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검계 박살!(1)2019.05.14.
“이거, 평생 못 나가는 거 아니야?”
감령은 하루 종일 묶여 있었기 때문에 뻐근해진 손목을 문질렀다. 그냥 약간의 힘만 줘도 끊어질 포승줄이었지만 만우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장이 나섰으니까, 금방 해결되겠지. 나아졌잖아?”
그들은 볏짚이 깔려있던 허름한 옥사에서 그래서 나름 집처럼 되어 있는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곳에서는 피냄새가 진동을 해서 여간 찝찝했는데 여긴 그래도 깨끗했다. 물론 주변을 아주 삼엄하게 경비하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평생을 도검산림(刀山劍林)에서 살아온 이들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갇힌 건 마찬가지인데.”
“대장이 왔다갔으니까, 너희도 느꼈잖아?”
문형일의 말에 감령과 필두, 그리고 마익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옥사에 갇혀 있는 와중에도 네 명은 소름 끼칠 정도로 방대한 기세가 궁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똑똑하게 느꼈다. 그건 일종의 신호였다. 만우가 그들을 구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 만약 만우가 움직였다는 확신이나 증거가 없었더라면 감령이나 필두는 탈옥을 감행했을 것이다.
“무림인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데 뭘.”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감령이나 필두에게는 탈옥하는데 불과 일다경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옥사는 허술했다. 무림인이나 무공을 익힌 자들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도망갈 수 있다고? 겪어봤잖아. 여기에도 쓸 만한 무인들이 있어.”
“무인이 아니라 장수겠지. 하지만 뭐, 확실히 의외기는 했어. 이 조그만 나라에 말이야.”
문형일의 말에 필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설미수의 저택에서 본 장수들은 실력이 꽤나 출중했다. 실전 감각이 부족했지만 오른 경지로만 따지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 작은 나라에서, 그것도 군문에서 그런 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이 나라는 무림이 없으니까. 무공을 배워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은 군문에 투신하는 것밖에 없다 하더라고.”
문형일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랑벽이 심한 문형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딘가 소속되고, 갇혀 있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그렇기에 그의 검은 바람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바람을 잡아 목줄을 맨 것이 바로 검주 만우였다. 그런 그는 자신이 조선에서 태어났더라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쁘지 않지.”
하지만 감령과 필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문형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군문에 투신하는 게?”
감령과 필두는 피식 웃었다. 그들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산적이 되고 싶어서 된 줄 알아?”
“수적은 어떻고. 제기랄.”
감령과 필두는 배가 고파서 산적과 수적이 됐다. 농사를 지어서 평범하게 살면 평생을 배를 곪는다. 하지만 산적과 수적이 되면 배를 곪을 필요 없다. 뺏어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토벌군에게 쫓기는 게 아니라 토벌군 한번 해보는 게 내 꿈이다.”
필두는 그렇게까지 말했다. 확실히 감령과 필두 정도의 무재라면 군문에 투신했어도 이름을 날리는 장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선망 어린 눈빛을 받았을 것이다. 더불어 안정적인 가정도 꾸리고. 하지만 수적과 산적이 된 이상 그런 평범하고 화목한 삶은 이제 손에 쥘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자. 그럼 꿀꿀한 이야기는 접어놓고.”
감령이 손바닥을 짝하고 쳤다. 문형일과 마익후는 감령을 쳐다봤다. 감령은 씩 웃었다.
“심심하니까 내기나 하지. 검주가 우리를 구하러 언제 올까, 그런 내기 같은 거.”
“뭘 걸고?”
“음…….”
감령은 턱을 쓰다듬었다. 까글거리는 수염이 느껴졌다.
“대신 대련권.”
“대신 대련…… 권?”
“그래. 검주…… 형님? 그래 검주 형님이 대련을 하자고 할 때 무조건 한 번 나서서 대신 해줘야 되는 거.”
“……헐.”
문형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검주는 다 좋지만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비무를 빙자 삼아 구타를 시전했다. 하지만 그냥 구타가 아니라 그들의 부족한 점을 짚어주며 가르침을 내려주는 비무였기 때문에 또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아니,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혹시라도 비무가 길어질까 싶어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거 좋네. 하자.”
문형일과 마익후가 눈을 빛냈다. 마익후도 과묵했지만 만우와의 비무만큼은 끔찍이도 싫어했다. 고통을 즐기지 않는 다음에야 그걸 좋아할 리 없다.
“좋아, 그러면…….”
감령과 필두, 문형일과 마익후가 머리를 맞대고 내기의 조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설운이 문을 열고 안에 들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뭐야? 이렇게 막 들어와도 돼? 여기 옥사인데?”
문형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운이면 그들과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처지였다. 만우의 비무 상대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분에 초절정 초입에 들었던 설운이 이제 안정권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설운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나, 잘렸습니다.”
“잘려? 뭐에서?”
“세자 저하 호위무사에서요.”
설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무슨 잘못을 저질러 이곳에 갇히게 되었다는 소리였다. 그 순간 네 명이 씨익 웃었다.
“다들 왜 웃으시는…….”
설운이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으니 마음이 썩 편해지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그동안 몇 번 검을 부딪쳤다고 그새에 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잘 왔어. 아니, 잘 왔다는 뜻이야.”
“음…….”
이로써 대련권의 부담을 덜어줄 사람이 더 늘어났다. 설운은 자신을 보며 씩 웃은 네 명을 보고는 께름칙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무언가 잘못 선택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들어봐, 그러니까…….”
*** 만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우에게 사로잡힌 검계는 뒷방길 깊숙이 들어갔다. 검계의 본방이 뒷방길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면서 이리저리 골목길을 돌아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런데 그렇게 가던 중 만우가 강한 호기심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잠깐!”
