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이성계 대(對) 투귀대(3)2020.02.04.
상호 불가침 조약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명 황실이 무림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는 듯한 동작을 취한 것이다. 그들은 날카로운 검이었고, 쓰면 편리한 도구였지만 그 편리함에 취하여 그 예기에 방심하게 되는 것을 멀리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홍무제는 아예 관과 무림을 떼어놓았다. 둘 사이가 멀어져서 남이 되는 것을 의도한 것이다. 그 결과 홍무제의 노림수는 정확하게 들어맞아 그가 원하는 바가 대부분 이뤄졌다.
“황실의 동창, 금의위, 그리고 그들이 부릴 수 있는 백만 대군.”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삼십 년이 흐른 지금, 명 황실에서는 온갖 영약과 돈을 들여 무림의 야욕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길렀다. 아니, 이제는 무림이 다른 뜻을 품고 발호하여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자부했다.
“무림이, 무림맹이, 마교가, 사림곡이, 그런 명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황제가 변덕을 부려 강호무림의 말살을 원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강호는 멸절하고 말 것이다. 무공을 익힌 이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며, 유학을 저어한 진시황이 분서갱유로 유학서를 불태웠듯 무공서들을 그렇게 태워 버리겠지. 그것이 바로 명 황제의 힘이다.
“…….”
감령은 할 말을 잃었다. 만우가 하는 말이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아주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동창이나 금의위는 무림의 명숙들에게도 공포의 존재가 되었다. 녹림십팔채의 산적들이나 장강수로십팔채의 수적들도 관을 무리해서 자극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무리하게 자극해서 명 황실에서 동창이나 금의위가 파견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백 갈래, 천 갈래의 이해관계로 쪼개진 무림과는 달리 동창과 금의위는 황제의 명령이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굳건하게 하나로 뭉쳐져 있다.
“조선도 똑같다. 조선의 국왕도 똑같다.”
조선의 국왕도 만우를 보고, 만우의 힘을 빌리면 너무나도 손 쉽게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왕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이 휘두를 수 없는, 십할로 제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불안해서 옆에 두지 못한다. 언제 그것이 자신을 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고의 자리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협에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의 국왕은 만우에게 그것을 부탁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게 더 나은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다른 이기(異器)의 힘을 빌려 쓰는 왕은 그것이 자신의 정통성의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기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이 자신을 위협할 수 있음을 늘 걱정하고 경계해야 한다. 조선의 국왕에게 만우는 그런 존재인 셈이다.
“내가 내 힘으로 대채주가 되지 않았으면, 아랫것들이 우습게 보고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군요.”
감령은 자신의 방식대로 만우의 말을 이해했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령의 말이 많은 것을 생략하기는 했지만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대협. 자기자랑이 심하…….”
“죽을래?”
감령이 움찔했다. 만우는 그런 감령을 슬쩍 노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령이 그런 만우를 따라 일어섰다.
“다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문주는 군성이지만 만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았다. 사실상 만우의 기감 정도면,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군성 안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며칠 있는다 말하고 셈까지 치렀잖아.”
“그러면 어디를…….”
문주에는 딱히 유람을 할 곳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성곽과 추수가 다 끝난 논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느껴지지 않나?”
만우는 주막 밖으로 나와 먼 하늘을 쳐다봤다. 만우가 쳐다보는 방향은 만우가 문주로 들어온 방향이 아니었다. 문주의 서쪽으로 쭉 가면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 구름이 감령의 눈에 들어왔다.
“……기마?”
하늘 가득 피어오른 뿌연 흙먼지에 감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 크허어엉!!! 호선의 포효가 산등성이를 쩌렁쩌렁하게 만들었다. 난데없는 호선의 강렬한 포효에 고요한 밤을 보내고 있던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그곳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온 것을 동네방네에 소문을 낼 샘이냐?”
