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함흥차사?(4)2019.08.31.
그때 주모가 부러질 듯한 상다리를 자랑하며 음식이 가득 든 탁자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오래들 기다리셨슈. 마음껏 자셔요, 나리.”
주모는 방긋방긋 웃었다. 허름한 차림새의 동군영이었지만 은인이었기 때문에 주모는 개의치 않았다.
“주모. 나도 국밥 한 그릇 주시오.”
“나도.”
“나도 주시오!”
“걸협(乞俠)에게 내가 탁주 하나 사겠소!”
동군영이 복스럽게 국밥을 입에 밀어 넣자 멀찍이서 구경하던 저잣거리의 상인들이나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여기저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강순일 왈패무리가 난장판을 벌여놓았지만 다들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간단한 음식을 시켰다.
“못 도와줘서 미안하네.”
“국바이나 자셔요.”
“나도 미안혀.”
“끼어들었다가 허리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왈패들에게 험한 꼴을 당했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만우는 주변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험한 일을 당한 게 불과 일 다경 전인데 주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람들을 대접했다.
“오히려 장사가 더 잘되는 거 아닌가?”
“잘되기는. 주모! 잘 먹었소!”
“아이고 걸협 나리. 잘 드셨습니까?”
“……걸협?”
동군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걸협이라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러자 주모가 웃으면서 손바닥을 짝하고 내리쳤다.
“저짝에 있는 양반들이 뭐시냐 말을 지어내는 걸 참 좋아한단 말이지요.”
동군영이 한 쪽을 쳐다봤다. 그쪽에는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루한 차림새의 양반들이 보였다. 양반들이라고 해서 모두 떵떵거리면서 잘 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양반들은 집에 돈이 없어 과거를 치러 한양에 가다가 이런 곳에서 자리를 잡고 주저앉은 사람들도 많았다. 글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것을 업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가고 있는 양반들이다.
“걸협. 비록 차림새는 남루하고 거지 같으나 의협심만은 제일이라 하여 걸협이라 부른답니다.”
“풉.”
옆에서 국밥을 먹던 만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걸협이라니. 마치 개방의 거지들이나 얻을 법한 별호가 아니던가. 하지만 확실히 동군영의 모습은 딱 걸협이란 표현이 잘 어울렸다.
“……고맙다고 전해주시게. 어쨌든, 여기서 숙식을 하려고 하는데.”
“아이고. 되다마다요. 보아하니 세안만 제대로 하시면 저기 기루의 기생들도 줄을 서겠는데, 씻을 물도 준비해 드릴까요?”
주모는 동군영에게 간이라고 빼어줄 기세였다. 만우는 걸협이라는 별호가 웃기기는 하지만 그리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히 만우에게 며칠 배운 검술로 강순일과 그 왈패들 앞에 선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다. 그건 만우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그 왈패 무리들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세상 물정도 몰라서 그런 거기도 하지만.’
만우는 뒷말은 삼켜버리고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걸협이란 별호가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삯은 받지 않겠…….”
“주모. 여기 삯이요. 나리와 저, 그리고 조금 있다가 여인네들이 둘 더 들어올 터이니 그들에게도 방 하나 내어주시오.”
만우가 봇짐 안에 있던 5승포를 꺼내 주모에게 건넸다. 주모는 만우를 한 번 쳐다보고, 동군영을 쳐다봤다.
“받으시게. 내 차림새가 이런 것은 이유가 있어서이니……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니 이걸 주막을 고치는데 보태쓰시게. 앞으로 내가 달포는 묵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나리.”
나이가 지긋한 주모가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리자 당황한 동군영이 만우를 데리고 얼른 방으로 들었다.
“특별히 나리께서 쓰실 수 있게 다른 사람은 들이지 않겠습니다요.”
“이런…… 봉놋방인 것 같은데.”
봉놋방이면 으레 주막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자는 방이다. 그런데 그 방을 주모는 기꺼이 동군영을 위해서 내주기로 한 것이다.
