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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 검계 박살!(4) (42/400)

042. 검계 박살!(4)2019.05.25.

16553196895038.jpg“저, 저한테 권한이 없는 일이라 그렇습니다.”

16553196895045.png“권한?”

만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증거였다. 춘삼은 재빨리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16553196895038.jpg“염왕채에 관련한 모든 것은 검계주가 은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16553196895045.png“서류가 어딨는지도 몰라?”

16553196895038.jpg“저희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졸입니다.”

춘삼은 모든 것을 검계주에게 떠맡기기로 했다. 누군가 저 무시무시한 괴물의 분노를 받아줄 욕받이가 필요했다. 검계란 조직이 원래 그랬다. 뒷방길 파락호치고는 의리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벼볼 만한 상대일 그러는 법이다. 그리고 적어도 춘삼에게 만우는 그렇게 비벼볼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차라리 관아에 다시 쳐들어가고 말지 만우에게는 덤비지 않을 것이다.

16553196895038.jpg‘내 머리.’

한 명도 아니고 스무 명의 죽립과 정수리 부근의 머리카락을 동시에 날려버린 검의 기예. 그런 기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고수에게 덤벼들 정도로 이 삶이 미련이 없지 않았다.

16553196895045.png“그래?”

스르릉. 만우가 다시 검을 뽑아들었다. 권희달을 상대할 때도 필요하지 않았던 검이었다. 그런 검이 만우의 손에 들린 순간, 간장은 숨을 집어삼켰다. 압도(壓倒). 간장은 검을 쥔 만우의 모습에서 숭고함을 느꼈다. 만우는 야장신이 간장에게 내려준 역경과 고난이다. 넘기 힘들지만, 넘고 나면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 그리고 성취감을 가져다 줄.

16553196895038.jpg‘팔과 어깨가 이상적인 각도를 이루고 있고 몸을 지탱하는 허리는 꼿꼿하며 팔이 길어 검신의 길이와 두께는…….’

간장은 만우의 모든 것을 눈에 다 담았다. 방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검을 뽑아든 만우나, 그걸 보면서 감탄하는 간장이나 정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196895088.png‘근데 돈 냄새가 나.’

방매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힐끗거렸다. 방매는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양제일매분구가 될 수 있었다. 살 만한 집에 앞에 서면 돈냄새가 솔솔 풍겼고 그런 집에 들어가면 십할이면 십할의 확률로 물건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돈 냄새, 쩐 냄새가 지하에서 강하게 피어올랐다.

16553196895088.png“내려가자.”

그 강렬한 쩐 냄새에 눈이 돌아간 방매가 만우에게 말했다. 쩐 냄새에 눈이 돌아갔어도 제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 방매였다.

16553196895045.png“들어가?”

16553196895088.png“응. 냄새가 나.”

16553196895045.png“…….”

만우는 뭔가에 사로잡힌 듯 비밀문을 쳐다보는 방매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방매도 정상은 아니었다.

16553196895045.png“그래. 어차피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만우의 말에 춘삼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는 갈등 중이었다. 저 비밀문의 정체를 만우에게 알려줘야 하는지, 아니면 알려주지 말아야 하는지.

16553196895038.jpg‘……줄을 잘 타야 해.’

춘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사이에 방매와 간장은 먼저 비밀문 안으로 들어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만우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춘삼을 보고 싱긋 웃었다.

16553196895038.jpg“그 안…….”

번쩍!!! 철컥! 만우의 손에서 또 다시 벼락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춘삼을 비롯한 검계의 눈이 커졌다. 그들은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나더니 자신들의 목을 부여잡았다. 그들이 움켜쥔 목 사이로 붉은 피가 베어 나왔다. 춘삼은 떨리는 동공으로 만우를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16553196895038.jpg‘왜…… 왜…….’

16553196895045.png“왜냐고?”

만우는 또다시 마찰에 의해 뜨거워진 검집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찰열 때문에 검집 자체의 모양이 손상될 수 있었다.

16553196895045.png“내가 맞춰볼까? 너희, 지금까지 죽인 사람이 천 명은 되지?”

