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검계 박살!(5)2019.05.28.
그 때문에 만우는 몇 번이나 허탕을 쳐야만 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허탕을 그 안에 있는 잔챙이들에게 풀곤 했는데 그런 습관은 머지않아 없어졌다. 홧김에 부서트린 바닥에서 하오문주가 숨겨놓은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 쥐새끼 같은 놈들은 한 곳에 집중하지 않아. 여기저기 분산투자를 하거든. 그건…… 보물도 마찬가지고.”
아마 자신의 기를 튕겨내는 그것이 검계주가 이곳에 숨기고 간 보물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기특한 놈들이었다. 만우가 알아서 잘 찾아가라고 이렇게 보관을 열심히 해둔 셈이니 말이다.
“여기 보물이 있다고? 어디? 어디?”
검을 만드는 것에만 미친 간장은 보물이란 말에도 시큰둥했다. 하지만 방매는 아니었다. 보물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방매는 눈이 뒤집혀서는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그렇게 해서는 안 나오고.”
쿠웅!! 쩌저적!! 만우가 진각으로 땅을 즈려밟았다. 그러자 거대한 진동이 지하 검투장 전체를 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만우가 발을 떼자 쩌적하고 금이 간 땅에서 시린 기운이 새어나왔다.
“만년한철은 아니고…… 천년한철(千年限鐵)이네.”
“천년한철? 그게 정말이오?”
만우는 그 틈으로 드러난 것이 만년한철이 아니라 천년한철이라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간장에게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철이 한기(寒氣)에 만년 동안 노출이 되면 만년한철(萬年限鐵)이 된다. 이 만년한철로 만든 검은 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 꿈속에나 나오는 검이다. 만년한철로 제련한 검은 무게가 보통 검에 비해 삼 할 이상 가볍지만 내구성은 만년 동안 써도 이 하나 나가지 않을 정도고 예기는 무인이 아닌 자가 휘둘러도 삼 장 밖에 있는 종이도 그냥 잘라낼 정도로 대단했다. 거기에 만약 내공을 쓸 수 있다면 내공의 소모율이 극한으로 줄어드는데다가 영혼마저도 베어버릴 수 있는 검이 탄생하게 된다.
“내 꿈이 만년한철 한번 만져보는 것인데. 천년한철이라니. 이것도 감지덕지요.”
천년한철은 한기에 천년동안 노출된 철을 말한다. 비록 만년한철에 비해서는 많이 모자라지만 그것만 해도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귀물이었다.
“검을 만들 수 있는 양이면 좋을 텐데. 그 정도 양은 안 되는 것 같소.”
만년한철은 부르는 것이 곧 가격이었다. 천년한철은 같은 무게의 금의 열 배에 해당하는 가격을 내야한다.
“아쉽군.”
“그래도 질 좋은 삼척산 철과 섞으면 백련정강하여 만든 검보다는 좋을 것 같소. 물론 이걸 백련정강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러기엔 장비가 많이 필요하고.”
백련정강이란 말 그대로 백 번을 넘게 담금질을 하여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검 하나를 만드는데 대부분 열 번 이상을 담금질 하지 않으니 백 번이면 그 검이 얼마나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질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게 보물이야?”
방매는 철광석 덩어리를 보고는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며 피식 웃고는 철광석 덩어리 하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써컥. 엄지손톱만한 철광석 덩어리가 떨어져 나왔다. 간장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제련이 안 된 금속이라고 하지만 무려 천년한철이다. 그냥 돌멩이만 해도 손가락으로 돌멩이를 베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기. 이게 얼마나 귀한건지 모르지?”
방매는 일단 귀한 것이라니까 받았지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광석에 대해서 잘 알리가 없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열 배는 비싼 거다. 잘 가지고 있어.”
“이, 이게???”
방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차가운 철광석에 지나지 않았다. 거무튀튀한 것이 별로 돈이 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열 배는 더 비싼 것이라니.
“끄응…….”
방매는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어서는 이리저리 휘저었다. 만우가 그것을 보면서 기겁했다.
“뭐, 뭐하는 거야!?”
“그렇게 비싼 거면 내가 잘 가지고 있어야지.”
방매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팍에서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줄을 연결에 목에 걸어 가슴 사이에 숨긴 전낭이었다. 만우는 고개를 돌렸다. 성격이 털털하고 남정네 같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보는 앞에서 저럴 줄이야.
