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중원에서 온 손님(1)2019.06.29.
“크하아!!!”
피풍의를 입고 삿갓을 뒤집어 쓴 열댓 명의 무리는 의주의 객주에 들어서자마자 시장한지 바로 음식을 시켰다. 그리고 개중 작달막하고 여리여리해 여자 체형인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생긴 사람이 물을 들이키면서 술을 마신 것처럼 연기를 하자 다른 이들이 씩 웃었다.
“소령아! 그게 무슨 짓이냐!”
“이크.”
매화극검 검인의 엄한 목소리에 소령이 어깨를 움츠리며 귀엽게 혀를 빼꼼 내밀어 보였다.
“저도 그냥 따라해 봤어요. 그러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길래.”
“누가 그런…… 대수! 네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소령이한테…….”
“하핫. 검 형(兄). 원래 그런 것 아닙니까! 이런 긴 여정에는 객잔에서 먹는 술 한 잔이…… 캬아!!!”
이들은 무림맹이 조선으로 급파한 정의대(正義代)였다. 화산의 초절정 고수인 매화극검 검인을 필두로 북경제일도 팽대수가 포함된 열다섯 명이었다. 그들은 바로 어제 패수를 거쳐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팽대수의 너스레에도 검인의 두 눈에 깃든 엄정함은 여전했다. 소령이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해요 사형.”
“우리는 정의대다.”
매화극검(梅花極劍) 검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한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정의대(正義代)는 정파 무림인들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삼생의 영광이라 떠벌리고 다니는 가장 존귀하고 고귀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에서도 그 상징성을 인정하여 상시 편성하고 있지는 않고 무림에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만 내로라하는 무인들을 모아 정의대를 꾸렸다. 그리고 이번 무림맹에서 동쪽에 있는 작은 나라인 조선에 정의대를 보냈다는 것은 이곳에서 일어날 일을 그만큼 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너무 뭐라 하지 마시오, 대주.”
팽대수가 껄껄 웃으면서 기가 죽은 소령의 편을 들어주었다. 소령이 흑진주 같은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긴 여정이 아니었소. 게다가 여아가 아니오! 사방이 신기할 나이일 터.”
“흠…….”
정의대 대주인 매화극검 검인을 포함해 구성원 전체가 절정의 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구파일방의 말단 장로급이 절정 수준인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런 절정의 고수들이 무려 15명이나 정의대 안에 있다는 것은 정의대의 위상을 그만큼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소령이었다. 소령은 아직 절정은커녕 일류 초입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렬상 일대 제자이긴 하지만 소령은 일대 제자에서도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오성이 굉장히 뛰어나 또래 수준으로 한정을 지으면 한 손에 꼽히기는 했다. 그래도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특히나 화산파의 무공교두인 검인의 눈에는 그게 특히나 심했다.
“약조한 대로 네 매화검의 성취가 5성에 이르러 검주 그 친구의 말대로 데리고 오기는 하였으나…….”
“히힛.”
소령의 귀여운 웃음에 검인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만우에게 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 거면 8성이나 9성을 하지 괜히 5성으로 해서…….’
하지만 매화검은 절대로 익히기 쉬운 검공(劍功)이 아니었다. 그 매화검을 불과 몇 개월 만에 소령이 5성까지 익혔다는 것은 그녀의 가진 바 재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그래도 저 아이가 저렇게 자란다면…….’
만우 덕분에 소령의 재능이 개화하고 있었다. 검인은 소령이 저렇게 커나간다면 십 년 후에는 화산파에서 검후(劍后)에 견줄 최고의 여고수가 탄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매우 활발한 마을입니다.”
그 유명한 제갈공명을 배출한 융중의 제갈가 출신이자 무림맹의 차세대 지낭이라 불리는 신안(神眼) 제갈명이 삿갓 너머로 보이는 의주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원래라면 이곳에서 조선의 정보를 조금 모아보겠지만…….”
제갈명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정의대는 눈 먼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중원이야 구파일방인 개방이 정보력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조선에는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팽대수가 제갈명에게 말했다. 팽대수의 태평한 소리에 제갈명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하오문이 쓸데없는 기물을 중원으로 가지고 와 화를 불러일으킬까 걱정됩니다.”
