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실종자의 고을(3)2019.08.03.
“지켜봐? 작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방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분명 방매는 자신들을 지켜보는 시선을 느꼈다.
“마을에서 식재료를 사고 나온 후에는 안 느껴졌는데…….”
내공도 별로 없는 방매에게 들켰을 정도면 상당히 노골적이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들켜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감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관아도 없었지?”
“응. 없었어.”
“……이상하네.”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대놓고 감시를 했다면 마을에 들어온 이방인들에 대한 경계심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 마을은 제대로 된 장터도 없을 만큼 그 규모가 작았다. 그러니 파락호 같은 놈들이 있을 리도 없다. 관아도 없을 정도로 작은 고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너랑 호선을 노리고 온 것 같은데.”
만우가 방매와 호선이 다녀온 고을 방향을 보면서 고개를 돌렸다.
“쫓아온 게 신기하네.”
이곳부터 가까운 고을까지의 거리는 무려 반나절이다. 방매야 호선 때문에 빨리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지만 놈들은 아닐 터였다.
“말을 타고 있어.”
“말?”
자신은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 하는 것을 만우가 태연하게 하는 것에 방매는 놀라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얼굴이었다.
“말이라니. 그럴 리가 없네.”
동군영이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가 자신을 쳐다보자 동군영이 말했다.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의 말은 모두 관아에서 관리하네. 말 목장들도 물론이고.”
“그런데 말 소리가 들리는데?”
“뭐가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만약 말을 탔다면 방매와 호선을 쫓아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 충분히 말이 된다. 말이 힘든 것이지 사람이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100장까지 왔는데?”
“100장…….”
동군영은 놀라려다가 아예 포기했다. 100장(=300미터) 밖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더 이상 진짜냐고 묻기도 지쳤다.
“진동이 느껴지잖아.”
만우는 들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며 말했다. 하지만 동군영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 했다. 그냥 만우가 특별했다. 동군영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관아도 없는 작은 고을인데, 방매와 호선을 말을 타고 쫓아왔다?”
동군영의 표정이 변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고을에 들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거긴 왜…… 아. 맞다. 너 어사였지.”
만우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군영이 경박하고 소심하기는 해도 그는 왕의 명령을 받은 어사였다. 지방을 시찰하고 왕이 권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사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바로 어사다.
“백성이 고통 받고 있는 곳을 그냥 외면하고 갈 수는 없지. 관아도 없는 곳이라고 했으니까.”
의주에서 벌어지는 난리야 의주판사가 있으니 그 책임자가 알아서 하면 된다. 거기에 곡산 척가라고 그 무도한 무림인들이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으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런 오지에 있는 작은 고을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관아조차도 없는 곳에 무도한 무리들이 있다면 어사로써 그 마을 백성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군영은 그렇게 배웠고, 유학자라면 더더욱 측은지심을 가지고 백성들을 돌봐야 하는 법이다.
“가자.”
“끙…….”
만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모닥불 안에서 굴러다니는 놋밥솥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일 다경 정도면 밥이 될 거야.”
만우는 자신을 쳐다보는 방매와 동군영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전에 돌아올게. 적당히 정보도 모아오고. 그게 역졸이 할 일이잖아. 안 그래, 어사 나리?”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만우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궁금하거든.”
만우는 그렇게 말하고 방매의 얼굴을 쳐다봤다. 젖살이 남아 있고 남자 같은 모습이지만 그래도 꽤나 예쁜 축에 속하는 얼굴이었다.
“여자를 노리고 온 놈들이 누구인지. 아니, 조선에도 그런 놈들이 있는지.”
그리고 여자를 노리고 온 놈들이라면 어떤 놈들일지 대충 예상이 갔다. 만우는 그런 놈들이 이 조선에도 있는 것인지 그게 궁금했다.
“저 놋그릇의 밥이 되기 전까지 돌아오지.”
