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암행어사 출도요(2)2019.11.05.
“그나저나 방매 얘는 어디 있어.”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매의 얼굴을 도통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봉놋방에 들릴 때마다 짐이 풀어져 있거나 그랬기 때문에 방매가 오가는 것은 확실했다.
“저기 털어버리고 값나가는 거 챙기는 데에는 그 애만큼 유능한 애가 없는데.”
돈이 생기는 곳에 방매가 빠질 리 없다. 어느새 만우는 자신도 모르게 돈냄새가 나는 곳에서는 방매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가. 같이 좀 다니지.”
묘하게 아쉬움까지 느낀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덜덜 떠는 동군영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웅!!! 그리고는 공력을 끌어 올려 극히 미량의 공력을 동군영의 몸으로 흘려보냈다. 단련이 되지 않은 동군영의 몸은 많은 공력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간 공력은 동군영의 떨림을 가라앉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것이다. 든든하게 사람의 몸에 힘이 차오르게 만드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후우우…….”
동군영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오면서 떨림이 조금 줄어들었다. 공력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준비됐지?”
“무, 무슨 준비? 원래라면 만우 자네가 나보다 먼저…….”
“에이. 그러면 이렇게 긴장할 필요도 없잖아?”
만우는 무슨 소리냐는 듯 씨익 웃었다. 하지만 원래라면 만우가 먼저 뛰어 들어가는 것이 맞았다. 어사를 위해 혹시라도 모를 위험한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어사는 역참에서 늘 역졸들을 징발한다. 하지만 만우는 그런 역졸들 역할을 자신이 대신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만우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동군영에게 굉장히 불길해 보였다.
“그럼…… 간다.”
만우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숨을 흡하고 들이마셨다. 동시에 공력을 끌어올린 만우의 입에서 뇌성벽력이 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거대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암행어사, 출도(出道)요!!!!!”
스악!! 만우의 박달나무 지팡이가 허공을 갈랐다. 만우는 굳이 검을 뽑아들지 않았다. 굉음이 크게 나면서 동군영을 안심시켜 줘야 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콰자자자작!!!!
박달나무 지팡이의 끝이 기루의 대문에 틀어박혔다. 기루의 대문은 두터운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그 때문에 장정이 온 힘을 다해서 밀어야만 밀릴 정도였다. 그에 비해 박달나무 지팡이는 너무나도 여리고 얇아 보였지만, 지팡이가 작렬한 기루의 대문에 거미줄 같은 파열이 일어나더니 이내 문 전체가 펑하고 터져나갔다. 쿠지직, 쿠직. 쿠르릉! 그건 마치 장마 내 쌓아놓았던 둑이 터지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동군영은 멍한 눈으로 박달나무 지팡이의 끝에 찍힌 두터운 문이 거미줄처럼 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비산하는 모습을 쳐다봤다.
‘괴물…….’
새삼스레 만우가 괴물처럼 보였다. 꽈악 하지만 동시에 동군영의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만우가 곁에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든 것이다. 우르르르! 그것도 모잘라 대문 옆의 담장이 쿠르릉하고 무너져 내렸다. 실로 전율이 일 수밖에 없는 파괴력이었다. 그것을 본 동군영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만우가 있는 이상 자신이 위험해질 일이 없다는 것이 확신처럼 변했다. 동군영은 밝아진 얼굴로 만우를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역시 만우 자네는…… 으아아악!!”
퍼억! 하지만 동군영은 비명을 내지르며 산산조각이 난 대문 너머로 사라졌다. 어느새 돌아온 만우가 동군영의 엉덩이를 걷어 차 앞으로 날려 보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실전이야 어사 나리!”
“……악마…….”
왠지 신이 난 듯한 만우의 목소리에 호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으아아악!!! 나는 어사다! 어사!!!”
차차자장!!! 만우는 동군영이 넘어간 기루 안에서 울려 퍼지는 병장기의 충돌음에 씨익하고 웃었다.
“저래야 늘지. 실력이.”
‘실전이 최고!’를 외친 만우가 휘파람을 불며 기루의 대문을 넘었다. ***
“흐음…….”
만우는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손을 까닥하고 흔들자 눈을 내리깔고 있던 기생이 찍소리도 못하고 옆으로 물러섰다.
“이게 다야?”
“무……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기녀들을 관리하는 창모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몸종들을 확인한 후에 혹시 몰라 기생들까지 전부 점검한 만우였다.
“없는데.”
함주에는 기루가 두 곳이 있었다. 그중 한 곳은 만우가 이성계를 만난 곳이고 지금 이곳은 왜구들이 왜상으로 위장해 머물던 곳이었다. 그곳에 들어온 만우가 창모를 불러 기생들을 모두 불러모은 이유는 단 하나 때문이었다.
“김향이란 이름의 몸종이나 기녀. 정말 몰라?”
“모…… 모릅니다요. 들어본 적이 없어요.”
바로 김약항의 손녀인 김향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국왕의 제안까지 받아들이며 함주에 온 것이었는데, 김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에이씨. 없다고? 누굴 족쳐야 되는 거야. 그러면.”
족쳐야 된다는 소리에 창모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른 기생들도 만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만우는 그냥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명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어 신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기루 안에서 왜구들을 상대하는 만우를 모두가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동군영은 홀로 오십이나 되는 왜구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우가 그렇게 강제로 등을 떠민 이유는 그래야 실력이 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자신과 호선이 있으니 동군영이 절대로 죽을 리도 없었고 말이다. 그리고 실전을 많이 겪어야만 몸에 체득이 된다. 특히 동군영 같은 경우에는 몸을 쓰는 데는 재능이 꽝이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실력을 키울 수가 없었다. 백날을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둘러 봤자 머리가 그쪽으로는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말도 안 하냐. 쪼잔하게. 양반이.’
