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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실종자의 고을(1) (60/400)

060. 실종자의 고을(1)2019.07.27.

호선의 속도와 만우의 경공이 합쳐지니 의주를 빠져나가는 것 정도는 금방이었다.

16553201719365.jpg[경신법(輕身法)은 생각보다 뛰어나시지 않네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우의 속도에 호선이 맞춰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16553201719371.png“그래. 별로 필요가 없었거든.”

기천(氣天)은 중원무학과 그 궤를 달리하는 무학이었다. 태극의 흐름인 반장(攀掌)에 따라 몸과 마음의 기를 내통시키는 심기단법(心氣丹法)을 중심으로 했다. 태극의 묘리는 유(流)에 있었기 때문에 쾌(快)를 추구하는 경신법과는 그 상성이 좋지 못했다. 그 때문에 보법(步法)이 있기는 했지만 효율이 좋은 경신법은 아니었다. 단, 평지에서 달릴 경우에만 그랬다.

16553201719365.jpg[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호선은 만우에게 부족한 것을 찾은 것이 그리도 기쁜 것인지 계속해서 만우에게 말을 걸었다. 만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16553201719371.png“더 빨리 못 가서 안 가는 게 아니야.”

만우가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단지 효율이 좋지 않을 뿐이다. 속도는 빠르지만 체력이 형편 없는 말이라고나 할까.

16553201719365.jpg[에이. 배우세요. 배워서 남 주나? 나쁠 것 없는데요.]

16553201719371.png“빨라서 못 잡은 놈들 없어.”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르릉!!!! 콰아아!! 그런데 그 순간 마치 뇌성이 치는 소리와 함께 강맹한 기운이 허공을 격하고 날아왔다. 갑작스런 공격이었지만 만우는 우장(右掌)을 들어올렸다. 꽈앙!!!

16553201719365.jpg[이크!]

호선은 괜히 호랑이란 것이 아니라는 듯 허공에서 부드럽게 허리를 젖혔다. 그러고는 급격하게 속도를 높이며 근처의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16553201719365.jpg[숨을게요!]

호선의 모습이 괜히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게다가 동군영과 방매도 있었기 때문에 호선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쿵, 쿵, 쿵.

16553201719371.png“흠.”

만우는 기운을 장력으로 받아친 반동으로 땅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땅에 떨어지고 나서도 세 발자국이나 뒤로 밀렸다. 기운의 강맹함에 제법이었기 때문에 만우가 입맛을 다셨다.

16553201719371.png“제법.”

호선보다 느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따라잡힐 만한 속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만우가 달리는 속도에 정확하게 맞춰 기운을 쏘아낸 것을 보면 상당한 고수였다.

16553201719371.png“비수라.”

만우의 손가락 사이에 잡힌 비수가 달그락하고 땅에 떨어졌다. 단단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흔히 살 수 있는 비수였다. 기운을 담아서 쏘아보낸 비수가 만우를 세 발자국이나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무슨 소리야!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만우는 의주의 성벽에 횃불이 켜지는 것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말 그대로 의주에서 나오자마자 비수가 날아온 것이다.

16553201719371.png“그냥 산적은 아닌 것 같고.”

산적이라면 만우를 보고 덤벼들 리가 없다. 무인이 드문 조선에서는 아마 신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만우를 이렇게 공격한 것을 보면 무림인이었다.

16553201719371.png“장보도가 사람 여럿을 망치네.”

만우가 히죽 웃었다. 만우의 두 눈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만우는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16553201719371.png“피냄새가 진동한다. 나와라 마교의 잡졸들아.”

먼저 공격을 받은 만우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패도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거대한 도를 어깨에 걸친 남자가 걸어나왔다.

16553201719371.png“호오. 거도(巨刀)?”

만우가 씩 웃었다. 수풀을 헤치고 나온 남자도 만우와 비슷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만우를 만난 것이 기뻐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16553201742591.jpg“검주라니. 대어로구나!”

주변의 나무들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웅혼한 공력이 느껴지는 듯 했다. 만우는 붉그스름한 거도를 쳐다보고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를 향해 말했다.

16553201719371.png“폭혈마도라는 늙은이가 있다던데. 넌 늙지 않은 것 같구나.”

16553201742591.jpg“내 사부님이다!”

16553201719371.png“호오. 애송이로구나.”

만우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험상궂게 생긴 남자, 폭혈도(暴血刀) 위문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16553201719371.png“내가 보아 하니 중원의 마교 놈들은 항상 죽립을 쓰고 다니던데. 그건 어디로 팔아먹었나?”

