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실종자의 고을(4)2019.08.06.
만우가 수풀을 헤치고 다시 돌아오자 방매와 동군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동군영이 걱정했다는 표정으로 만우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소리가 많이 나던데.”
“방매와 호선을 쫓아오던 놈들이 있었어.”
만우의 말에 동군영의 얼굴이 굳었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걱정 마.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못하게 만들어놨으니까.”
“그럼 그 비명소리가…….”
방매가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것저것 겸사겸사 알아볼 겸.”
방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그러고는 속으로 만우에게 잡힌 그 누군가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만우의 손속이 결코 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라는데?”
“근처에 인매골이라는 곳이 있다는데, 들어봤어?”
만우가 방매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방매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호선이 다녀온 곳. 그곳을 인매골이라 부른다 하더군.”
“그거랑 우리를 쫓아온 게 무슨 관련이 있는데?”
방매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만우에게 물었지만 만우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동군영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동군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사 나리는 눈치챈 것 같은데?”
“진짜?”
방매가 동군영을 쳐다봤다. 방매의 시선을 받은 동군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인매라는 것이…….”
“맞아.”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사고파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란 뜻이지.”
“뭐?”
방매가 경악했다. 동군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근처에 달포마다 한 번씩 인매골에서 사람시장이 열리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방매랑 호선을 쫓아온 놈들은…….”
“우리를 팔려고?”
“그렇지. 조 대감이란 큰손이 있는데 그놈에게 너희 둘을 넘겨주고 점수 좀 따보려고 한 모양이야.”
“조 대감?”
“아니 그 조 대감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곳에 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
양반들에게 노비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었다. 똑같이 밥을 먹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노(奴)자가 찍혀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장사를 하는 놈들이라면 필히 억울하게 잡아간 놈들도 있을 터.”
그리고 이곳 북쪽 지방은 이런 사람 장사를 하는 놈들에게 있어서 최적의 조건이었다. 중앙의 권력이 잘 닿지 않고, 자연이 험준한데다 여진과 명의 국경이 바로 지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람 장사를 위해 사람을 수급해 오는 것이 상당히 쉬웠다. 사람 한둘쯤 사라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동네였으니까.
“가서 그놈들을 단죄해야 해.”
동군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서 가야 한다.”
“우리가 왜?”
만우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동군영에게 말했다. 그런 만우의 표정에 동군영의 얼굴이 굳었다.
“억울한 사람들이니까.”
“글쎄. 억울한 사람이 그런 사람들뿐일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동군영은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었다.
“가자.”
“……본주도?”
만우가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동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동군영을 쳐다봤다.
“만우 그대도 역졸이니까. 주상전하가 시키신 일이 있다고 해도 그전에는…….”
동군영이 굳은 의지가 담긴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달포 동안 체력 훈련을 받으면서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눈이었다. 신념이 담긴 눈.
“역졸로서의 의무를 다하라.”
“푸흐흐.”
만우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괘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방매를 쳐다봤다.
“너도?”
“……갈래. 눈앞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두고 그냥 갈수는 없으니까.”
방매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그렇게 말하며 봇짐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약한 주제에 저렇게 나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선하구나.’
선한 사람들이었다. 비록 그 선함을 실천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고 해도 뭐 나쁘지 않았다. 찌들 대로 찌든 무림인들만보다 이런 사람들을 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만우는 동군영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내일부터는 다시 훈련 시작할 줄 알아.”
“이번 일만 도와주면.”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무슨 다짐이라도 한 것인지 의지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먼저 가르침을 청할게. 다음에는 만우 그대의 도움이 없이도…….”
동군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양반이 돼서 평민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무력감을 많이 느낀 모양이었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보고는 씩 웃었다.
“가르칠 재미가 나겠네.”
만우가 모닥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모닥불이 쑤욱하고 커지더니 묻어놨던 놋밥솥이 둥실하고 떠올랐다.
“이걸 두고 갈 수는 없지? 가자고.”
놋밥솥을 마지막으로 모든 짐을 챙기자 동군영이 가장 앞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동군영의 앞에 나무 위가 들썩이더니 호랑이로 변한 호선이 부드럽게 착지했다.
“가자.”
동군영과 방매가 올라탄 호선이 한 줄기 하얀 빛이 되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척군영은 곡산 척가, 척씨세가의 소사각(消邪代)의 각주였다. 곡산 척가에는 총 다섯 개의 전각이 있었고 사람들은 이를 척씨세가를 떠받드는 다섯 개의 기둥이라 불렀다. 척씨세가의 본가가 있는 곡산을 담당하는 치원각(治原閣). 의주지역을 담당하는 망이각(網夷閣). 함흥지역을 담당하는 보왕각(保王閣). 동북면의 여진족의 간자(間者)를 경계하는 제근각(制根閣). 거기에 다른 전각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하거나 기동타격대로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담당하는 소사각까지. 곡산 척가, 척씨세가의 무인들은 중원의 문파나 세가와 비교해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먼저 곡산 척가의 무인들은 검 이외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곡산 척가의 시조인 척준경이 남긴 곡산검법만으로도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검 이외의 무기는 무기로 쳐주지도 않았다. 거기에 직급이나 무공 수위에 상관없이 무조건 곡산 척가의 검진인 척가검진(拓家劍陳)을 익혀야 했다. 척씨세가의 정체성의 절반 정도는 군부의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고려에서도 척씨세가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무인집단이라면 상왕 이성계의 가별초(家別抄) 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소사각주인 척준영이 곡산으로부터 멀리까지 떨어진 이곳 의주 근처에까지 온 이유는 간단했다.
“실종이라.”
