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중원에서 온 손님(2)2019.07.02.
작은 고양이가 앙탈을 부렸지만 만우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호선은 방매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방매는 헤헤 웃으면서 호선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
“왜?”
만우는 한 달 동안 동군영을 뛰게만 했다. 물론 호선으로 하여금 공격도 시켰기 때문에 안력도 어느 정도 늘었고 반사신경도 늘었다. 같은 인간이 아니라 호선의 동물적인 감각을 피해내야 했기 때문에 동군영은 모르고 있었지만 동군영은 무인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준비를 어느새 다 끝마친 상태였다.
‘해봤자 삼류지만.’
동군영은 무골이 절대 아니었다. 체질은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 만에 끝낼 수 있었다. 만약 동군영이 천무지체라던지, 무골 같은 무공을 익히기 위해 타고난 몸이었다면 몸을 만드는 데만 일 년은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군영에게는 그의 체질이 평범하단 것이 행운이었다.
“하악, 하악, 하악.”
“쓰읍!”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동군영을 보면서 만우가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움찔한 동군영이 울상을 지으면서 입이 아니라 코로 숨을 깊은 곳까지 들이마셨다. 일 초, 이 초, 삼 초, 사 초…… 폐의 모든 세포에 녹아들어 있던 산소를 모두 빼낸 느낌이었기 때문에 동군영은 코로만 숨을 거의 십여 초 가까이 빨아들였다. 그런 동군영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폐와 심장은 계속해서 신선한 공기를 원하는데, 만우가 그것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쿵쿵쿵쿵!!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것이다. 만우는 그렇게 오 초 동안 숨을 참게 한 뒤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막혔던 동군영의 입이 벌어지면서 아주 미량의 호흡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삼십 초. 이런 식으로 호흡을 하면 일 다경 동안 열다섯 번의 호흡을 하게 된다.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숨이 막혀 죽을 테지만 아쉽게도 동군영은 죽을 수도 없었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는 기(氣). 만우가 하는 이 방식은 그가 익히고 있는 기천(氣天)의 기초공이 되는 수련 방법으로 호흡을 통해 인간의 신체로 하여금 기를 각성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됐다.”
퉁!
“허억, 허억, 허억.”
만우가 손을 짝하고 치자 동군영이 무릎을 꿇으면서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저질스런 몸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름 괜찮은 몸이니까.”
동군영이 헉헉대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일반인 기준으로 치면 그다지 나쁜 체질은 아니었다. 단지 만우가 인생 대부분을 보냈던 무림이란 곳이 별의별 놈들이 다 모여든 곳이란 것이 만우의 기준을 높인 것이다.
“만우! 의주다! 의주가 보여!!!”
나무 위에 올라갔던 방매가 주르륵 내려오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동군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그럼…….”
“기초는 대충 이 정도에서 끝.”
이제 동군영은 봇짐을 둘러메고도 열 시진은 너끈히 걸을 수 있었다. 이제 만우의 발목을 붙잡을 일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걸린 기간이 달포였다.
“두 달 남았네.”
만우는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의주까지 한 달 만에 왔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아마 호선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저도 잘했지요?]
지난 달포 동안 제법 편해진 것인지 호선이 갸르릉거리면서 만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
선기를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호선은 쉽사리 지치지 않았다. 지금 지쳤다는 것도 육체적으로 지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친 것이다. 호선이 뭐라고 불평을 할 때마다 만우의 기세에 짓눌려야 했으니까. 그 때문에 호선은 낮에는 동군영의 수련을 돕고 밤이 되면 만우 일행을 등에 업고 달려야만 했다. 그 때문에 달포만에 무려 의주에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의주로 오면 너무 돌아가는 거 아닌가?”
만우가 방매에게 말했다. 의주로 가겠다고 한 건 바로 방매였다. 하지만 의주는 중국의 요동과 바로 맞닿은 압록강 바로 아래의 지역이었다. 반면 함흥은 조선의 동북면에 있었으니, 서북면에 위치한 의주와는 거의 반대 방향이었다.