“제부투혼이라. 그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팽대수는 하오문이 가진 장보도란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비급 하나를 얻는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비급만큼이나 개인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오문이 장보도 속 귀물을 가지게 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도움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기린대와 투귀대 역시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기린대와 투귀대란 소리에 느슨하게 풀어졌던 공기가 단단하게 조였다. 그때 검인이 신음소리를 흘렸다.
“……이미 온 것 같소.”
“그게 무슨.”
제갈명의 눈이 커졌다. 소령을 제외한 나머지 열다섯 명이 모두 같은 절정이라고 하지만 검인은 초절정을 목전에 둔 정의대의 최고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갈명이 한 발 뒤늦게 눈치챈 것이다. 팽대수가 허리춤에 찬 도를 움켜쥐었다.
“조선이 복마전(伏魔殿)이 될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 서릿발 같은 기세를 흘리며 객주에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다. 왼쪽 눈부터 입가까지 쭉 찢어진 중년의 사내를 필두로 무려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피를 바른 것 같은 검붉은 장포를 입은 그들은 모두 같은 소속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객주에 들어온 중년의 사내의 입가가 비죽하고 치솟았다.
“정파의 개들이로구나.”
“철권(鐵拳) 교수.”
기린대와 그들을 이끄는 교수가 등장했다는 것에 검인을 비롯한 정의대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교수는 사파에서 삼십 년을 구른 거두로 사파의 연합체인 사림곡의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극한까지 단련해 강철처럼 단단해진 주먹으로 펼치는 권법의 대가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강자였다. 그 휘하의 기린대는 교수의 친위대로 대주를 제외하면 일류에 불과했지만 그 수가 서른이나 됐고 사파 무인의 특성상 나려타곤이나 합격술 같은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정의대도 만만치 않았다. 초절정은 없지만 초절정을 목전에 둔 검인과 팽대수에, 나머지 열 두 명도 전원이 절정이었다. 검인과 팽대수라면 능히 교수를 상대할 수 있고 나머지 열두 명도 합격술을 펼치는 기린대에 앞서면 앞서지 뒤지지 않는다.
“되었다.”
기린대는 싸움을 좋아하는 투귀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교수의 한 마디에 그들의 투기가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
“밥이나 먹고 쉬고 갈 생각이니 인상들 풀거라. 크크크.”
교수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고는 탁자에 와 앉았다. 그러자 주모가 쪼르르 달려와 주문을 받았다.
“가장 비싼 걸로. 술도 두 동이 내오고.”
“아이고, 알았습니다요.”
주모가 엉덩이를 흔들면서 사라졌지만 객주 안은 조용했다. 방금 전까지 여기저기서 몰려든 상인들이 어느새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의주의 객주는 명나라와 조선의 물류가 교차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객주가 중개소 역할도 했다. 그런데 그곳에 막대한 투기를 뿌려대는 정의대와 기린대 때문에 눈치가 빠른 상인들이 재빨리 자리를 뜬 것이다.
“가자.”
기린대와 자리를 함께 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검인이 검을 챙겨 일어났다. 그러자 정의대원들이 따라 일어났다.
“크크크. 이번 조선행은 재밌겠어. 패수에서는 마교의 투귀대 놈들을 보내더니 정의대라.”
교수가 괴소를 흘리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자 검인을 비롯한 정의대가 움찔했다. 투귀대까지 조선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해들이 조선에 언제 와봤겠느냐만은, 한 가지 충고할 테니 귀를 씻고 들어라.”
“뭐라? 건방진…….”
팽대수가 욱함을 참지 못하고 나서려는 순간 검인이 팔을 들어 팽대수를 가로막았다. 검인은 서늘한 눈빛으로 교수를 쳐다봤다.
“철권 선배. 그대가 사림곡 소속이란 것을 잊지 마시오.”
“까탈스러운 놈들. 이래서 내가 정파 놈들이 싫다니까.”
교수는 클클거리며 웃었다. 그는 정파 놈들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낯선 땅에서 개죽음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사파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듣고 봐야 할 문제가 아니던가?
“그래도 네놈들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을 수 없으니 들으려면 들어라.”
하지만 교수는 입을 열어야 했다. 중원의 무림인들 중 조선에 왔다가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신비문파인 백두문이 장백산에 있음에도 그들은 조선을 동이(東夷)라 경원시했기 때문이었다.