“말만 한 여자애가…….”
“뭐라고 꿍시렁대는 거야?”
방매는 전낭에 천년한철을 귀물 대하듯 조심스럽게 집어넣고는 입구를 꽉 조였다. 그러고는 다시 그 전낭을 가슴팍에 밀어 넣었다. 가슴 사이에 딱 들어가면 흔들리거나 바깥으로 튀어나올 일도 없고, 포졸의 순시에 걸려서 빼앗길 염려도 없다.
“그리고 여기 있네. 내가 찾던 거.”
천년한철을 다 꺼낸 만우는 그 아래 묻혀 있는 상자를 보고서는 씩 웃었다. 허공섭물로 그 상자를 끌어올린 만우가 손가락으로 스윽하고 긋자 자물쇠가 철컹하고 떨어져 나왔다. 파라락! 그 안에는 종이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도 꽤나 질 좋은 고급의 한지였다. 만우는 고작 이런 한지로 사람들의 절망을 담았다는 것에 혀를 쯧하고 찼다.
“뛰어난 문사의 붓으로 쓴 글이 가득 차야지 이런 졸작들이…….”
뛰어난 문사의 붓은 검객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검사들이 검을 휘두르는 법이 다르듯, 문사들의 글씨도 그것처럼 전부 다 다르다고 했다. 그 때문에 중원에서는 수많은 무림의 검객들이 글씨를 쓰는데도 공을 들였다. 글을 쓰는 것이 곧 검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제갈세가의 문검객(文劍客) 제갈휴였다. 비상한 머리로 유명한 제갈세가에서도 그는 특히나 특출난 사내로 세 살의 나이에 사서삼경을 떼고 다섯 살의 나이에 대학까지 다 독파한 천재였다. 그런 그는 서예를 특히 좋아했는데 그의 글은 황실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로 매우 뛰어났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서예법으로 만든 검법이 바로 제갈휴의 문필검(文筆劍)이었다.
“섬세하고 유연했지만 강직했고 올곧은 검이었다.”
그는 만우와 검을 겨뤘었다. 물론 아무리 문필검이라고 해도 만우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검의 경지와 상관없이 검법 그 자체가 정대(正大)했다. 정파의 검이라면 만우는 무당이나 화산을 꼽지 않았다. 만우가 제일로 꼽는 것은 제갈휴의 문필검이었다.
“이거랑 이거.”
만우는 상념을 접고 그 안에서 두 장의 종이를 빼들었다. 간장이 격정에 찬 눈으로 그 종이를 받아들었다.
“이, 이건.”
“염왕채 각서다. 이제 네 마음대로 해도 돼.”
간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것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던 과거였다. 하지만 귀인을 만나 천형의 굴레 같던 염왕채까지 벗어던지게 되었으니 간장이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쫘자자작! 간장은 그 자리에서 차용증을 수십 조각으로 찢었다. 그러고는 그 종이조각들을 입으로 밀어넣더니 몇 번 질겅거리며 씹고는 꿀꺽 삼켜 버렸다.
“크아!!!”
분명 종이를 먹었지만 간장은 수십 년 묵은 체증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다. 종이 맛이 이렇게 달 수가 없었다. 만우는 그런 간장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건, 향이 아가씨 것.”
만우는 김향의 염왕채 차용증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염왕채 빚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쌀 일만 석?”
쌀 일만 석이면 무명은 2800필이나 된다. 은으로 따지면 무려 4000냥이나 된다.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일만 석이면 만석지기라 부르는 거대한 농토에서 나오는 일 년 수확이다. 염왕채가 고리대금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다.
“이 미친놈들이.”
아무리 김약항이 명으로 잡혀가 가세가 기울었다고는 하지만 양반의 가문이다. 아마 몸이 허약했던 아들과 손자를 살리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남은 것은 일만 석이라는 빚과 기생의 몸종이 된 신세뿐이었다. 만우는 굳은 얼굴로 그 차용증을 차곡차곡 접어 자신의 품에 밀어 넣었다. 나중에 김향을 만나게 되면 그녀 앞에서 이걸 불태워 줄 생각이었다. 동시에 만우는 손끝에 삼매진화를 일으켜 상자 안에 손을 담궜다. 그러자 종이에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누군가의 고혈을 빨아먹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염왕채가 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건 흡사 염왕채 때문에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진혼 의식 같아 보였다.