멈칫. 앞서 가던 검계 조직원이 대단히 돌아보기 싫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참 표정을 못 숨기는 조직원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피식 웃으며 그것을 무시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숨어버리면 끝이지.’
타초경사(打草警蛇)의 우(憂)라 하였다. 풀을 잘못 건드렸다가 뱀을 놀라게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만우가 걱정하는 것은 그렇게 눈앞의 검계 조직원을 잘못 건드렸다가 검계가 숨어버릴까 봐였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만큼은 멈춰야 했다. 땅…… 땅…… 땅! 저 멀리 어디선가 무언가 단단한 것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러자 만우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만우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였다.
‘검명(劍鳴).’
검(劍)이 우는 소리. 갓난아이가 어미의 뱃속에서 나와 우렁차게 우는 것처럼, 검도 야장(冶匠)의 손에 의해 탄생할 때 우렁찬 울음을 터뜨린다. 검명이 들린다는 소리는, 이 근처에 야장이 있고 대장간이 있다는 소리였다. 만우가 검계 조직원을 쳐다봤다.
“야장이 있나?”
“…….”
검계 조직원은 귀신을 쳐다보는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대체 대장간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만우는 코를 벌름거렸다. 비릿한 쇠냄새가 맡아졌다. 동시에 숯 냄새도 느껴지는 듯 했다. 철을 녹일 정도의 강력한 화력을 위해서는 질 좋은 숯이 반드시 필요했다.
“쇠 냄새와 숯 냄새. 그리고 검이 우는 소리.”
“왜 이래. 너 무서워.”
옆에서 방매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만우가 손을 까닥했다. 그러자 검계 조직원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땅에서 떠올랐다.
“흣, 흣!!!”
검계 조직원은 난생처음 해보는 경험에 겁에 질렸다. 만우는 그런 조직원에게 물었다.
“안내해.”
“야!”
“대장간으로. 가서 봐야겠다.”
검주 만우. 검에 미친 검귀(劍鬼)이자 검밖에 모르는 검치(劍痴)가 바로 만우다.
산처럼 쌓인 황금보다는 잘 만든 명검 하나의 가치를 더 크게 치부하는 만우다. 그리고 그런 만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바로 검명이 우렁차게 떨쳐 울리는 대장간이고,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명장(明匠)들이다. 만우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명장은 중원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저 그런 검을 만들어내는 야장이라고 할지라도 만우는 그들과 주저하지 않고 교류했다. 검주 만우가 들렸다 간 대장간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검을 독문병기로 쓰는 무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에 검주 만우를 재신(財神)으로 모시는 대장장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대륙에 이름을 떨치고 싶은 야장이라면, 검주를 만족시켜라! 그런 만우가 검명 소리를 듣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치는 것과 같았다.
“저, 저쪽입니다.”
거대한 손에 붙들린 것처럼 둥실 떠오른 검계 조직원이 완전히 겁에 질려서는 대답했다. 절정의 공력을 이용한 허공섭물이었다. 그것도 사람 하나를 통째로 옮길 정도면 공력의 화후가 깊다는 소리였다. 만우가 눈을 한 번 찡그리자 거대한 손에서 해방된 검계 조직원이 다리를 덜덜거리며 떨었다. 스윽. 만우가 고개를 들어 앞쪽을 쳐다보고, 그러고는 뒷쪽을 쳐다봤다. 그 후 만우의 입술이 달싹였다. 만우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방매가 만우를 쳐다봤지만 만우의 입술은 어느새 굳게 닫혀 있었다. 방매는 만우를 보며 말했다.
“야. 우리 진짜 괜찮은 거지?”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만우의 설렁설렁한 대답뿐이었다. 이미 만우의 모든 신경은 대장간으로 쏠려 있었다. 땅, 땅! 아직 만우의 귓가에만 들리는 야장의 망치 소리가 아스라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
[방해하지 말라. 용무가 있어 온 것이니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검계의 돌격대장 춘삼이 움찔했다. 춘삼은 자신의 귓구멍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이리저리 후벼팠다. 하지만 귀에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설마…….”
뒷방길 초입에서 침입자에 의해 조직원이 피살됐다는 소리에 뒷방길에 있는 조직원들을 싹 다 끌어모아 나온 춘삼이었다. 검계주는 대부분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기 때문에 그다음 서열인 춘삼이 조직원들의 관리를 전담으로 맡아하곤 했기 때문이다.
“저 먼 곳에서 우리를 알아챘다고? 나만 들린 거야?”
춘삼은 주변 조직원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춘삼이 내공을 쓸 줄 아는 무인이었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만우와 춘삼 사이의 거리는 못해도 삼십 장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 거리를 격하고 전음(傳音)을 날린 것도 모자라 정확히 춘삼에게만 날렸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전음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독순술(讀脣術)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았다. 소리에 내공을 실어 다른 사람이 듣지 못 하게 날린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기예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음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전음을 쓸 수 있는 경지는 최소 화경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것을 알기에 춘삼은 너무 무식했고, 검계는 그런 무식한 놈들이 모인 곳이었다. 개중에 가장 똑똑한 놈이 춘삼이었다.
“헛것을 들었나 봐.”
“그러니까 계집질 좀 그만하쇼, 대장.”
“그게 내 낙인데 어떻게 그만둬.”
죽립을 머리에 쓰고 검을 거꾸로 든 춘삼과 조직원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숨죽이고 만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열 명이 넘는 조직원을 손쉽게 죽인 놈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놈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신들이 질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뒷방길에서 검계를 이길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왕을 호위하는 용호군이나, 궁궐의 최정예인 내금위가 온다고 해도 이 뒷방길에서만큼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가자.”
춘삼과 조직원의 얼굴에 은은한 살기가 떠올랐다. 이내 그들의 신형이 뒷방길의 으슥함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