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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습격자의 정체(2) (101/400)

101. 습격자의 정체(2)2019.12.17.

16553212504872.png“본격적?”

어리는 이미 하오문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감히 은월루의 앞마당에 버젓이 머리를 들이밀고 파고든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16553212504872.png“대체 하오문이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조선은 그들에게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아닐 텐데요.”

어리는 그게 궁금했다.

16553212504884.jpg“이미 중원에는 개방이라는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본거지를 옮기거나, 세력권을 넓히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16553212504872.png“명 황실에 끈을 대기 위해서?”

외국의 정보를 원할 때 언제든지 물어올 수 있다는 것은 명 황실 입장에서 보면 군침이 도는 일이었다. 실제로 조선의 임금도 은월루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은월루는 그런 임금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미 중원에는 개방과 하오문이라는 거대한 정보 단체가 있어 포화상태였기 때문에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다르다. 은월루가 있지만, 은월루 직속 조직원의 수는 개방이나 하오문에 비해 손색이 있었다. 단지 은월루는 조선에 수많은 협력자를 각계각층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마음껏 수집할 수 있다는 정도?

16553212504884.jpg“그리고 한 가지 더 커다란 문제가 생겼습니다.”

16553212504872.png“또요?”

하오문의 일만 해도 은월루에서 골머리를 제대로 썩을 일이다. 하오문의 실력은 은월루에 비해 손색이 있었으나 그들은 밑바닥 하류인생들을 제대로 끌어모을 줄 아는 곳이다. 그 밑바닥 인생들은 치운다고 해도 깨끗하게 치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폭발적으로 수가 늘어날 것이고 정리한다고 해도 깨끗하게 치울 수가 없다.

16553212504884.jpg“마교.”

16553212504872.png“…….”

어리의 얼굴이 굳었다.

16553212504884.jpg“마교의 주구들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16553212504872.png“그거 곤란한 일이네요…….”

어리의 입에서 끄응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광문자는 어리의 답변을 기다리며 눈을 번들거렸다.

16553212504884.jpg“제가 정리하겠습니다.”

16553212504872.png“아니요.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어요.”

어리는 고개를 저었다. 광문자는 은월루가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패다. 광문자는 평소에는 기생들의 기둥서방이라는 위장신분으로 지내지만 그의 진정한 신분은 기둥서방 따위가 아니다. 동방제일살객(東方第一殺客). 동영의 인자들도 한 수 접어주는 암막 속의 존재가 바로 광문자다.

16553212504872.png“주상전하를 알현해야겠네요.”

어리는 살풋 웃어보였다. 광문자는 그런 어리의 결정에 두 말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16553212504872.png“더 보고가 들어온 건요?”

16553212504884.jpg“음…… 뭐, 건수로는 하오문의 대장간 하나를 태워 버렸다는 게 그나마 큰 정도인데…….”

16553212504872.png“조만간 하오문의 수뇌부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광문자는 어리의 말에 히죽 웃었다.

16553212504884.jpg“아가씨는 주상전하나 알현하고 오십시오. 하오문의 수뇌부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16553212504872.png“그럼 부탁드릴게요.”

광문자가 어리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로 연기로 화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

16553212504884.jpg“으하하핫! 이제 괜찮소! 역시 형님이 최고요!”

간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몸의 붕대를 풀어냈다. 놀랍게도 심했던 몇몇 상처들에 새살이 돋아나면서 아물어가고 있었다.

16553212534865.png“후우. 그 몸으로 움직이다니. 그러다 화기가 골수까지 스며들어오면 어쩌려고.”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간장이 검에 미친 야장(冶匠)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들던 검 때문에 불타는 대장간에 뛰어들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 했다.

16553212504884.jpg“살았으면 된 것 아니오. 그리고 기가 막힌 검이 나왔고.”

만우는 시커먼 돌몽둥이 같은 한철 덩어리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12534865.png“난 모르겠는데.”

16553212504884.jpg“천 번을 두드리고 백 번을 접으면 최고의 명검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그 단계는 모두 거쳤으니 한 번 더 가열하고, 모양을 잡은 뒤 날을 세우면 아마 형님도 깜짝 놀랄 검이 나올 거요.”

간장의 호언에 만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에 미쳐 있다는 점에서는 간장이나 만우나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만우도 그런 간장에게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를 아우로 맞은 것이다.

16553212534865.png“그런데, 불을 지른 놈들은 잡았어?”

16553212504884.jpg“모르겠소. 어떤 개잡놈들인지는 몰라도 잡히기만 하면 내 이 망치로…….”

