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상왕의 결정(1)2019.11.16.
만우가 사람들의 머리를 뛰어넘으면서 공력을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무너진 관아의 잔해를 나르던 포졸들이 흠칫 놀라 위를 쳐다봤다.
“갈!!!”
우르릉!!! 화아악!! 만우가 공력을 끌어올리며 사자후를 토해냈다. 그러자 만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공력이 앞으로 분사하면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쑤우욱!! 그러자 주변으로 자욱하게 내려앉았던 먼지들이 만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파에 의해 뒤로 쭈욱 날아갔다. 만우의 갑작스런 사자후에 놀란 포졸들과 인파 중 주저앉는 사람이 속출했지만 만우는 곧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넌. 척준영?”
“대, 대협. 저 안에, 저 안에 그분이…….”
만우가 척준영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척준영은 만우의 사자후에도 유일하게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척준영은 입으로 죽은피를 계속해서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척준영의 상태도 매우 위중했다. 죽은피가 입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은 안의 내장이 괴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군영을 살리겠다고 움직이는 척준영을 본 만우가 손가락을 튕겨 내공으로 척준영의 수혈을 짚었다. 스르륵.
“날라. 너, 여기 있는 부상자들 전부 날라. 이놈은 도술로 치료하고.”
“네!”
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척준영을 받아든 호선이 축지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쿠르르! 만우는 완전히 무너진 관아를 보면서 공력을 끌어 올렸다. 만우를 향해 신선이라 부르는 인파의 소리가 들렸고 개중에는 함주 부사가 하늘이 분노해 벼락을 맞았다고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만우는 그 모든 소리들을 흘려보내며 내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무너진 곳을 쳐다보면서 눈을 번쩍하고 떴다.
“거기 얌전히 있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말고!”
동군영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 동군영의 기질에 대해서는 익숙한 만우였다. 만우의 손이 괘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단숨에 벤다. 빠르지만 섬세하게.’
동군영의 숨소리가 고른 상태였기 때문에 중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너진 잔해가 어떤 변수를 일으킬지 모른다. 만우는 자신이 왜 동군영을 살리기 위해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같이 시간을 보낸 정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재능이 꽝이긴 하지만 만우의 제자나 마찬가지였기도 했다.
‘아둔한 제자라니.’
만우는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동시에 만우의 호흡이 흡하고 멎었다. 쩌엉!!!
“윽!”
“억!!”
동시에 주변에 몰려들어 만우가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짧았지만 굵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귓속에서 웅웅하는 소리에 귀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이게?”
“내 말 들려? 아, 아!”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사람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게 칼이었어?”
“칼은 또 언제 뽑은 거야? 내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보고 있었는데.”
“이상타.”
검이라고는 1도 모르는 길거리의 아낙네들과 남정네들이 만우를 보면서 수군거렸다. 어느새 만우의 손에 시린 괘검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검이었던 줄 몰랐던 사람들이 태반이었기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들이 놀랄만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푸스스스스!!!
“어? 어어어?”
“가루다!”
“이게 뭐시당가?”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잔해들 중 일부러 증발하듯이 푸스스거리면서 가루로 변해 바스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래로 만든 거여?”
“그럴 리가! 저 서까래가 얼마나 튼튼한 놈이었는데.”
“그런데 왜 저런 거여?”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하지만 마치 그 부분만 모래나 먼지로 지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잔해들이 원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모래처럼 푸스스 흩날리기 시작했다.
“사람이다!”
“사람이 있어!!”
그리고 그 사이로 동군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기절해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아마 마루 밑에 숨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잔해 속에 갇혔다는 공포감과 폐쇄된 곳에 있다는 그 공포에 기절을 한 것이다.
“가지가지하는 놈이야.”
만우는 평온한 표정으로 기절한 채 포졸들에 의해 끌려나오는 동군영을 보면서 괘검을 허리춤에 다시 꼽았다. 수으으읍! 그리고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켰다. 50번. 만우의 괘검이 동군영이 파묻혀 있는 잔해 위를 가른 횟수였다. 한 번의 호흡에 50번의 베기를 담는다? 물론 무림에서도 극쾌를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만우보다 더 많이 벨 수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극쾌로 화경지경에 오를 수 있다면 극쾌로 공기를 베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우는 그렇게 50번을 휘두르면서 동군영의 터럭 하나도 상하게 하지 않았다. 극에 달한 제어술이었다. 내공을 그렇게 세심하게 다루는 것은 만우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숨 쉬는 것부터 시작해 자는 것, 먹는 것, 심지어는 싸는 것까지. 기천은 늘 끊이지 않고 만우의 몸에 흘렀기 때문에 가능한 신기(神技)다. 철컥. 괘검의 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간장이 심혈을 기울인 것이 티가 났다. 만약 그냥 보통 야장이 만든 철검이었다면 녹아서 검이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 했을 것이다. 만우는 검집에 넣자 검집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녹아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힘 좀 썼네.”
만우는 어깨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척준영을 눕히고 돌아온 호선에게 손짓을 했다.
“나리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 그러십시오.”
만우가 포졸들에게 말해 동군영을 건네받았다. 만우를 본 포졸이 흠칫 놀리면서 극존칭을 썼지만 만우는 개의치 않았다.
“호선.”
“예, 대협.”
호선이 동군영을 끌어안고는 축지와 함께 사라졌다. 동시에 만우는 잔해 위를 슬쩍 쳐다보고는 손을 까닥했다. 쉬익!!! 그러자 만우의 손아귀로 땅에 반이 넘게 틀어박힌 화살이 빨려 들어왔다.
“……이성계.”
