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0. 범골의 호선(號仙)(3) (50/400)

050. 범골의 호선(號仙)(3)2019.06.22.

16553199302439.jpg

  꽈릉!!! 만우의 좌장이 거센 반탄력과 함께 뒤로 튕겨나갔다. 얼마나 세게 튕겨나간 것인지 만우의 몸이 그 반동으로 빙그르르 반바퀴 돌 정도였다. 하지만 만우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는커녕 재밌다는 듯 씩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

16553199302444.png“제법이구나!”

순간적으로 공력을 끌어 올렸지만 힘에서 부족했다. 하지만 힘에서 부족하다는 것 자체가 만우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막 강호 유람을 하기 위해 나섰던 그때라면 모를까 지금의 만우에게는 대단히 생소한 경험이었다.

16553199302444.png“이것도 받아보거라!”

파가가각!!! 만우가 흥이 돋은 목소리로 괘검으로 발검했다. 그러자 만우 앞의 땅이 쟁기라 파헤친 듯 흙이 수줍은 속살을 내보이면서 검풍이 목책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콰앙!!!

16553199302453.png“대체…….”

동군영은 사람의 피륙으로는 낼 수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의 굉음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16553199302453.png“저, 저 만우라는 남자. 귀신이냐? 아니면 도깨비?”

동군영은 방매에게 말을 더듬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방매는 그나마 동군영보다는 나았다. 그래도 한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6553199302461.png“몰라요 나리. 그냥 걸리적거리지 않게 잘 계셔요.”

16553199302453.png“큼…… 큼큼…….”

동군영은 헛기침을 했다. 아랫것 앞에서 살려달라고 추태를 부렸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동군영은 충격파에 뒤로 날아가 땅바닥에 구르는 산적 두목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16553199302453.png‘단순히 그 여파만으로.’

동군영의 눈이 빛났다. 비록 추잡스런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무려 장원급제를 한 인재 중의 인재다. 단지 지나치게 유약하고 소심할 뿐,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16553199302453.png‘인간 같지가 않구나. 인간 같지가.’

진짜 만우가 도깨비나 귀신이라고 생각하여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만우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16553199302453.png“저 만우란 남자와 친한 것이냐?”

16553199302461.png“아이참. 나리. 말 거시지 말고 만우가 이기기만을 바라셔야 할 거에요. 여긴 산적소굴이라고요.”

방매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자 동군영이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53199302453.png“네 말이 맞구나.”

꽈르릉!!! 그 와중에도 만우의 검이 허공을 난도질했다. 분명히 허공에 괘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벼락이 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잠력이 만우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공력과 상충됐다.

16553199302444.png“소림의 제자더냐!!”

제법 자신의 공격을 받아치자 흥이 돋은 만우가 소리쳤다. 원거리에서 공력을 이 정도로 날릴 정도라면 만우가 아는 한에는 소림의 백보신권(百步神卷) 밖에는 없었다.

16553199332707.jpg“선녀님. 선녀님…… 으으.”

그런데 그것을 보고 뒤로 날아갔던 산적 두목이 벌벌 떨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만우는 여기저기서 선녀님이란 소리가 흘러나오자 고개를 갸웃했다.

16553199302444.png“선녀?”

선녀라 함은 하늘의 황제인 옥황상제를 보좌하는 여자들을 말한다. 도교 늙은이들이 궁시렁거린 것을 옆에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16553199302444.png“그거 다 이야기 아니야?”

하지만 확실히 이 정도 힘이라면 선녀라고 다른 사람들이 착각할 법도 했다. 만우는 공력을 끌어 올리며 씩 웃었다.

16553199302444.png“끝끝내 안 나온다는 거지?”

우르릉!!! 머리카락 끝도 보이지 않고 멀리서 공력만 날려댄 상대에게 만우가 가소롭다는 듯 공력을 일으켰다. 그러자 마치 천지조화가 일어나듯 만우의 몸에서 뇌우(雷雨) 소리가 울려 퍼지며 만우의 머리카락이 거꾸로 솟기 시작했다. 쩌저적!! 만우의 주변으로 땅이 쩍쩍 갈라지며 그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기가 부르르 떨리고 땅이 드드드하면서 진동하기 시작하자 가장 가까이 있는 목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6553199332722.jpg“갈(喝)!!!!!”

