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조우(1)2019.07.13.
자욱하게 일어났던 먼지들이 주변으로 쭉 밀려났다. 제법 강맹한 기세가 일어나면서 주변의 흙먼지들을 밀어냈기 때문이었다.
“호오. 절정.”
만우가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그러고는 새로운 젓가락을 들어 탁자에 쿡하고 박았다. 그러자 만우가 앉은 탁자 양 옆으로 기세가 쭉 갈라졌다.
“나리. 잘 보십쇼.”
만우가 손가락으로 백발 노인의 장력을 막아내고 있는 중년인을 가리켰다. 중년인은 손에 검을 쥐고 있었는데 백발 노인이 장력을 밀어낼때마다 펑펑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났다.
“무림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정파(正派). 나리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소림사라느니, 무당파라는 하는 것들 말입니다.”
“알지. 알고 말고. 소림사라면 하북의 명소가 아니던가! 내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것이거늘.”
하지만 사신단으로 명나라에 가더라도 하북 소림사를 들릴 일은 없었다. 연경(燕京)이 명나라의 수도이기 때문에 하북까지 갈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공에서도 정도를 걷는 이들을 정파라 하고.”
만우는 손가락을 들어 광소를 터뜨리며 장력을 펑펑 터뜨리는 노인을 가리켰다.
“저렇게 반쯤 미쳐 있는 놈들을 바로 사파(邪派)라고 합니다.”
“반쯤 미쳐 있다고? 무슨 구분법이 그러한가?”
동군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학문의 경우에는 그런 구분이 뚜렷했다. 확연하게 각 주장들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뭐, 정파 놈들이라고 미친 놈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만우가 직접 겪어보고 나서 만든, 만우만의 구별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약자를 보호하고, 무와 협을 숭상하며 무공을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 아닌 수양의 목적으로 삼는 이들을 정파라고 합니다만.”
만우는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
“억?”
방어가 거의 무너진 중년인을 끝내기 위해 공력을 끌어올리던 백발 노인의 입에서 경호성이 터져나왔다. 어디선가 날아온 나무 파편이 다음 초식의 공력이 흘러가는 길을 툭 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냥 치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나무 파편 속에 담긴 기가 경혈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이야압!!!!”
그러는 바람에 백발 노인에게 허점이 생기자 검을 든 중년인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공세로의 전환이었다.
“반면 사파는 강해지기 위해서는 지름길도 마다하지 않고, 약자를 핍박하며 부와 여자에만 관심이 많은 놈들이라고도 하더군요.”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정파 놈들이 무림의 주도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난 소문일 겁니다. 사실은 무림인이란 놈들은 전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무공을 익히는 놈들이니까요.”
“음…….”
동군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이란 게 원래 모두 그런 법일세. 내가 배운 옛 성현의 말들도 모두 좋은 말들이지만, 나만 해도 보시게. 학문이 그리 좋았으면 학문만 닦으면 될 것을, 관직에 나왔지 않은가.”
“그도 그렇군요.”
만우는 픽하고 웃었다. 학문에도 옛 성현의 큰 뜻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양반들이 배우는 이유는 관직에 나가 출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문과 무공에는 차이가 없다, 라고 동군영은 말하고 있었다. 창! 차차차창!!! 만우 때문에 일방적으로 흘러갈 뻔했던 전투가 백중지세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 번 기세를 살린 정파의 검객이 백발노인을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우와…….”
옆에 있던 방매가 그 화려함에 입을 떡 벌리고 감탄했다. 검과 권이 오가면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만우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기세가 방매가 동군영에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던 전투를 강제로 중지하게 만드는 거대한 장력이 1층에서 싸우고 있는 두 고수에게로 불어 닥쳤다.
“시끄럽다 이놈들!!”
쩌렁쩌렁!
“악!”
“으헉!!”
놀란 두 고수가 장력을 피하기 위해 훌쩍 떨어지자 무시무시한 사자후에 방매와 동군영이 귀를 막았다. 만우가 옆에 있지 않았다면 피를 쏟아내면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안에 실린 공력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초절정.”
