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암행어사 출도요(4)2019.11.12.
“그렇게 귀한 것을 양반나리들이나 한양의 큰 상단에서 이미 다 점 찍어 놓았지. 남아 있을 것 같은가?”
“아니, 언제 사향을 잡아올 줄 알고요.”
“그래서 미리 주문하신 거지.”
“그러지 말고. 못 잡았다고 하고 저한테 파세요. 전 바로 돈을 드리잖아요.”
방매가 마음이 달아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사냥꾼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양반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그만큼 큰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그러지 말고요. 네?”
방매가 사냥꾼들에게 매달렸지만 사냥꾼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저 금덩어리들을 못 산다고? 내 눈앞에서? 안 돼!’
방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을 수 없었다. 저걸 사서 한양에만 가져가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꾼들은 단호했고, 방매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사냥꾼 마을 입구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매에게 설명을 하고 있던 사냥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비명소리?”
“응?”
방매가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오른팔이 없는 혈귀가 검을 쥔 채 악귀처럼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혈제, 금창약 다 내놓아라!”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든 혈귀는 으르렁거리면서 사냥꾼들에게 말했다. 비명을 지른 사냥꾼은 저 검에 베인 모양인지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 개새끼 죽여!!!”
순간 방매의 눈이 커졌다. 그 혈귀에 손에 들린 검에 ‘대명’이라 각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왜상!’
대명이라 각인 된 검은 방매가 길거리에서 만났던 상인이라는 왜인에게서 봤던 것이다. 상왕의 위세를 등에 업고 그의 앞에서 왜상에게 돈을 뜯어냈던 방매였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방매가 호흡을 조절하면서 발목을 풀었다. 자신이 나서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냥꾼들은 짐승을 잡는 이들이었지 사람을 죽이는 이들이 아니었다. 카가가강!!!! 방매는 슌스케가 사냥꾼들이 쏜 화살을 쳐내는 것을 보면서 스윽하고 발소리를 지웠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수박희를 가르친 안국방의 조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일정한 간격으로 땅을 즈려밟으며 슌스케에게 다가갔다.
“죽어야 말을 들을 놈들이구나.”
슌스케의 두 눈이 살광을 품고 번뜩였다. 사냥꾼들은 헛숨을 들이마셨다. 웬만한 범보다도 짙은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잡아 죽이는 살귀란 것을 떠올린 사냥꾼들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화살이 통하지도 않는 상대와 싸우는 것은 그들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끈질기게 준비하고 추격해서 사냥꾼을 잡는 존재지 정면으로 싸우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서걱!! 슌스케의 검이 창대를 잘랐다. 사나운 맹수를 잡을 때 사용하는 목창이었다. 슌스케의 검이 그대로 사냥꾼의 가슴팍을 갈랐다.
“크아악!!”
사냥꾼 하나가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하지만 슌스케는 이를 자근자근 깨물었다.
‘빌어먹을.’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잘린 팔이 오른 팔이기 때문에 왼손으로 검을 잡는 것이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지에 오른 검객이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꿔가면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사흘 동안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 회복시킨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몸이 정상일 리 없었다.
‘몸만 정상이었어도!’
사냥꾼들은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시간에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슌스케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여전했다.
‘빌어먹을 상왕. 그리고 그놈!’
슌스케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하지만 자신은 상대도 안 되는 고수였다. 그러나 슌스케는 만우에 대한 분노를 잠재우지 않았다. 제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칼이 몸에 박히면 죽는다. 그리고 슌스케는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고수들을 다이묘 아래에서 수도 없이 베어낸 경험이 있었다.
‘내가 반드시 죽인다.’
슌스케의 두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사냥꾼들은 연신 뒤로 물러나며 활을 날렸지만 슌스케의 발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전부 죽여 버리겠다!!! 조센징들!!!”
슌스케의 두 눈에서 살광이 쭉하고 뿜어져 나오자 사냥꾼들의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목전까지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슌스케가 놓친 것이 있었다.
“누가 누굴 죽이겠대?”
낭랑한 목소리에 슌스케의 눈이 커졌다. 시커먼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또랑또랑한 여자 목소리였다. 의외의 상황에 놀란 슌스케의 머리 위로 방매가 떨어져 내렸다. 근처의 움막 지붕 위로 올라가있던 방매가 슌스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이…….”
움찔! 슌스케의 눈이 커졌다. 원래라면 검을 휘둘러 베어버렸어야 한다. 하지만 슌스케의 오른팔은 더 이상 제 자리에 붙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방매가 뛰어내린 방향은 슌스케의 빈 오른팔이 있는 곳이었다. 그것을 본 방매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접혔다.