“방매야.”
“응?”
“여기 있는 거, 싹 다 뒤져서 돈 될 거 챙겨.”
“음…… 응.”
방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만우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였다. 간장은 그런 만우의 옆에서 천년한철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처음 만져보는 금속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진 뒤. 방매는 여기저기서 잘도 찾아낸 것들을 한아름 싸들고 돌아왔다. 꽤나 쏠쏠한 것들을 주워왔는지 짐이 무거워도 방매의 표정이 밝았다.
“검계주를 못 잡고 가는 게 아쉽네.”
“어디로 튀었을까?”
방매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검계 놈들이 신출귀몰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비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살다보면 다 한 번쯤은 만나게 되어 있더라.”
의도치 않아도 이상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만우가 반드시 검계주를 만나 그 면상을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상, 만나게 될 것이다.
‘사지를 꺾어 아가씨 앞에 사죄를 하게 만들어주지.’
누가 검계주인지는 모르지만 만우는 자신 있었다. 오늘부터 그놈의 잠자리는 뒤숭숭해질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제일검인 검주 만우가 벼르고 있었으니까.
“흡!”
만우가 간장이 만든 검에 5성 공력을 담았다. 그러자 검신이 부르르 떨리면서 벌떼가 우는 듯한 공명음을 일으켰다. 뚜렷한 검명이었다. 그리고 만우는 그 검을 들어 내리쳤다. 초식 따위 없는, 지극히 실전에 입각한 움직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순한 검로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만류귀종(灣流歸宗). 기천의 도인의 경지에 오른 만우는 기천이 추구하는 자연체(自然體)를 일부나마 몸에 담고 있었고 때문에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무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그런 묘리가 담긴 검이 그어진 여파는 단순히 어디 기둥 하나가 끊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꽈르릉!!!
흡사 뇌성이 울려 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괴력난신이 그 공간 자체를 할퀴어버린 것처럼 압도적인 파괴의 흔적이 공간 전체에 남았다.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 전율을 느끼고 압도적인 폭력 앞에 굴복할 것이다. 철컥!! 그런 폭력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겨놓은 만우는 검집에 검을 납검하고는 몸을 돌렸다.
“나중에 보자. 반드시.”
검계주와의 만남을 간절하게 기원하는 만우의 목소리가 사납게 할퀴어진 공간 안에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
“실패요?”
“제가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소.”
“…….”
“괴물이더군. 아가씨 말대로 백 장은 벌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광문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은월루주인 어리의 말을 다 안 믿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오히려 만우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셈이 되어버렸다.
“별로 적의는 없어서 빠져나왔지만…….”
광문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만우가 자신에게 적의가 있고, 자신에게 그 거리에서 달려들 때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니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음(死).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아직 그는 우리에 대해서 모르니까요.”
“하지만 우리도 그자가 왜 우리를 찾는지에 대해서는 모르잖아.”
“그러니까 알아보면 되죠.”
어리는 빙긋 웃었다. 아찔한 미모였다. 아직 완벽하게 다 피지 않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마주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아찔한 매력을 가진 어리였다. 하지만 광문자는 그런 어리를 여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직시하는 것이 가능했다. 광문자가 남색을 밝히거나 고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감정을 품기에는, 광문자는 너무 어려서부터 어리만을 위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리는 여자이기 이전에 광문자의 가족이고, 딸이나 다름없었다.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어리는 광문자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자, 어사와 함께 함흥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함흥이라면…….”
광문자가 어리를 쳐다봤다. 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왕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주상 전하께서는 검주를 이용해 상왕을 모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쪽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만.”
“그러니까 겸사겸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리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검주의 목적도 확인하고, 함흥 지방의 분위기도 살피고.”
“……준비하겠습니다.”
어리가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으면 광문자로서는 어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신분으로나, 계급으로나 심지어 실력으로도 광문자는 어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참. 패수(浿水:압록강) 관문을 통해 중원의 무림인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니 의주(義州)의 은월루로 그들에 대한 감시도 게을리 하지 말아주세요.”
“호,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광문자가 화들짝 놀라며 어리를 쳐다봤다. 어리는 뭘 그런 것을 물어보냐는 얼굴로 생긋 웃었다.
“검주가 왜 검계를 찾아갔는지, 그 이유를 알아다 주세요. 그다음에 생각하도록 하죠.”
“아가씨. 그래도 혼자는……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