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인면수심의 인매골(3)2019.08.17.
콰앙!!! 만우가 내려앉았던 바위가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비산했다. 하지만 그 파편보다 더 빨리 튀어나온 것이 만우였다. 타다닥! 초상비(草上飛) 비슷한 것을 펼치면서 나뭇가지를 밟았지만 뚝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의 밑동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대략 삼십 그루 정도 되는 나무들의 밑동을 분지르자 만우의 기감 끄트머리에 이상한 것이 잡혀들었다.
“찾았다.”
자연의 기임이 분명한데 위화감이 느껴졌다. 인공적인 느낌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법(陣法)임을 알아챈 만우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흐읍!!!”
만우의 머리카락이 거꾸로 섰다. 동시에 무명천으로 만든 옷의 소맷자락과 바지자락이 터져나갔다. 그러자 만우의 신형이 한줄기 빛이 되어 300장 거리를 급격하게 좁혀나갔다. 그리고 채 한 다경이 지나지 않아 만우의 눈에 복잡하게 얽힌 진법이 들어왔다. 주술과 도술이 섞인 진법이었다. 만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진이 있었나?’
안에 몇 명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기감이 읽히지도 않았다. 만우는 이런 진법이 있다는 것에 순수하게 놀랐다. 속도 또한 발군이었다. 한 명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법 자체가 이 순간에도 몇 장씩 쭉쭉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있었다. 진법을 통과한 나무들이 멀쩡한 것을 보면서 만우가 양손에 공력을 일으켰다.
“일단 모르겠으면.”
만우의 입이 히죽하고 말려 올라갔다.
“한 대 치고 보는 거지. 내가 언제부터 보는 족족 다 알았다고.”
무공의 화후가 깊어질수록 무공에 한해서만큼은 보는 족족 훤히 다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공에 한정된 일이었다. 그리고 무공에 대해 모를 때도 만우는 저돌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스승도 없었던 만우가 검주란 별호를 얻고 화경이란 지고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꽈릉!!! 기천의 힘을 담은 만우의 양팔이 태극의 묘리를 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당의 태극권과 비슷한 투로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강맹한 기운은 비교를 불허했다. 콰자자작!! 음양은 조화를 뜻하기도 하지만 음양의 충돌은 거대한 파괴를 낳기도 한다. 만우가 걷고 있는 기천이 딱 그 모양이었다. 우르릉거리는 뇌성과 함께 만우의 손바닥이 진법 위에 작렬하자 진법이 짜르르 떨렸다. 동시에 쩌적하고 여기저기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만우의 손에 담긴 강맹한 태극의 기운에 진법을 이루던 요체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의 기를 뒤틀어 만든 진법이기 때문에 더 강한 비틂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진법을 만든 주술사의 깊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듯, 만우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에 씩 웃었다. 하지만, 깨지고 난 뒤 일어난 균열로 진법 안을 쳐다본 만우의 표정이 굳었다.
“일격(一擊).”
만우의 입술이 달싹였다. 동시에 만우가 들어 올린 주먹에 이글거리는 권기가 서렸다. 권기(拳氣)였다. 검법과 권법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만우는 무림에서 검을 주로 썼기 때문에 검주란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 만우의 두 손에 권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콰자자작!!!! 만우가 권기가 서린 손을 내밀자 균열이 가 있던 진법이 와장창하고 깨져나갔다. 동시에 디딜 발판이 없자 허공에서 떨어지던 만우가 공중제비를 하며 허공을 한 번 박찼다. 팡! 곤륜의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은 절정의 경신법으로 화경이 아니더라도 이런 미친 짓을 여덟 번이나 할 수 있다고 한다. 만우는 무지막지한 공력으로 어찌저찌 두 번까지는 가능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했다. 콰악!!! 허공에서 방향을 튼 만우가 허공에서 거꾸로 떨어져 내리면서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날아오던 붉디붉은 검신이 만우의 맨손에 붙잡혔다. 카가각!!! 분명 맨손이었지만 붉디붉은 검신은 만우의 손에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 만우는 거친 물고기처럼 자신의 손을 빠져나가려는 붉은 단검, 혈령비를 내려다봤다.
“웬 놈이냐!!”
김충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그가 내민 손과 혈령비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손을 휘저었다.
“윽!!!”
만우의 쏘아 보낸 탄지공에 김충은 혈령비와의 연결이 강제로 끊어지자 충격을 받고 뒤로 비칠거리며 물러섰다. 만우는 그제야 얌전해진 혈령비를 쳐다보고는 김충에게 말했다.
“아쉽군. 어검술(馭劍術)인 줄 알았는데.”
만우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혈령비가 손짓 하나에 방향을 바꾸고 허공을 부유하는 것을 보면서 어검술을 쓸 수 있는 고수라 생각했다.