“괜찮습니다요. 대신 말씀하신 두 여인네들은 딱히 지낼 곳이 없으니 이 방에…….”
“그렇게 하시게.”
“예, 나리.”
동군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우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널찍한 방의 크기에 흡족해하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만우가 입은 무명천 옷이 접혀져 올라가면서 탄탄한 만우의 복근이 드러났다.
“의복이나 제대로 입으시지.”
“남자끼린데 뭐 어때?”
만우는 씩 웃어 보였다. 동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 호선과 방매는 언제 온다던가?”
“방매야 여기저기 새로운 거 나온 거 없나 저잣거리 조사 다니고, 의주에서 못 바꾼 몇 가지를 바꿔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따악! 만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동군영의 고개가 뒤로 훽하고 넘어갔다.
“악!”
“쯧. 긴장하고 있으라니까.”
“아니, 이러기 있어?”
동군영이 빨개진 이마를 문질렀다. 그런데 만우가 때리려던 곳은 동군영의 이마 한 가운데였다. 그런데 이마 한 가운데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떨어진 곳을 동군영은 문질렀다.
‘피하고 있네.’
만우는 씩 웃었다. 만우가 급작스럽게 기습을 하는 속도는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의 절반 정도다. 그러니까 돌팔매질 정도의 속도다.
‘목표는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에서 반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 속도가 지근거리에서 숙련된 무사가 검을 휘두르는 속도와 비슷하다. 그러니 검을 잡고 실전을 치루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반사신경이 필요했다.
“근처 개울가가 있으면 가서 씻고 와야겠어. 이러다 방에 냄새 밸라.”
동군영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참지 못하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우는 인상을 썼다.
“그냥 대충 뒤에 우물에서 씻어.”
이 주막의 이름은 우물집이었다. 근처에 우물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동군영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양반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겠는가.”
“그럼 또 산 속까지 들어가겠다고?”
“원래 손발이 깨끗하고 세안을 자주해야 질병에 걸리지 않는 법이지. 그러니까 만우 너도.”
“난 싫어!”
“에이, 그러지 말고!”
“어사 나리, 물 차가워서 나 데려가는 거잖아!”
만우는 동군영의 얄팍한 수작에 눈쌀을 찌푸렸다. 하지만 동군영이 양반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한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산 속에서 홀로 씻기에 만우가 불쌍해 보여 한 번 삼매진화로 물을 데워줬더니 이제는 늘 저렇게 만우에게 졸랐다.
“아니, 그 이야기도 모르는가? 함흥 근처에 유명한 선녀탕이 있다네. 거기 가면 선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때?”
“선녀탕?”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간다는 그 영험한 선녀탕 말일세. 뭐, 내 저잣거리에서 슬쩍 들어보니…….”
동군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동군영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실제로 아녀자들 중 정혼을 하지 않은 이들이 와서 밤에 목욕을 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거기서 목욕재계를 하면 훌륭한 혼처를 찾을 수 있다고.”
“거기 가서 씻겠다고?”
“궁금하지 않은가. 냄새도 나고.”
만우는 싫다는 티를 팍팍 냈지만 동군영의 말에 흥미가 동한 것도 사실이었다.
‘선녀탕이라.’
만우는 중원을 유람하면서 중원에서 영험하다고 유명하다는 산에 전부 한 번씩은 들려봤다. 그리고 그런 산마다 이런 식의 전설이 내려오곤 했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그런 큰 산에는 이미 터를 잡은 문파들이 있었고, 그런 곳에 들리면 만우의 명성을 노리고 날파리처럼 달려드는 이들과 싸우는데 바빴기 때문이었다.
“호랑이 신선도 있는데 선녀도 있겠지. 아니 그런가?”
동군영이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만우는 그의 호기심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이미 만우의 마음도 정해졌다.
“가자. 본주도 궁금하네.”
“그렇지! 가세!”
신이 난 동군영이 쾌재를 불렀다. ***
“소문의 방향을 틀 겁니다.”