“이 의주가 어떤 곳이냐면 말이다.”
교수가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중원에서 했던 것처럼 네놈들이 정파라면서 목에 힘을 주고 다니다간 치도곤을 당한단 말이다. 괜히 개고생을 하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여야 하는데…… 과연 네놈들이 그럴 수 있을까?”
무시하고 나가려던 검인이 발을 멈춰 세웠다. 사파의 거두인 교수의 입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는 약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검인의 눈에 기린대들이 모두 병장기를 흰 천으로 둘둘 말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검인이 눈을 크게 떴다.
“크크크. 우리야 워낙에 여기저기서 욕을 얻어먹고 다니는 놈들이라 별로 어렵지 않지만, 네놈들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네놈들 때문에 괜히 경비만 강화되면 우리까지 고생하니 하는 말이다.”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 안 그래도 안 들을 놈은 듣지 않겠지. 그러니 썩 꺼지거라. 붙잡히걸랑 우리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고.”
철권 교수는 사파가 아닌 정파나 마교에게는 공포의 대상 중 하나였다. 그의 철권이 워낙 무자비하기도 하거니와 그의 심계가 웬만한 십상시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조선에 와서는 얌전한 양처럼 굴고 있었다.
“크크크.”
교수는 알 수 없는 비웃음을 흘리며 떠나는 정의대를 쳐다봤다. 그의 기억 속에 새록새록 조선에 와서 개고생을 했던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편하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자부했던 그도 고수 반열에 이르고서는 그런 취급을 당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조선과 명은 엄연히 다른 나라다. 그 차이점을 빨리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정의대는 멀쩡히 살아서 이 나라를 빠져나가지 못 할 것이다. 세상이 좁다하고 자유롭게 살았던 중원 무림인에게 조선은 마치 감옥과도 같은 곳이다. 관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무(武)도 용납하지 않는 곳이 작금의 조선이기 때문이다.
“이놈들아. 우리도 어서 후딱 먹고 썩 빠져나가자꾸나. 괜히 곡산 척가 놈들과 휘말려서 좋을 일이 없음이니.”
“복명!”
기린대원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
“허얼…… 허얼…… 허얼…… 허얼…….”
“고작 그 정도야?”
동군영이 쇳소리를 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달포가 지났다. 하지만 그동안 함흥까지는 겨우 반을 왔을 뿐이었다. 동군영은 더 이상 못 뛰겠다는 듯 배를 드러내고는 흙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런 동군영은 떠날 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아무데나 주저앉고 구르고 드러누워서 넝마가 된 옷은 기본이고 갓 따위는 내던진 지 오래였다. 움직이는 데에 거추장스러운 두루마기는 벗고 무명천으로 된 옷을 입었고 가죽신도 집어던지고 짚신을 신었다. 상투가 이리저리 찌그러졌고 머리카락에는 풀떼기가 붙었지만 지금의 동군영에게는 한 호흡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다. 크르르르……. 동군영은 뒤에서 거대한 백호가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도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았다. 만우는 못마땅하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도 부족해.”
“대체…….”
동군영이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지난 시간 동안 만우에게 얼마나 시달린 것인지 그 소심하고 심약하던 동군영이 만우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게다가 이제는 호선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질릴 정도로 쫓겼기 때문이었다.
“호랑아. 돌아와.”
펑!!!! 만우가 한마디 하자 집채만 했던 백호가 자그마하게 줄어들었다. 인간 모습으로는 식량이 더 든다면서 만우가 작은 고양이 새끼로 바뀌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되나요?]
하지만 작은 고양이어도 500년을 묵은 영험한 호랑이였다. 하지만 그런 호선도 잔뜩 지쳐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쉴 새 없이 만우가 호선을 몰아붙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동군영을 수련시키기 위함이었지만 호선이라고 해서 마냥 좋아서만 쫓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
만우는 호선이 동군영을 좇는 와중에도 공력으로 호선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선은 동군영과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려야만 했다. 털썩. 손바닥만 한 작은 고양이가 땅바닥에 배를 깔고 네 발로 쭉 뻗는 모습은 상당히 귀여웠다. 귀여운 것이라면 반짝이는 것 다음으로 사족을 못 쓰는 방매가 그런 호선을 품에 안아들었다.
[이거 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