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실종자의 고을(2)2019.07.30.
만우의 눈빛이 또다시 바뀌었다. 예리한 검날과도 같은 눈이었다. 아니, 위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만우가 하나의 날카로운 검이 되어 있었다. 신검합일(身劍合一). 말하는 검이 된 만우의 입이 달싹였다.
“살려줄게.”
만우가 땅을 밟은 발의 방향이 바뀌었다. 스슥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고요했다. 위문은 만우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거도는 사정없이 공명음을 뿌려대면서 광폭하게 울부짖고 있었지만 마치 겁에 질려 시끄럽게 짖어대는 강아지처럼 느껴졌다. 반면 만우는 하늘이었다. 고요하고 정적이 감도는 그런 하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인간으로서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그런 불가해(不可解)의 하늘.
“참고로 내가 사용하는 건 기천검(氣天劍)이라고 해.”
만우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위문은 어깨를 웅크리고 몸에 힘을 줬다. 어떻게든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대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만이라도.’
버틴다!라고 생각한 위문의 두 눈이 의지를 품었다. 그런 위문을 보면서 재밌다고 느낀 만우의 검이 위문을 향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검이었다. 하지만 위문은 그 검을 마주한 순간, 자신이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기천(氣天). 분명 땅을 딛고 있었는데 땅이 사라졌다. 기의 하늘에 갇히자 오감이 어지러워졌다. 그러자 다가오는 만우의 검을 향해 폭혈도를 들어올릴 힘도 함께 사라졌다. 푸화아악!!! 그런데 그 순간 만우가 만든 기천을 검은 발톱 같은 것이 찢어발겼다. 그와 동시에 위문의 눈이 커졌다.
“큭!! 이런 사술 따위!!!”
쿠콰콰콰!!! 폭혈도에서 거대한 공력이 일어나며 전면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하지만 위문은 주저하지 않고 몸을 뒤로 날렸다. 자신의 공격이 거대한 하늘 안에 묻힌 것처럼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샤아아악!!! 하지만 다음 순간 기의 하늘이 사라지고 만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만우는 자신의 괘검을 내려다보았다.
‘흠집.’
만우의 괘검에는 세 줄기 고랑이 깊게 패어 있었다. 기천을 찢어발기면서 휘둘러진 검은 발톱 때문이었다.
“너희들도 마교도냐?”
만우의 말에 위문이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아본 위문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주!!”
“위문. 뒤로 물러나라.”
주창이 위문을 향해 말했다. 주창이 손에 쥔 마련검이 웅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련검을 본 만우의 눈이 커졌다.
“그거! 천마 그 아저씨 검 아니야?”
만우가 마련검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검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만우의 버릇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주창은 차분한 표정으로 허공에 마련검을 몇 차례 휘둘렀다.
‘묵직한데.’
“그 정도면 내 기천을 찢어발길 정도는 되지!”
만우가 마련검을 탐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창은 만우를 보면서 눈을 빛냈다.
“검주 만우. 맞소?”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창이 마련검을 들어 만우를 겨누면서 말했다.
“난 주창이라 하오.”
“주창?”
“혈세천마가 내 아버지 되시지.”
“아! 근데 하나도 안 닮았는데? 그 아저씨는 그냥 배 나온 아저씨였는데 그쪽은 잘생겼는걸?”
만우는 긴장감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주창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심 만우도 주창을 보면서 감탄했다.
‘화경. 제법 완숙한.’
만우는 겉으로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과 저놈이면…….’
폭혈도 위문도 만우 앞이니까 쪽도 못 썼지만 둘을 상대하려면 만우도 꽤나 시간이 걸릴 듯했다.
‘더 오고 있어.’
그리고 그런 폭혈도와 비슷한 수준의 마교도 여섯 명이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되면 만우의 열세다.
“주창이라. 기억해 두지.”
“나도. 그대의 소문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두도록 하겠소.”
“그놈의 소문 소문.”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만우의 미간을 겨눈 주창의 검극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주! 그냥 이곳에서 저자를…….”