하지만 그 때문에 동군영은 만우에게 단단히 삐쳐서는 지금까지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호선과 함께 강씨 집안을 털고 있을 것이다. 그다음은 관청이었다. 관청은 죄가 없지 않느냐고? 있었다. 본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직무에 태만하여 강씨 집안이 그렇게 나대는 것을 방관한 것이 바로 그들의 죄였다.
“기둥서방들 싹 다 모아. 그 놈들은 알 거 아냐.”
만우는 인상을 썼다. 기생들을 총괄하는 창모가 모르면 기둥서방들 중에는 아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놈들은 여자 냄새를 맡는 데는 귀신이어서, 한 번 본 여자는 잊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창모. 왜 우리를 전…….”
기생들은 여자기 때문에 그나마 대우를 해줬지만 기둥서방들은 아니었다. 만우는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만우의 손에 요절이 난 왜구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다. 까닥. 끼익, 쿵!!! 만우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기둥서방들이 들어온 문이 덜컥하고 닫혔다. 그러자 기둥서방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기루에서 난리가 났다는 것은 들었지만 암행어사가 나타나 모두 처리했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사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신을 마주한 기둥서방들에게 만우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발랄하게 물었다.
“김향이라는 여아를 알고 있는 놈?”
*** 암행어사가 함주에 떴다!! 동군영은 지친 얼굴로 함주 관아에 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까슬까슬한 손바닥이 얼굴을 마구 부비자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저자의 노포들로부터 52냥 부당 수령. 하옥시켜라.”
“예, 나리!”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동군영의 눈만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그의 한 마디에 점점 관청의 감옥이 붐비고 있었지만 그만큼 다른 백성들은 살기가 좋아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산처럼 쌓인 종이에는 불과 하루만에 체포된 백여 명의 죄인들에 대한 죄목이 적혀 있었다. 그 죄목도 아주 다양했다. 아주 작게는 도둑질부터 시작해 크게는 횡령, 살인까지. 상왕이 기거하는 상주에서 벌어졌다기에는 믿을 수 없는 흉악한 범죄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만우의 말이 맞았어.’
동군영은 심각한 죄목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만우가 맞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우가 기루의 매화방에서 상왕에게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왕의 존재는 이 함주에 있어서 민폐였다. 그의 그늘 아래서, 상왕에게 호가호위한 이들이 함주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에는 가별초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모두를 검거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별초의 도움이 컸다. 분노한 이성계는 동군영에게 엄하게 말했다.
[가별초라고 하여 용서치 말라. 이 기회에 삭초제근을 할 것이다.]
왜상으로 위장한 왜구들이 함주에서 패악을 부리고 있음에도 이성계는 누군가 자신의 눈과 귀를 막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강순일을 비롯한 자신이 총애하는 강씨 일가의 만행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에 가별초들까지 동조했다는 것을 알자 극도로 분노해 그렇게 명을 내린 것이다.
“가별초 3인. 강순일을 도와 아녀자 핍박. 태형 30대.”
“예!”
“…….”
가별초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포졸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 그 후로도 거의 스무 건이 넘는 판결을 내리고서야 동군영은 그날 할 일의 끝을 볼 수 있었다.
“강순일.”
동군영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가장 커다란 물고기가 마지막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순일은 관아의 이곳저곳을 쳐다보면서 눈을 굴리고 있었다. 살아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것이다.
“죄인은 고개를 들어 본 어사를 보라.”
동군영은 강순일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강순일이 고개를 들어 동군영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번개를 맞은 것처럼 그대로 굳었다.
“그대의 죄목은 본 어사가 낱낱이 읊지 않아도 본인이 잘 알 터.”
강순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군영을 알아본 것이다. 자신이 핍박한 저자의 거지 양반이 어사였다니.
“모함이오!!!”
강순일이 동군영을 향해 소리쳤다. 동군영은 그런 강순일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모함이라?”
“그렇소! 길거리에서 그리 한 것은 그 주막의 주인이 나에게서 돈을 빌려간 후 갚지 않아서였소. 분명 주막에 손님을 받아 돈을 벌고 있었는데도 말이오!”
강순일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직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남아 있었다. 포졸들에 의해 끌려왔을 뿐, 어떤 죄목에 의해 이곳으로 압송이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사로운 금전 문제로 인해 벌어진 일에, 어사께서 나서신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오!”
동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순일의 얼굴이 밝아졌다.
“또한 나의 조부되시는 분은 상왕전하시오! 나를 친손자처럼 어여삐 여겨 주시니, 이 일을 그 분께서 알게 되시면 아무리 어사 나리라 해도 곤욕을 피하지 못할 것이외다!”
강순일이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쩍쩍거리며 볼기짝이 터져나가는 것을 보니 여기서 일단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던데?”
“무, 무엇이 말이오?”
동군영의 눈 아래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 동안 하루에 한 시진 정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 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군영의 판결은 정확하고 공정했다. 또한 그 속도가 매우 빨라 다른 이였다면 족히 달포는 끌어야 할 재판을 불과 사흘 만에 끝냈다. 동군영의 능력을 가늠케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기간 내내 동군영은 한 번도 관아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함주 관아의 주인인 함주 부사도 그런 동군영의 곁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 때문에 그는 거의 반주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