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함흥차사?(1)2019.08.20.
“으, 으…… 으허어억!!!!”
김충은 아주 나쁜 꿈을 꾸고 있었다. 맨 처음에는 그냥 남루한 옷을 입은 미친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놈이 자신의 진을 찢고 들어오더니, 나무지팡이 같은 곳에서 길쭉한 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휘둘렀다. 그러자 땅이 뒤집히고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김충은 놀라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도술 중 최고의 도술을 쏟아냈지만 그 악귀는 코웃음을 치면서 도술을 모두 갈라 버렸다. 그 때문에 기겁한 김충은 미친 듯이 도망쳤다. 축지로 삽시간에 몇 백 장을 도망갔지만 아무리 도망을 가도 도저히 그 악귀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충은 간절히 바랐다. 이게 꿈이라면, 제발 잠에서 빨리 깨어나 달라고. 번쩍!!!
“허억, 허억, 허억.”
그런 김충의 바람을 하늘이 들어준 모양이었다. 김충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근래 들어 꿔본 꿈 중에 가장 최악의 꿈이었다. 김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으……윽?”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위와 아래가 반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몸을 꿈틀거려 봐도 손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여기라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김충은 자신이 어딘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모든 피가 머리로 쏠렸다. 그런 찰나에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은 김충에게 있어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오 주야(周夜)나 떨어진 곳이라니. 대체 그 사람은 누군지…….”
“각주님.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
김충이 몸을 꿈틀거렸다.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콱 막힌 것처럼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노예? 이놈이?”
김충은 자신의 눈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몸을 더욱 거칠게 꿈틀거렸다.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때 김충의 눈앞에 차가운 검날이 드리워져 있었다.
“네놈. 인매골의 노예상인이냐?”
김충은 자신의 턱 밑에 놓인 예리한 검날을 발견했다. 그러자 마치 막혔던 둑이 터지는 것처럼 김충이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검, 자신을 덮쳐오던 거대한 검날, 자신을 찢어발길 듯 쇄도하던 무시무시한 괘검과 그 주인의 얼굴. 거기에 온몸의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강제로 전수해야 했던 도술들.
“……!!”
김충의 두 눈이 흰자가 드러나면서 훼까닥 돌아갔다. 검을 보자 누군가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거대한 공포가 몰려왔다. 검주 만우. 지난 나흘 동안 그가 지독하게 겪었던 만우의 악귀 같은 얼굴이 검을 보자 떠올랐다. 자신이 익힌 도술부터 시작해 가지고 있었던 귀한 재물들까지 싹 다 털려 버렸다. 그렇게 하면 살려주겠다 악마처럼 속삭인 그놈은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에게 그가 알고 있는 축지부터 시작해 각종 고급 도술들을 알려주는 것이 끝나자 그의 선기, 도력을 모두 날려 버렸다.
“여기도 사람이 더 있습니다. 추노꾼으로 보입니다.”
“네놈.”
만우가 달려오면서 남긴 흔적을 좇아 이곳까지 도착한 척씨세가의 소사각주 척준영이 검을 김충의 목 아래 드리운 채 살기가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히 곡산 척가의 그늘 아래서 사람 장사를 했겠다?”
곡산 척가란 소리에 김충의 얼굴이 퍼렇게 물들었다. 척준영의 성난 살기가 김충의 전신을 옥죄었다.
‘내가…… 내가 어쩌다가!’
아혈(啞穴)이 점혈되어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된 김충이 서러울 정도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물을 지었다. ***
“돌아가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성함이라도…….”
“응당 해야 하는 일이니까 내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소? 어서들 가시오.”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무 명 남짓한 이들이 동군영에게 허리가 부러져라 절을 하면서 멀어져 갔다. 동군영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펑!
“악!”
“야! 넌 500년이나 살아왔다는 애가 이것도 못 해?”
“어렵단 말이에요!”
“어쭈. 말대꾸지?”
“그게 아니라…….”
동군영은 뒤에서 들리는 소란에 피식 웃었다. 만우와 호선이었다. 만우는 김충을 잡아다 놓고 정말 딱 죽지 않을 만큼 계속해서 두드려 패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얻었다.