“팔이 없네?”
“이런 개…….”
뻐억!!!! 방매의 무릎이 슌스케의 턱과 목 부분에 틀어박혔다. 방매의 몸은 물찬제비처럼 날랐고, 팔이 없고 몸이 성치 않은 슌스케가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슌스케의 두 눈에 흰자가 드러나더니 푸르륵하고 무너져 내렸다. 방매는 허공에서 몸을 돌려 고양이처럼 땅에 착지한 뒤 슌스케를 향해 달려들었다.
뻐걱!!! 우당탕!!! 동시에 방매의 뒤꿈치가 슌스케의 턱을 올려 찼다. 슌스케의 의식을 완전하게 날려 버리는 마지막 일격이었다. 털썩.
“후우!”
방매가 뻣뻣한 통나무처럼 넘어가는 슌스케를 쳐다보고는 허리춤에서 금창약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슌스케의 검에 당한 사냥꾼의 상처를 보고는 손짓을 했다.
“아저씨! 아저씨! 빨리 와서 저 좀 도와주세요.”
“응, 응? 알았네, 알았어! 자네들은 저 새끼 움직이지 못하게 잘 묶어두시게.”
방매에게 사향에 대해 설명해주던 사냥꾼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갔다. 그러면서도 슌스케를 묶어둘 것을 잊지 않은 사냥꾼이었다.
“여기, 잡아주세요. 약이 있으니까.”
“그 약 비싼 약이 아닌가.”
방매가 자기로 만들어진 금창약 종지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장 앞에 사람이 검에 베였는데 금창약이 아깝다면 너무 비인간적이었다. 다행히 방매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사향을 팔아주시던가요.”
“…….”
사냥꾼은 입을 꾹 다물고 벌어진 동료의 상처를 손으로 눌러 붙였다. 그 위로 방매가 금창약을 바른 뒤 천을 찢어 동여맸다. 그리고 그날. 방매는 더 이상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는 봇짐과 함께 기절한 슌스케를 사냥꾼들과 함께 들쳐메고 함주로 돌아왔다.
“히히힛.”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주체하지 못한 방매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
“처리 완료.”
악궁 테무르가 공력을 거둬들이자 적설청과 연결되어 있던 심령이 끊어졌다. 광호검 기무는 그런 테무르를 쳐다보면서 박수를 쳤다.
“역시 악궁!”
강순일의 머리를 날려 버린 테무르는 기무를 쳐다봤다.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나?”
“그렇지. 그런데…… 힘들다!”
기무가 벌러덩 뒤로 드러누웠다. 테무르는 그런 기무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의 옆에 주저앉았다. 테무르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
기무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원체 자유분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정해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기무는 주창을 존경했다.
“대주가 아니었다면 그냥 그놈의 머리를 베어 버렸을거야.”
테무르는 대단히 과묵했다. 하지만 기무의 말에 테무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조그만 나라의 반역도의 수괴 주제에 우리를 깔아보던 거. 기억해?”
기무의 몸에서 뭉클하고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조사의의 얼굴을 떠올렸다. 투귀대를 맞아들인 조사의는 거만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투귀대를 마치 낭인처럼 깔보듯이 대했다. 그런 조사의의 행동에 모두가 분기탱천했지만 주창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꾹 참았다.
“이 일이 끝나는 순간, 그놈의 머리를 제일 먼저 베어 버릴 거야.”
기무가 사납게 웃었다. 그놈의 팔다리를 자른 뒤 나무 위에 매달아놓으면 볼만할 것이다. 투귀대주이자 마교의 소교주인 주창을 모욕한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그전에. 내 화살이. 놈을 죽인다.”
테무르는 원의 황족이다. 비록 명에 의해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황족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일개 활잡이로밖에 보지 않았던 조사의에게는 테무르도 억하심정이 있었다.
“어서 이 일이 끝나면 좋겠다고.”
“일어나라. 움직인다.”
“알았어. 개미 같은 놈들이 꿈지럭거리는 것이 느껴지네.”
테무르의 재촉에 기무가 몸을 일으켰다. 안변에서 함주까지 밤을 지새우면서 달려오느라 온몸이 무거웠지만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고 주창이 신신당부했다. 이미 어그러진 조사의의 반역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증인인 강순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기에 이곳까지 경공으로 달려와야 했던 둘이다.
“검주, 그 괴물이 정녕 이곳에 있을까?”
주창은 그렇게 말하면서 함주에서는 검주를 조심하라고 주의를 여러 번 줬다.
“없다.”
“네가 없다면 없는 거겠지.”