무화 임수미가 입을 열었다. 소문의 방향을 튼다는 임수미의 말에 하오문의 간부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우리에게 천하의 눈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
“중원에선 개방이었는데, 이곳 조선에 오니 더 이상하고 지독한 놈들이 붙었더군요.”
임수미의 말은 담담했지만 내용은 절대로 담담하지 않았다. 하오문의 간부들이 표정을 구겼기 때문이다.
“조선을 너무 쉽게 봤어요.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한양 정도가 전부인 듯하니 우리는 우리 식대로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오문의 무화인 임수미가 한양에 왔다는 것은 하오문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중원이 아니라 저 먼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야 말로 늘 괄시를 당하는 입장이던 하오문이 다른 문파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찾을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썼다. 그렇게 한양에 도착해 하오문이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정보망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하오문의 한양 지부가 생각보다 쉽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조선 전역에 하오문의 정보망을 구축하는 것이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임수미는 조선에 도착해 깨달았다. 누군가 하오문을 견제하고 방해하는 상대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하오문의 문도들보다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나 누가 하오문의 행사를 방해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간부들을 빼서 배치하자니 그것 또한 곤란했다.
‘그놈들의 꼬리를 잡아서 상대하려면 간부급이 아니면 곤란해.’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성이 높았다.
“여기에 무림맹과 사림곡, 마교에 동영까지 끼어들면 우리가 설 자리는 또다시 사라지고 맙니다.”
중원과 똑같은 판국이 조선에서도 열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임수미는 정보를 조작할 생각이었다.
“검주 만우. 어디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까?”
“의주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이 되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오밤중에 귀신이 동쪽으로 가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간부의 말에 임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 동굴 하나를 만들어 두세요. 그리고 적절히 정보 조작하셔서 드러나게 만들어 놓으시고. 검주 만우가 조선에 온 이유가 있을 것이란 식으로 정보를 퍼뜨려 주세요.”
중원이라면 통하지 않을 방식이었다. 개방이 있었고, 사림곡과 마교에도 하오문에 뒤지지 않는 정보 조직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무림맹이나 마교라고 하더라도 하오문이 뿌리는 정보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임수미는 그것으로 그들의 눈을 돌릴 생각이었다.
“그러다 검주가 이 사실을 알게 되기라도 하면…….”
“어차피 여기서 우리가 제부투혼을 얻지 못한다면.”
임수미의 두 눈에서 귀화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눈을 마주한 하오문 간부가 흠칫했다.
“중원에서 하오문의 자리는 영원히 없을 겁니다. 그러니 검주의 손에 죽으나, 중원으로 돌아가 평생을 거대 문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죽으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오문은 배수진을 쳤다.
“무림맹이나 사림곡 같은 거대한 세력들이 조선에서 제대로 된 정보망을 구축하기 이전에 우리가 그들을 조종해야 합니다.”
정보는 곧 힘이다. 임수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거대한 세력들의 정보망이 구축되지 않은 지금을 이용해 하오문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남쪽으로 향할 겁니다.”
“제부투혼을 향해서 드디어 가는 것이군요.”
임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대한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이겠습니다. 그동안…….”
임수미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의 움직임을 감추기 위해 다른 곳을 시끄럽게 만들어야 겠습니다. 준비는 됐나요?”
임수미의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임수미가 말한 건 간단한 병법 중 하나였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서쪽을 친다. 임수미는 자신들에게 드리워진 감시의 눈을 떼내기 위해, 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소(小)를 희생하기로 했다.
“네. 다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우리 하오문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챙겨주세요.”
“성공할 생각을 하십시오.”
삼복은 무거운 회의실의 분위기에 입술 하나 달싹일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는 것은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한양 지부장인 내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안 알려 준다고?’
하지만 문제는 임수미와 하오문의 간부들이 삼복을 철저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점이 삼복은 못내 못마땅했다.
“그럼 결사대를 준비시키겠습니다.”
‘결사대.’
삼복은 눈을 빛내며 임수미와 간부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까먹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