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암행어사 출도요(3)2019.11.09.
“상왕 전하께서는 분명히 그대에게 근신을 명하였다 들었다. 헌데…….”
강순일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설마 그 일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명을 거부하고는 함주 밖으로 나갔다 들었다.”
“그, 그것은…….”
“그리고!”
동군영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만우를 통해 역심을 품은 무리가 함주 근처에 군대를 이끌고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을 듣고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 동군영의 분노가 동군영의 입을 통해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느냐?”
동군영의 두 눈이 가늘게 뜨였다. 동군영의 모습은 마치 판결을 내리는 염라대왕 같았다. 소심한 동군영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을 하였느냐 물었다!!!”
탕!!! 동군영이 탁자를 두드리자 강순일이 흠칫하고 놀랐다. 아무리 안하무인격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이곳은 관아였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기에 강순일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쯧…… 혼자서는 입도 못 여는 머저리 같은 놈이었구나.”
동군영이 그런 강순일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강순일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인해 붉어졌다. 하지만 동군영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네놈의 입을 직접 열어주면 되겠구나. 여봐라!!!”
동군영이 밖을 향해 소리치자 관아의 문이 스윽하고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강순일은 들어온 사람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없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곡산 척가의 척준영, 어사 나리의 부름을 받고 왔나이다.”
“…….”
강순일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변했다. 일시적으로 얼굴의 피가 다른 곳으로 전부 쏠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강현…… 강현 숙부와 싸우던 그…….’
강순일은 척준영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숙부인 강현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는 것은 기억했다. 그것이 누구냐 묻자 옆에 있던 군졸 중 하나가 척가의 무인이라고 했고, 숙부인 강현에게 농락당하는 그를 보면서 척가도 별것 아니구나하고 비웃었던 기억이 또렷했다. 그리고, 강순일은 그 숙부가 신선에 의해 두 발목이 잘려나간 것까지 기억했다. 덜덜덜. 강순일의 손에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현 숙부가 발목이 잘려 넘어지고, 군졸들이 그 신선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하자 강순일은 곧바로 말머리를 돌렸다. 왜상 슌스케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왔는데, 강현 숙부가 웬 하얀 호랑이 등 위에 올라 탄 신선에 의해 발목이 잘리는 것을 보고는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신선이, 그 신선이…….’
커다란 하얀 호랑이 위에 올라탄 채 강현 숙부를 비롯한 군졸들을 베어버리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자세히 고하라!”
“소생은 곡산 척가 소사각의 각주 척준영으로 가문의 명을 받고…….”
척준영은 중한 상처를 입었지만 운신하는 정도는 이제 가능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척준영은 동군영 앞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말했고,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파문제자?”
“예. 그리하여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나이다. 또한 분명 두 발목을 잘렸습니다. 그러니 그자를 추포하여 심문하면 명확해질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동군영이 강순일을 쳐다봤다. 할 말이 있느냐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척준영의 존재 자체가 강순일이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덫이었다.
“…….”
“함주 부사는 들으라!”
“예, 어사!”
함주 부사는 바짝 군기가 든 얼굴로 소리쳤다. 원래라면 동군영의 직급이 그보다 훨씬 낮으나, 동군영은 어사였다. 그리고 어사는 왕과 같은 권력을 가진다. 왕이 내린 교지가 바로 그 권력의 상징이었다.
“강순일을 비롯한 강씨 일가를 모두 추포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라. 역도의 무리로써 한양으로 압송해 의금부에 넘길 것이다.”
“예, 예???”
부사의 눈이 커졌다. 강순일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강씨 일가는 이성계의 처인 현비 강씨의 집안이다. 그 집안을 역도의 무리로 대한다는 것은 현비 강씨, 더 나아가서는 국왕의 계모를 역도라 칭하는 것과 똑같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동군영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퍼억!!! 분명 강순일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데 목 위에 붙어 있어야 할 강순일의 머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방으로 터져나간 뇌수와 피분수뿐이었다.
‘화살?’
동군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강순일의 머리를 산산조각을 내버린 것이 화살이란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런대 대체 얼마나 화살의 힘이 강력한 것인지 강순일의 머리를 부숴놓은 것도 모자라 강순일의 머리를 관통한 화살이 절반이 넘게 바닥을 파고들어 있었다.
“적습이다!!!!!!”
“무슨…….”
우왕좌왕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관아 내의 포졸들이 주춤거렸다. 동군영의 눈이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했다.
‘아무도 없어.’
쉬익!!!! 그 순간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몸을 앞으로 던져 굴렀다. 호선에게 쫓기고, 만우에게 얻어맞으면서 저절로 길러진 반사신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움직임이었다. 스각!!! 동군영의 뺨이 살갗이 쩌억하고 벌어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의 풍압이 뺨의 살갗을 가른 것이다. 갈라진 뺨에서 주륵하고 피가 흘러내렸다. 콰지지직!!!!
“미친…….”
동군영은 땅바닥에 구른 자세 그대로 혼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동군영이 있던 자리를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든 화살이 함주 관아의 기둥을 박살내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분명 화살이었다. 투석이 아니라 화살. 그런데 고작 화살 한 대가 두터운 관아의 기둥을 그대로 부순 것이다. 푸스스!!! 기둥이 부서지자 함주 관아의 가운데가 푹하고 꺼지면서 무너져 내렸다. 기둥이 사라지니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어사 나리!”
그때 척준영이 짓쳐들면서 동군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척준영의 검이 그대로 자신을 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쾅!!!!
“쿠헉!!!!”
우당탕탕 하지만 척준영이 휘두른 지점에서 거대한 굉음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척준영의 손아귀가 찢어지면서 척준영이 누군가 발로 찬 돌멩이처럼 옆으로 날아갔다.
