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조우(2)2019.07.16.
자신에게 감히 호통을 쳤다는 이유로 관아에서 학사 하나를 찢어죽인 것은 철권 교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후우우우…….”
만우는 교수가 참지 못하고 동군영에게 손을 쓸 것이라 생각했다. 아쉽게도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만우도 교수에 대한 소문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놈은 참고 있었다. 부들거리고 있었지만 출수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했다.
‘뭐야. 약 먹었어? 사파 놈이 참는다고?’
그러고 보니 방금 전에도 자신의 낮잠을 방해한 놈들을 살려보내기까지 했다. 만우가 알고 있는 교수라면 그럴 리 없었다. 장력을 빈 곳을 향해 쏘는 것이 아니라 아마 두 놈이 죽을 때까지 쐈을 것이다. 철권 교수의 독문무공이라면 소림의 백보신권에 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귀족이니까 그냥 봐주지. 방해하지 말고 꺼져.”
교수는 분명히 참았다. 그러자 만우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궁금하면 알아내면 된다.
[더 해. 겁먹었다, 저놈. 봐봐, 내가 말했지?]
만우의 전음에 용기백배한 동군영이 교수를 향해 다시 소리쳤다.
“네 이놈!!!!”
‘호오!’
그 순간 만우의 눈이 반짝였다. 교수의 눈이 어딘가를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그건 분명 교수가 주변의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저. 이 교 모가 진정 이 남정네들을 모조리 때려잡아야 날 따라오시겠소?”
방매가 콧방귀를 뀌었다. 교수는 협박을 하고 있었지만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방매에게 이 정도의 협박이 씨알도 먹힐리 없었다.
“뭐라고 하는거야 이 생기다 만 놈이? 야, 가서 동경(銅鏡)이나 보고 와! 돈 없으면 우물이라도 한번 보고 오고. 돈도 없게 생긴 놈이…….”
“돈? 돈을 원하시오? 중원에 가면 내 이름으로 된 기루가…….”
“꺄악 오빠. 정말? 그럼 방매 가지고 싶은거 이써요오오오!”
만우와 동군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방매를 쳐다봤다. 돈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돈이 있다는 소리에 한 방에 넘어갈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얘네들은 돈도 없고 비루해. 모름지기 남자라면 우리 이 교 오빠처럼 근육도 튼실하고 그래야지.”
“하하하하. 맞소. 맞아. 이런게 진짜 남자지!”
교수의 얼굴이 금세 헤벌레해졌다. 동군영에게 받은 수모는 금방 잊은 듯했다. 만우는 방매의 콧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건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럼 교 오빠. 나 지금 은병 열 개만 줄 수 있어?”
은병 한 개면 쌀이 서른 가마다. 무명포도 5승포짜리로 열 필은 넘을 것이다. 명에서 건너온 진귀한 비단을 다섯 필은 살 수 있을 것이다. 방매가 눈을 반짝였다.
“흠. 나와 같이 중원으로 돌아가면…….”
“뭐야. 지금 없어?”
“여, 여기는 조선이지 않소. 난 명에서 온…….”
“에이. 지금 없으면 됐어. 꺼져 못난아.”
“…….”
교수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런 교수의 퉁방울만 한 두 눈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방매는 교수가 지금 돈이 없다는 것에 흥미를 다 잃은 듯 했다.
“돈귀신…….”
“에이. 돈도 없는 놈이 왜 말을 걸고 난리야. 귀찮게시리.”
방매는 언제 만우와 동군영을 욕했냐는 듯 입을 싹 닦았다.
“…….”
충격에 빠진 교수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교수의 두 눈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펄럭!!!! 콰아아!!! 동시에 교수에게서 내공이 뿜어져 나오면서 교수의 옷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교수의 두 손이 묵빛으로 물들었다. 철권(鐵拳)이란 별호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 연놈들이!!!!!!!!!!!”