“정말 아쉬워.”
어검술을 쓸 수 있을 정도라면 만우보다 한 수 위다. 바로 현경(玄境)인 것이다. 전설 속의 경지라는 현경이었기 때문에 만우는 한 줄기 기대감을 품었다. 세상은 넓고 은거고수들이 많다고 하지만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혈령비를…….”
김충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혈령비란 이름에 씩 웃었다.
“혈령비? 쓸 만한 이름이네.”
만우는 자신의 손 안에 든 혈령비를 귀한 자식을 다루듯 조심조심 자신의 허리께로 옮겼다.
“혈령비를 맨 손으로…… 네놈은 대체!”
김충은 혼란스러운 눈이었다. 혈령비가 만우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난 만우가 혈령비에 걸려있던 도술을 간단하게 깨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진을 찢고 들어왔다.’
거기에 자신의 진을 뚫고 들어온 놈이었다. 김충은 만우를 경계하면서 말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
그때 만우가 진을 찢어발겼던 손가락을 들어 김충을 가리켰다. 김충이 순간적으로 헛숨을 들이켰다. 매우 날카로운 검의 예기가 턱 아래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살펴봐도 만우는 1장도 넘게 떨어져 있었다. 거기에 맨 손이었다. 그런데 분명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주르륵.
‘베였다.’
그리고 실제로 김충의 턱이 얕게 베여 있었다. 김충은 또르르 떨어지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가만히 있어. 넌 그다음이니까.”
만우의 눈에 호선과 방매, 동군영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왔다. 동군영의 창백해진 안색과 방매의 엉망이 된 몰골, 거기에 피를 흘리고 있는 호선의 모습에 만우의 두 눈에 작은 불꽃이 튀었다.
“쯧. 괜히 휘말릴까 봐 빠지라고 한 것이었는데.”
[죄송해요.]
호선의 힘없는 목소리가 만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만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악기가 줄어들었다?’
호선의 악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만우의 기천으로 더 이상 악기가 퍼지는 것을 막아주고는 있었지만 정화가 시작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다. 우우웅!! 그때 만우의 허리춤에 들어가 있던 혈령비가 울렸다. 만우의 두 눈에 이채가 흘렀다. 혈령비가 호선에게 반응을 하고 있었다.
[그건 마검이에요!]
만우가 혈령비를 꺼내들자 호선의 경호성이 들렸다. 하지만 만우는 씩 웃었다.
“본주가 누구인지를 잊었어?”
[하지만 그건 영육에 상처를 주는…….]
꾸욱!
[……어?]
호선의 두 눈이 커졌다. 혈령비는 무시무시한 기물이었다. 호선은 500년 동안 살면서 혼을 벨 수 있다는 검을 처음 봤다. 그리고 정말로 저 혈령비에 베일 때마다 혼이 베어져 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거기에 그 틈으로 김충의 주술이 파고들자 평소 같았으면 코웃음을 쳤을 그 주술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혈령비가 만우의 엄지손가락에 눌려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었다.
“영육을 베는 검?”
만우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건 없어.”
만우는 동군영과 방매를 쳐다봤다. 방매는 여기저기 채찍에 얻어맞아 터져나갔고 동군영은 배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사 나리. 이제 검을 좀 배우실 생각이 들으셨나?”
“끙…….”
동군영은 피가 빠져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앓는 소리를 냈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픽 웃었다.
“영육을 베는 검이 왜 없는 줄 알아?”
만우는 고개를 돌려 김충을 쳐다봤다. 김충은 만우를 확실하게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김충의 몸 주변으로 부적들이 둥실거리며 떠올랐다.
“혼을 베는 검 따위는 없거든.”
만우는 김충을 보면서 비웃었다. 동시에 혈령비를 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김충의 눈이 커졌다. 부르르르!!! 혈령비의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만우의 손에 담긴 거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 무식한 놈. 그게 어떤 귀물인 줄 알고 그러는 것이냐!”
김충이 빽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만우는 조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런 검이 마검이라느니, 혼을 벤다느니 하는 낭설들은…….”
빠지직!! 만우의 손에 잡힌 혈령비의 검신에 금이 쫙 갔다. 김충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저건 막대한 돈을 주고 김충이 어렵게 어렵게 산 단검이었다.
“이노오오옴!!!”
“사람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虛像)이거든.”
빠캉!!
후두둑. 혈령비의 붉은 검신이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만우의 몸에 부딪친 붉은 검신의 파편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김충이 입을 떡 벌렸다. 캬아아아!!! 산산조각이 난 혈령비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비명소리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와 함께 붉은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화르륵!!
“끝. 어때, 쉽죠?”