“위문!”
주창이 엄한 목소리로 만우를 향해 말했다.
“이곳에서 검주 만우를 꺾어봤자 보증해 줄 사람이 없다.”
만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자신을 꺾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말하는 주창 때문이었다.
“누가 꺾여준대?”
“기천. 그게 그대의 검이라면…….”
주창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주창의 얼굴은 남자가 보기에도 짜증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잘생겨보였다. 만우는 기생오라비 같다면서 투덜거렸지만 하릴 없는 혼잣말이었다.
“내 천마검(天魔劍)은 파천(破天)의 검이지.”
“흐흐흐. 재밌는 놈이구나. 혈세천마보다 낫다.”
“당연!”
주창의 검에서 검은 마기가 뭉클거리며 피어올랐다. 검기였다.
“나는 일패를 꺾고 중원을 제패한 천하지존(天下至尊)이 될 몸이니까.”
“푸흐흐흐흐.”
만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의주 쪽에서 관군들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쉽지만 앞의 주창과 붙어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게 밥을 먹여주디? 게다가 일패면 네 아버지 아니야?”
“아니.”
주창의 두 눈에서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당장이라도 검을 겨뤄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창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결판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무림십좌의 일패(一覇)는 지금부터 당신이오. 만우.”
“크하하하하!!!”
“아니, 일주(一主)가 마음에 드시오?”
만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최고로 쳐주지만, 자신을 꺾고 천하지존이 되겠다는 광오한 말이었다. 만우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괘검을 허공에 한 번 흔든 후 괘검집에 꽂아 넣었다.
“마음대로. 흐하하하하. 내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 어리광, 받아주도록 하지.”
만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만우의 등을 본 위문이 도를 움찔거렸지만 주창이 막았다.
“위문.”
“대주! 어째서 저자를…….”
“…….”
주창은 가만히 마련검을 들어올렸다. 마기를 다룰 수 있는 마교의 전설적인 대장장인 마검장(魔劍匠) 유춘이 300년 전 만년한철과 마기로 만 번을 제련하여 만든 신물(神物)이 바로 이 마련검이었다. 그런 마련검에, 손톱만 한 생채기가 생겨 있었다.
“!!!”
위문이 두 눈을 부릅 뜨고 경악성을 토해냈다. 그 생채기를 본 주창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기쁘구나. 넌 기쁘지 않으냐?”
“…….”
위문은 기쁘지 않았다. 위문에게는 공포였다. 보는 것 만으로도 질식해 버릴 것 같던 기의 하늘, 기천도 그렇고 그 어떤 것으로도 상처를 낼 수 없는 마련검에 상처를 낸 것만해도 그랬다. 하지만 주창은 뭐가 그리 만족스러운지 대소를 터뜨렸다.
“내가 더 올라갈 곳이 있음이. 다음 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상대가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저자는 내 스승이요, 나를 방심하게 만들지 않으니 좋은 호적수에 내 외로움을 달래주었으니 친우다!”
주창은 만우가 사라진 방향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봤다.
“금방 다시 만나게 될 거요. 검주.”
***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웃는 겐가? 난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구만…….”
옆에서 동군영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만우는 바보처럼 실실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딱, 딱, 딱. 마교의 주창과 만난 지 하루가 꼬박 지나가는 날이었다. 하루를 그렇게 내달렸으니 이제 함흥까지는 나흘이면 도착할 것이다. 만우는 딱딱거리면서 타들어가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웃었다.
“왜? 재밌잖아. 날 꺾겠다고 달려드는 게 귀엽기도 하고.”
동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호선은 각종 도술에 능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안전하게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만우에게 달려들던 그 흉험한 기세의 남자를 떠올리자 팔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족속들이야.”
검보다는 붓의 힘이 더 크다고 믿는 전형적인 유학자인 동군영은 고개를 저었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이 뭐라고 생각하건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저 왔어요!”
“저도요.”