동군영과 방매에게서 당한 수모로 인해 정신이 나가버린 것인지 교수가 있는대로 공력을 끌어올리며 분노했다. 하지만 방매와 동군영은 태연했다. 만우와 호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옹! 그런데 그때 방매의 품으로 고양이가 깡총 뛰어올라왔다. 호선이 어느새 고양이로 둔갑한 것이다. 만우는 그런 호선을 보고는 눈을 좁혔다.
[뭐냐 너.]
[인간 모습으로 둔갑하고 있으려니 도력이…….]
[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 그럴 리가요!!!]
호선이 야옹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만우는 픽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교수의 이성을 완전히 끊어먹은 듯 했다.
“죽어라!!!!!”
콰아아아!!! 교수가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는 만우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어마어마한 경력이 실린 주먹이었다. 잘못 맞았다가는 뼈도 제대로 못 추릴 것 같았다.
“만우!!”
“만우!!!!”
놀란 방매와 동군영이 만우를 불렀다. 만우가 등을 돌리고 있느라 못 본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우?’
주먹을 내지른 교수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분노가 이성을 잠식해 버린 그는 찰나에 든 생각 따위는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주먹을 내질렀다.
“하압.”
만우는 뒤에서 철권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건 말건, 백숙의 날개를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야, 여기 백숙 맛집이네.”
창!!!!!!! 만우가 백숙에 감탄하며 고개를 뒤로 젖힌 순간, 어디선가 검이 날아와 교수의 주먹과 부딪쳤다. 팽그르르!!! 교수의 철권은 웬만해서는 막을 수 없다. 만년한철, 천년한철처럼 전설에 나올법한 금속으로 제련한 검이 아니면 교수의 철권에 담긴 경력을 해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 교수의 일격에 담긴 경력을 해소하는 것도 모자라 다시 튕겨져 나와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누가 감히 의주에서 분장질을 치려하는가!!”
검은 들어온 것처럼 창을 통해 바깥으로 다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바깥에서 웅혼한 공력을 담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만우는 검을 다루는 실력이 제법이란 것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동군영과 방매는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척가 놈들.”
교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와 함께 기린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파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수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다!”
“대주님!”
“되었다 하였다!!”
교수가 인상을 쓰면서 소리치자 기린대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다시 모습을 감췄다. 교수는 만우의 뒷통수를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운 좋은 애송이.”
“흠. 어디서 개가 짖나? 귀가 간지럽네?”
만우는 교수에게 대놓고 모욕감을 줬다. 마치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 같았다. 교수의 얼굴이 다시금 붉어졌다. 쿠웅-! 하지만 그때 교수가 이를 악물었다. 정확히는 교수가 만우를 죽이기 위해 공력을 본격적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파직! 교수의 발이 객주의 나무바닥을 뚫고 한 치 정도 박혀들었다. 교수의 관자놀이에 핏발이 섰다.
“흐음.”
달그락 달그락 그런 상황에서도 만우는 달그락거리며 국밥 그릇을 숟가락으로 긁었다. 방매가 그런 만우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뭐하는 거야 지금.”
“밥.”
만우는 태연하게 나무 숟가락을 입에 물면서 대답했다. 방매는 미친 놈을 다 보겠다는 얼굴로 만우를 쳐다봤다.
“미쳤어? 밥 먹다가 죽으려고 하는거야? 아니 사람이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뭐가.”
“방금 너 죽이려고 저 생기다 만 놈이 달려들었다고!”
방매의 목소리는 충분히 컸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도 방매가 하는 말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방매의 말을 들은 교수의 눈이 훼까닥 돌아갔다.
“이놈이고 저년이고!!!”
쿠구궁!!! 거대한 압력에 짓눌리는 것 같던 교수의 몸에서 공력이 본격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압력에서 벗어난 교수가 객주의 나무바닥에 박혔던 발을 빼냈다.
“척가 네놈들도 무사라면 무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이 연놈들을 단죄할 수 있게 나를 막지 마라!!!”
