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6. 아, 네가 철권이구나?(1) (96/400)

096. 아, 네가 철권이구나?(1)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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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르르!

16553211530299.jpg“이야! 벌써 도성이야!”

단풍나무의 색이 변하기 시작하고 은행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만우와 동군영, 방매는 불과 보름만에 달포를 걸려 갔던 길을 주파에 한양 인근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16553211530304.jpg“언제는 불쌍하다더니?”

16553211530299.jpg“뭐…….”

보름만에 돌아온 것 치고는 만우와 방매, 동군영의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이게 전부 셋이 탈 정도로 큰 수레를 미친 듯이 끌고 온 슌스케 덕분이었다.

16553211530299.jpg“내가 말했잖아. 나한테는 귀인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16553211530319.jpg“헉, 헉, 헉.”

슌스케는 이러다가 입으로 허파가 나올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숨이 문자 그대로 목 끝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슌스케는 만우에게 하룻밤동안 조련 아닌 조련을 당하고 만우에게 완전히 굴복했다. 독기와 오기라고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생각했던 슌스케였다. 왜에서부터 그가 일월조의 조장까지 올라온 것은 그 독기와 오기가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왜에서 다이묘를 지키며 싸울 때에는 전신에 열 곳이 넘는 검상을 입고도 악착같이 적을 막아섰던 슌스케였다. 하지만 그런 슌스케도 만우 앞에서는 그냥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16553211530304.jpg“정지!”

털썩!

16553211530319.jpg“흐억, 흐억.”

슌스케가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만우는 귀신처럼 슌스케를 딱 멈춰 세웠다. 그러자 슌스케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만우는 히죽 웃었다.

16553211530304.jpg“수고했어?”

16553211530319.jpg“아, 아닙니다.”

슌스케는 불과 보름 사이에 아주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눈에서 광기를 드러내면서 발광을 하던 것과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게다가 만우가 말을 걸 때마다 몸을 파르르 떨면서 눈치를 봤다. 분근착골과 전신요혈의 가장 고통스런 부분만을 눌러서 밤새 때리면 이렇게 된다.

16553211530319.jpg‘아마 정신이 나간 사람도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거야.’

슌스케는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우가 슌스케에게 희생만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16553211530304.jpg“이제 한 3성 정도 됐겠다?”

16553211530319.jpg‘귀신같은 놈.’

16553211530319.jpg“그, 그렇습니다.”

슌스케의 경공 실력은 만우가 생각한 것보다 부족했다. 하지만 이성계의 곁에 호선을 붙여놓기로 했기 때문에 만우는 하는 수 없이 슌스케의 경공에 손을 댔다.

16553211530304.jpg“검은 그렇게 극쾌를 추구하면서 경신법은 엉망이라니. 거기도 참 불균형한 곳이네.”

슌스케의 검은 극쾌를 추구했다. 슌스케와 직접 검을 겨뤄봤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쾌검을 구사하는 이들이 그 쾌검을 받쳐줄 수 있는 경신법을 익힌 중원과는 달리 슌스케의 경신법은 형편없었다. 알고 보니 왜(倭)는 섬이었기 때문에 경신법으로 장거리를 이동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배를 타고 싸우거나, 좁은 공간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경신법이나 보법이란 것이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다.

16553211530304.jpg“어때, 고맙지?”

16553211530319.jpg“…….”

그런 경신법을 만우가 약간 손을 본 것이다. 그것만으로 슌스케의 경공의 속도가 두 배는 빨라졌다. 하지만 슌스케는 쉽사리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틈만 있다면 만우의 목을 쳐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한 팔을 잘라 외팔이 검사로 만든 것이 바로 만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가 고쳐준 경신법을 잘 다듬은 뒤 쾌검을 경신법과 함께 사용한다면 이전보다 두 수는 더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16553211530319.jpg‘병 주고 약 주고.’

그렇기 때문에 슌스케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팔을 잘라 버린 대신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렇다면 과연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16553211530319.jpg‘아니. 알려준 게 아니라 날 말로 써먹으려고 한 것이잖아.’

으드득. 슌스케가 이를 우드득하고 깨물었다. 새롭게 배운 경공이 불과 보름만에 3성에 도달한 것 자체가 만우 때문이었다. 만우는, 일월조장인 자신을 무려 수레를 끄는 말로 써먹은 것이다. 그것도 세 명이나 탄 수레를 끌고 함주에서 한양까지 그 긴 거리를 경신법으로 달리게끔 만들었다. 사실상 채찍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슌스케는 맨날 체력과 내공이 바닥이 날 때까지 달려야만 했다. 신기한 점은 만우가 슌스케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는 기가 막힌 순간에 항상 정지를 외쳤다는 점이다.