간장이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사방에서 날름거리는 화마를 떠올리면 겁이 없는 간장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16553212534865.png“흑의라는 놈들이라고 하던데. 그놈들에 대해서 들은 것도 없고?”

16553212504884.jpg“뭐, 내 대장간에 오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여기 하오문 문도들이 아니면 식칼이나 호미, 쟁기를 맞추러 온 백성들이 대부분이라…….”

16553212534865.png“흠…….”

16553212504884.jpg“아. 생각해 보니 하나가 있긴 하네.”

간장이 자신의 이마를 찰싹하고 손바닥으로 때렸다.

16553212504884.jpg“불 앞에 있으니 기억도 같이 태워 버렸나. 가물가물하단 말이지.”

중얼거리는 간장에게 만우가 재촉했다.

16553212534865.png“말해봐. 나도 그놈들한테 궁금증이 생겨서.”

16553212504884.jpg“저기. 반궁 근처에 있는 반촌을 아시오?”

16553212534865.png“반궁이면…… 성균관?”

성균관은 조선에 필요한 학자들을 길러내는 곳이자 공자를 배향하는 신성한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균관을 일러 중국 주대(周代)의 제후의 학궁(學宮)이었던 반궁(泮宮)이라고도 불렀다.

16553212534865.png“반촌이면 노비들 사는 곳 아니야?”

16553212504884.jpg“그렇지. 그런데 그곳에 재인(宰人)이라고, 백정 일 하는 놈들이 있소.”

성균관은 미래의 재원들을 길러내기 위한 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양반가의 자제들이 성균관의 유생들인데, 그들이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보급하는 일을 도맡아 하기 위해 노비들이 성균관 주변에 거주했다. 반궁에서 이름을 따 성균관 주변을 반촌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한양에서 유일하게 가축의 도살(屠殺)이 가능한 곳이 바로 반촌 안에 있었다. 이는 성균관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반드시 필요한 희생(犧牲)을 잡기 위해서였는데 그 외에 다른 곳에서는 가축의 도살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16553212534865.png“그런데?”

백정의 이야기가 나오자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백정과 흑의 간에 무슨 연관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16553212504884.jpg“조말생이란 부사 나리가 소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했다는구려.”

16553212534865.png“소 한 마리?”

농업을 중요시 하는 조선에서 소는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은 우마의 도축을 엄히 금했다. 하지만 양반들은 이런 식으로 반촌의 백정들에게 사사로이 돈을 쥐어주고 고기를 얻어가곤 했는데 소를 사는 돈부터 시작해서 도축하는 비용까지 전부 제공했기 때문에 백정들은 그런 양반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쏠쏠한 비용을 받았다. 성균관에서 맨날 공자를 배향하기 위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공돈을 받아 챙기는 것을 백정들은 은근히 기다리기까지 했다.

16553212534865.png“많긴 하지만 그게 이상할 건 없잖아?”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말생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부사라고 하는 걸 보면 종6품의 당하관이란 뜻이다. 그 정도 돈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16553212534865.png“잔치라도 하나 보지.”

소 한 마리를 잡아갈 정도면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는 뜻이다. 명이나 조선이나, 귀족, 양반들이 잔치를 벌이는 데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만우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간장은 아니었다.

16553212504884.jpg“조말생이라 하면 임금님을 도와 조선을 건국한 건국공신의 한 명이라 한양 바닥에 이름이 자자하오. 장원급제로 작년에 요물부고사가 되었으니까 말이오.”

16553212534865.png“건국공신? 그런데 과거를 봤다고?”

16553212504884.jpg“뭐, 그때는 어렸다하오. 이제 서른이라 하니…….”

서른의 나이에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했다면 천재 중에 천재다. 대부분 과거에 급제를 하는 나이가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이다.

16553212534865.png“작년에 과거를 치렀다고? 식년시는 작년이 아니었을 텐데?”

조선의 과거제는 3년 만다 한 번씩 치러지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고 이를 식년시라 불렀다. 간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12504884.jpg“증광문과시가 열렸다고 하오. 뭐, 특별한 날마다 하는 그거 과거라고 하던데.”

16553212534865.png“어쨌든…… 그렇게 유명한 양반이 잔치를 벌인 건데 그게 왜?”

증광문과시는 국가의 경사가 있거나 문묘제례가 있고 난 뒤에 관리를 특별채용하는 시험으로 별시라 부른다. 만우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지만 만우는 내색하지 않았다.