“돌아가기는.”
의주는 서북면에서 가장 큰 고을이다. 방매는 고갯짓을 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게 더 빨라.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면 아마 저 나리, 저 세상으로 갈걸?”
동군영이 방매의 말에 상처 입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뭐라 반박할 순 없었다. 방매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강골이었다. 몸 자체가 튼튼한 것인지 공력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지치질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는 말을 타고 갈 수 있다고.”
방매는 함흥으로 가려면 무수히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면서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기 때문에 의주에서 질 좋은 말을 구해 함흥으로 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했다.
“의주에 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만우가 거의 두 배는 커진 방매의 봇짐을 보고는 슬쩍 말했다. 그러자 방매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아니지.”
“난 또. 그런 줄 알았거든.”
방매의 반응이 제법 귀여웠기 때문에 만우는 피식 웃었다. 방매는 만우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발걸음을 빨리 했다.
‘누가 가르친 거지?’
만우는 저 커다란 봇짐을 메고도 흔들림 없는 방매의 하체를 보면서 궁금해했다. 안국방의 조 할아버지라는 사람을 한양으로 돌아가면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주…… 의주에 가면 따뜻한 밥과 푹신한 잠자리를…….”
동군영은 의주가 보인다는 소리에 힘이 난 것인지 벌떡 일어섰다. 상거지 꼴이 따로 없었다. 방매 품에 안긴 호선이 연신 갸르릉거리면서 발버둥을 쳤지만 그것 외에는 평화로운 한때였다. 하지만 만우는 볼을 긁적였다.
“의주라…….”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아주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만우 정도의 고수에게 그런 예감은 그냥 빗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가야지. 암. 가야 하고 말고.”
하지만 의주에서 말을 빌려 함흥으로 내달리면 닷새면 도착한다. 그냥 일직선으로 산을 넘는 것보다 족히 열흘은 일정을 줄일 수 있다.
“빨리 와!!!!”
벌써 멀어진 방매가 손을 흔들었다. *** 촤악!
“끄아아악!!!”
기이할 정도로 휜 곡도(曲刀)가 산적의 몸을 찢어발겼다. 몸의 절반이 잘린 산적에게서 내장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더운 김을 뿜어내는 시체가 땅에 쓰러졌다. 철퍽, 철퍽. 참혹한 아수라장에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은 채 열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이 아수라장을 만들어낸 이의 동료였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산적 두목이 벌벌벌 떨면서 엉덩이를 뒤로 끌었다. 가랑이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산적 두목은 살기 위한 본능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부하들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곡도를 든 채, 부하들의 피로 인해 질척이는 땅을 밟으며 걸어오는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캬하하핫!!!”
이 참혹한 광경을 만들어낸 사람은 한 명이었다. 피풍의와 죽립을 깊게 눌러쓴 7명은 혈향 가득한 이곳에 발가락 하나도 담그지 않았다. 이 지옥도를 만들어낸 이는 놀랍게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나찰사화(羅刹死花) 옥령. 무림오화(武林五花) 중 1인인 그녀는 다른 오화와 함께 후기지수 소리를 들었지만 가진 바 무위는 기라성 같은 마교의 마인들 중에서도 삼백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고수였다. 당장 무림에 출두해도 명성을 떨칠 마녀(魔女)였지만 나이 때문에 미모만 소문이 났을 뿐, 그녀는 이미 훌륭한 마인이었다. 피를 뒤집어 쓴 나찰사화는 성교를 하는 것 같은 황홀감에 눈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아…….”
신음성이 흘러나오자 색정적으로 생긴 그녀의 얼굴이 희열로 물들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죽립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옥령. 끝내라. 갈 길이 멀다.”
그러자 반쯤 풀려있던 옥령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황홀함에 풀어져 있던 몸이 정자세를 찾더니 고개를 돌려 죽립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존명(尊命)!”
스걱!!!! 동시에 그녀의 손에 들린 곡도가 휘둘러지자 산적 두목의 머리통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 산채에 있는 산적들 중 가장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산적 두목이었다.