16553211530304.jpg“흐흐. 내 목을 따고 싶어 미치겠지?”

옆에서 만우가 다 알고 있다는 듯 슌스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슌스케의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귀신같은 놈이라 도통 속일 수가 없었다.

16553211530304.jpg“언제든지 도전해. 그런데…….”

만우의 눈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그러자 슌스케는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는 것을 느꼈다. 만우에게 밤새 분근착골과 구타를 당하던 공포가 떠오른 것이다.

16553211530304.jpg“못 이기면 그때는 뭘 잘라줄까?”

16553211530319.jpg“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 말이 좋습니다.”

만우의 시선이 집요하게 슌스케의 나머지 한 팔을 쳐다보자 슌스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지금은 한 팔이라도 남아 있는데 개기다가 나머지 한 팔마저 잘리면 그 때는 정말 수레를 끄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16553211530304.jpg“일 보고, 함주에 돌아가면 놔준다.”

휙!

16553211530319.jpg“저, 정말이십니까?”

16553211530304.jpg“그래. 속고만 살았어?”

만우는 씩 웃어보였다. 슌스케의 두 눈에 희망의 빛이 맴돌았다. 틈을 봐서 도망가는 것 이외에는 만우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슌스케다.

16553211530304.jpg“우리 방매를 노린 것은 괘씸하지만…….”

16553211530299.jpg“우, 우리 방매라니! 누가 우리 방매야!”

16553211530304.jpg“뭐, 그것 외에는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없잖아. 안 그래?”

길거리에서 저자의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린 것? 그 정도야 다른 사람들도 다 한다. 힘을 가지면 으레 자신의 힘을 뽐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팔까지 잘리고, 평생 말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 때문에 만우는 슌스케를 놓아줄 생각이었다.

16553211530304.jpg‘갈 수 있으면.’

그 말은 하지 않은 만우가 슌스케를 보면서 씩 웃었다. 그러자 슌스케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16553211530319.jpg“가, 감사합니다!”

16553211530304.jpg“그러니까 열심히 뛰어. 말 잘 듣고. 어?”

초절정이라면 쓸 만한 실력이다. 왜구라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만우가 조선에 데리고 온 놈들 중에는 산적왕과 수적왕도 있다.

16553211530304.jpg‘능력 있는 부하는 데리고 있을수록 내가 편해지지.’

중원에서는 홀몸인 것이 오히려 편했는데 조선에서는 부하가 있는 것이 편했다. 자꾸만 이상한 일에 얽혔기 때문이지만 만우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16553211530304.jpg‘혹시나 김향, 그 아이는 복수를 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

중원의 잡것들이 조선을 활보하고 다니니 그것도 관리해야 했다. 그냥 홀몸으로 찾아오는 놈들만 상대하면 됐던 중원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16553211530304.jpg‘사람을 잘 쓸 줄 아는 놈을 하나 구하면 되지.’

사람이 늘어나면 그것도 문제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사람 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구하면 된다.

16553211530299.jpg“뭘 보고 그렇게 웃는 거야! 기생오래비 같이!”

만우가 방매를 쳐다보면서 능글맞게 말하자 방매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16553211530304.jpg“돈 많으면 우리 방매지.”

16553211530299.jpg“……웃기지마! 너한테 줄 돈은 한 푼도 없어!”

만우의 장난에 자기가 넘어갔다는 것에 방매가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군영은 그런 만우와 방매를 보면서 웃었다.

16553211530299.jpg“웃지 마요 나리!”

16553211577942.jpg“왜, 보기 좋아서 그러는 건데.”

16553211530299.jpg“에이……. 나리나 만우나 다 미워요!”

방매가 사향이 든 커다란 자루를 꼭 끌어안은 채 표독스럽게 외쳤다. 동군영은 머리와 목, 가슴팍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그래도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16553211530304.jpg“그냥 있으라니까.”

만우는 동군영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동군영을 구하기 위해 관아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동군영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에 묘하게 대하기가 어색했다.

16553211530304.jpg‘원래 그런 거 잘 안 해주는데.’

그래도 그것도 제자랍시고 나섰던 만우다. 동군영이 픽하고 웃었다.