테무르는 검주가 함주에 없다고 단언했다. 적설청과 심령을 공유한 테무르는 시야의 지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위문 그놈이 묘하게 강해진 게 의주 근방에서 검주를 마주친 이후란 말이야.”
기무는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마음 같아서는 검주와 한번 검을 부딪쳐보고 싶었다. 대주인 주창이 자신이 이기지 못 했을 것이라 했지만 이기지 못한다고 해서 싸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경쟁자인 위문이 묘하게 강해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자.”
기무는 함주에서 말을 탄 가별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는 끙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기다리면 안 되겠지?”
“대주. 빨리 오라고 했다.”
“알았다. 알았어.”
기무는 눈에 차지 않는 가별초들을 보면서 그들을 죽이고 갈까 고민했지만, 테무르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
“암행어사아~ 출도요오흥~”
만우가 콧노래를 부르며 함주 관아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묘하게 입에 암행어사 출도요라는 말이 짝짝 달라붙었다.
“묘한 쾌감이 있네, 이거.”
‘암행어사 출도요’라는 말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만우의 사자후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어붙는 주술 같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향이 아씨 흔적도 발견했고.”
만우는 기분이 꽤 좋았다. 비록 향이 아가씨를 함주에서 발견하지는 못 했지만 그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정보망도 아직 뿌리내리지 않은 하오문의 정보만 가지고 움직이는데 막막한 감이 많았는데, 실제로 이곳에 향이 아가씨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몸종이라.”
기생의 몸종이란 것은 기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사무라이들을 족치고 이성계를 만났던 그 기루에 향이가 몸종으로 있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물론 향이 아가씨가 며칠 전부터 자취를 감췄기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보면 바로 눈앞에서 놓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흔적을 찾은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였다.
“있다는 것만 알면, 찾을 수 있어.”
만우는 어리를 떠올렸다. 향이가 사라지자 사라진 사람이 어리와 광문자란 것 역시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보면 향이는 어리라는 기생과 함께 있을 가능성이 컸다.
‘기생 노릇을 하고 다니는 수장과 살수라. 그것도 꽤나 수준이 높은.’
만우는 광문자의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광문자의 수준은 만우도 순간적으로 기척을 놓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살수였다. 그런데 그런 살수를 호위로 쓰는 어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조선에도 하오문 같은 정보 조직이 있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살객 집단이거나.’
그들에게 물어보면 은월루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은월루일지도 모른다. 김약항 어르신을 죽인 은월루는 딱 봐도 은밀한 일을 대신 해주는 집단이었으니까.
“잡아 족치면 다 불게 되어 있지.”
임금이 정무를 마치고 쉬는 대전인 강녕전까지 들어올 수 있을 정도면, 국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왕에게도 받아낼 것은 있었으니까.’
이방원, 정도전 그리고 은월루.
‘향이 아씨를 찾는다. 그들은 아씨의 처분에 맡기고.’
김약항 어르신은 만우가 그의 복수를 해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처분은 어르신의 손녀인 김향에게 맡기는 것이 맞았다. 그녀가 복수를 원한다면 복수를 할 것이고,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면 죽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건 물어보고 싶었다.
‘왜 죽이려고 하였는가.’
조정의 명으로 명나라에 왔고,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해 평생을 명 황실에서 시키는 대로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그런데 그를 죽여야만 했던 이유는 과연 대체 무엇일까.
‘그럴 자격은 있지.’
그 때문에 만우도 죽을 뻔했었다. 그러니 만우에게도 그런 질문을 던질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는 검주였다. 검의 주인. 그에게 있어 물어보지 못할 질문 따위는 없었다.
“뭐야 이건?”
그런데 그 때 만우의 눈앞에 완전히 폭삭 주저앉은 함주 관아의 전경에 눈에 들어왔다. 그런 만우의 옆에 둔갑술로 몸을 숨기고 있던 호선이 스윽하고 드러났다.
“어떻게 해요. 어서 가서 도와주셔야 해요. 어사 나리가 저 안에 계세요!”
“뭐?”
만우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넌 뭐한 거야?”
“저, 저도 몰랐어요.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서…….”
“화살?”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지금은 동군영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만우는 관아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든 포졸들의 머리를 뛰어넘었다. 당장에 화살하면 생각나는 것이 이성계였다. 이성계라면 화살로 이런 참혹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설마. 자신이 총애하던 조카 손자를 죽였다고?’
만우는 강순일이 재판을 받는 날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굳이 자신이 재판하는 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 기루를 돌아다니며 김향의 행방을 묻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이런 사달이 났다.
“비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