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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 한양 환도의 조건(1) (80/400)

080. 한양 환도의 조건(1)2019.10.05.

16553207034195.jpg“어쨌든, 어사 그대가 한 가지만 해결해 준다면 내 환도를 한번 고려해 보지.”

만우는 이성계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동군영이 도끼눈을 떴기 때문에 그냥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16553207034202.png“알아서 해라. 알아서.”

16553207034206.png“전하. 하명하시옵소서.”

만우가 지는 시늉을 하면서 양손을 들어올리자 동군영이 이성계에게 읍했다.

16553207034195.jpg“왜상(倭商). 저기 저 여아가 저잣거리에서 조우한 왜상 놈들을 기억할 터.”

이성계가 만우를 쳐다봤다. 그때는 만우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해 그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수고를 한 셈이다.

16553207034195.jpg“지금 생각하니 고얀고로.”

이성계가 웃으며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전히 동군영의 눈에는 한없이 불손한 태도였다.

16553207034202.png“상왕. 아니, 왕도 아닌데 상왕이니 뭐니 허례허식은 무슨.”

만우는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상왕이라고 자꾸만 부르니 왕의 아버지인지 상인들의 왕인지 괜히 입에 들러붙지 않았다.

16553207034202.png“할아범. 노인장. 둘 중에 하나 고르도록. 경어는 바라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은 지금의 국왕에게도 경어를 쓰지 않았던 만우다. 그런 만우가 국왕의 아비라고 해서 눈 하나 깜박할 리 없었다. 이성계는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동군영은 경악했다. 동군영이 다시 난리를 치려던 찰나 이성계가 말했다.

16553207034195.jpg“할아범은 너무 격의가 없고. 노인장이 날 것 같군.”

16553207034202.png“좋아. 그럼 노인장. 그 왜상은 왜?”

16553207034195.jpg“자네도 알아챘을 터인데.”

16553207034202.png“뭐. 그 왜상이란 놈이 경지에 오른 검객이라는 거?”

16553207034195.jpg“역시.”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계의 이야기를 들은 동군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16553207034206.png“왜상으로 위장한 왜구란 말씀이십니까?”

16553207034195.jpg“내가 젊었을 적 많은 왜구와 싸운 것은 알고 있을 터.”

이성계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16553207034195.jpg“그들과 낯짝 한 번 부딪쳐 본 적이 없는 도성의 앉은뱅이들은 왜구라 하며 무시하나.”

이성계의 두 눈이 서늘함을 담고 번뜩였다.

16553207034195.jpg“그놈들이 고작 노략질만 일삼는 도적들이라면 이 이성계가 놈들을 상대로 그리 고군분투를 했으리라 보는가?”

16553207034206.png“…….”

동군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 참화를 겪어보지 않은 세대였다. 또한 동북면은 한양으로부터 한참 멀리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 들어봤을 뿐, 직접 겪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6553207034195.jpg“수십, 수백의 가별초들이 죽어나갔다. 그보다 배는 더 많은 군졸들이 죽었고 그만큼 많은 백성들이 죽었다. 도성의 앉은뱅이들이 오랑캐라면서 무시하고 있을 때 말이다.”

이성계는 피식 웃었다.

16553207034195.jpg“한참 어린 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웃길 터. 세월은 흘렀고 시대는 바뀌었으니까. 그들은 오랑캐가 맞다. 허나 그들을 마냥 무시하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다.”

16553207034206.png“예, 예 상왕전하.”

동군영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성계는 자신이 괜히 흥분했다는 생각에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07034202.png“내가 늙은이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이상한 거에 꽁하더라고.”

만우가 이죽거렸다. 이성계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통 이뻐할 수가 없는 놈이었다.

16553207034202.png“어쨌든. 그놈이 뭐.”

16553207034195.jpg“이상하지. 이 함주까지 왜상이 들어왔다는 게.”

16553207034202.png“그럴 수도 있지. 상인이란 놈들이 검을 배우지 말란 법도 없고. 특히나 왜놈들은 검을 잘 쓸수록 높은 계급이니까 말이야.”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07034195.jpg“그렇다고 그 정도의 검객이 고작 왜상의 행수다?”

16553207034202.png“음…… 그런가?”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성계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만우의 눈에는 그냥 그저 그런 놈들이었지만 확실히 그 왜상이란 놈은 그저 그런 놈들 중에서는 발군이었다. 대행수나 상단의 주인이라면 모를까, 일개 행수라고 보기에는 실력이 지나치게 뛰어났다.

16553207034195.jpg“손에 잡힌 굳은살이나 검지와 엄지 사이의 상흔을 봤을 때 극쾌의 발검술을 익힌 놈인 것 같더군. 아지발도 그놈의 냄새가 났다.”