‘덕분에.’
하지만 만우 덕분에 죄 없는 백성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우를 쳐다보던 동군영과 만우의 눈이 마주쳤다.
“뭘 봐?”
“큭. 그냥.”
만우의 퉁명스런 말에 동군영이 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만우는 아직도 축지 하나 제대로 못 쓰는 호선의 뒤통수를 탁하고 때리고는 손가락으로 다른 쪽을 가리켰다.
“쟨 아직도 저러네. 나리가 좀 말려봐.”
“좋다고 하는데 뭐 어때서.”
“하긴. 나리가 누굴 말릴 때가 아니지. 누워 있어도 모자를 판에.”
만우는 창백한 동군영의 안색을 보고는 쯧하고 혀를 찼다. 장기를 피했다고는 하지만 흘렸던 피의 양이 상당했다. 그랬던 동군영은 떠나는 백성들을 배웅하기 위해 무리해서 움직인 것이라 안색이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그래도 그 약 때문에 많이 나아서 괜찮아. 피가 나진 않잖아?”
“피가 나야만 아픈 게 아니야. 차라리 저 계집애처럼 피륙만 상하는 게 나은 거지.”
“아야야야. 히힛. 히히힛. 아야야야.”
만우는 한쪽에서 김충에게서 뜯어낸 재물을 보면서 히죽대고 있는 방매를 가리켰다. 방매는 추노꾼들과 싸우면서 맞은 채찍들 때문에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재물이 그리도 좋은지 히죽대고 있었다.
“야! 그거 다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
“함흥에 가서 전장을 찾아가면 돼!”
방매는 절대로 뺏어갈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물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노예상인으로 큰돈을 벌어들였던 김충이었기 때문에 방매는 큰돈을 벌었다. 어음이 아니라 현물로 노예들을 거래했기 때문에 은병이 든 상자들이 수북했던 것이다.
“함주에 전장이 있어?”
만우의 한 마디에 방매가 흠칫했다. 의주야 큰 도시고 명과 조선의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전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범골의 산채 등에서 가져온 것들을 처분해 전장에 맡겼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인 모양인데, 문제는 함흥에 전장이 있느냐였다.
“있……지 않을까? 그래도 상왕 전하가 있으신 곳인데!”
“글쎄.”
만우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이번에는 동군영도 어깨를 으쓱했다. 함흥에 전장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관심이 있었을 리가 없다.
“없으면 큰일인데…….”
방매가 울상을 지었다. 은병이 담긴 상자가 무려 열 개나 됐다. 김충에게서 그것을 강탈해 오면서 수레와 나귀도 함께 옮겨 받긴 했지만 호선을 본 나귀들은 모두 죽어버렸다. 500년 묵은 호랑이 앞에 멀쩡할 짐승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호선한테 부탁하면…….”
“내가 짐말로 보이는 거야?”
옆에서 계속해서 축지를 실패하던 호선이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매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고양이 호선은 귀여운데 인간 호선은 얄미워.”
“에잇. 너 때문에 더 집중이 안 되잖아!”
호선의 다리가 꼬이면서 또다시 넘어졌다. 만우는 그런 호선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학습능력이 제로였다.
“둔갑술밖에 몰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어서…….”
모든 신선이라고 해서 도술에 능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호선처럼 동물의 원형을 가진 신선들은 더욱 그랬다. 오랫동안 참선을 하고 선기를 받아들이면서 지성이 생긴다고는 해도 도사가 선기를 쌓아 우화등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굳이 도술을 배우지 않아도 선기와 호랑이 원형 그 자체로도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춘 호선이었기 때문이다. 축지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순전 만우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늘 시끄러워서 좋네.”
“좋긴. 정신없지.”
만우는 툭 그렇게 말하고는 오늘 밤을 넘기기 위해 산 중턱에 차린 야영지에서 내다보이는 함흥의 전경을 쳐다봤다.
“저기라고?”
“그래.”
“상왕이라…….”
만우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조선의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궁으로 모시기 위해 만우를 고용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전에 왕이 보낸 두 명의 차사들이 현재 왕을 못마땅해 하는 상왕에게 활을 맞아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신궁(神弓)이라지?”