이성계가 대룡궁의 시위에 화살을 건 채 호선에게 핀잔을 주었다. 척준영은 정신없이 흔들리는 호선의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파바바밧! 울창한 숲 속에서 호선은 한 줄기 하얀 바람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민첩하게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피해내며 바람처럼 내달리는 호선은 산군(山君)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전하! 머리 위!]
내달리던 호선의 한 마디에 이성계의 활이 허공을 향했다. 이성계는 높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붉은 매, 적설청을 보고는 희게 웃었다.
“고얀 놈이로고. 감히 어디서 나를 내려다보고.”
쐐액! 이성계의 손가락이 불을 뿜었다. 거대한 대룡궁의 크기만큼이나 이성계가 사용하는 화살은 일반 화살에 비해 한 배 반 정도 더 컸다. 꽈릉!!! 하지만 이번에도 이성계의 화살은 목표물을 맞추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이성계의 화살을 허공에서 격추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빼애애액-!!! 이성계의 화살이 담겨 있던 경력이 터져 나오면서 적설청의 날개가 한 쪽으로 꺾인 것이다.
“영물이로고. 날개가 꺾인 와중에도.”
하지만 적설청은 한쪽 날개가 꺾였음에도 균형을 잡기 위해 기를 썼다. 이성계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그런데 그 순간, 이성계를 향해 허리께가 썩둑 잘린 아름드리나무가 주변의 초목들을 박살을 내며 날아왔다. 커허어엉!!! 그 아름드리나무를 본 호선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척준영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양팔로 가렸다.
“으아악!”
호선이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아름드리나무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콰자작!! 크허어엉!!!
[어딜 감히!]
이성계도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호선이 앞발을 휘두르자 아름드리나무가 폭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터져나간 것이다.
[만우 같은 괴물이랑 같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500년을 그냥 산 게 아니란 말이지!]
비록 선주를 잃어 만우의 주먹에 굴복하였다고는 하나, 인간 중 호선을 넘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지난번의 김충처럼 실력 있는 도술사가 힘을 억제하는 기물까지 다룬다면 모르지만 단순히 순수한 인간이 호선을 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커허어엉!!!! 흥이 돋은 호선이 포효를 내지르자 이성계의 대룡궁이 뒤로 부드럽게 휘었다. 동시에 이성계의 활시위가 퉁하는 소리와 함께 벼락을 쏘아 보냈다. 쩌저적!!! 화살은 말 그대로 공기를 꿰뚫으며 수풀 너머를 향해 날아들었다. 공력을 제대로 실어 날린 화살은 권풍이나 장풍보다 강력했다. 꽈강!!!! 그 때문에 무언가에 부딪친 화살이 거대한 폭음을 터뜨리면서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를 갈랐다.
“동북면의 무신이라 하더니, 가히 그 무위가 하늘에 닿았도다!!”
화악!!!
거대하게 일어난 폭발 사이를 헤집으며 탐스러운 수염을 기른 마정(魔正) 백영이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달려 나왔다. 그런 백영의 뒤로 거대한 대부(大斧)를 든 일산(一山) 웅풍이 뛰쳐나왔다.
“흥. 애송이들이로구나.”
백영의 나이가 삼십 대 후반이고 웅풍이 삼십 대 중반이었지만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다들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런 둘을 향해 벼락과도 같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콰광!!! 언월도와 대부가 화살을 막아냈지만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그 둘의 발이 묶였다. 그사이 이성계의 대룡궁에 또 다른 화살이 얹어졌다.
“막아보거라. 애송이들.”
투둥! 공력을 가득 담은 이성계의 손가락이 거문고의 현을 뜯든 활시위를 튕겼다. 그런데 그때, 뒤쪽 수풀이 들썩이더니 화살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화살이 평범한 화살보다 그 크기가 팔 할 정도 수준으로 작았다. 그 때문에 소음도, 기척도 없이 이성계의 지척을 향해 쇄도했다.
[귀여운 수작!]