죽립은 본래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였다. 하지만 무림에서 죽립을 쓰는 이들은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마교와 낭인. 무림에 출두할 때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죽립을 쓰거나, 노숙이 일상이 된 낭인들이 죽립을 애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폭혈도는 죽립을 쓰고 있지 않았다.

16553201742591.jpg“이곳은 명이 아니니까.”

16553201719371.png“하핫. 그래?”

만우는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재밌다는 듯 웃었다. 폭혈도가 이를 드러내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01742591.jpg“검주, 네놈의 실력 한번 보자꾸나.”

16553201719371.png“내 실력?”

만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폭혈도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도발했다.

16553201742591.jpg“네놈이 본교의 천마께 비무를 신청했는데 천마께서 받아주지 않으셨다는 소문이 떠돌더구나.”

16553201719371.png“아. 그 아저씨?”

폭혈도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솟아올랐다. 마교도들에게 당대의 교주인 천마는 아버지이자 신이다. 그 신에게 불경한 만우를 보며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16553201719371.png“그거 진짜야. 뭐, 너희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만우는 히죽대면서 손목을 돌렸다. 불시에 받아낸 비수 때문에 손목이 약간 뻐근했기 때문이다.

16553201719371.png“아후 무식해라. 비수에 공력을 그렇게 많이 실어서 던지는 놈이 어디 있냐?”

딴말을 하는 만우에게 폭혈도의 분노가 점점 강해졌다. 원래라면 화경지경인 만우를 조우하면 대주인 주창을 불러야 하지만 폭혈도는 부르지 않았다.

16553201742591.jpg“아무래도 네놈. 그 입을 찢어놔야 조용해지겠구나.”

폭혈도는 혼자서 만우를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애시당초 아무리 화경이라 해도 한 명에게 투귀대 전원이 합공을 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아무리 화경이라고 해도 만우의 나이는 이십 대다. 만우에 대한 많은 소문들이 있지만 원래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16553201742591.jpg‘나도 초절정.’

고오오!!! 위문이 들고 있는 거도의 이름이 폭혈도였다. 잠력을 격발하여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만들어주는 폭혈공으로 펼치는 폭혈도법은 투귀대주인 주창도 정면에서 받아내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극패(極覇)의 무공이었다.

16553201742591.jpg‘일방적으로 지지는 않는다.’

폭혈도 위문은 성격이 급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애초에 머리가 그렇게 나쁘다면 초절정에 들어서지 못 했을 것이고 태상호법의 제자가 되지도 못 했을 것이다. 단지 끓어오르는 호승심 때문이었다. 그래도 검주와 몇 번 어울리다보면 자연스레 폭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듣는다면 대주인 주창이 오리라고 위문은 확신했다.

16553201719371.png“내 입을 찢는다고?”

만우가 폭혈도를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16553201719371.png“혈세천만의 입부터 찢어야지. 지는 게 무서워 도망다녀놓고 입 꾹 다물고 있으니까. 원래 지도자란 진실해야 하는 법 아니겠어?”

16553201742591.jpg“이놈!!!!”

콰앙!!! 천마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에 위문은 더 이상 참지 않고 공력을 폭발시키며 만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술을 사기 위해 의주로 가는 길에 만우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적어도 위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16553201742591.jpg‘네놈을 꺾고, 교 내에서 나의 입지를 다진다!’

다음 대 천마가 주창이 될 것이란 것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대부분의 마교도들에게는 주창이 아니라면 누가 천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30대의 나이에 화경에 든 주창이다. 현 천마인 혈세천마도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화경에 도달했다. 대부분의 무림십좌들이 50대, 혹은 60대에 화경에 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창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주창의 오른팔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공을 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검주 만우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실력이 뻥튀기 된, 정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파도 아닌 낭인. 마교도인 위문이 보는 만우였다.

16553201719371.png“아니. 한족들은 머리가 다 멍청한 거야?”

만우는 자신을 향해 한 줄기 빛이 되어 날아오는 위문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16553201719371.png“그렇게 된통 깨져놓고도…… 하긴, 쪽팔리니까 숨긴 거겠지.”