그러자 앞에서 다급한 고성이 터져 나왔지만 만우는 코웃음을 쳤다. 만우가 진심으로 끌어 올린 공력이 그 정도 고성에 영향을 받을 리가 없었다.

16553199302444.png“지금까지는 별 살기가 없어서 내버려뒀지만.”

푸화아악!! 만우의 괘검에서 기다란 검사(劍絲)가 마른 장작에 불길이 옮겨붙듯 확하고 일어났다.

16553199302453.png“뭐, 뭐가 있다는 거야?”

16553199302461.png“쉿! 저도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 속을 향해 만우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군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방매는 동군영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16553199302461.png‘뭔가 있어.’

내공을 익힌 적은 없지만 여자의 직감은 남자보다 뛰어나다. 그렇기 때문에 방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16553199302444.png“안 나오면 죽인다?”

만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그와 동시에 만우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공간, 그 자체가 꿀렁였다.

16553199302453.png“히익!”

16553199302461.png“헉!!”

뒤에서 동군영과 방매의 새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만우는 비릿하게 웃으며 손에 들린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16553199302444.png“반항하겠다고?”

쫘아아악!!! 동군영과 방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공간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만우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가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만우의 괘검은 그 어둠을 갈라 버렸다. 쩌억! 검사가 만우의 검에서 일렁거리며 피어올랐다. 검강(劍鋼)도 아닌, 그저 공력을 무지막지하게 밀어 넣었을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은 속절없이 갈라졌다.

16553199332722.jpg“꺄아아악!!”

쿵!!! 그러자 어둠 속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던 여자가 쿵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풀거리는 옷을 온몸에 휘감은 채 어두운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여자였다. 만우는 그 여자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턱!

16553199332722.jpg“컥!!”

엉덩방아를 찧었던 여자가 끈에 묶인 것처럼 끌려오더니 만우의 손에 속절없이 목을 잡혔다. 그런데 그때, 지금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산채가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무기를 꼬나쥔 산적들 수십 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16553199302444.png“그게 전부가 아니었네.”

16553199332707.jpg“선녀님을 놔줘!”

16553199332707.jpg“이놈!! 선녀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산적들을 쳐다봤다. 잡아온 산적 두목의 반응을 봤을 때 이 선녀라 부르는 여자는 그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를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산적들이 무기를 쥐고 뛰쳐나온다?

16553199302444.png“흥.”

만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의 눈을 억지로 벌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홍안(紅顔)이 드러났다. 하지만 만우는 얼굴을 찌푸렸다.

16553199302444.png“요사스런 술수는 안 쓰는 것 같은데.”

무림에서는 매혹술을 익혀 심지가 약한 남자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아 악행을 벌이는 마녀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자도 비슷할 것이라 만우는 생각했다.

16553199332722.jpg“놔! 놓으라고!!!”

만우의 손에 목줄기가 잡힌 여자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만우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가오는 산적들을 쳐다보면서 괘검을 여자의 목줄기에 가져다 대었다.

16553199332707.jpg“선녀님!!!”

16553199332707.jpg“이익! 네 이놈!”

16553199332707.jpg“벼락 맞아 죽을 놈!”

16553199332707.jpg“똥물에 튀겨 죽일 놈!”

만우가 위협적인 행동을 가하자 쏟아지는 욕설이 한층 더 심해졌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한 후 여자의 목에 괘검을 바짝 가져다 댔다. 사악. 주르륵! 괘검이라고는 하지만 만우가 그 실력을 보고 감탄한 간장이 공을 들여 만든 검이었다. 명검 축에 속한다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은 그 명검들에 뒤지지 않았다.

16553199302444.png“응?”

그런데, 여자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붉은색이 아니었다.

16553199302444.png“뭐야. 너 나무야?”

나무를 가르면 나오는 하얀색 진액 같은 것이 여자의 목에서 흐른 것이다. 만우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16553199332722.jpg“나무라니! 이 호선님을 보고는 나무라니!”

16553199302444.png“호선(狐仙)?”

16553199332722.jpg“여우 말고! 범!”

호선이라 하면 대개 여우 신선을 뜻하곤 했다. 그게 여러 가지 설화나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여자는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16553199302444.png“오! 진짜 뾰죡한 이빨이네?”