수라장에서 뒹굴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혈향(血香). 그것도 짐승의 피가 아닌 사람의 피냄새. 그 혈향이 검계한테서는 마치 악취처럼 피어올랐다. 만우는 그들이 자신 앞에서 깨갱했다고 해서 그들을 그냥 보고 넘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회악. 이미 그들은 어르신의 아들과 손자, 손녀를 염왕채라는 굴레를 뒤집어 씌워 그렇게 만들어 버린 순간부터 죽을 운명이었다.

16553196895045.png“죽어서도 저주받을 놈들.”

털썩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 검에 스무 개의 머리가 떨어졌다. 만우는 그들에게 저주를 남기고는 지하로 통하는 비밀문을 들어올렸다. ***

16553196895038.jpg“전하. 춘추관(春秋館) 기사관(記事官) 동군영이 들었사옵니다.”

16553196895038.jpg[들라하라.]

동군영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상선은 젊은 관리를 보고서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긴장한 것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16553196895038.jpg“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6553196895038.jpg“마, 많이 티, 티가 납니까?”

동군영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상선은 그런 동군영을 보고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기사관이라면 사관(史官)으로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는 관직이었다. 왕을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6553196895038.jpg“자주 동석하시지 않으셨습니까.”

16553196895038.jpg“면전에서 주상전화를 뵙는 것은 처음이라…….”

스물아홉의 나이로 대과(大科)에서 장원급제를 한 동군영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울렁증이었다. 사석에서는 그렇게 말도 잘하면서 이런 공무에서는 지금처럼 벌벌 떨었다. 그랬기 때문에 선혜청이나 비변사, 호조나 형조 등으로 가지 못하고 춘추관으로 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16553196895038.jpg“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주상전하는 관대하신 분입니다.”

끼익! 문이 열렸다. 동군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동군영은 고개를 숙이고 용안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천리길처럼 긴 길을 걸어 왕 앞에 섰다.

16553196895038.jpg“신(臣) 춘추관 기사관 동군영, 주상전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동군영은 뒤통수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왕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동군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은 자신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동군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196895038.jpg[심(心)이 유약한 자를 선별하거라. 그리하여 내게도 데려오라.]

왕은 암행어사(暗行御史)를 제수하기 위해 심(心), 그러니까 성정 자체가 유약한 사람을 뽑을 생각이었다. 다른 때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었다. 검주 만우. 철혈왕인 임금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검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암행어사가 드세서는 안 됐다. 그러다가 검주와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괜히 아까운 인재 하나만 잃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동군영은 바로 적임자였다. 장원급제를 하였으니 학문은 따져볼 것도 없고, 지금 저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만우가 하자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성격이 분명했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왕은 동군영에게 말했다.

16553196895038.jpg“춘추관 기사관 동군영은 들어라.”

16553196895038.jpg“예, 전하!!”

16553196895038.jpg“춘추관 기사관 동군영을 암행어사(暗行御史)에 제수하고 사목과 봉서, 마패와 유척을 하사한다. 봉서는 반드시 도성을 빠져나간 후 열어볼 것이며 부디 두 눈으로 짐을 대신하여 조선팔도를 둘러본 후 돌아오라.”

16553196895038.jpg“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갑작스런 암행어사 제수에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이 울렁증 때문에 장원급제를 하고서도 당상관으로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암행어사라니. 암행어사를 제수한다는 것은 곧 미래의 길이 왕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때 왕이 뒤에 사족을 붙였다.

16553196895038.jpg“단, 역졸을 비롯한 수행원은 짐이 정해준 이들로만 구성해야 할 것이다.”

16553196895038.jpg“예, 전하. 견마지로를 다해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그에게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 채 지금 당장은 신난 동군영이 우렁차게 왕에게 대답했다. ***

16553196895088.png“여긴…….”

16553196895045.png“호오. 이런 곳이 조선에도 있었단 말이야?”

방매와 간장은 지하로 내려가면서 코를 움켜쥐었다. 짙은 혈향과 땀냄새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익숙한 듯 눈을 반짝였다.

16553196895038.jpg“형님, 뭐 알고 있는거 있으십니까?”

간장이 만우에게 물었다. 만우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196895045.png“그래. 중원에서 본 적이 있다. 항주였던 것 같은데.”

16553196895038.jpg“오오. 술과 여자로 유명한 그 항주 말입니까?”