“소녀, 대주님의 명령을 완수하였어요.”
그러고는 날듯이 초상비(草上飛)를 펼쳐 돌아온 옥령이 조신하게 부복했다. 죽립을 슬쩍 들어 올린 남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괜찮은가 보군.”
“못난 모습을 보였어요. 죄송합니다, 대주님.”
옥령이 볼을 살짝 붉혔다. 언제 그렇게 피를 뒤집어쓰고 황홀해했냐는 듯, 옥령은 부끄러워했다. 단지 산적들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 그 모습이 섬뜩해 보일 뿐. 하지만 대주라 불린 죽립인이나 다른 죽립인들도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익숙하다는 뜻이리라.
“피가 많이 묻었다. 닦거라.”
“대, 대주님.”
대주라 불린 죽립인이 천을 건네자 옥령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립인은 아예 옥령의 얼굴에 묻은 피를 직접 지워주기까지 했다.
“이곳은 깨끗한 물이 많아 좋구나.”
수통에는 물이 그득했기 때문에 대주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러면 또 혈향이 너무 짙어 온갖 짐승들을 다 불러들였을 텐데. 그럴 걱정은 없으니 말이다.”
“짓궂으십니다.”
다른 죽립인이 말하자 대주라 불린 죽립인이 하하-거리며 웃었다.
“파천서생. 넌 너무 농을 모르는구나.”
“나찰이 부끄러워하니 그런 것뿐입니다.”
“흐흐.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꾸나.”
대주는 옥령에게 보여줬던 자상함과 동시에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다른 죽립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죽립인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옥령.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네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
“…….”
옥령은 수통에서 쏟아지는 물로 피를 닦아내면서 죽립인을 쳐다봤다. 그녀가 이렇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도 전부 대주 때문이었다.
“혈성(血星)이란 건 본래 인간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않더냐.”
“허나 소녀 때문에 투귀대가…….”
아마 이 자리에 무림인이 있더라면 옥령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에 눈을 부릅떴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만약 정파인이라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쳤을 것이 분명했다. 투귀대(鬪鬼代). 천마신교(天魔神敎), 무림에서는 마교(魔敎)는 십만대산에 그 본거지를 두고 있었다. 가진 바 무공이나 강자존을 숭상하는 그들의 손속이 악독하고 비정하여 늘 무림에 마교가 출두할 때마다 큰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마교는 강자존과 약육강식이라는 기치 아래 끊임없이 개인의 강함을 숭상했다. 그 때문에 고수가 많기로 유명했고, 정파 무림인이라면 이름만 듣고도 진저리를 치는 몇 개의 무력 집단이 존재했다. 무림십좌의 일인인 마존(魔尊)이 이끄는 천마신교의 지존(至尊)의 직속부대인 천마대(天魔代). 역시 같은 무림십좌의 일인인 곡왕(哭王)이 이끄는 진혼대(鎭魂代). 명나라의 주원장에 의해 와해된 몽골의 최정예로 마교에 몸을 의탁하게 된 살풍대(殺風代). 그리고 투귀대(鬪鬼代)까지.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전투 집단들이 있지만 투귀대만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곳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투귀대의 대주는 언제나 당대 천마신교의 교주의 다음대인 소교주였으며 마교에서 소교주를 임명했다는 것은 한 가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천하통일(天下統一), 마교천하(魔敎天下)! 즉, 투귀대의 등장은 천마신교의 중원진출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소교주를 정했다는 것은 교주가 비명횡사를 해도 천마신교를 이어나갈 후계자를 정했다는 뜻이고, 마교가 중원으로 진출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교주에게 중원행을 보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자는 자신의 새끼를 절벽에서 미는 법. 중원 전체와 싸워야 할 미래의 마교 교주가 중원행조차도 견뎌내지 못한다면 소교주일 때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때문이다.
“주창 대주! 이제 조선이니 이 거추장스러운 것 좀 벗어도 되지 않습니까?”
다른 죽립인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했다. 거기에 피풍의를 입었지만 덩치 자체가 다른 이들보다 족히 두 배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