16553199332722.jpg“그러니까…… 치워!!!”

자신을 호선이라 칭한 여자의 이빨은 뾰족했다.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뾰족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여자가 손과 발에서 발톱을 뽑아내면서 만우를 향해 휘둘렀다.

16553199302444.png“읏차!!!”

차자자자장!!!! 만우는 괘검으로 호선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감탄했다. 조공(爪功)이 제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인간답지 않은 유연한 몸은 물론이고 만우의 검사까지 버텨낼 수 있는 손톱인 것을 보니 인간이 아니란 것이 확실해졌다. 인간은 아무리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해도 검기(劍氣)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16553199332722.jpg“크으…….”

하지만 호선이야말로 대경했다. 오히려 호선이 만우를 보고 진짜 인간이 맞는지 의심을 할 지경이었다.

16553199332722.jpg“혹시…… 검선(劍仙)이신지…….”

뒤로 훌쩍 뛰어 거리를 벌린 호선이 우물거리며 만우에게 물었다. 호선은 북악산의 호랑이가 오백 년 동안 도를 갈고 닦아 신선지경에 든 경우였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정식 신선이 아니었다. 일종의 수습 신선이었다. 그런데 승천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디딘 발에 개미나 모기 따위가 깔려죽었고, 깨끗하게 수신(修身)을 하고 신성(神聖)해야 할 그 과정에서 벌인 살생(殺生) 때문에 등선문(登仙門)이 닫혀 버렸다. 등선문이 닫힌 수습 신선은 대개 타락하고 만다. 선계와의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들의 정신을 지켜주고 있던 선계의 기운이 사라지고 그대로 속세에 노출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흔히 말하는 원령(怨靈)이나 악령(惡靈)이 되곤 했는데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간을 빼먹는 구미호 등이 그렇게 등선문이 닫혀 속세에 남게 된 경우였다.

16553199302444.png“검선? 검선이란 자도 있느냐?”

만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선이라면 말 그대로 검의 신선이란 뜻이다. 중원에서 정파 늙은이들이 검선이나 도선이니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 분명했다.

16553199332722.jpg“뭐야. 아니야?”

만우가 검선을 모르지 호선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만우는 그런 호선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16553199302444.png“아니면, 뭐 어쩔 테냐. 아. 호선이라면 몇 백 년 묵은 호랑이일 테니, 내단이 실하겠구나.”

푸확!! 우우우웅!!! 호선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사방으로 치솟던 만우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폭발적으로 내뿜던 기운을 가라앉힌 것이다. 오싹! 그 대신, 만우의 검에서 벌떼가 우는 듯한 공명음이 퍼지더니 사방으로 비산하던 검사가 모여들어 검신 위를 뒤덮었다.

16553199332722.jpg“너, 넌 대체 누구야!”

호선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비록 수습 신선이었지만 내세에서는 적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 범골에 자리를 잡았는데 모여든 산적들이 선녀니 뭐니 하면서 조공을 해와 그 재미에 그냥 눌러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놈들이 나쁜 짓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딱히 호선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방조했던 것이다. 또한 저들이 나쁜 마음을 먹어도 호선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만우는 호선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16553199302444.png“본주에 대해서 알아서 뭐하게.”

만우의 말에 묵직한 무게감이 실렸다.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한 만우에게는 하릴없는 몸짓이나 하릴없는 소리 한 마디에도 존재감이 실렸다.

16553199302444.png“네년은 아마 본주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검선이란 존재를 알게 된 만우가 눈을 번뜩였다.

16553199302444.png“검선이란 자에 대해서. 하나도 빼놓지 말고.”

16553199332722.jpg“헛소리!!!”

꽈르르릉!!! 호선이 기운을 뿜어냈다. 그러자 정순한 선기와는 다른 혼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선계의 기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식이 신선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연의 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것도 무려 오백 년이나 수련을 해서 쌓았으니 그 양은 보통이 아니었다. 크와아아앙!!!!

16553199444573.png

  그와 동시에 호선의 전신이 울룩불룩하고 거대화가 되면서 하얀 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호선의 몸이 무려 1장 5척까지 늘어났다. 사람보다 3배가량 거대해진 것이다.

16553199302444.png“진짜 호랑이 새끼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