만우는 태연하게 국밥을 떠먹으면서 눈을 반짝였다. 한양은 조금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여기는 명과 가까워서인지 재밌는 놈들이 많았다. 파바밧!!! 사자후가 터져 나오자 2층에서 표홀한 신법과 함께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다. 붉은색으로 통일한 듯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기세가 백발노인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았다.
“기린대?”
“철권!!!”
철권 교수가 이끄는 사림곡의 기린대는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집단 중 하나다. 그 때문에 중년인과 백발노인은 낭패한 표정을 지은 채 뒤로 물러섰다. 다른 점이라면 정파인 중년인은 검을 곧추 세웠지만, 백발노인은 언제든지 몸을 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치는 놈들 중에는 사파가 많으니까, 알아두십시오.”
“도, 도망?”
“네.”
만우는 백숙의 다리를 쭉 잡아 찢어서는 우물거렸다.
“누가 감히 이 어르신이 오수(午睡)를 즐기고 계신데 난리를 피우느냐!”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2층의 복도 난간에 철권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산동 흑룡방의 호법 백염귀(白炎鬼)라고 하오! 기린대주 교 대협의 존성대명을 익히부터 들어왔소! 만나서 영광이외다!”
백염귀라 불린 백발노인은 금세 태도를 바꿔 웃는 낯으로 포권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사파의 사림곡 소속이란 것을 드러내는 것이 여간 영악한 것이 아니었다.
“네놈은 누구냐!”
백염귀가 자기소개를 했기 때문인지 교수가 정파의 중년인에게 말했다.
“난 산동부여가의 부여운이라 하오.”
“호오. 산동부여가? 싸울아비의 검을 익혔는가?”
“……아직 미력한 수준이오.”
교수의 흥미에 백염귀의 얼굴이 굳었다. 반면 중년인 검객은 산동의 작은 문파인 산동부여가를 알고 있자 놀란 표정이었다. 산동부여가의 시조는 중원이 아닌 조선, 정확히는 신라였다. 백제는 당시 당과 교역이 활발했는데 부여의 일족 중 일부가 산동에 자리를 잡으며 산동부여가의 시초가 되었다. 그들이 진짜 부여 성을 쓰는 왕족인지는 모르지만, 중원의 무예와는 궤를 달리하는 무예를 발전, 전승해온다는 것 때문에 백제의 대표 무사집단이던 싸울아비의 검을 쓴다 알려져 있었다.
“그래, 조상의 보물을 찾으러 왔다?”
“…….”
부여운이라 불린 중년인 검객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교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는 씩 웃었다.
“오늘은 이 어르신이 기분이 좋아 특별히 두 놈을 봐줄 터이니 썩 꺼지거라!”
“…….”
“아이고 감사합니다, 교 대협. 그럼…….”
백발노인이 가장 반색하며 곧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교수와 기린대의 경우에는 같은 사림곡이라고 해도 거슬리면 죽여 버린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중년인 검객은 잠시 고민했지만, 그곳에서 더 이상 싸움을 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에 조용히 사라졌다. 교수는 그런 둘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정말 짐승의 세상 같구나.”
“그렇죠? 강한 사람 앞에서는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말아야 살아남는 곳입니다.”
교수가 고개를 돌려 아래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이상한 구성의 일행이 앉아 있었는데 그게 교수의 흥미를 끌었다.
“호오.”
순간 교수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철권이라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철권과 함께 가장 많이 불리는 그의 별호가 있었다. 탐화(貪花). 여자가 없이는 하루도 잠에 든 적이 없다하여 붙은 별명이었다. 그 정도로 정력이 절륜했는데, 그건 교수의 또 다른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그런 교수의 눈에 여자가 띄인 것이다. 휙! 여자를 발견한 교수는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는 2층에서 뛰어내렸지만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바닥에 섰다.
“올라가라.”