그 화살은 만우의 눈에 낯이 익은 화살이었다. 이성계의 대룡궁에 걸려 있던 바로 그 살(薩)이었다. 끝이 새대가리처럼 뾰족하고, 살의 끝에 삼방(三方)으로 깃이 달려 있는 살이었다. 대룡궁으로 아주 멀리까지 살을 날릴 수 있게끔 만들어진 화살에 만우가 끄응하는 소리를 냈다.
“한번 만나러 가야겠네.”
만우가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
“아무도 발견하지 못 했다?”
“예! 전하!”
가별초의 수장이 이성계 앞에 부복한 채 보고했다. 이성계는 얼굴을 찌푸렸다.
“관아에서 난리가 났다 하던데?”
“아직 정확한 보고가 들어온 바 없사옵니다.”
“흐음…….”
이성계는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느낌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가별초들을 급히 내보낸 것은 하늘을 비행하는 적설청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멸망한 원 황실의 잔재가 왜 조선에.”
적설청은 조선의 해동청에 준하는 영물에 가까운 매다. 주로 원나라의 발생지인 중원의 서북쪽 평원에서 사는 매였는데 그 개체수가 많지 않아 원나라 황족들이 가장 아끼는 동물로 손에 꼽혔다. 이성계는 엄밀히 말하면 고려에서 관직을 시작하지 않았다. 본래 전주 향리였던 고조부인 이안사가 가솔들을 이끌고 당시 원에서 설치한 쌍성총관부로 이주하게 되면서 여진족의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고려에 투항하기 전까지도 그는 원나라의 천호(千戶)라는 지방관의 자리에 있던 원나라의 관리였다. 그런 이성계가 고려로 전향하게 된 것은 공민왕의 반원 정책 때문이었다. 공민왕은 원에게 잃었던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자 하였고 이성계는 그때 공민왕이 보낸 동북면병마에 협력하여 고려의 관직에도 출사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계는 쌍성총관부에서 저 적설청을 본 적이 있었다.
“불안하구나.”
“송구하옵니다, 전하.”
그런 적설청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적설청을 부리는 이가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가별초들을 급파했지만 허탕을 치고 왔으니 이성계의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사의. 이놈이 어디까지 손을 뻗은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이성계는 한탄했다. 조사의가 왜 함주 근방에 병력을 숨겨놓은 것인지 이해가 갔다. 자신을 볼모로 잡으려는 것이다. 그것도 아들이자 이 조선의 임금인 이방원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방원을 선택의 갈림길에 빠뜨리려는 악독함이 느껴졌다.
“순일이는. 순일이도 관아에 있지 않더냐?”
문득 관아에 잡혀 있는 강순일이 떠오른 이성계가 가별초 대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때 바람이 한 줄기 불어오더니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놈은 죽었어, 노인장.”
우르릉!! 만우가 허공에서 스륵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만우가 허공에서 나타남과 동시에 만우가 지나온 길을 따라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뭐, 뭐라? 그게 무슨 소리냐!”
만우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성계는 만우가 한 말에 경악했다. 강순일이 죽었다는 것이다.
“관아에서 재판을 받던 도중 저격을 당했어. 이 화살에.”
따당! 만우가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바닥에 내던졌다. 순간 이성계의 눈이 커졌다.
“이건…….”
“이런 화살이 관아를 무너뜨렸어. 누군가 고의적으로 강순일을 죽이고, 관아도 부순 거지. 정확히는 어사 나리를 노렸던 것 같은데.”
“…….”
만우의 말에 이성계의 얼굴이 굳었다. 강순일이 비명에 가버렸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게 직접 활을 가르칠 정도로 총애했다고 하니 이해가 갔다.
“근데 이거. 노인장이 쏜 거 아니지?”
“뭐라?”
이성계의 성난 눈길이 만우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의심을 받는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하지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살이 날아왔어. 근방에는 없었다는 소리지. 그런데 그 거리에서 화살로 사람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화살 몇 대로 관아를 무너뜨렸다?”
만우가 박달나무 지팡이를 휘휘 흔들었다. 하지만 만우의 시선은 이성계의 얼굴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당장 떠오르는 건 노인장뿐이니까.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쇼.”
“이놈! 감히 상왕전하 앞에서 무슨 망발을 하는 것이냐!”
가별초의 수장이 만우를 보면서 눈을 부라렸다. 일전에 이성계를 호위해 이지란의 묘까지 갔다가 만우에게 기절당한 가별초 중 하나였다. 만우는 절정의 기세가 쿡쿡하고 찌르는 것을 느끼고는 가별초의 수장을 쳐다봤다.
“망발?”
“전하께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아끼는 처조카를 죽일 리가 있느냐!”
가별초의 수장은 기운을 끌어 올렸다. 만우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만우의 망발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하지만 만우는 히죽 웃었다.
“왜? 지금 조선의 임금은 제 형제들을 제 손으로 죽이고 그 자리에 올랐는데.”
“무, 무어라?”
이성계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건 이성계가 벗어나고 싶은 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식들끼리 상잔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할 부모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원을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하면서도 차라리 영원히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을 선택한 이방원이었다. 제 손으로 차마 자신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었다.
“이, 이노오오옴!!!!”
가별초의 수장이 분기탱천하며 만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가별초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이성계를 쳐다봤다.
“흐음. 말이 너무 심했나?”
뒤늦은 후회였지만 만우는 주먹을 허리춤에 붙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이 아래를 향하게 해서 손바닥을 펼치고는 부드럽게 가별초들을 향해 밀었다. 후우웅!!!
“억!”
“으아악!”
절정인 가별초 수장을 제외한 다른 가별초들이 거대한 벽에 부딪친 것처럼 뒤로 나뒹굴었다. 만우가 거대한 기벽을 형성에 밀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