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함흥차사?(3)2019.08.27.
강순일은 불과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용이 조각된 활의 시위에 화살을 걸어 쏘아 보냈다. 그의 활에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다. 소룡궁(小龍弓). 상왕이 강순일을 어여삐 여긴 나머지 상왕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대룡궁(大龍弓)을 만들고 난 뒤 남은 용각(龍角)을 섞어 소룡궁을 만들어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앗!”
강순일의 활솜씨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모두들 거지 차림을 한 양반이 화살에 목이 꿰뚫릴 것이라 생각했다. 용기 있게 나선 의인(義人)이 헛되에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들 눈을 질끈 감은 순간, 거지 양반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네 이놈!!!”
챙!!! 눈을 질끈 감았던 사람들이 거지 양반의 노성과 챙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자 그들은 볼 수 있었다. 거지 양반의 목검에 화살이 뱅그르르 튕겨 올라가는 것과 당황한 강순일의 얼굴을 말이다.
“학문에 큰 뜻을 품은 선비로서 네놈들의 패악질을 두고 볼 수가 없구나.”
거지 양반이 목검을 휘두르자 강순일이 움찔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강순일은 아직 사태 파악이 정확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것이냐. 주막을 저 꼴로 만든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하고 이 자리를 피할 것이냐, 아니면 나와 함께 관아에 갈 것이냐.”
“네놈…….”
“도련님.”
그때 가별초 중 하나가 강순일을 가로막았다. 가별초의 눈이 가늘게 떠져 있었다.
“그냥 물러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순일이 가별초를 쳐다봤다. 그는 상왕이 붙여준 가별초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격의 인물이었다. 그의 무예가 가별초 내에서도 제법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강순일은 버럭 소리를 쳤다.
“어쩌다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찌 저깟 놈에게 꼬리를 말고 물러서겠다고 하는 것인가!”
고려시대 동북면의 무신(武神)이던 이성계의 곁에는 늘 가별초가 함께 있었다. 그 시대의 가별초는 무적이었다. 가별초가 전장에 나타나면 벌벌 떨지 않는 여진족과 왜구가 없었다. 고려 내에서도 곡산 척가를 제외하면 가별초에 견줄만한 집단도 없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강순일은 인상을 찌푸린 채 가별초를 쳐다봤다.
“도련님의 화살이 향하는 곳을, 저자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뭐?”
강순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단순히 요행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거지나 다름없는 저 놈이 자신의 활을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보고도 막을 수 없는 화살을 쏠 수 있지 않는 이상.]
강순일의 머릿속에 이성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화살을 보는 사람과는 결코 혼자 맞서서는 안 된다.]
강순일은 그때 이성계에게 물었었다. 신궁인 그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느냐고. 그때 이성계는 무엇을 떠올리는지 눈을 반짝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내게는 가별초가 있으니 괜찮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결코 내 화살을 피하지 못할 것이야.]
검술이나 창술 등과는 다르게 궁술은 나이가 먹더라도 실력이 크게 쇠하지 않는다. 이성계의 경우에는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궁술에 대한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화살 한 대로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강순일은 그때 이성계의 화살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에 더욱 놀랬다. 그런 이성계가 했던 말이다. 꿀꺽. 강순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허름해 보이고 허술한 거지 양반의 자세가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물러나자.”
“예.”
가별초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순일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패악질을 하고 다니긴 하지만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늘 주변을 조심하거라.”
하지만 강순일은 그렇게 물러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거지 양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언제 어디서 화살이 날아들지 모르는 일이니.”
화살의 무서움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검이나 창이나, 모두 길이의 차이가 있을 뿐 상대를 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화살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흥. 아무래도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 놈들이구나.”
거지 양반은 강순일의 협박에도 코웃음을 치면서 비웃었다. 강순일이 다시 한번 발작하려고 하는 것을 가별초가 달래면서 사라졌다. 털썩. 눈앞에서 강순일과 가별초가 사라지자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있었던 거지 양반이 털썩하고 쓰러졌다.
“아이고…… 아이고 죽겠네. 진짜.”
거지 양반은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별초가 던져놓고 간 비단 주머니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주모에게 건넸다.
“이 고마움을 어찌해야 할 지…….”
“주모.”
거지꼴을 한 양반. 아니, 거지가 와서 형님이라고 할지도 모르는 옷을 입은 남자는 바로 동군영이었다.
“고마우면 국밥이나 한 그릇…… 아니 네 그릇만 말아주시오.”
“네 그릇이나?”
“올 사람들이 있소.”
“알겠습니다. 백 그릇이라도 만들어 드리죠.”
가별초가 던져놓고 간 주머니는 제법 묵직했다. 그 때문에 주모는 눈물로 범벅이 된 상태에서도 손등으로 꾀죄죄해진 얼굴을 닦아내면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나리.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우리 주막에 오셔서 공짜로 드셔도 됩니다.”
“이거 남는 장사였구만.”
동군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동군영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이 맛이지.”
이 맛에 이런 거지 꼴이 되어도 굳이 백성들을 돕겠다면서 나선 것이다.
[이 맛은 무슨. 실력도 안 되는 놈이 나대니까 그런 것이지.]
그런 동군영의 귓가에 만우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동군영은 놀라지도 않았다. 어차피 찾으려고 해도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곳에 만우는 있을 것이다.
“지 혼자 말하면 재밌나.”
동군영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 전음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어쭈? 입 넣어라. 어디 푸닥거리 한 번 더 할까?]
동군영이 헛하면서 입을 쑥 집어넣었다.
