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아, 네가 철권이구나?(3)2019.12.07.
한방이 잡으란 놈이 대체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그놈은 선천적으로 존재감이 약하고 몸을 움직여도 기척이 없어 일류 무인들이 지키고 있는 곳을 빠져나가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교수에까지 알려졌고, 교수는 한방을 만나 열 냥으로 올라간 금액으로 의뢰를 수락한 것인데 교수와 기린대 무인 서른 명이 닷새 동안 그놈을 쫓았음에도 옷자락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추적술에 능한 이가 있어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아예 놓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철권을 비롯한 기린대 무인들의 짜증을 돋웠다.
“잠깐!”
기린대 무인들이 간단하게 정비를 끝내자 출발 신호를 보내려고 했던 교수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런 교수의 입가가 히죽하고 말려 올라갔다.
“이런 궁벽한 곳에 웬 고수?”
철권의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그는 강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즐겼다. 무림십좌라 불리는 무지막지한 그 양반들이나 조선의 곡산척가 같은 곳이 아니라면 그 누구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무인은 강하게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강자와의 싸움은 바로 그 담금질을 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철권의 기감에 자신과 비등한 수준의 고수가 잡힌 것이다.
“끼요옷!!”
파악! 그 순간 수풀이 들썩거리더니 토끼가 불쑥하고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런 토끼 뒤로 더 큰 들썩거림이 일어나더니 뾰죡한 기합소리와 함께 도망가던 토끼의 등에 검이 틀어박혔다.
“왜놈?”
“응?”
만우의 명령으로 토끼를 잡으러 나왔던 슌스케를 본 교수의 눈이 커졌다. 기린대를 본 슌스케도 마찬가지였다.
“음…….”
교수와 슌스케가 서로를 쳐다보면서 움찔거렸다. 교수는 슌스케의 오른팔이 텅 빈 것을 본 것이고 슌스케는 만만치 않아 보이는 교수와 그 뒤에 선 기린대를 본 것이다.
‘이건 뭐야?’
‘이건 뭐야?’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한 교수와 슌스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
“나는 호군 김옥겸이라 하오.”
“호군이라 하시면…….”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호군이라하면 정4품의 무관으로 춘추관 기서관인 동군영으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높은 관직의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다. 호군은 궁성 4대문과 광화문을 수호하고 도성 내외의 순찰을 총괄하는 순관이기도 했다. 호군 김옥겸은 놀라는 동군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나를 아시오?”
“호군이 장군을 뜻하는 것임은 알고 있습니다. 동군영이라고 합니다.”
“보아하니 양반인 것 같은데.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소.”
김옥겸은 호방한 성격의 무관이었다. 정4품으로 도성을 수호해야 할 그가 왜 정신을 잃고 이곳에 쓰러져 있었는지 동군영은 그것이 궁금했다.
“헌데 호군이시면 도성에 있으셔야 하는데 왜 이곳에서 변고를 당하신 것입니까?”
김옥겸은 언제 자신이 건량을 우적우적 씹었냐는 듯 말끔한 얼굴로 동군영을 쳐다봤다. 자신의 이야기를 동군영에게 해줘도 될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말씀하실 수 없는 내용이라면 알려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조사의의 이름이 나온 순간 동군영은 그의 입에서 듣고 싶은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정4품의 무관에게 그 내용을 말하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동군영 스스로가 어사라고 밝힐 수도 없었으니, 동군영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는 척을 했다.
[내가 말하게 해줄 수도 있는데.]
만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자 동군영이 만우를 힐끗 쳐다봤다. 만우와 방매는 한 쪽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동군영을 보좌하는 하인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맡겨만 달라니까. 조사의 이름이 나왔다면서.]
도리도리. 동군영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해서 알아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우는 손이 근질거리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실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김옥겸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안변에서 변고의 조짐이 보이오.”
“변고라 하면…….”
“역모.”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동군영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함주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옥겸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미 대호군 안우세가 그곳에서 안변부사 조사의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보고하여 상호군 박순을 보내었소. 하지만 오랫동안 기별이 없어 주상전하께서 나를 안변으로 보내었는데…….”
김옥겸의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갯불처럼 튀어나왔다.
“그 작자는 감히 예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시켜 내 칼과 마패를 빼앗았지. 간신히 그곳에서 빠져나와 문주에 이르러 박양이 군사를 조련한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구려.”
“조사의…… 박양…….”
동군영은 조사의 의외의 이름을 되뇌었다. 기억해 두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이후 영흥부에 이르러 부윤 박만을 만났소. 헌데 그 작자가 울면서 내게 말하더이다. 군사를 조련하라는 조사의의 통첩에 사람을 보내어 주상전하게 알렸다 하였소. 허나 한 기의 파발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하니 나보고 주상전하게 가서 말해달라며 칼과 말을 내어주더이다.”
“박만……?”
동군영의 눈이 가늘게 좁혀 떠졌다. 김옥겸의 말만 들으면 박만이라는 자는 어쩔 수 없이 조사의의 강요에 의해 역모에 찬동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변과 그 인근에서 조사의와 비등한 병력을 거느린 자가 바로 영흥부의 부윤이자 도순문사인 박만이다. 도순문사는 동북면의 군사를 관장하는 관직이다.
“그러다 내 영풍 지방에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방이란 작자를 만났는데……그자에게 속았소.”
‘한방.’
“내가 지내는 곳을 미행하였는지, 일단의 무리가 나를 덮치고 납치를 하여 한 촌가에 갇혀 있었소. 하지만 간신히 몸을 빼서 산을 기어올라 이곳까지 도망친 것이오.”
