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조우(4)2019.07.23.
“조선이 소란스러워지겠군.”
“그건 안타까운 일이지.”
중원에서 일어날 혼란을 조선에서 끝내 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만우는 쓰게 웃었다.
“동이족이라서?”
“아닐세.”
동이족. 만우는 한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한족 이외의 다른 민족들을 오랑캐로 몰아가는 그들의 중화주의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민족은 결국 도태하고 만다.
“이 땅의 것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사림곡 놈들도, 마교 놈들도 들어온다?”
“동영(東瀛)도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네.”
“동영까지. 하하.”
만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은 조선 반도가 근방에 힘깨나 쓴다는 놈들의 집합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탁. 순간 검인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솜털이 쭈뼛하고 서는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만우의 기세가 일변했다.
“중원의 셈법을 조선으로 들여오겠다?”
“그게 아닐세. 단지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하여…….”
“검인. 내 친우 검인.”
만우가 고개를 돌려 하늘 어름에 휘영청 걸린 보름달을 쳐다봤다. 검인은 입을 다물었다. 만우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자네랑 영원히 친우로 남고 싶네.”
“…….”
만우의 말 안에서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검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은 나, 아니 본주(本主)가 살아갈 곳이네. 자네들이 오가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으나…….”
콰아아아!!!
“……!!!”
검인의 눈이 커졌다. 밤하늘 위에 떠있던 보름달이 수십 갈래로 쪼개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잔영이었다.
‘기세만으로.’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라 하였다. 검기만으로 사람을 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검기를 불러일으키는 검(劍)이 없이도 검기만으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경지. 만우는 검 없이 뿜어낸 검기만으로 보름달을 난도질했다. 무력시위였다. 자신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말라는 검주 만우의 경고. 지금 만우는 검인의 친우 만우가 아니라 무림십좌의 일인 검주 만우였다.
“나의 평온을 흐트러트리지 말라. 이건 내가 무림맹, 아니 중원무림에 하는 경고이니.”
만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인은 일어서는 만우를 붙잡을 수 없었다.
“다음에 자네가 조선에 유람을 오면, 그때 내가 술 한잔 사겠네.”
탁. 창호지로 덮인 문이 닫혔다. 검인은 우두커니 앉아 만우가 난도질한 보름달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 ***
“가자.”
만우는 오밤중에 자고 있는 동군영과 방매를 차례대로 깨웠다. 지금은 밤에 우는 부엉이나 올빼미도 잠이 들었을 시각이었다. 그 때문에 동군영과 방매가 눈을 부비면서 일어나 만우를 쳐다봤다.
“지, 지금?”
“나 졸려어어어…….”
낮에 하도 여러가지 일을 겪었기 때문인지 졸린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만우는 단호했다.
“지금 떠나야 해.”
“왜?”
“하아아암!!!”
방매는 작은 고양이가 된 호선을 품에 꽉 끌어안으면서 하품을 했다. 펑!!! 호선이 둔갑술을 써서 여인으로 돌아왔다. 그 바람에 풍만한 여체에 깔리게 된 방매가 꽥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무겁잖아!”
“어머. 이게 무겁다니. 방매 너는…… 아. 가볍겠구나.”
호선이 신체의 어딘가를 강조하면서 말하자 방매가 할 말을 잃었다. 정신이 번쩍 든 얼굴이었다. 방매가 캬악하면서 몸을 일으키자 호선이 웃으면서 일어섰다.
“나리. 나리도 어서 준비하셔요.”
“아, 아, 네…….”
여전히 호선은 동군영에게는 커다란 백호로 보였다. 잠결에 호선을 보니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사근사근하게 말해도 마치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같은 소리로 들리는 동군영이었다.
“몇 시진 못 잔다고 안 죽어. 빨리들 일어나. 역참에 가서 말 빌려서 가자.”
“나리야 말을 탄다지만 난 달려야 하는데?”
방매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힐끗 쳐다봤다가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아. 말도 필요 없어. 은밀하게 움직이는게 중요하다고 했지?”