하지만 감각이라면 초절정 고수의 그것도 따라올 수 없는 호선의 몸이 번쩍했다. 그 위에 올라탄 이성계와 척준영도 함께였다. 와작!!! 번쩍하고 원래 서있던 곳에서 1장 정도 떨어진 옆쪽에 나타난 호선이 앞발을 들어 날아들던 화살을 후려쳤다. 쾅! 쾅!!!
“욱…….”
“크아!!”
그사이 이성계가 쏘아보낸 화살이 백영와 웅풍의 발치에 틀어박혔다. 그러면서 터진 화살에 의해 토사가 높게 치솟으며 백영과 웅풍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달려라 호랑아!”
[호랑이가 아니라 호선이라니까욧!!]
호선의 위에 올라탄 이성계는 무서웠다. 활을 든 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상대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이 날래야 했는데, 호선은 그런 점에서 이성계와 완벽한 합격을 이루고 있었다. 호선은 거대한 체구와는 다르게 유연하기가 버드나뭇잎 같았고 빠르기는 또 바람 같았다. 거기에 축지법 같은 도술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팟! 파바바밧!! 이성계와 호선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웅풍과 백영은 화살의 충격에 결국 화살을 피하기 시작했고 테무르는 화살로 아슬아슬하게 이성계의 화살을 격추했다.
“고작 이 정도로 이 나를, 이성계를 도발한 것이냐?”
이성계는 마교의 투귀대를 비웃었다. 그런데 그때, 호선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호선의 몸이 허공에서 뒤집혔다. 퍼억!! 커허어어엉!!! 호선이 고통스런 포효를 터뜨리며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이성계가 몸을 뒤로 뒤집으면서 화살을 쏘아냈다. 카가가각!!!
“허어?”
커어어엉!!! 이성계의 눈이 부릅뜨였다. 피냄새가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나찰사화 옥령은 혈성에 이성을 잃은 채 괴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 옥령의 손에는 호선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괜찮느냐?”
[괜찮아요.]
나찰사화 옥령은 마치 귀신처럼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호선이 눈치채는 것이 약간 늦었다. 그 대가로 호선의 허리춤이 갈라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 계집이 백옥 같은 내 가죽에!!!! 죽여 버리겠어!]
커허어어엉!!! 하지만 호선에게 한 번 포착된 이상 아무리 나찰사화 옥령이라고 해도 호선의 감각을 피해나갈 수는 없다. 거기에 상처를 입어 분노한 호선의 흉성이 폭발했다.
“꽉 잡아라!”
“예, 예! 전하!”
척준영은 정신없이 몸이 아래위로 흔들리던 찰나에 들린 이성계의 단단한 목소리에 호선의 등허리를 감은 다리에 힘을 더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척준영의 눈이 커졌다.
“좋구나!!!”
척준영은 놀랐지만 이성계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호선의 날렵함이 마음에 든 것이다. 흉성을 폭발시킨 호선의 움직임은 바람을 넘어 뇌전에 가까워진 것이다. 꽈르릉!! 순간이동을 하는 수준으로 호선은 축지법과 호랑이 특유의 번뜩이는 움직임으로 움직였다. 그 와중에 이성계는 호선의 위에서 활의 시위를 당겼다.
“몽고 놈아. 활은 이렇게 다루는 것이다.”
이성계의 목표는 테무르였다. 백영이나 웅풍과는 달리 테무르는 이성계의 활을 막아낼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계에 필적하지 못하는 것일 뿐, 테무르의 저격은 가별초나 다른 함주의 이들에게는 위험천만한 수준이었다. 터더더덩!! 이성계의 손가락이 대룡궁의 시위를 순식간에 대여섯 번이나 튕겨댔다. 테무르는 나무 위에 올라타 있다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이성계의 화살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무슨!’
초원이 좁다 내달렸고, 활과 화살만 있으면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도 두려워할 이가 없었다. 테무르의 활 솜씨는 원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혔다. 그런 원의 황실이 몰락한 이후 그는 황실의 재건을 위해 활 솜씨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그런데 조선에는 귀신이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