최근 들어 이 근처에서 실종되는 백성의 수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함흥 지방에서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좌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소사각은 요즘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다.
“인매골이라 하였느냐?”
“예, 각주.”
인매골의 존재에 대해서 소사각이 알게 된 것도 얼마 전의 일이었다. 겉으로는 그냥 관아조차도 없는 작은 고을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근방에서 백성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늘어나면서 인매골이라는 곳의 꼬리가 잡힌 것이다.
“감히…….”
소사각이 추구하는 이상은 한 가지였다. [곡산 척가 근방의 100리 안에는 불순한 의도를 품은 죄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기치로 삼았고, 무예를 수련하여 사사로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도왔기 때문에 사병들을 혁파하고 병권을 왕권 아래로 묶은 조선 왕조에서도 곡산 척가는 눈 감아줬다. 사실상 곡산 척가가 사라지면 조선의 북쪽은 무법천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격오지였기 때문에 병사를 뽑는 것도 어려웠고, 무관들을 보내 토벌하는 것도 그때뿐이었다. 마치 잡초처럼 시간이 지나면 그런 놈들이 다시 생겼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왕권이 닿지 않는 곳의 치안을 곡산 척가에 맡겼다.
“사람 시장이 열리는 게 오늘이렷다?”
척준영은 소사각 소속의 무인들 스물을 이끌고 인매골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책임지는 구역 안에서 인신매매가 버젓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상태였다.
“예, 각주님.”
“쓰레기 같은 놈들.”
척준영의 두 눈이 부르르 떨렸다. 척씨세가에도 노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노비를 늘리겠다고 멀쩡한 백성을 잡아다가 팔지는 않았다. 백성을 납치해서는 무조건 노비로 만드는 잔악무도함이라니.
“전방에 인매골이 보입니다.”
그때 척후조가 돌아와 척준영에게 보고했다. 척씨세가는 많은 부분이 군부와 맞닿아 있었다. 이렇게 척후조를 보내는 것 등이 그러했다.
“적의 수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숨어 있다는 것이로구나.”
척준영이 턱을 쓰다듬었다. 스무 명밖에 안 되는 인원이라고 하지만 소사각의 무인들은 전부 이류 이상이었다. 인신매매단 같은 놈들에게 사용하기는 아까운 칼이었다.
“무턱대고 들어갈 수는 없는 법. 흐음…….”
그런데 그때 척후조 중 하나가 말했다.
“헌데 그 안으로 남자 둘과 여자 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자 둘과 여자 둘?”
“유랑객으로 보였습니다.”
오늘은 인매골에서 사람 시장이 열린다고 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 날 인매골에 찾아가는 유랑객이라?
“차림새는 어떻더냐.”
“양반 하나와 상것 둘. 그리고 기생 하나인 듯 보였습니다.”
“기생에 양반? 오호라.”
척준영의 얼굴에 잘 걸렸다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사람 시장에 온 양반이라면 그 목적은 뻔했다. 노비를 사기 위함이다.
“노비를 사사로이 거래하는 것은 국법에 어긋나는 법.”
척준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절정의 극에 달해 있는 척준영에게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흘렀다.
“인신매매단 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추살하고 사람을 사러 온 무도한 양반들을 체포한다. 가자.”
“예, 각주님.”
척준영이 몸을 날리자 스무 명의 소사각 무인들이 그를 따라 몸을 날렸다. ***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마을 같구나.”
동군영이 인매골이 들어서면서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말했다. 방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지나치게 조용하기도 하네요.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이건 좀…….”
인매골에는 기이할 정도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만우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이 없어.”
“그럴 리가. 우리가 왔던 게 고작 반시진 전인데?”
그 만 해도 분명히 사람들이 있었다. 직접 쌀 몇 줌과 만찬을 받아온 것이 방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쥐새끼 한 마리도 없어. 우리를 지켜보는 놈들도 없고.”
만우는 감각을 건드리는 기이한 느낌에 미간을 몇 번 찌푸렸다. 자꾸만 자신을 성가시게 만드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래서 확 잡아채려고 하면 다시 멀어졌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자잘하게 간을 보고 건드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만우였다. 그때 동군영이 근처에 있는 초가집을 향해 싸리문 너머로 소리쳤다.
“게 있느냐!”
동군영이 소리를 쳤지만 초가집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만우는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아무도 없어. 본주의 기감은 틀리지 않아.”
“어찌하여…….”
동군영이 만우를 쳐다봤다.
“아니. 그놈들은 무슨 변고가 일어났다고 절대로 못 알려.”
그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자신들이 오는 것을 알고 이곳에서 미리 빠져나간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설명이 되지 않는다. 놈들은 제 발로 이곳까지 걸어서 올 수 있는 놈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분명 방매와 호선이 왔을 때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마치 귀신마을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잠깐. 뒤로 물러나. 열 발자국.”
그때 무엇인가를 느낀 만우가 고개를 돌리며 괘검을 뽑아들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괘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괘검이 만우의 1장 앞에 반원을 그렸다. 호선이 방매와 동군영을 챙겨 뒤로 물러났다.
“조심해!”
방매가 만우를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그때 호선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저쪽. 사람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호선이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동군영은 만우의 너른 등판을 한 번 쳐다본 후 호선에게 말했다.
“안내해 주겠나?”
“…….”
호선은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슬쩍 가렸다. 딱히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동군영은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로 호선에게 말했다.
“그대가 있으면 위험하지 않겠지. 짐은 되지 않을 터이니 그곳으로 안내를 부탁한다.”
동군영은 인매골이란 곳이 실존한다는 것에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더불어 위정자의 치세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