그때 근처 고을에 식재료를 사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방매와 호선이 나타났다. 호선을 타고 갔다 왔기 때문에 걸어가면 반나절을 걸렸을 길을 순식간에 다녀왔다.
“흠.”
호선이 진체(眞體)인 호랑이로 돌아가고 다시 인간으로 둔갑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 의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쯤 흘러내려 어깨가 보이는 호선의 모습에 동군영이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근데 여기도 엄청 비싸.”
방매가 투덜거리면서 보따리를 풀었다. 식재료라고 해봤자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다. 쌀이나 조 몇 줌에 집에 만든 백김치 같은 밑반찬들 정도.
“객주나 주막도 없고, 장도 없어. 작은 고을이니까…….”
방매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우가 그런 방매를 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지 마!”
“왜. 잘했다는 건데.”
만우가 웃으면서 딱딱거리는 모닥불에 맨 손을 집어넣더니 불쑥하고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고기를 꺼내들었다.
“고기? 이건 어디서 났어?”
고기를 본 방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잡았지.”
시세에 밝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 능숙한 사람은 방매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방매가 도맡아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토끼 다리를 내민 만우가 코 밑을 쓱하고 훔쳤다.
“그럼 이걸로 밥 해먹으면 되겠네.”
“또 그거 할 거야?”
밥이란 소리에 방매가 눈을 반짝였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사실 이런 야전에서 밥을 해먹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밥을 할 수 있는 솥이란 것이 워낙에 큰 물건이기 때문에 고작 세 명이 전부인 만우 일행이 밥솥을 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어서 해.”
방매가 봇짐을 풀어서 뭔가를 뒤적이더니 만우에게 놋그릇 두 개를 내밀었다. 문양을 보니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누가 위를 잡고 찢어버린 듯 입 부분이 엉망이 된 놋그릇이었다.
“아까워하더니.”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는데 뭐.”
유기장인이 만든 귀한 방짜 유기라면서 이걸로 밥을 했을 때 울상을 지었던 방매였다. 하지만 방매는 은근히 포기가 빨랐다.
“물.”
촤아악! 만우는 이런 노숙에는 이골이 나있었다. 중원에서 질리도록 해봤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여러 가지 노하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놋그릇이나 철그릇으로 음식을 하는 것도 그중 한 가지였다. 물론 무림인들이 이런 방법을 보면 입에 거품을 물면서 뒷목을 부여잡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석석석. 만우는 능숙하게 놋그릇에 물을 받아서는 쌀을 씻었다. 그러고는 그 쌀뜨물을 방매가 꺼내놓은 또 다른 놋그릇에 부어놓고는 다시 물을 적정량의 물을 받았다.
“뚜껑.”
방매는 조수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다. 만우가 한 마디를 하면 척척 움직여 만우가 달라는 것을 건네주었기 때문이었다. 달그락. 만우는 놋그릇의 입을 서로 맞추고는 꾸욱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놋그릇의 입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그러자 놀랍게도 놋그릇이 마치 찰흙처럼 엄지손가락에 눌린 것이다. 만우는 그렇게 두 개의 놋그릇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아귀가 착 맞게 만들더니 놋그릇이 뜨겁게 달궈지면서 하나의 커다란 공처럼 변해 버렸다.
“괘검.”
“여기!”
방매가 기다렸다는 듯 박달나무 지팡이를 내밀었다. 만우는 한 손으로 지팡이 안에서 괘검을 뽑아들더니 놋그릇을 스윽하고 문지르자 지저분하게 나왔던 놋그릇의 잔여물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끝.”
원래부터 그렇게 주물이 되어 나온 듯, 커다란 공이 된 놋그릇을 모닥불 안으로 던져넣은 만우가 씩 웃었다. 짝짝짝.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방매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동군영은 어깨를 으쓱이는 만우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어.”
호선은 명상을 하겠다며 나무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만우는 그녀가 사냥을 나간 것임을 알았다. 500년 동안 산 호랑이라고 하지만 그런 호랑이도 먹어야 산다.
“이상한 거?”
방매의 말에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