과 혈성이 없는 옥령은 전투력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혈성이 나온 옥령은 투귀대에서 주창 다음의 강자이지만, 혈성이 없는 옥령은 테무르와 비슷한 정도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성격이 소심해 테무르보다 약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혈성이 나온 옥령을 포함해 네 명이 싸웠는데도 이기지 못했다. 거기에 테무르는 죽어가고 있었다. 마정 백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비를.”
백영은 언월도를 등 뒤로 던지며 나섰다. 비굴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웅풍이 그런 백영을 보고 기겁했다.
“마정!”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네. 기억하시게. 대주께서 소교주에 오르시기 위해서는 사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
백영의 일갈에 웅풍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백영의 말이 맞았다. 마교의 고수로 살아온 웅풍은 상대방에게 자비를 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나, 이건 그들만의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니었다. 마얼 주창. 일패 혈세천마의 아들인 그는 이번 조선으로의 임무가 소교주로서의 능력을 교의 교수들에게 증명할 기회이기도 했다. 고작 조선에 가, 밀린 황금을 받아오는 일을 하다가 투귀대 고수가 죽었다? 그건 곧바로 주창의 정적들에게 그를 무능력하다 비난하고 공격할 빌미를 주는 셈이다.
“테무르를 살려야 하네. 이번 임무는…… 실패일세.”
백영은 허리를 숙였다. 이성계는 호선 위에 앉아 오만한 표정으로 투귀대의 고수들을 깔아보았다. 웅풍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부르르 떨다가 대부를 땅에 퍽하고 박았다.
“자비? 크핫핫핫. 나를 죽이러 온 놈들에게 자비라?”
이성계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났다. 그는 동북면의 무신이다. 동시에 수만 병사를 이끌던 장군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무인의 낭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전장에 나선 장수는, 후환을 만들지 않는다.
“나를 죽이러 온 놈들이 실패해서 자비라. 그렇다면…….”
퉁! 퍼억! 부르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테무르의 이마에 이성계의 화살이 꽂혔다. 백영과 웅풍의 눈이 커졌다. 옥령도 마찬가지였다.
“테무르!”
몽고 황실의 생존자로 황실의 재건을 위해 마교에 투신했던 이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이성계는 차갑게 웃었다.
“이제 어쩔 것이냐.”
이성계는 그들의 고민거리를 없애주었다. 테무르라는 저놈 때문에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후퇴하려 하니, 깔끔하게 죽여줌으로써 근심거리를 없애주었다.
“웅풍. 옥령.”
백영은 이성계의 두 눈에 깃든 살기를 감지하고는 언월도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이성계를 향해 짓쳐들었다.
“가라. 가서 대주께 말씀드려라.”
“마정!”
백영의 수염이 흩날렸다.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좋다! 무기를 들고, 살기를 품었으면 둘 중 하나다. 죽거나 살거나.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전사라면 말이다! 크핫핫핫!”
이성계의 화살이 다시금 허공을 날았다. 그에 맞춰 호선이 포효를 터뜨렸다. 웅풍은 주먹을 말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옥령을 돌아봤다.
“옥령. 돌아가라. 가서 대주께, 대주께…… 말씀드려다오. 부디 대업을 이루시길 바란다고.”
“일산!”
옥령은 기함했다. 투귀대의 초절정 고수 네 명으로도 상대하지 못할 상대가 조선 땅에 검주를 제외하고 존재할 줄이야.
“사화. 넌 도움이 되지 않잖아. 혈성을 쉽게 끌어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러니 부디 무사히 가서 대주께 전해다오.”
웅풍은 대부를 손에 쥐었다. 백영과 웅풍은 이성계와 상성이 매우 좋지 않았다. 하지만 불리하고, 상성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늘 살아남아 그 위치에까지 올라온 것이 바로 웅풍이다.
“대업을, 그리고 우리의 복수를.”
파앗!!! 웅풍이 거대한 덩치를 돌려 바람처럼 이성계를 향해 뛰어들었다. 옥령은 이를 악문 채 그 모습을 몇 초간 지켜보다가, 눈물을 머금고 몸을 돌렸다. 쾅! 쾅! 쾅!! 거대한 폭음이 어서 떠나라는 듯,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
“……?”
일자로 꽉 다문 입은 고집스러움과 과묵함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피부는 백설처럼 희고 검은 눈동자는 밤하늘처럼 넓고 깊었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올린 여자는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키가 웬만한 남자만큼이나 컸고 왼쪽 허리춤에는 검을, 오른쪽 허리춤에는 도를 차고 있었다.
“오밤중에 나와 있는 이유는?”
좌검우도(左劍右刀)의 여자가 지나가던 행인에게 물었다. 말투가 무뚝뚝한 것이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것 같아 붙잡힌 행인이 눈치를 슬쩍하고 봤다.
“모르시오? 삼 다경쯤 되었나? 무신께서 백호를 타고 무선이 되어 등선하시었소.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오.”
“……무신? 무선?”
“허어. 무신도 모르시오? 함주의 무신?”
미녀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미녀의 나이를 가늠해보던 행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왕전하 말씀이오. 상왕전하.”
“아! 그분의 별호가 무신이셨군.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미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행인에게 물었다. 무신이 등선을 하여 무선이 되건 말건, 그녀에게는 별로 관심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곳, 함주까지 온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이었다.
“함주본궁. 그쪽이 말한 무신께서는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
밤하늘을 담은 눈을 가지고 있는 좌검우도의 미녀, 척사영이 행인에게 함주본궁의 위치를 물었다. 행인은 얼떨결에 손가락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척사영은 함주본궁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함주본궁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저쪽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 무신께서 가신 곳이오. 하얀 백호를 타고.”
“그렇단 말이지.”
척사영에게서는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에 행인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높여 대답했다. 척사영이 그런 행인에게 그만 가보라고 손짓을 하자 허리를 넙죽 숙인 행인이 서둘러 멀어졌다.
“몸이 성치 않다 들었는데. 소사각주는 왜 산으로 간 거지?”
추종향이 가리키는 방향은 함주본궁이 아니라 산등성이였다. 그것도 무신, 상왕이 백호를 타고 올라갔다며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는 바로 그 방향인 것이다.
“가보면 알겠지.”
척사영. 곡산척가의 숨은 비수이자 불과 약관의 나이로 화경에 오른 하늘이 내린 천재. 그녀가 함주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