암행어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속 은밀이었다. 그런데 역참에서 말을 빌리면 그 흔적이 남게 된다. 이런 지방은 지방관이나 감찰사가 왕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어명이 있다고 해도 어사가 왔다 갔다는 소문은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암행어사의 목적이 사라진다. 완벽하게 어사를 맞이할 준비를 끝마친 관아에 들려봤자 그곳에 현실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가자는 거야?”
동군영이 서둘러 옷을 입으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는 갓끈을 고쳐 메는 동군영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호선을 쳐다봤다.
“…….”
“……저요?”
호선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만우는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호선을 응시했다.
“어떻게 저 같은 연약한 소녀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저어…….”
쿵. 만우가 발을 한차례 굴렀다. 그러자 약하게 흙먼지가 풀풀거리며 피어올랐다. 무력시위였다. 그것을 코앞에서 본 호선이 몸을 움찔했다. 만우가 피식 웃었다.
“왜. 내일부터는 더 질펀하게 몸을 풀어볼까?”
“으…… 으흑…….”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여쁜 여인을 만우가 핍박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호선이 눈가에 작은 눈물 방울까지 매달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만우가 말한 ‘몸을 푼다’라는 것도 호선이 바란 것이었다.
“살살…… 전 살살이…….”
만우가 피식 웃었다. 둘의 대화를 듣던 방매가 볼을 붉혔다. 전후사정을 다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어가 생략되다 보니 상당히 선정적으로 들린 것이다.
“둘 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방매가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그렇게 해서는 때를 못 빼지. 때 빼달라면서.”
호선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만우가 말한 수상한 표현들은 전부 호선이 원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남녀간의 운우지락이 아니라 호선의 때를 빼기 위함이었다. 소위 말하는 그 ‘때’를 빼기 위해서 호선은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대련 아닌 대련을 했다.
“맞아야 돼. 때가 탄 건 맞아서 빼야 되니까.”
“으으으…… 그건 대련이 아니라 구타예요, 구타.”
대련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대련이라 함은 본래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봐가면서 실력을 겨루는 것이다. 하지만 호선은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다행인 점이라면 지금 같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호랑이의 모습이라는 정도? 물론 그것만해도 사람이 맨 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것처럼 보이니 대단한 축에 속하기는 했다.
“그렇게 맞아서라도 제정신을 유지하는게 낫잖아?”
하지만 괜히 만우가 맨 손으로 호선을 두드려 패는 것이 아니었다.
“알겠어요.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호선이 히잉하는 소리를 내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호선이 만우에게 두드려 맞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만우는 범골에서 대차게 깨졌던 호선에게 속세의 때가 타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신비현상을 발견했다. 등선하지 못한 신선은 악령이 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등선에 대한 욕망과 욕심이 혼령을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배가 고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태에서 먹음직한 고기를 발견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고기를 입에 넣기도 전에 고기를 통채로 불 속에 떨어뜨렸다고 한다면?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 것이다. 신선이 되려다가 바로 그 입구에서 탈락한 경우가 그랬다. 그들이 수련을 한 기간이 1, 2년도 아니고 몇 백 년이 넘어가다보니 그 순간 완전히 미쳐 버리는 것이다. 오욕칠정을 버려야만 될 수 있는 것이 신선이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욕망에 미치게 되면 당연히 악령이 되게 된다. 호선 같은 경우가 특이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런 호선도 느린 속도로 미쳐가고 있었다. 시간이 문제였지 언젠가는 악령이 되는 것은 정해져 있는 수순이었다. 그런 호선의 몸에는 인간의 혈도처럼 악기가 뭉쳐 만들어진 악혈이 있었다. 이 악혈이 일정 수를 넘어가게 되면 호선은 악령이 된다. 그런데 만우와 범골에서 처음 만나 멋도 모르고 달려들었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을 때 그 악혈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만우의 자연지기를 견디지 못한 악혈의 악기들이 줄어들면서 악혈의 크기가 줄어든 것이다. 악혈은 한 번 악기에 오염이 되면 보유하고 있는 선기(仙氣)가 다 오염이 되기 전까지는 그 오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만우에게 얻어맞으니 오염되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니, 느려지다 못해 악혈에 뭉친 악기가 흩어졌다. 그렇다는 것은 만우는 악혈의 전염을 늦추는 정도가 아니라 악혈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악혈이 다 사라지는 순간, 호선이 다시 한 번 선계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비록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구타의 결과물이라고 하지만, 호선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그렇다고 해서 호선이 고통을 즐기는 변태는 아니다.