16553211577942.jpg“상왕전하를 대하는 자네 성격을 보니, 한양에 가서도 어련하랴 싶었다. 내가 가야지.”

16553211530304.jpg“어이구. 벌벌 안 떨고 말 잘 할 자신은 있고?”

16553211577942.jpg“그럼!”

동군영이 멀리 보이는 한양 도성을 쳐다봤다. 여기서 보기에는 가까워 보이지만 막상 가면 한참을 더 가야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두 달 만에 돌아오는 곳이었지만 한 삼 년 만에 돌아온 것 같았다. 그동안 겪은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16553211577942.jpg“곧장 전하를 뵈러 가야겠어.”

16553211530304.jpg“글쎄. 그럴 수 있을까?”

만우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동군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16553211577942.jpg“왜?”

16553211530299.jpg“왜긴요. 암행어사 나리가 버젓이 돌아다니시면 안 되니까요.”

방매는 동군영이 어사란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 방매는 역졸이 아니라 길잡이였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숨겼던 것이다. 하지만 방매는 동군영이 어사란 것을 알고도 놀라지 않았다. 괜히 쥐뿔도 없으면서 오지랖이 넓을 때 알아봤다고 했다. 마패와 유척도 동군영이 칠칠맞게 다 보이게 걸고 다녔다고도 했고.

16553211577942.jpg“아. 맞다.”

16553211530299.jpg“아니 나리, 어떻게 무식한 상것인 저보다도 더 모르세요?”

16553211530304.jpg“상것이 아니지. 옹주 마마.”

16553211530299.jpg“힉.”

방매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이성계의 수양딸이 됐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보다 옹주마마란 소리가 더 간지러웠다.

16553211530299.jpg“그렇게 부르지 마! 내가 무슨 옹주야!”

16553211577942.jpg“옹주지. 만우의 말이 맞다. 아니, 맞습니다, 옹주마마.”

방매를 놀리는 것에 동군영까지 끼어들었다. 방매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16553211530299.jpg“옹주라니. 내가 옹주라니!”

16553211530304.jpg“왜. 궐에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면서.”

16553211530299.jpg“그렇긴 한데…… 내가 본 양반댁 마님들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오고 사시더라고. 나도 그럴 거 아니야.”

16553211530304.jpg“허. 혼인할 생각은 있고?”

방매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11530299.jpg“아니 할 수도 있지. 나 정도면!”

16553211530304.jpg“하. 퍽이나. 사향 냄새나 없애고 말하지.”

16553211530299.jpg“이게 얼만 줄 알고.”

방매가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동군영이 그런 방매를 보면서 귀여운 여동생을 보는 것 같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6553211577942.jpg“전하께서 어린 여동생이 생겨서 좋아하시겠어.”

16553211530299.jpg“그만해요!”

방매가 뾰족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만우가 웃으면서 방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6553211530299.jpg“이익!!!”

16553211530304.jpg“불안해할 필요 없어.”

발작하려던 방매의 몸이 멈칫했다. 만우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방매의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16553211530304.jpg“옹주가 되어 무섭겠지. 평생을 자유롭게 살아오다가 궁에 갇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임금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벌을 내리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들.”

16553211530299.jpg“…….”

평민에서 왕족이 되었다고 해서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평생을 평민으로 살아왔던 방매에게는 기쁜 것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비록 여기저기 발품을 팔면서 밥을 벌어먹고 살기는 했으나, 양반도 아닌 왕족이 될 것이라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6553211530304.jpg“불안하면 오라버니라 한번 해봐. 내가 네 오라버니가 되어주마.”

만우가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바꾸며 방매를 쳐다봤다. 방매는 만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만우가 그런 방매의 얼굴을 보고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16553211530304.jpg“그런 표정 하지 마라. 진짜 못 생겼으니까. 그렇게 못나게 생기면 옹주라 해도 아무도 안 믿…….”

16553211530299.jpg“오, 오라버니!!!!”

1655321164942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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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와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방매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여자인지 둘 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러질지언정 꺾이지는 않았다. 홀로 돈을 벌겠다고 함주에 가서도 끈질기게 돌아다닌 것도 그랬다. 어사인 동군영과 친해졌으면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에게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알짱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매는 홀로 사향을 구하겠다면서 돌아다녔다. 그것도 넘어 홀로 노예상인이던 김충이란 놈에게도 맞섰고 슌스케까지 잡아왔다. 그녀는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방매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만우에게도 절대로 오라버니라 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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