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어리와 향이(2)2019.09.07.
“한양이나 의주의 기루도 관아 소속인가?”
만우의 말에 동군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가로저었다.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동군영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이런 것까지 설명해 줘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모든 기생은 관아 소속이네.”
“뭐?”
동군영의 말에 만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밀히 말하면 원래 기녀들이 경국대전에 의하면 관아 소속이어야 하지. 하지만 어디 법이 지키라고 있는 것인가?”
동군영의 말은 냉소적이었다.
“그렇지. 법은 이용하고 피해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힘이 없으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산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 있다면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법을 미꾸라지처럼 피한다.
“백성은 많고 그중에 가난한 백성은 더 많지. 반면에 양반들은 돈이 많고. 그런데 내가 노래가 제법 되고 얼굴도 예뻐.”
“……그렇게 웃음과 술을 판다는 것인가?”
“그렇네. 그게 바로 차이지. 관아 소속의 기녀들은 노비 신분이나, 기루에 있는 기녀들은 팔려왔건 제 발로 왔건 노비는 아니지. 단시 웃음과 술을 팔 뿐.”
“흠……..”
“하지만 그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이니 어쩌겠는가.”
“관아 소속의 노비라면서.”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동군영의 말은 복잡했다. 관아 소속 기녀가 있고 기루 소속 기녀가 있는데, 이제는 그 구분이 사라졌단다.
“기녀들은 돈이 되네. 평양을 보시게. 평양에 유명한 기녀가 있다고 하면 양반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저기 강릉에 기녀가 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지.”
“…….”
“그러니 관아에서도 기녀들을 관아에만 둘 필요가 없지. 그 기녀들을 기루에 임대해 주고, 돈을 나눠먹는 것일세.”
“허어…….”
만우는 입을 떡 벌렸다. 얄궂은 인생들이었다. 노비가 된 것도 모자라 강제로 웃음과 술을 팔아야 되고, 그 돈은 기루의 주인과 관아의 주인이 나눠먹는 것이다.
“그것과 관아를 터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거지?”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씩 웃었다. 그는 물에 몸을 담그면서도 뗴어놓지 않은 것인지 마패를 들어보였다.
“이걸 이용하면 간단하지 않겠나?”
“……결국은 날 끌어들이는군.”
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사는 국왕의 권한을 모두 위임 받은 일종의 절대적인 명령권자다. 그렇기 때문에 어사가 파견된 지역에서 자행되는 모든 관습이라는 이름의 불법들을 발본색원하고 징치할 의무가 있었다.
“주상전하 대신 여인들의 눈물로 이뤄진 금자탑(金字塔)도 무너뜨리고, 자네가 찾는 여종도 찾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핫.”
그러니까 한 마디로 관아 소속의 기녀들을 빼내 뒷돈을 챙기고 있는 이들을 족치자는 소리였다.
“본궁에 가는 것도 그 이후에나 가겠군.”
“그렇지.”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쩜 이렇게 엮는 실력이 좋은지, 싫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동군영의 조언을 구한 것이 바로 만우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푸드득!!
“허어. 밤인데 무슨 새가 저렇게 날아다니누.”
동군영이 푸드덕하면서 밤하늘을 가르는 새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동군영과 함께 그 새를 본 만우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밤중에 전서구라니. 어지간히도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네.”
“저, 전서구(傳書鳩)?”
동군영이 첨벙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전서구.”
“그, 그게 보이는가? 이 밤에?”
동군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동군영은 고개를 털고는 만우에게 말했다.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정말 전서구라고?”
“맞아. 전서구. 다리에 쪽지 매달고 날아가는 매면 전서구지. 흠. 중원에서는 주로 비둘기를 사용하는데 말이야. 해동청(海東靑)이라고 하더니…….”
만우의 쓸데없는 감상에 동군영이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선에서 전서구는 군에서 밖에 사용하지 않네. 그것도 중요한 일에만 쓰고.”