16553212534865.png‘장원급제로 건국공신인 조말생이 뽑혔다? 마치 국왕이 그를 뽑기 위해서 과거를 연 것 같군.’

성균관 졸업 시기와 조말생의 장원급제 시기가 비슷하다하면 건국공신인 조말생을 위해 국왕이 과거를 열어주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16553212504884.jpg“그런데 조말생, 그 나리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없다는 것이오.”

16553212534865.png“손님이 없다?”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소 한 마리를 잡아서 열 정도의 잔치라면, 그리고 그 잔치를 연 주최자가 장원급제를 해 탄탄대로가 보장된 조말생이라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을 것이다.

16553212504884.jpg“거지도 없다고 했소. 고기를 나르러 갔던 그놈들이 말한 거니까 틀림없소.”

16553212534865.png“거지도 없다…….”

만우는 씩 웃었다. 무언가 냄새가 났다. 먹고 사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개코처럼 코가 발달한 거지들이다. 그런데 그 거지들이 잔칫집에 가지 않았다? 누가 못 가게 막은 것이다.

16553212534865.png‘개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중원에서야 개방이 있으니 거지들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선에는 개방이 없다. 그리고 하오문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거지를 통제했다?

16553212534865.png“거지들을 만나러 가보면 알겠네.”

만우는 흑의란 놈들이 궁금해졌다. 어차피 저녁에 동군영이 궁에 입궐할 때까지 딱히 할 것도 없으니 흑의란 놈들에 대해 조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16553212534865.png‘내 나름대로 조사한 뒤에, 그놈들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국왕의 뒤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던 그년놈. 어리와 광문자를 떠올린 만우가 히죽 웃었다.

16553212504884.jpg“그럼 이제 다시 함주로 안 가십니까?”

간장이 일어나는 만우에게 말했다. 간장은 만우가 자신이 만든 검을 드는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만우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간장을 쳐다봤다.

16553212534865.png“저놈. 얼마나 만들었는데?”

16553212504884.jpg“한 달은 더 걸립니다. 펴주고, 모양 잡고, 날을 갈아야 하니까요.”

16553212534865.png“그렇게나 오래?”

형(形)이 잡혀 있으니 금방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간장이 만들려는 검은 그렇게 간단하게 찍어낼 수 있는 검이 아닌 모양이었다.

16553212504884.jpg“천년한철을 재련하는 데는 원래 그 정도 시간이 걸려요 형님.”

16553212534865.png“아마 빠르면 당장 내일 출발할 것 같은데.”

조사의가 군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고 상왕이 함주에 있으니 만우는 최대한 빨리 함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애초에 한양에 온 이유가 만우의 부하들, 그러니까 감령과 필두, 문형일과 마익후를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16553212534865.png‘네 놈이나 있으니까. 그놈들도 무기가 필요할 것이고.’

잠시 생각한 만우는 간장에게 말했다.

16553212534865.png“여기 있어서 너도 그리 안전하지 않은 것 같으니, 차라리 같이 움직이자.”

16553212504884.jpg“안 그래도 저도 데려가 달라고 할 셈이었습니다.”

간장의 말에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야장이 자신과 함께 함주로 가야 할 일이 뭐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12504884.jpg“이동하면서 날을 세우고 형을 잡는 건 할 수 있지만, 손잡이와 검집을 만들 재료가 필요하거든.”

16553212534865.png“나무와 가죽이 필요한 거구나.”

16553212504884.jpg“그렇죠.”

간장은 입에서 침을 튀기며 말했다.

16553212504884.jpg“북쪽으로 올라가면, 그러니까 고려강(高麗江) 인근 유역에 검붉은 색을 띄는 이깔나무들이많소. 추운 곳에서 자라는 나무가 철의 기운을 품어 단단하기 그지없죠.”

16553212534865.png“호오. 그래?”

16553212504884.jpg“그리고 그 아래 함경남도의 문주(文州)까지 내려오면 그곳에 운림(雲林)이라는 곳이 있소.”

16553212534865.png“구름이 만든 숲이라…… 운치 있는 이름이로구나.”

16553212504884.jpg“윗못은 돌벽이 대단히 험하여 새도 넘나들지 못하고, 못이 검푸르고 깊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하오.”

16553212534865.png“그곳에는 왜?”

16553212504884.jpg“원래 검병은 교어(鮫魚:상어)의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지 않소?”

간장은 씨익 하고 웃었다.