하지만 그마저도 만우의 검지 끝이 피어오른 삼매진화에 붉은 연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만우는 대경실색한 김충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손을 탁탁 털었다.
“검에 붙여진 이름 따위에 현혹되는 순간 끝이야.”
만우는 괘검을 쓰다듬었다. 꼭 저렇게 검의 이름을 보고 그게 무엇이라도 되는 것마냥 떠들어대는 놈들이 있었다. 하지만 만우는 검의 주인, 검주(劍主)다. 검이 마검이 되느냐 신검이 되느냐는 쓰는 사람의 문제지 검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사람 탓을 하기 싫은 다른 이들이 검의 탓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흉흉한 소문일 뿐이다.
“검 따위에 무인이란 작자들이 휘둘리는 거, 우습잖아?”
문제는 그런 것에 정말로 휘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일종의 위약(僞藥) 효과일 뿐이다. 정신력이 약한 이들의 변명이다.
“혈령비를…… 혈령비를…….”
깨져나간 혈령비를 본 김충의 몸에서 도력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충의 입술이 달싹이기 시작했다. 만우는 주술을 읊는 김충을 보면서 웃었다.
“뭐야. 노래 부르냐?”
도교 경전을 외우는 김충의 목소리에는 일정한 박자가 있었다. 그 박자가 반복될 때마다 김충의 몸에서 느껴지는 도력의 크기가 증폭됐다.
“이게 진짜 도술이구나. 그 사기꾼과는 달라.”
만우는 그런 김충을 태연하게 감상하면서 설미수의 집에서 봤던 사짜도술사를 떠올렸다. 설미수의 부인을 치료해 주겠다고 하면서 되도 않는 이상한 주문을 외우던 놈이었다. 그에 반해 김충은 진짜였다.
“자연의 기를 흡수하는 것을 보면 말로만 듣던 자연경(自然境)이고, 혈령비를 날렸던 건 어검술이고, 참 특이한 도술이로구나!”
그때 김충의 주변을 부유하던 부적들에 불이 붙었다. 동시에 김충이 두 눈을 번쩍하고 떴다.
“멍청한 놈이로고. 감히 본 도사를 상대로 여유를 줬겠다?”
[거대한 도력이에요. 피해야 해요 어서!]
호선이 으르렁거리면서 몸을 뒤틀었다. 만우는 호선을 감싸고 있는 것이 천잠사(天蠶絲)를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호오. 천잠사?”
천잠사는 만년한철만큼이나 귀한 보물이다. 특수한 영기를 가진 천잠이라는 누에에서 뽑는 실로 천잠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아주 깊은 자연 속에서만 산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천잠에게서 뽑은 실은 아주 귀한 비단이 되고 천잠이 변태하면서 남은 허물을 모아 만든 것이 바로 이 천잠사다.
[그럴 때가…… 아앗! 뒤를!!!]
“하늘의 분노를 받아라!”
김충이 손을 내뻗자 거대한 도력이 만우를 향해 몰아쳤다. 무공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무공은 인간의 육체를 근간으로 하지만 도력에는 특정한 형태가 없었다. 말 그대로 자연의 기에 가까웠기 때문인데, 지금 만우를 향해 득달 같이 쇄도해오는 도력들은 마치 자연재해를 닮아 있었다.
“천사태(天沙汰)니라!”
김충이 광소를 터뜨렸다. 산에서 토사가 쓸려 내려오는 것처럼 만우를 향해 하늘에서 도력이 거칠게 쏟아져 내렸다. 만우는 어깨 뒤로 김충을 힐끗 쳐다봤다. 번쩍!!!! 동시에 김충이 눈을 껌벅였다.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도 친 것처럼 방금 무언가 번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김충은 고개를 흔들었다. 만우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는 천사태는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라! 하하핫!”
우르릉!!!! 도력이 만우가 서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김충은 자신이 설치한 진 전체가 깨진 것을 느꼈지만 당장 위협으로 느꼈던 만우를 해치웠다는 것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자연의 품?”
하지만 그때, 김충의 눈이 커졌다. 그의 두 눈은 불신을 가득 담고 있었다.
“네깟놈의 입으로 자연을 입에 담아?”
천사태 사이에서 만우의 목소리가 또렷이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김충의 얼굴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쩌억!!! 하늘의 분노라는 이름처럼, 만우가 있던 곳을 휩쓸었던 도력이 절반으로 쭉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괘검을 어깨에 걸친 만우가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만우는 소맷자락 하나 상하지 않은 채로 걸어 나와 김충을 향해 괘검을 겨눴다.
“이게 자연이라면 난 진즉에 자연경에도 들어섰겠다. 이 사람장사꾼 새끼야.”
꽈릉! 만우의 전신에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