“자. 그럼 변신!”
그 때문에 호선은 거절할 수 없었다. 호선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옷고름을 풀었다.
“우악!”
놀란 동군영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가렸다. 아무리 호랑이란 것을 알고 있어도 여인의 나체였기 때문이었다. 크르릉!!
“타.”
만우는 집채만 한 호선을 보면서 동군영과 방매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이걸?”
“호랑이 등에?”
기호지세라는 말이 있다. 이미 호랑이 위에 올라탄 이상 끝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다. 달리는 호랑이 등 뒤에서 떨어지면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니, 끝장을 봐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걸 자신들이 직접 해야 한다니.
“차, 차라리 뛰어갈게.”
“나도 뛰어가겠네. 이건…….”
크르릉! 둘의 반응을 본 호선이 그것보라면서 그르릉거렸다. 만우는 그 둘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말을 타고 못 간다니까? 호랑이 달리는 속도만큼 달릴 수 있어?”
“그건 아니지만…….”
“할 수 있어. 이건 아니야.”
동군영은 주저했지만 방매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타 보지 않은 방매다. 그런데 호랑이 위에 타라는 것은 무리였다.
[봐봐요. 그냥 다른 방법을 강구하시는게…….]
“시끄럼마!”
빡! 만우가 손바닥으로 백호의 이마를 후려쳤다. 그러자 호랑이가 낑하는 소리와 함께 목을 움츠렸다. 꼭 하는 모양이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 같았다.
“타. 빨리. 시간 없어. 바르고, 소리도 안 나고 이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호랑이는 이건…….”
“돼!”
만우의 손이 둘의 혈을 점했다. 이렇게 이곳에서 실랑이를 벌이면서 시간을 버리느니 그냥 자신이 태우는 것이 낫겠다고 빠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중에 가면 좋아할 거야. 나한테 고마워할 걸?”
사람은 모름지기 속도를 즐기게 되어 있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방매와 동군영도 호선을 타는 것을 즐길 것이다. 경공을 배운 무인이 자신의 속도에 취해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를 즐기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자. 앉자.”
만우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둘의 뒷덜미를 잡아들었다. 호선이 몸을 착하고 엎드리면서 배를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 이내 객주의 지붕 위에 집채만 한 덩치를 자랑하는 백호가 두 명을 등 뒤에 태운 채 오롯이 섰다. 동군영과 방매를 태운 호선은 옆에 선 만우에게 말했다.
[어디로 갈까요?]
“어디긴. 방매!”
“응? 마, 말이 나온다!”
동군영은 여전히 굳은 상태였고 방매는 어버버거리다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길잡이가 필요했기 때문에 만우가 지풍으로 방매의 아혈을 푼 것이다. 만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함흥으로! 어서 길 안내해!”
“아! 음…….”
방매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동쪽으로 가다보면 큰 산이…….”
방매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방매의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만우가 호선의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리면서 소리쳤다.
“동쪽으로 내달려! 커다란 산이 나올때까지!”
커허허…… 낑!! 자신도 모르게 포효를 내지르려던 호선이 입을 다물었다. 만우가 주먹으로 후려친 것이다.
“광고할 일 있어?”
[죄…… 죄송…….]
팡!!! 만우가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동군영과 방매를 등 뒤에 태운 호선도 만우의 뒤를 따라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
단지,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동군영의 찢어질 것 같은 두 눈만이 구슬프게 밤하늘을 훑으면서 눈물을 뿌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