원소에게 호기롭게 외치고 나섰던 관운장처럼 만우가 놋밥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이런 곳에서 보기 힘든 미색이다. 어서!!”
있는 힘껏 말허리를 박차며 관도를 내달리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다들 하나로 통일한 복장을 입고 있는 무리의 가장 맨앞에 나선 이는 의주 사람 무전으로 올해 서른다섯을 먹은 사람이었다.
“상등품을 눈앞에서 놓칠쏘냐!”
그는 스스로를 상인(商人)이라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원하는 물건을 중개하여 판매하고 그 차익으로 이득을 챙기는 상인. 판매하는 물품이 다른 상인들이 취급하는 것과 다르기는 했지만 분명 그가 취급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상품이었다. 사람. 그는 사람을 사고파는 노예상인이었다.
“양반가 여식? 필요 없어. 잡아다가 내다팔면 누가 알아. 여기는 함경도다!!”
마을에 들렸던 이방인들을 우연히 발견한 무전은 그 순간 두 눈이 뒤집혔다. 의주에서 함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은 사실 사람을 사고파는 장이 달포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이었다. 인매골. 사람을 파는 곳이라 하여 인매골이라 불리는 고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사는 아주 작은 고을이었지만 실상은 사람시장이 열리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상품들이 안 들어와서 걱정이었는데, 잘됐다!”
사람을 파는 무전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사람을 사는 사람과 팔릴 사람. 그런 점에서 자신의 눈에 띄었던 두 여자는 가히 운이 좋지 않았다.
“조 대감에게 상납하면 꽤나 쏠쏠하겠구나!”
매달 인매골에서는 사람시장이 열렸지만 이번 달에는 사람시장이 열리지 않았다. 매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함흥의 조 대감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무전을 찾아와 남녀를 막론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매물을 일거에 사들였다. 그중에는 별로 인기가 없는 노인이나 어린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가리지 않고 모든 노비들을 사들였다.
“내 두둑히 인심을 쓸 테니 말을 더 빨리 달려라!”
무전의 인매골에는 추노꾼들이 많았다. 도망간 사람을 추적하여 잡아오는 데는 도가 튼 인간사냥꾼들이 그의 일에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잡아다가 노(奴) 인두를 찍어버리면 노비가 되어버리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무전은 사람장사로 엄청나게 큰돈을 만졌다. 그 돈으로 의주와 함흥에 적당히 뇌물을 먹이니 인매골은 관아의 간섭도 없이 마음껏 사람들을 잡아다가 파는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인매골이 얼마나 유명해진 것인지 의주나 함흥은 물론, 국경 너머의 요동이나 여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이랴!!!”
마을에서 빠져나간 뒤 곧바로 두 여자를 덮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여자들이 말을 타고 왔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무전이었다. 하지만 그 여자들의 미색이 워낙에 출중했던 탓에, 곧바로 추노꾼들을 닦달하여 흔적을 쫓아 계속해서 달린 것이다. 휙! 그런데 그런 무전의 앞에 웬 시커먼 그림자가 턱하고 내려앉았다. 놀란 무전이 고삐를 잡아채자 말이 투레질을 하면서 앞발을 치켜들었다. 히히히힝!!
“워워!!”
하마터면 낙마할 뻔한 무전이 말을 진정시키면서 앞을 가로막은 놈을 성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 무전의 양옆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추노꾼들이 튀어나갔다.
“저 놈은 내 것이다!!”
“헛소리!!”
무전은 자신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추노꾼들이 튀어나간 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추노꾼들이 저렇게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간단했다. 각자가 잡는 노비의 수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무전은 그것을 성과급이라고 불렀다.
“이놈!!!”