만우에 대한 실력을 놓고 아직도 왈가왈부하는 이유? 만우가 보기에는 간단했다. 만우에게 깨진 놈들이 정파인지 사림곡인지 마교인지 다들 콧대가 높은 놈들밖에 없어서 깨져놓고서도 쉬쉬하면서 숨겼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어린 나이와 고작 무림출두 5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고 다들 만우의 실력이 과장되었다면서 깔보는 것이다. 직접 몸으로 겪어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소문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보면 몸이 사서 고생하는 놈들이 많았다.

16553201719371.png“너도 그럴 거냐?”

후웅!!! 만우는 강맹하게 자신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 날아오는 거도를 가볍게 반원을 슥 그리며 피하고는 폭혈도에게 말했다.

16553201742591.jpg“닥쳐라!”

소문이 과장되었어도 어느 정도 실력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일격을 피해낸 것에 위문은 방심하지 않았다. 부르르르!! 위문의 폭혈도가 부르르 떨면서 공명음을 토해냈다. 검기를 뿜어내기 바로 직전의 단계였다.

16553201719371.png“너도 어린데 제법이구나?”

만우가 어리다고 하는 위문은 올해로 삼십이 넘었다. 무림은 마흔은 넘어야 후기지수 태를 벗을 수 있었기 때문에 후기지수로 구성된 투귀대에 위문이 아직도 있었다. 쫘자자작!!!! 폭혈공이 끓어오르자 위문의 두 눈이 혈기(血氣)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토끼 눈 같은 위문의 눈에 만우가 발을 끌면서 뒤로 물러섰다. 수와아아앙!!! 폭혈공의 특징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공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대신 공력이 부족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우려가 있었지만, 무려 태상호법의 제자인 위문은 어릴 때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먹어왔다. 그런 막대한 공력으로 펼쳐지는 폭혈도법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16553201742591.jpg“혈해(血海)!”

만우의 주변을 붉은 거도의 잔영이 포위했다. 마치 거도의 잔영이 물결처럼 몰아치는 것이 파도가 치는 듯했다. 만우는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혈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01719371.png“과연.”

혈세천마가 꽁지를 감추고 도망가 마교를 경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과연 마교였다. 단일 세력으로는 정파나 사림곡의 그 어느 문파나 파벌도 상대할 수 없다는 마교. 그것처럼 초절정인 위문의 폭혈도법은 같은 초절정인 감령이나 필두보다 한 수 위였다.

16553201719371.png“그런데…….”

만우가 피식 웃으면서 괘검을 들어올렸다. 간장이 심혈을 기울여 나름 하룻밤이 꼬박 넘게 두드린 괘검의 예기가 시퍼렇게 뿜어져 나왔다.

16553201719371.png“내가 바다를 베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나 봐?”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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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문의 눈이 부릅 떠졌다.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인 일격이었다. 하지만 만우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검을 뽑았고, 그것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휘둘렀다. 그런데, 바다(海)가 갈라졌다(斬).

16553201719371.png“야. 근데 초식 이름 멋있다. 혈해라고? 나도 그런 것 가지고 싶은데.”

16553201742591.jpg“쿨럭!!”

만우의 검은 바다를 갈랐다. 괘검이 휘둘러지자 만우의 사방을 포위했던 거도의 잔영들이 일거에 사라진 것이다. 부르르. 위문은 입으로 쿨럭대며 피를 토해냈다. 내부가 진탕된 것이다. 위문의 두 눈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16553201742591.jpg‘일수에. 이 폭혈도가 일수에.’

자신이 일수에 패퇴당했다. 그것도 폭혈도법의 강력한 초식 중 하나인 혈해가 깨진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베기 한 번에.

16553201719371.png“자, 그럼.”

웃던 만우의 표정이 변했다. 아니, 웃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단지 눈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 순간 위문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위문의 거도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만우의 검과 부딪친 경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16553201719371.png“내게 먼저 도를 휘둘렀으면.”

만우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러자 위문이 큭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마치 거대한 태산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위문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6553201742591.jpg‘괴물이다.’

만우에 대한 소문은 과장된 것이 없었다. 과장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까득.

16553201742591.jpg“그렇다고 해서 물러날쏘냐!”

콰아아!!! 하지만 위문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본능에 따라 뒷걸음질을 치려던 몸을 다잡고 공력을 있는 힘껏 내뿜었다. 그러자 만우가 가하는 압력이 약해진 기분이 들었다.

16553201719371.png“흐음…… 포기 안 했네?”

재밌다는 듯 만우가 웃었다. 저렇게 되면 또 상대해 줄 맛이 난다. 만우가 웃으면서 폭혈도에게 말했다.

16553201719371.png“한번 막아봐. 막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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