[움직임을 간소하게 하라고 했잖아. 아니, 애초에 그 상황에서는 튀는 게 맞지. 누가 그런 놈들이랑 붙으래? 그냥 삼류 파락호들이랑 붙으라고.]
만우는 동군영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말에 동군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만약 만우의 적절한 도움이 아니었다면 동군영은 강순일의 화살 한 발을 이마 정중앙에 꽂고 바닥에 누워 있었을 것이 뻔했다.
“활이란 거, 무시무시하구나.”
선비의 오락과 심신수양을 위해 동군영도 활을 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신수양을 위해 한 운동이었지 자신이 쏜 화살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동군영이 본 강순일의 궁술은 활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바로 앞에서 눈으로 보는데도 안 보였어. 그런데 멀리서 쏘면…….”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동군영의 머릿속, 아니 귓가에 만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기지마. 그건 잡기술이야. 무예의 꽃은 바로 검이지. 검.]
중원무림에서 이 한 마디를 꺼내면 아마 다른 무기를 독문병기로 쓰는 이들과 삼일 밤낮을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우에게 검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전부 잡기(雜技)다.
“앉게. 이미 국밥도 시켰으니.”
“주모를 구해주고 돈까지 줬는데, 씨암탉 하나 잡으라고 하지.”
“닭장이 부서져서 닭이 다 도망갔거든.”
동군영이 닭장을 가리켰다. 닭장 안에는 털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거참. 어사 나리는 너무 오지랖이 넓어.”
“백성을 돕기 위해 이곳까지 왔으니까.”
“아니. 어사 나리나 나나, 상왕을 한양으로 데려가려고 온 것이라니까.”
“그렇긴 하나…….”
동군영이 어두워진 얼굴로 난장판이 된 주막의 마당을 둘러봤다. 함흥에서 사흘 간 있으면서 이런 걸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상왕이 있고, 상황이 기거하는 본궁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은 여우들 천지였다. 호랑이가 없는 산에 여우가 왕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기 옆 산에 사는 거대한 호랑이 때문에 이 산에 사는 호랑이가 서열 싸움에 관심이 없자 여우가 서로 호랑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꼴이다. 그러니 개판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감은?”
사흘 간 동군영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해결하고 다녔다. 그동안 이렇게 거지꼴이 된 이유는 바로 만우 때문이었다. 따악!
“악!”
“흠. 학습 능력이 없어.”
첫날 만우는 대련을 빌미로 동군영을 정말 먼지가 나도록 두드려 팼다. 만약 대련이 아니었다면 동군영은 만우에 대한 공포가 평생 남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는 지금처럼 부지불식간에 공격을 하겠다 선포했다. 대신 동군영은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쉬웠다면 동군영은 벌써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어검술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우는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는 동군영을 보면서 혀를 한 번 쯧하고 차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길거리에서 남이나 핍박하고 다니는 놈이 쓸 법한 궁체가 아니었는데.”
궁체는 활을 쏘는 자세를 뜻한다. 훌륭한 검객은 검을 쥐는 방법만 보고도 알 수 있듯이 훌륭한 궁사(弓師)는 궁체만 보고도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강순일의 궁체는 상당히 고절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내 손에 화살이 막혔네.”
“내 전음이 아니었다면 못 막았겠지.”
동군영이 만우에게 말했지만 만우의 한 마디에 침몰했다. 동군영이 강순일의 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만우 때문이다. 만우가 움직이라는 대로만 움직였더니 화살이 저절로 목검에 맞아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개판이야 조선이.”
무림맹과 사림곡, 마교에 이어 동영까지 활개를 치고 있었다. 만우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왕이라면…….”
그러나 만우는 굳이 자신까지 나설 이유를 찾지 못 했다. 조선의 왕 때문이었다.
“확실히 재수는 없지만 그런 인간들이 대개 능력이 있으니까.”
만우가 검을 쥐기 위해 태어난 천재라면 조선의 국왕은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는 조선의 국왕이라면 제부투혼이라는 한낱 보물 때문에 시끄러워질 조선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 때까지 보신을 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직접 나서면 괜히 피곤하기만 하고 사람들의 눈에 필연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중원에서의 삶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이다.
“나만 건들지 마라. 나만.”
만우가 지금까지 참은 것만 해도 대단했다. 당장 마교의 아이들이 재롱부리는 것도 참고 넘겼지 않은가. 하지만 첫 번째는 그게 가능해도 두 번째는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수틀리면 정말 중원으로 넘어가서 검무 한번 거하게 쳐줄 의향이 있으니까.”
만우는 동군영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딱하고 때리면서 중얼거렸다.
“나리. 본궁에는 언제 갈 거야?”
만우는 이마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동군영에게 말했다. 아주 미세하지만 동군영이 만우의 습격에 반응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그 정도면 소정의 성과였다.
“함흥이 이리 개판이니…… 강씨 집안과 그걸 방관하고만 있는 관아의 함흥부사 정도는 혼을 내준 다음 상왕전하를 뵈러 갈 생각이야.”
“……그걸 혼자 한다고?”
“내가 왜 혼자야?”
동군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호선에게 이어 만우에게까지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동군영은 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밉지가 않다는 것이 동군영의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자넨 역졸, 난 어사. 그러니까 날 따라와야지.”
“상왕만 데리고 먼저 가는 수가 있어.”
만우가 동군영을 보면서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동군영이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씩 웃어 보였다.
“가르친다면서. 검. 비명횡사하지 않게.”
“하!”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