항주는 향락의 도시로 유명했다. 수려한 산천과 더불어 유명 기루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필연적으로 도박 같은 쾌락을 위한 것들이 총망라된 곳이 바로 항주다.

16553196895045.png“그래. 술과 여자로 유명하다는 건 돈이 많이 돈다는 증거지. 그렇기 때문에…….”

만우는 눈을 반짝였다.

16553196895045.png“돈이 많은 놈들은 어떻게든 돈을 쓰고 싶어 하거든. 점점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걸 원하게 되고. 그걸 충족시켜 줬던 게 여기야.”

만우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초절정 이상의 공력이 필요한 삼매진화(三昧眞火)였다. 그것이 지금은 횃불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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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횃불에 불을 붙이자 땅 속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공간이 드러났다. 특히나 조선에는 이런 지하 공간을 건축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땅이 너무 단단했기 때문이다. 지반이 너무 단단해 기초공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장비와 인력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는 2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건물을 높이 올리려면 기초 공사를 튼튼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깊숙하게 파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 공사의 비용이 올라가고 효율이 떨어졌다.

16553196895045.png“검투장(劍鬪場).”

16553197016332.jpg“검투장……?”

방매와 간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에 무슨 용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우는 단단한 철목으로 창살을 만들어 덧댄 커다란 감옥 같은 공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6553196895045.png“저기서 사람이 싸우고,”

만우가 감옥 주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감옥 한가운데가 바로 무대고 그 주변은 관객석이다.

16553196895045.png“여기서 구경꾼들이 돈을 걸지.”

16553196895088.png“……투견이나 투계처럼?”

방매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한양에서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중 몇몇 군데의 시장에서는 투견이나 투계를 하곤 했다.

16553196895045.png“그래. 개나 닭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철목으로 만들어진 창살은 검붉은색으로 번들거렸다. 사람의 피가 여러 번 묻어 철목에 흡수되어 그대로 굳은 것이다.

16553196895045.png“피냄새가 나잖아. 땀냄새랑.”

만우는 검투장 주변에 있는 작은 방문들을 열어보았다.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만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16553196895045.png“그런데 사람이 없네.”

원래 이런 검투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검투사들의 관리다. 대부분 중원에서도 검투사들은 천민이나 노비였기 때문에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검투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생활한 것 같은데,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떠난 것 같았다.

16553196895045.png“한두 놈쯤은 살려 둘 걸 그랬나.”

만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방매와 간장은 주변을 다 둘러본 이후에 고개를 저으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16553196895088.png“아무것도 없어.”

16553196895038.jpg“저기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형님.”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이내 만우는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가장 큰 공간에 들어섰다. 이곳에는 혈향이 거의 나지 않았고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깨끗했다. 바로 검계주의 방이었다.

16553196895045.png“흐음…….”

만우는 주변을 눈으로 슥 훑었다. 그냥 슥 훑는 것 같았지만 만우는 몸 속의 내공을 끌어올려 기감으로 방 전체를 훑었다.

16553196895045.png“기감이 막히네.”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감이 막혔다. 본래 기(氣)란 것 자체가 물리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벽도 투과하고 사람도 투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가 통과하지 못 하는 것이 몇 가지 존재하기는 했다.

16553196895045.png“똑같은 기(氣), 만년한철.”

그 외에도 기린의 뿔이나 용아(龍牙), 용각(龍角) 등 몇 가지들이 더 있긴 했지만 그건 거의 신외지물이었기 때문에 배제했다.

16553196895045.png“그거 알아?”

만우는 씩 웃고는 방매와 간장에게 말했다.

16553196895045.png“이렇게 구린 짓하는 놈들은 잡으려고 하면 빠져나가거든.”

마치 손에 쥔 모래처럼.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잡으려고 해도 기가 막히게 도망을 잘 친다. 그건 무공 고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종의 육감이나 예감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 기가 막히게 꼭 그런 놈들이 자리를 비울 때 이런 사고가 터진다. 만우는 하오문을 상대하면서 그 기가 막힌 우연을 수도 없이 겪었다. 무공 고하로만 따지면 한참 뒤쳐지는 하오문주가 만우의 손에서 그토록 오래 도망 다닐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16553196895045.png“그런데 내가 중원에서 그런 놈들 쫓아다니면서 느낀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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