“존명!”
교수가 한 곳만을 쳐다보면서 말하자 기린대들도 눈치를 챘다. 그러자 기린대들이 순식간에 1층에서 사라졌다. 1층은 두 무림인의 싸움으로 인해 엉망이었지만 교수는 사뿐사뿐히 만우가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흐음.”
만우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동군영은 아니었다. 교수가 다가오자 동군영이 놀라 눈을 부릅 떴다.
“이런 누추한 곳에 폐월(閉月) 같은 여인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소.”
교수는 만우가 동군영은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 교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쩌라고요?”
그런데 손을 내민 방향이 이상했다. 누가 봐도 만우가 앉은 탁자에서 가장 눈길을 많이 끄는 건 호선이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남자의 가슴을 벌름거리게 만들 정도로 색기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수는 방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런 비리비리한 남자들보다는 장차 천하를 손에 쥘 나와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소? 소저 같은 여인은 스스로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하오.”
방매가 무슨 미친 놈 쳐다보는 얼굴로 교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교수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사림곡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강한 무인이었다. 무림십좌라는 괴물만 제외하면 같은 초절정이라도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곡주 친위대인 기린대의 대주 자리를 꿰찬 것이다.
“별 미친놈을…….”
“이래보여도 나, 아직 서른 하나요.”
교수는 누가 보더라도 40줄이나 50줄은 되어보이는 인상이었다. 극악의 노안이었던 것이다. 방매가 눈을 크게 떴다.
“말도 안 돼!!!”
“말이 되오. 내가 비록 노안이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소.”
교수는 턱을 들어올렸다.
“이런 내 옆에 소저 같은 아리따운 여인이 있다면 그 스스로 빛날 수 있다는 것. 누가 뭐라 하더라도 본인은 다음 무림십좌이자 천하제일인이 될 몸이니까!!”
“풉!”
만우가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터뜨렸다. 그러자 교수의 얼굴이 험악하게 물들었다. 만우가 자신을 비웃었다 생각했던 것이다.
“혹시 이런 비리비리하지만 기생오래비 같아 보이는 놈…….”
“이놈! 어디 양반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냐!”
그때 동군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세 좋게 소리는 쳤지만 동군영은 거의 송장을 치우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동군영이 일어난 이유? 간단했다.
[동 어사는 담력을 키워야 돼. 그렇지? 그러니까 그것도 시작하자고. 무려 주상 전하께서 임명하신 어사가 되었는데 탐관오리가 무서우면 지금 이 정도 담력으로는 어떻게 하게?]
어사가 소심해서 탐관오리에게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놈. 말만 번지르르한 놈이야. 다 얼굴빨로 이겼어. 얼굴빨로. 솔직히 저 정도 인상이면 누가 이겨?]
동군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의 인상은 압도적이었다. 왼쪽 눈부터 시작해 입까지 난 흉터라니. 저 흉터만 보여줘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이 한 수레는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잖아.]
동군영이 나선 것도 만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호선도 있었다. 자신을 죽도록 달리게 할 때는 그렇게 미웠는데, 지금은 없던 용기도 생기게 만들어줬다.
“양반?”
“네 이놈!!!”
동군영은 교수에게 호통을 쳤다.
“감히 백주대낮에 아녀자를 희롱하는 것도 모자라, 반상의 도리도 모르는 상놈이구나! 어허!”
동군영의 말에 교수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쥐뿔도 없는 놈이 자신의 앞에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만우가 동군영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교수의 성격이었다. 사파, 사림곡.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마교의 마인은 아니지만 사파라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 정도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아니, 정말 개 중에는 인신매매를 하는 것처럼 아주 극악한 놈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중원에도 있는 귀족이나 호족들의 권력이 과연 통할까? 잃을 것 없는 놈들, 바닥까지 내려간 놈들이 모인 곳이 바로 사파다. 그렇기 때문에 사파는 정파나 마교보다 실력은 떨어지지만 그 수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교수는 가장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