16553212504884.jpg“헌데 내 듣자하니 그 운림폭포에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산다하오. 이룡(螭龍)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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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의 눈이 커졌다. 간장은 껄껄 웃어보였다. 자신이 만우를 놀래켰다는 것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다.

16553212504884.jpg“한번 속는 셈치고 가보시죠 형님. 이룡이 정말 있다면 내 이 손으로 때려잡아 최고의 검을 만들어 주겠소.”

세계제일검이 될 남자의 검이다. 만우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만우가 아는 이 중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었다. 오백 년 묵은 호랑이. 호선에게 물어보면 그게 가짜인지 사실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곳에 이무기가 산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16553212534865.png‘이무기의 가죽으로 만든 검병과 검집이라. 탐나는군.’

만우의 목울대가 꿀렁하고 움직였다. ***

16553212706498.png“할아범! 할아범!”

방매는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맨 채 강렬한 냄새를 풍기며 약재 냄새가 짙게 풍기는 안국방에 도착해 소란을 떨었다.

16553212504884.jpg“뗵끼! 시끄러워 죽겠다!”

방매가 소란을 피우자 안에서 약재에 반쯤 파묻혀 있던 나이 지긋한 노인이 호통을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무명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잿빛 머리를 한 안국방의 조 할아범이었다.

16553212706498.png“할아범. 내가 뭘 가져왔는지 알아?”

16553212504884.jpg“뭐긴. 사향이구나. 많이도 가져왔어. 쯧쯧.”

조 할아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자 방매의 눈이 커졌다. 단박에 조 할아범이 보따리 속에 든 물건의 정체를 알아맞혔기 때문이다.

16553212706498.png“어쨌든. 내가 기가 막히게 싼 가격에 이걸 왕창 가져왔어. 요 덩어리 하나에 오백 병이나 만들 수 있대. 이백 오십 냥짜리 덩어리가 삼십 개도 넘게 있어 할아범!”

방매는 잔뜩 흥분해 방방 뛰었다. 방매가 사냥꾼에게 돈을 주고 산 사향은 서른두 개나 된다. 사향의 덩어리가 커서 각 덩어리당 오백 병을 만들 수 있다고 치면 이백오십 냥짜리 사향이 서른두 개나 된다는 뜻이다.

16553212706498.png“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살수도 있어 할아범. 아니면 관직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이백오십 냥짜리가 서른 두개면 무려 팔천 냥이나 되는 거금이다. 은병 하나에 은 열 냥이나 은 팔천 냥이면 은병 팔백 개다. 은병 하나에 한양에서 곡식 15석을 살 수 있으니 곡식을 만 이천 석이나 살 수 있는 돈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16553212504884.jpg“꿀꺽.”

호통을 쳤던 조 할아범도 팔천 냥이란 소리에 놀란 것인지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져 있었다. 방매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12706498.png“이 정도면 충분하지? 할아범?”

16553212504884.jpg“추, 충분하긴 하다만…….”

조 할아범은 방매를 빤히 쳐다봤다. 친손녀는 아니지만 방매가 어릴 때부터 손녀처럼 키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방매가 저렇게 필사적으로 돈을 버는 이유는 조 할아범은 잘 알고 있었다.

16553212504884.jpg“정녕 객주를 세울 셈이냐? 그래서 사람들을 고용해 중원으로 보낼 생각이고?”

16553212706498.png“그럼.”

방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매의 꿈은 객주를 세울 수 있는 돈을 벌어 상단을 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중원으로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16553212504884.jpg“네 부모를 그리 반드시 찾아야만 겠느냐?”

조 할아범의 간절한 목소리에 방매의 표정이 슬핏 굳었다. 하지만 방매는 조 할아범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16553212706498.png“그건 이제 상관없어! 내가 보니까 돈을 벌려면 중원과 교역을 해야 되더라고. 돈을 버는 게 더 우선이야!”

상인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세워진 객주는 상인들의 정보가 모이는 곳이고 그 자체로도 훌륭한 시전의 역할을 한다. 거기에 돈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돈놀이 역할까지 하니 방매 말대로 객주를 잘만 차리면 떼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조 할아범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16553212504884.jpg“네 부모님이 살아 있을 확률은 매우 적다. 그걸 너도 알지 않느냐. 명으로 가는 배에 탄 것 까지는 확인했지만 도착하지는 못 했다는 것을…….”

방매는 부모의 얼굴을 알기도 전에 부모와 생이별을 했다. 조선 건국 전, 고려왕조이던 시절에 명나라 주원장에게 받쳐지는 공녀로 선별된 것이 방매의 어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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