“왜구 아지발도(阿只抜都)의 투구를 화살 한 대로 쏘아 날려 버리고 나머지 한 대로 머리를 쏘아죽인 궁기(弓技)는 유명하지.”
“호오.”
만우의 두 눈이 반짝였다. 복잡한 전쟁 통에 적의 우두머리를 쏘아 죽였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투구를 한 대로 쏘아 날리고 한 대를 더 쏘아 맞췄다는 이야기다.
“신궁이군.”
“그럼. 그렇고말고.”
동군영은 상왕에 대한 존경심이 큰 것인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지금 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곳에 주저앉았다? 꼭 아이 같군.”
“음…….”
동군영은 말을 아꼈다. 지금 왕이 철혈왕이라 불린 몇몇 비사들이 있었다. 비사라고 하기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동군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왜, 지금의 왕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것 때문에?”
“아, 알고 있었나?”
동군영이 놀라서는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내가 누구랑 있었는지 잊은 모양이야.”
“아…… 설 대감님…….”
동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군영은 양반이라 모르고 있겠지만 이미 그에 대한 사실은 저잣거리에서도 공공연하게 떠도는 이야기였다. 만우는 저잣거리에서 들었다.
“그럼 곧바로 상왕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인가?”
만우가 동군영에게 물었다. 동군영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게 주상전하께서 내리진 지엄한 어명이지만 어사의 일도 게을리 할 생각은 없네.”
“그러면…….”
“살펴봐야지. 억울한 백성이 있는지, 부조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진 않은지, 탐관오리는 없는지.”
동군영의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소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그 소심함을 한 꺼풀 벗겨낸 듯 했다.
“노예상인 놈들에게 홀로 맞설 생각을 하다니.”
원래 동군영이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만우와 함께 다니면서 크고 작은 일을 겪었더니 그릇이 조금 성장한 모양이었다.
“이제 몸이나 추슬러. 어사 나리가 고작 추노꾼에게 칼을 맞았다는 게 웃기잖아?”
“크흠…….”
동군영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불에 달궈진 부지깽이가 배 속을 파고드는 것 같은 그 느낌만 떠올리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솔직히 검이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그 검을 들고 자신에게 살의를 품은 적과 맞서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다.
“배워야지.”
하지만 동군영은 그 두려움을 떨쳐내고는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가 씩 웃었다.
“그래. 좋은 마음가짐이야. 어디 가서 비명횡사 당하지 않을 정도론 키워줄게.”
“설마 그때처럼…….”
동군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라면 만우가 동군영의 체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죽도록 굴린 달포를 뜻하는 것이다. 만우는 환하게 웃었다.
“아니. 이번에는 달라.”
“다르다면…….”
“어사 나리는 몸을 굴리는 데는 재능이 없어. 그렇게 죽도록 달렸던 것처럼 무식하게 때려넣는 게 최고거든. 그러니까…….”
만우가 박달나무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실전이 최고지. 응? 사람은 살려고 하다보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거든. 그러면 빠르게 성장하는 게 사람이야.”
만우의 환한 웃음에 동군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안변부사(安邊府使) 조사의는 강인하게 단련된 자신의 병사들을 보면서 이를 악문 턱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방원.”
불꽃을 토해내는 듯한 조사의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말로 표현 못할 한이 서려 있었다.
“감히 다섯 째 따위가 동생인 태자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 몸을…….”
조선에서 현재의 국왕에게 가장 원한이 깊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조사의가 첫 순에 꼽힐 것이다. 현비(顯妃) 강씨(康氏)의 친척인 조사의는 상왕의 눈에 들어 관직에 입성하였으나 현재의 국왕이 난을 일으키면서 직위에서 쫓겨나 서인으로 전락한 뒤 전라도 수군에서 노역에 종사했다. 하지만 상왕이 강씨의 친척인 조사의를 매우 아꼈기 때문에 상왕을 위해 왕은 조사의를 안변부사로 임명하였고, 그렇게 조사의는 안변부사가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왕은 찢어 죽여도 좋을 철천지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