이성계는 자신과 수도 없이 부딪쳤던 아지발도를 떠올렸다. 아지발도란 놈은 동북면을 끝도 없이 괴롭힌 왜구였지만 동시에 강한 검객이기도 했다. 이성계가 용병술로 아지발도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이성계라고 해도 활로 쏘아죽이기는 어려운 실력자였다. 그 아지발도의 장기가 발검술이었다. 날아오는 이성계의 화살을 반으로 가를 정도의 쾌검이었는데, 그 아지발도의 손이 왜상이라 한 그 놈과 비슷했다.

16553207034195.jpg“가별초를 시켜 알아보니 달포 전부터 있었다고 하더군. 꽤나 돈을 많이 푸는 덕분에 근처의 상인들이 좋아하는 모양이야.”

16553207034202.png“달포?”

만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16553207034195.jpg“이상하지?”

16553207034202.png“이상하군.”

동군영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그가 상단의 생리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16553207034202.png“함주는 상단이 한 달이나 머무르면서 거래할 만큼 시전의 규모가 크지 않지.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포나 있었다?”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아-하고 이해했다는 표정을 했다.

16553207034202.png“그래서. 그 왜상의 정체를 알아다 주면 되는 것인가?”

16553207034195.jpg“그 연유까지도.”

16553207034202.png“간단하네.”

만우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성계는 그런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07034195.jpg“설마 그냥 쳐들어갈 셈인가?”

16553207034202.png“간단한 일이니까.”

이성계는 혀를 내둘렀다. 무식하기가 멧돼지 같은 놈이었다. 이성계는 고개를 단호하게 가로저었다.

16553207034195.jpg“나라고 그걸 생각하지 못 한 것 같은가?”

16553207034202.png“흠.”

이성계가 거느린 가별초는 상당한 수준의 정예다. 거기에 활이란 무기 때문에 만우가 이성계의 실력을 정확하게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 왜상은 절대로 이성계와 가별초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16553207034202.png“왜지?”

16553207034195.jpg“수상한 왜상이라고는 하나 안변부사의 직인이 찍힌 통행증을 가지고 있더군.”

16553207034202.png“안변부사?”

16553207034195.jpg“사별한 내 안사람의 친척이지.”

16553207034202.png“동래가 아니라 안변을 통해서 들어왔다?”

만우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성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07034195.jpg“그러네.”

16553207034202.png“그러니까, 정식 직인이 찍힌 통행증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니 함부로 족쳐서는 안 된다?”

16553207034195.jpg“그렇고말고.”

16553207034202.png“끄응…… 어째 일이 커지는 기분이네.”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만우가 대답하기 전에 동군영이 크게 소리쳤다.

16553207034206.png“신 춘추관 기사관 동군영, 상왕전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16553207034202.png“이봐. 어사 나리.”

만우가 동군영을 불렀지만 동군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성계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빙긋 웃어보였다.

16553207034195.jpg“어쩔 셈인가?”

16553207034202.png“……젠장.”

외통수에 걸린 만우가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이성계는 만우의 그런 표정이 마음에 든 것인지 껄껄거리며 웃었다.

16553207034202.png“웃지마 노인장.”

16553207034195.jpg“크하하핫.”

  ***

16553207034195.jpg“아씨. 너무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광문자가 어리에게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리가 귀를 틀어막았다.

16553207184923.png“이그. 애 놀라게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아니나 다를까 향이가 놀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었다. 광문자가 헛기침을 했다.

16553207034195.jpg“그, 그게 아니라.”

16553207184923.png“검주와 상왕전하께서 만났네요. 왜일까요?”

광문자가 할 말을 잃은 사이 어리가 향이를 품에 안은 채로 화제를 돌렸다. 광문자의 표정이 단박에 진중해졌다.

16553207034195.jpg“사람을 풀겠습니다.”

16553207184923.png“그래주세요. 상왕전하의 기세로 보아하니 검주와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아 보였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요.”

16553207034195.jpg“예.”

16553207184923.png“흐음…… 그 사무라이들은, 왜상으로 위장한 그들이겠죠?”

16553207034195.jpg“예. 추살하여 복면을 벗겨보니 왜상의 쟁자수 중 하나였습니다.”

쟁자수는 일꾼이자 짐꾼으로 상단에 속한 가장 말단이다. 은월루주인 어리는 그들이 왜상으로 위장한 사무라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16553207184923.png“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네요?”

16553207034195.jpg“안변 쪽에서 마지막 행적을 확인하였습니다. 허나 그 이전의 행적은…….”

16553207184923.png“안변이라. 왜에서 굳이 안변까지 바다를 거쳐 왔다?”

대부분 왜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통로는 동래였다. 그런데 안변을 통해서 굳이 먼 길을 돌아왔다는 것은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보였다.

16553207184923.png“안변부사가 조사의죠?”

16553207034195.jpg“예, 아씨.”

16553207184923.png“조사의면…… 주상전하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자겠군요.”

16553207034195.jpg“아무래도…….”