“우웩!!”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척준영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내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날아온 것은 화살이었다. 우당탕탕! 동군영이 얼굴을 굳히고 몸을 날렸다. 동군영의 머리는 공포로 인해 굳었지만 만우의 특훈이 효과를 보고 있었다. 동군영의 몸이 위험신호에 알아서 반응한 것이다. 동군영은 몸을 날려 마루 아래로 굴러들어갔다. 그곳이라면 사방 어디에서건 동군영을 특정하고 화살을 날릴 수가 없었다. 끼아아악!!!! 그리고 잠시 후, 매가 우는 소리와 함께 더 이상 화살이 날아들지 않았다. 동군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한참 뒤에 반쯤 무너진 마루에서 기어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를 뒤집어 써 정상이 아닌 몰골이었다. 엉망이 된 관아의 모습을 본 동군영이 이를 까득하고 갈았다. ***
“우와, 이거. 사향이네요!”
“어이구. 조그만 아가씨가 이것도 볼 줄 아네? 헛헛헛.”
그 무렵 방매는 함주에서 반 시진 떨어진 마을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백두산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이 모여 사는 고을이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향낭(香囊)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 가장 값비싼 것이 바로 사향노루에서 나오는 사향이었다. 사향의 가격은 손톱만 한 말린 사향 덩어리가 은병 열 개나 된다. 하지만 채취할 수 있는 양이 극히 적기 때문에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되고, 그 수량 또한 극히 적었다.
“이거 직접 잡으신 거예요?”
방매는 이 마을에서 나흘을 기다린 끝에 사향을 잡아 돌아오는 사냥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냥꾼들은 조그만 여자애가 뽈뽈거리면서 이것저것 궁금해하는 것을 꽤나 귀여워했다.
“그렇지. 이놈들은 천지 근처에 사는 놈들이라 잡기가 특히 힘들어. 이걸 잡으면 이 마을에서 사냥꾼으로 어깨를 피고 다닐 수 있지.”
사냥꾼들에게 최고의 사냥꾼은 범(犯), 호랑이다. 하지만 호랑이를 제외하고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사냥감을 꼽는다면 사향노루도 그중 하나였다. 대신 사는 곳이 고지대이기 때문에 조선에는 백두산에만 가야 볼 수 있었고, 고지대에서 살기 때문에 매우 날래 잡기가 매우 힘들었다.
“우와…….”
방매의 눈이 반짝거렸다. 한양에서는 손바닥만 한 자기 안에 든 사향액이 은 다섯 냥, 그러니까 은병 반 개다.
“한양에서는 요만한 종지에 담은 사향액이 있던데. 요만한 걸로는 얼마나 만들어요?”
방매는 냄새가 고약한 사향 덩어리를 가리키면서 사냥꾼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리기만 한 사향 덩어리는 냄새가 고약하다. 이걸 잘 풀어서 물에 넣으면 기생들이 환장하는 사향액이 된다. 그 사향액을 바르면 남자가 절로 꼬이기 때문에 조선팔도의 유명한 기생들은 전부 사향액을 사기 위해 비싼 돈을 낸다.
“음……. 아마 이거면 한 오백 병은 나올게다.”
“오, 오백 병이요?”
손톱만 한 덩어리가 은병 열 개다. 은 백 냥이다. 지금 방매의 눈앞에 놓인 사향의 크기는 손톱만 한 덩어리보다 족히 다섯 배는 커보였다. 이걸로 오백 병을 만들 수 있다면 은 이백 오십 냥, 은병 스물다섯 개다. 가격이 두 배 반이나 뛴다. 엄청나게 희석시킨다는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것이 바로 사향액이다.
‘이건 기회야. 사향의 함유량을 높이면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방매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사냥꾼이 말한 오백 병은 기생들이나 쓰는 은 닷 냥짜리다. 당연히 사향의 함유량이 높아지면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한양 김 대감 댁에서 사향액을…….’
방매는 양반가의 마님들 중 사향액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한양은 사향액 품귀 상태였다. 소비되는 물량을 공급이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향이 조금 더 진했는데 그게 한 병에 오십 냥이었어.’
아마 사향원액이 조금 더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 사향액이 오십 냥이었다. 기생들에게 팔리는 것보다 열 배나 더 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부족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비싼 거면……. 호호호.’
방매는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그리고는 사냥꾼에게 자신이 늘 품고 다니던 봇짐을 펼쳐놓았다.
“이거, 다 저한테 파세요.”
“이, 이게 다…….”
방매의 봇짐에서 굴러 나온 은병은 족히 100개도 넘어보였다. 그 정도라면 이곳의 사향을 다 사다 못해 사냥꾼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사냥꾼들이 크게 당황했다. 재물도 어느 정도여야 현실감이 있어 욕심이 생기지, 은병 100개를 눈앞에서 보면 현실감이 없고 덜컥 겁이 난다. 한 번도 저 정도의 재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평생을 살아가도 은병 하나도 못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은의 경우에는 조선에서도 귀했기 때문에 양반들이 거래할 때나 조공품으로 명에 보내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방매는 환하게 웃었다.
‘이곳에 있는 사향 덩어리면…….’
바로 얼마 전에 사냥길에서 돌아온 사냥꾼들이기에 사향이 많았다. 엄지손톱만 한 것이 은병 두 개 가격인데 지금 눈앞에는 그런 덩어리가 수십 개나 있었다. 하지만 사냥꾼은 눈 앞에 번쩍이는 은병을 다시 보자기로 확 덮었다. 그리고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안 되는 소리 말아. 이걸 팔면 우리는 경을 치네.”
“에? 왜요?”
방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사냥꾼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