김옥겸은 뜨거운 한숨을 훅하고 토해냈다. 그 간의 그의 고생이 다 느껴지는 절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동군영의 표정은 침착했다.
‘주상전하께서 알고 계시고, 상왕전하께서도 알고 계신다. 문제는 안변에서 얼마나 많은 군을 일으키느냐, 어디까지 손이 닿아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지.’
현비 강씨의 복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군을 일으킬 조사의다. 거기에 상왕을 해하려고 한 것을 보면 상왕을 해하고 그 누명을 주상에게 뒤집어 씌워 명분을 자신의 쪽으로 가져오려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위해 조사의는 왜구를 끌어들였고, 강순일과 함주 관아를 날려버린 마교의 주구들과도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조사의와 박만이 손을 잡은 것 같군요.”
동군영은 김옥겸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을 콕 짚어주었다. 김옥겸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만(蔓)은 눈물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였네. 한양에 파발까지 보내가면서.”
“확인하셨습니까?”
“뭣?”
김옥겸의 눈이 커졌다. 동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옥겸은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반역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사로잡혀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안변부사가 영흥부의 부윤이자 도순문사인 박만에게 군을 조련하라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입니까?”
“…….”
“또한. 박만이 보냈다던 파발. 박만이 보내놓고 안 보냈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 그건…….”
“또한. 안변부사 조사의가 동북면에 도순문사 박만을 두고 거병을 한다?”
동군영은 김옥겸을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그에게 현실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몸이 지쳐 마음까지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박만의 인간적이었던 호소가 계속해서 허상처럼 남아 따라다닌 것이다.
“박만이 김 사마(司馬)님을 기만한 것입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사마(司馬)는 호군을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이다. 김옥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만우가 재밌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서로 대화는 거기까지 나누시고.”
조용히 하인인 척 하고 있던 만우가 걸어 나오자 김옥겸이 놀라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하인이라고 하기에는 눈빛이 너무나도 깊고 차가웠다. 김옥겸은 정4품 호군으로 도성을 지키는 장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만우가 일개 하인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다.
“그대들은 대체…….”
“눈치가 빨라.”
만우는 재밌다는 듯 히죽 웃었다. 동군영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만우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서 수풀이 크게 들썩이고 나무가 우지끈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뻘건 피를 입에서 토해내는 슌스케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물수제비를 튕긴 것처럼 바닥을 찧으며 퉁퉁 튕겼다.
“크으…….”
슌스케는 입가를 손등으로 닦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슌스케의 몸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시퍼런 피멍 자국이 들어 있었고,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장 심한 것은 가슴 한 복판에 찍힌 주먹 자국이었다.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응?”
슌스케가 튀어나온 곳의 수풀이 크게 들썩이더니 그곳으로 교수가 튀어나오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만우를 비롯한 일행들을 발견한 것이다.
“호오. 이놈의 일행인가?”
교수는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그런데 그때 교수의 눈에 김옥겸의 얼굴이 들어왔다. 교수가 눈을 부릅떴다.
“네 이노옴!!!”
쩌렁!!! 교수의 목청은 그가 차라리 음공을 배우는 것이 더 나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우렁찼다. 만우는 귀가 울리는 느낌에 인상을 살짝 썼다.
“거기 있었구나. 거기 있었어. 기린대!”
교수가 뒤를 향해 소리를 치자 수풀 속에서 서른 명의 기린대가 뛰어나왔다. 그런데 기린대 들 중에 다친 이들이 몇몇 보였다.
“쯧. 멍청한 놈들. 팔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놈을 상대로 싸웠는데도 그렇게 다치다니.”
교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부상을 당한 기린대 무인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 기린대 무인은 창피한 것인지 고개를 푹 숙였다.
“칙쇼…….”
슌스케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만약 그의 두 팔이 멀쩡했다면, 아니 적어도 그가 왼손으로 검을 쓰는데 익숙해졌다면 교수와 비등한 싸움을 펼쳤을 것이다. 교수의 일권일권은 묵직했지만, 빠르지 않았고 슌스케의 일격은 빠르지만 묵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슌스케의 지금 몸 상태로는 교수의 일권을 피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게다가 이미 만우의 우마가 되어 이곳까지 수레를 끌고 오느라 잔뜩 지쳐 있었기 때문에 더욱 교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나마 기린대 무인의 포위망을 뚫고 이곳까지 도달한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 가슴팍에 이런 상처가 생겼지만, 결국 만우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너넨 다 뒈졌어. 멍청한 뙤놈들.”
“뭐라는 것이냐. 곧 죽을 왜놈이.”
만우는 기린대 무인들이 김옥겸을 보고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사림곡이라면 무림에서 마교, 무림맹과 함께 삼대 세력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의 정예라는 놈들이 조선에서 반란군의 명령을 받고 사람 하나를 잡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놈이 껴 있는데도 여기까지 도망친 거라고?’
여기서 도성까지는 하루면 가는 거리다. 만우는 교수가 껴있는 추격대를 따돌리고 김옥겸이 이곳까지 도달했다는 것에 더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공을 익힌 흔적은 없는데.’
김옥겸은 어디까지나 무과를 급제할 정도의 무예만을 딱 연마한 무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공을 익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몸으로 기린대의 추격을 따돌리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주구우우우운!!!”
슌스케가 만우를 쳐다보면서 주군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만우는 슌스케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황동한 표정으로 슌스케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