잡아서 노비로 만들어 팔아먹어야 할 놈이었기 때문에 추노꾼들은 날붙이를 쓰지 않았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들은 채찍이나 몽둥이였다. 잘못해서 날붙이나 화살을 썼다가 불구가 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게 다 자신의 손해였기 때문이다. 휘익!!! 뚝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그림자를 향해 추노꾼의 채찍이 허공을 날았다. 채찍은 노비를 잡는데 아주 유용한 무기였다. 맞으면 아프지만 몇 대 맞는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골병이 들일도 없고, 편을 잘 다루면 상처를 내는 일 없이 그냥 잡아채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휘리릭!!! 채찍이 사람인 것이 분명한 그림자의 몸에 감기자 추노꾼이 쾌재를 불렀다. 이제 당겨서 쓰러뜨리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익!!!”
두두두!!! 채찍을 담긴 추노꾼의 입에서 용쓰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채찍의 주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끌려오거나 쓰러져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몸이 확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말이 달리는 속도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가자 추노꾼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쿵!!! 콰자자작!!
“끄아악!!”
달리던 말 등에서 떨어진 추노꾼을 뒤에서 달려오던 다른 추노꾼의 말발굽이 그대로 짓밟았다. 그러자 끔찍한 소리와 함께 추노꾼이 육편이 되어 쓰러졌다.
“흐음.”
만우는 눈앞에서 사람이 고깃덩어리가 되었지만 무덤덤하게 자신의 팔에 묶인 채찍을 풀었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무전을 쳐다봤다.
“말 좀 묻고 싶은데.”
의외의 상황에 놀랐지만 추노꾼들은 숙련자들이었다. 만우는 자신을 향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채찍들과 몽둥이들을 보면서 입을 쩝하고 다셨다.
“옷 드러워질라.”
만우는 괘검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이런 놈들에게 괘검을 드는 것은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격이었다. 촤자자작!! 그런 만우를 향해 편이 날아들었다. 만우는 혀를 한 번 쯧하고 찼다.
“짐승의 시대도 아니고.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놈들이 많은 거야?”
만우가 손바닥을 편 채 부드럽게 좌에서 우로 흔들자 날아오던 채찍들이 만우의 손에 빨려들듯이 붙잡혔다. 그리고 만우가 힘을 주자 사방에서 추노꾼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끄헉!”
우당탕탕!!! 잘 달리던 말 위에서 떨어진 추노꾼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만우는 쯧하고 혀를 한 번 찬 후 바짝 얼어버린 채로 자신을 쳐다보는 무전을 보면서 웃어 보였다.
“묻고 싶은 말이 있거든?”
“으, 으, 으아악!!!!”
무전이 고삐를 힘껏 옆으로 잡아챘다. 그러자 말이 몸을 훽하고 돌리면서 만우를 향해 몸을 부딪쳐왔다. 말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무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장에서 기마병이 그토록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만우는 다가오는 말의 몸통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쿠웅!!! 히히이이잉!! 만우의 손바닥이 말의 몸통을 가볍게 건드렸다. 동시에 만우가 스르륵 귀신처럼 옆으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무전은 만우를 뿌리치지 못 했다.
“우와아악!!”
우당탕탕!! 말이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그대로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무전도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으윽…….”
무전은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일단 몸을 일으켰다. 다행인 점이라면 달리던 말 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달리던 말 위에서 떨어졌다면 추노꾼들의 뒤를 따랐을 것이다.
‘괴, 괴물.’
무전은 두 눈을 부릅떴다. 쓰러진 말을 보니 말의 몸통에 사람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손바닥을 가볍게 가져다 댄 것만으로 인간의 몸보다 강건한 말을 즉사시킨 것이다. 저벅. 그런 무전의 귓가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금 이 근처에서 날 발자국 소리는 한 명밖에 없었다.
“네놈 때문에 죽이지 않아도 되는 말을 죽였지 않나.”
만우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무전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올렸다. 사람이 죄가 있는 것이지 말에게는 죄가 없었다. 만우는 무전을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착하게 대해주려 했지만 권주를 걷어찬 것은 네 놈이야. 그러니까…… 물어보는 말에 대답 잘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