꽈릉! 교수는 창 밖을 향해 소리쳤다. 주변의 대기가 찌르르 울렸다. 교수의 가진 바 공력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만우는 흥미롭다는 듯 객주 바깥을 쳐다봤다.
“열 명. 고작해야 절정에 나머지는 초일류. 그런데 초절정의 눈치를 보게 하는 놈들이라…….”
만우는 중얼거리고는 방매에게 물었다.
“척 씨 성을 가진 무가(武家)가 조선에 혹시 있어?”
“척 씨…… 성?”
방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무인이 아니었다. 매분구였지. 그 다음에 만우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에휴. 내가 뭘 바라겠습니까. 나리한테.”
“욱…….”
동군영이 만우의 한심하다는 표정에 욱하려고 했지만 그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선에 몇 몇 유명한 무가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그중 척 씨 성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곡산에 척씨 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산다고 들었어요.]
그때 고양이로 변한 호선이 말했다. 만우는 호선을 쳐다봤다.
[곡산?]
[의주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이긴 해요. 그리 큰 고을도 아니구요. 하지만.]
[곡산 척가 성을 가진 이들이 집성촌이 있다는 거지…….]
[네. 관직에 나가지 않은 무사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어요. 고려 때쯤인가……]
“흠.”
만우는 팔짱을 꼈다. 고려 때라면 조선 바로 이전의 국가다. 그러니 만우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척준경이란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척준경?]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동군영을 쳐다봤다. 다행이 만우에게는 심약하지만 머리는 쓸만한 걸어다니는 책자가 있었다.
“척준경이란 사람에 대해 아십니까?”
“척…… 준경?”
동군영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엇이 생각난 것인지 눈이 커졌다.
“아! 곡산 척가가 그 척준경의 집안이란 말인가?”
무예나 이런 쪽에는 젬병인 동군영이 알고 있을 정도라면 이름을 꽤나 떨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여진족과 북방에서 치열하게 싸운 고려 최강의 무장으로 알고 있다. 단기필마로 여진족을 무인지경처럼 넘나들며 지휘관을 구한 무(武)로 눈에 들어 최고의 벼슬에까지 올랐지만 결국 정쟁 속에 스러져간 그런 무인이라고 본 적이 있네.”
동군영은 서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읽은 것은 웬만해서는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척준경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합니다. 여진족은 그 척준경을 도보리 타샤라 불렀습니다. 어둠 속의 호랑이라는 뜻이지요.]
[호오…….]
만우의 두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이해가 됐다. 곡산이 의주에서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곡산 척가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보통이 아니란 뜻이었다.
“허(許)할 수 없다!”
만우는 열 명이 펼친 검진(劍陳)이 묵직하게 교수를 짓누르는 것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저들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고수를 제압할 수 있는 검진을 익히고 있었다.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이 정도 압력이라면 가진바 실력의 절반밖에 발휘할 수 없다. 그때 만우의 눈가가 움찔하고 떨렸다.
“마기(魔氣)…….”
만우의 기감이 닿는 범위는 일반 무림인이 상상할 수 있는 그 거리 이상이다. 게다가 지금 느껴지는 이런 강렬한 기파라면 더더욱 그랬다.
“복마전(伏魔殿)이로구나.”
만우는 검진을 구성한 이들의 기세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들도 마기를 느낀 것이 틀림없었다. 만우처럼 느꼈던, 그들의 다른 동료가 느끼고 신호를 보냈건 간에 그들도 느낀 것이다.
‘그 수는 많지 않고.’
곡산 척가의 저력은 그들이 고작 절정과 초일류만으로 초절정을 움직이게 할 수 없을 정도의 검진을 익히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됐다. 하지만 그 수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무량수불(無量壽佛).”
그때 파사(破邪)의 기운을 가진 도호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그 도호를 들은 만우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시주. 곤란하시다면 저희에게 맡겨주시고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시지요.”
만우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인연이란 것이 참 기묘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