조선의 매는 해동청이라 불리며 중원에서도 최고로 친다. 그 때문에 원에 이어 명에서도 조선의 담비가죽과 인삼, 그리고 해동청을 최고의 조공품으로 쳤다.
“군?”
동군영의 말에 만우의 눈이 커졌다.
***
“게서 뭘하고 있는 것이냐?”
“할아버님.”
전서구를 띄워보내고 그 전서구가 사라지는 방향을 쳐다보던 강순일이 화들짝 놀라 뒤를 쳐다봤다. 언제 나타났는지 상왕, 이성계가 뒷짐을 진 채 서있었기 때문이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이냐?”
강순일은 다행히 이성계가 전서구를 보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성계는 인자한 얼굴로 강순일에게 말했다.
“예. 잠이 오지 않아 소자 밤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차다. 그러다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쩌려누.”
이성계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손자를 보며 웃어 보였다. 강순일도 그런 이성계를 향해 순하게 웃어 보였다. 낮에 저잣거리에서 벌였던 그 악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더불어 이성계 앞에서만 보이는 가식적인 웃음이기도 했다.
‘그놈.’
순간 강순일의 머릿 속에 동군영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저잣거리에서 자신에게 망신을 준 놈이었다.
“할아버님. 소자 여쭐 게 있습니다.”
“그래?”
이성계의 어깨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연로한 나이임에도 활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이성계였다. 때문에 이성계는 웬만한 청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건장함을 여전히 자랑했다.
“소자 오늘 저잣거리에서 한 검객을 만났습니다.”
“검객?”
검객이란 소리에 이성계가 강순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었다. 강순일이 다치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다행히 가별초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요즘 국경지대가 소란스럽다고 하더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이구나.”
이성계라고 해서 저잣거리에서 강순일의 소문을 듣지 못했을리 없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이성계는 저잣거리의 소문보다 자신의 눈을 더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성계의 눈에 강순일은 착하고 성실하며 어른을 모실 줄 아는 기특한 손자였다. 거기에 궁술 또한 자신의 어릴 적이 생각나게 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헌데 그자와 가볍게 겨뤄보았는데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상한 경험이라?”
이성계는 그렇게 말하면서 약하게 떨리는 강순일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패했구나.”
“……소자. 활을 제대로 쐈다 생각했지만 단 한 번도 그자를 곤란하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곤란하게 만들지 못했다?”
이성계는 조선의 개국왕이기 이전의 무인이다. 그것도 궁술에 있어서는 중국의 후예와도 견줄 수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궁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계의 눈이 반짝였다.
“흡사 소자의 활이 날아올 곳을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이성계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내 이성계는 고개를 갸웃했다.
“헌데 가별초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예. 다행히 과하게 손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이성계는 그때 눈치챘다. 강순일이 자신에게 전부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어린 치기에 그럴 수도 있다면서 더 캐묻지는 않았다.
‘순일이의 궁술이 원숙치 않다고는 하나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이성계는 강순일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강순일이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어줍잖은 수준의 검객이 막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화살이 어디로 날아올 줄 아는 것 같았다?’
화살이 날아오는 궤적을 예측하는 것은 안력을 키운 검객이라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궁체란 것도 화살이 날아나는 방향을 제어하기 위한 몸가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것을 눈치챈다는 것은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 적어도 활을 다루는 상대보다 두 수 정도는 윗줄의 실력이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가별초로 상대가 가능했다?’
이성계는 호기심이 동했다. 이건 누가 봐도 상대가 강순일을 봐준 것이다. 그리고 함흥에 있는 무인들 중에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아니, 있어도 이성계가 누구고, 강순일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애초에 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 정도 실력의 검객을 만났다면.”
강순일이 이성계의 입에 집중했다.
“도망가거라.”
“……예?”
이성계는 피식 웃었다. 강순일은 어렸다. 그렇기 때문에 혈기가 왕성했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화살이 어디로 날아올지 다 보이는 상대와 싸워 무슨 수로 이기겠느냐?”