16553207184923.png“안변에 나가 있는 아이들한테서는 별 정보가 없었나요?”

향이가 어리와 광문자가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듣고 있음에도 그 둘은 개의치 않았다. 향이는 노비 출신의 몸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6553207244249.png“저…….”

16553207244253.png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향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어리가 향이를 쳐다봤다. 지금까지 향이가 먼저 입을 연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16553207184923.png“왜 그러니?”

다른 기생 같았으면 몸종이 이렇게 끼어들면 사달이 나기 마련이다. 자신보다 거의 유일하게 낮은 몸종이기 때문에 몸종을 막 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6553207244249.png“뒤, 뒷간에 갔다가 누가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향이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나 치도곤을 치르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리는 향이가 함주로 노비가 되어 온 후 처음으로 잘해준 사람이었다.

16553207184923.png“뒷간?”

어리가 광문자를 쳐다봤다. 광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떳떳하게 양지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냄새 나는 그곳에서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16553207244249.png“왜어(倭語)로 막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나오는 것을 보니 이곳에 자주 오는 키만 한 검을 찬 사람과…… 조선 사람이었어요.”

16553207184923.png“조선 사람? 그건 어찌 알았니?”

긴 왜검을 찼다면 사무라이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은 증거가 없었다.

16553207244249.png“옆방의 매월 아씨의 몸종인 말숙이가 그 나리한테 실수를 했다가 호되게 당했거든요. 분명히 조선말로 말했어요.”

16553207184923.png“조선말…… 아저씨?”

16553207034195.jpg“예, 아씨. 곧바로 사람을 풀어 조사하겠습니다.”

광문자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향이는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어리는 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16553207184923.png“그걸 왜 내게 말해주는 거니?”

16553207244249.png“음…… 죄송해요. 주제가 넘었다면…….”

어리의 눈이 이채를 띄고 빛났다. 향이는 그냥 노비 출신의 몸종이라고 하기에는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제법 깊이가 있었다.

16553207184923.png“아니. 궁금해서 그런단다.”

16553207244249.png“……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아씨는 제게 처음으로 잘해주신 분이거든요.”

향이의 말에 어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열다섯이지만 처음 봤을 때는 열한두 살 정도 되는 줄 착각했을 정도로 작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토록 눈치를 본다는 것에, 어리는 이것이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가슴이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16553207184923.png‘나쁘지 않은 재목이야. 우리가 하는 말만 듣고 맥락을 짚었어. 거기에 관찰력도 수준급이고.’

어리는 향이를 눈여겨봤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을 하고는 향이에게 말했다.

16553207184923.png“향아.”

16553207244249.png“예, 아씨.”

16553207184923.png“이 언니와 함께 가지 않으련?”

향이의 두 눈이 커졌다. ***

16553207034195.jpg“돌아오지 않았다?”

16553207034195.jpg“예.”

슌스케는 아침이 밝자마자 방매를 데리러 간 이들의 행방을 찾았지만 아무런 소식도 얻을 수가 없었다.

16553207034195.jpg“아무런 소란도 없었다?”

16553207034195.jpg“저자의 기루에서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고는 하나…….”

16553207034195.jpg“하나.”

슌스케의 목소리가 서늘해지자 사무라이가 재빨리 말했다. 분노한 슌스케는 재앙 그 자체였다. 사무라이는 자신이 그 방파제가 되고 싶지 않았다.

16553207034195.jpg“이성계가 그곳에 방문하여 일어난 소란인 듯합니다.”

16553207034195.jpg“이성계…….”

슌스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성계와 만나 치욕을 당한 것이 떠오른 것이다. 대명의 검인 자신이 고작해야 뒷방 늙은이 앞에 그토록 기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이 비록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라고 해도 말이다.

16553207034195.jpg“그 계집은?”

16553207034195.jpg“그 기루에…….”

16553207034195.jpg“칙쇼!!!”

슌스케가 이를 까드득 깨물었다. 결국 이성계에 의해 일월조의 무사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었다.

16553207034195.jpg“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이 머저리 같은 놈!”

슌스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으드득 갈았다. 사무라이가 놀란 표정을 하고 슌스케를 쳐다봤다.

16553207034195.jpg“이성계는 우리를 의심할 것이다. 그러니 본궁으로 가야겠다. 서둘러라!”

슌스케는 이성계가 자신의 부하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성계는 젊은 시절을 왜구와 싸우면서 평생을 보냈던 사람이다. 그런 경륜을 가진 이에게는 복면 따위를 뒤집어쓴다고 해서 정체를 숨길 수 없다. 그러니 의심의 눈길이 자신들에게로 향하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했다.

16553207034195.jpg“그냥 전부 죽여 버리면 편한 일이거늘. 아직은 때가 아니니…….”

슌스케가 살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얼음덩어리가 서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무라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며 힘차게 소리쳤다.

16553207034195.jpg“하이!!!! 오야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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