“할아버님. 하지만…….”
“목숨이 가장 중한 법이다.”
이성계는 웃었다. 강순일의 얼굴이 굳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계가 강순일에게 물었다.
“한번 보고 싶구나. 어디서 만났더냐?”
강순일의 두 눈이 이채를 띄었다.
“수상해 보이는 자였습니다. 할아버님께서 나서시지 않으셔도…….”
“그렇다면 더더욱 내 눈으로 봐야겠구나.”
함흥은 상왕이 기거하는 지역이다. 그곳에 수상해 보이는 자가 버젓이 돌아다니게 놔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순일은 고개를 숙이며 웃어 보였다. 이성계는 자신을 총애하니, 그 거지 양반의 정체를 죽어 마땅한 놈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고 보자.’
***
“음…….”
만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만우에게 있어서는 이런 시간만큼 가장 즐거우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었다.
“빨리 골라! 숫돌 하나로 얼마나 고민하는거야!!!”
방매가 뒤에서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방매를 쳐다봤다.
“넌 코딱지만 한 연지곤지 하나를 몇 개를 본 지 알기나 해?”
“아니, 그게 얼마나 다른 건지 내가 몇 번이나 설명을 해야 되는거야? 봐봐. 이 은은한 붉은 빛이 다르다니까? 그리고 여기, 이 흡착력도 다르고 지속력도 다르다고. 땀 한 번 난다고 슥 지워지는 게 아니라니까?”
방매는 자신이 고른 연지곤지를 들어보이면서 열변을 토했다.
“게다가 이건 한양에 없다고. 명에서 들어온 최신 화장품이야. 그것도 연경이나 남경에서 들어오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이건 요동에서만 나는…….”
“아아. 됐어! 그거나 이거나 똑같으니까.”
만우는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렇다고 그거 하나 고르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데에에에.”
방매는 지겹다는 듯 다리를 꼬았다. 만우는 그녀의 성화에 혀를 내두르면서 개중 나은 숫돌을 집어들었다.
“잘 가시오!”
숫돌을 집어든 만우는 쳇하고 입맛을 다셨다. 대장간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그마나 가장 나은 숫돌이었다.
“검이란게 얼마나 예민한 물건인데.”
“사람 피부만큼이나?”
만우의 말에 방매가 반박했다.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왜 따라 나온 거야, 대체.”
“네가 얼마나 쓰는지 보려고.”
“대체 왜? 그 재물 중 내 것도 있어.”
방매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삼켰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돈을 쓰는 것도 잘 지켜보지 못하는 성미였다.
“누가 뭐래? 그러니까…….”
퍽.
“아, 아야!!!”
털썩 만우를 보면서 걸어가던 사람이 마주오는 사람을 피하지 못하고 부딪쳐서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또르르.
“앗.”
그러는 와중에 방매의 품이 열리면서 은병이 굴러나왔다. 방매가 그것을 보고 손을 뻗는 순간, 다른 사람의 손이 들어와 은병을 줏어들었다.
“호오.”
“뭐야 당신? 왜 남의 것에 함부로 손을 대?”
광대가 툭 튀어나오고 눈이 쭉 찢어진 남자가 은병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그 남자의 눈에 서린 탐욕을 알아챈 방매가 손을 뻗었지만 남자는 몸을 훽하고 돌렸다.
“그쪽이 먼저 부딪쳤잖아? 그러니까 이건 치료비야.”
“뭐? 이런 사기꾼 같은…….”
방매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야비하게 생긴 남자가 그런 방매를 보면서 픽 웃었다.
“걸어다니는 것도 시원치 않은데, 이거나 주고 몸 성히 돌아가. 여자라고 해서 안 봐준다.”
남자가 허리춤에 찬 막대기를 툭툭 건드려보였다. 천으로 둘둘 싼 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