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반역?(2)2019.04.20.
[검주!]
[대장님!]
설미수의 눈이 커졌다. 전음을 처음 받아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고절한 수법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희가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대장님께서 시키신 일이 아닙니까!]
네 명이 격렬하게 만우의 말에 반항했다. 그들은 내금위가 포위망을 형성한 그 너머의 지붕을 쳐다봤다. 그곳의 처마에는 어느새 자리를 옮긴 만우가 걸터앉아 있었다.
[나도 안다.]
만우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실 이 사단이 벌어진 데에는 만우의 공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세자를 상대하기가 귀찮다고 네 명을 세자에게 붙인 것은 만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네 명이 세자에게 어떤 바람을 불어넣었건, 세자가 검을 잡게 된 데에는 만우의 잘못이 컸다.
[하지만 여기서 관군과 부딪치면 일이 복잡해진다.]
[다 죽이겠습니다. 조선왕의 목이라도…….]
감령이 격렬하게 반항했다. 순간 감령의 몸이 멈칫하고 멈춰 섰다. 감령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앞에 거대한 검이 날아오는 것 같은 환각이 보였기 때문이다. 눈을 한 번 깜박이니 그 환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지만 어느새 감령의 이마에는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만우의 기세가 감령의 심령을 뒤흔든 것이다.
‘신검합일.’
몸과 검이 일체가 되는 경지가 헛말이 아니었다. 그건 초절정을 넘어서야만 맛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감령은 그 기세가 대단히 끔찍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본주가 조선의 왕을 만나 담판을 짓겠다.]
[대장님! 그랬다가는…….]
문형일이 만우를 쳐다보면서 전음을 날렸다. 만우가 바랐던 것은 조선에서의 평범하고 조용한 삶이었다. 하지만 세상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다.
[내가 벌인 일이니, 내 손으로 정리하마.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순순히 잡혀가거라.]
[…….그래도……]
[부탁하마.]
감령과 필두의 눈이 커졌다. 만우가 부탁한다는 말을 쓸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만우의 부탁이란 것이 더욱 무겁게 그들에게 다가왔다.
“후우.”
“…….”
파앗! 감령과 필두가 끓어 올렸던 기세를 가라앉혔다. 문형일과 마익후는 이미 만우가 순순히 잡혀가라고 했을 때 기세를 풀었다. 갑자기 격렬하게 터져 나오던 상대방의 기세가 사그라들자 내금위장의 눈가가 씰룩였다. 갑자기 상대가 포기를 한 것처럼 기세를 풀었기 때문이다. 휙! 내금위장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저 정도의 실력자들이 기세를 푼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금위장은 그 이유를 이곳에 없는 만우라는 남자에게서 찾고자 했다.
“설 부사 어르신. 만우라는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설미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내금위장이 속을 정도로 감쪽같은 연기를 설미수는 했다.
“아침에 나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소란이 났는데 오겠습니까?”
“…….”
내금위장은 중원에서 왔다는 이 네 명이 비범함을 경험했다. 그 때문에 섣불리 내금위를 동원하여 그자를 찾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금위의 군진이 없이는 자신과 실력이 엇비슷한 이들이 네 명이다. 그런 이들을 제어할 정도라면 이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면 뛰어났지 약할 리가 없었다.
‘어찌하여 조선에 이런 자들이.’
안 그래도 중원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오는 중원의 무뢰배들이 많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무뢰배들에 대한 경각심이 올라갔다.
‘만약 이런 자들이 궁궐에 침입을 한다면…….’
무슨 연유로 이런 실력자들이 중원에서 들어온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궁에 침입을 한다면 과연 막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운검이 있으니 전하는 안전하실 터.’
물론 왕에게는 마지막 보루인 운검이 있었다. 그리고 운검을 마주해본 내금위장은 확신했다. 이 네 명은 자신과는 동수거나 약간 위지만, 운검보다는 약했다. 내금위장인 자신이 운검과 실전을 한다고 했을 때 백초지적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운검과 내금위장 간에는 실력 차가 있었다.
“일단 이들을 압송한다!”
기세를 푼 이들에게 내금위들이 달려들어 포승줄로 팔과 다리를 묶었다. 그렇게 내금위들에게 손과 다리를 내맡긴 감령과 필두는 치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발광하진 않았다. 만우가 나서겠다고 한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감령과 필두는 문형일과 마익후처럼 만우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내금위장은 내금위들이 네 명을 압송해가는 것을 보면서 목소리에 공력을 담았다.
“오늘 본 것은 함구해야 할 것이다!”
쩌렁쩌렁! 내금위장의 목소리가 주변을 떨쳐 울렸다. 그러자 문틈 사이로 보고 있던 양민들, 아니 양반들까지도 움찔했다. 양반들에게 내금위장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자는 없었다.
“만약 이 일이 소문이 난다면, 어명을 어긴 죄로 내금위가 직접 조사를 할 것이다!”
이건 어명에 의한 일종의 작전이었다. 그러니 오늘의 이 사건에 대해서 떠드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 역시도 어명을 어기는 일이 된다.
“설 부사 어르신께서도 알고 계셔야 할 겁니다.”
내금위장의 눈이 번뜩였다. 설미수는 그런 내금위장의 얼굴을 담담하게 응시했다.
“저런 실력자들과 함께 조선으로 들어와 빈객으로 들인 이유!”
설미수의 아미가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마치 추국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금위장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순한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사람을 보내 확인토록 하겠습니다.”
“내금위장!!!”
설미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내금위장이라고 하지만 방금의 발언은 선을 넘는 발언이었다. 설미수의 벼락같은 호통이 내금위장을 향했다.
“내금위라고 하여 보는 눈이 없는 것인가! 이 설미수가 역심이라도 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겐가!!!”
“제 말이 심했다면 사죄드립니다.”
내금위장은 고개를 꾸벅 숙였지만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설미수는 얼굴 가득 불쾌함을 띄운 채 내금위장의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만약 저들에게 죄가 없고, 그로 인하여 방면이 된다면 자네는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해야 될 걸세.”
한양판성부사는 한양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자리이다. 그런 만큼 설미수가 마음을 먹는다면 발휘할 수 있는 권위의 범위는 내금위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예, 어르신.”
설미수의 분노를 담담히 받아낸 내금위장은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감각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금위장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인가.’
충돌이 생길 뻔한 작금의 위기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예민해진 것일까. 내금위장은 고개를 저었다. 만우라는 자가 걸리긴 했지만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의 실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중원이 아무리 넓고, 기인이사가 모래알갱이처럼 많다고 해도 바다를 건너 들어온 그 허무맹랑한 소문들을 전부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도성의 순찰을 더 늘려야겠어.”
어쨌건 중원을 통해 들어오는 무뢰배들이 무시 못 할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궁의 경비를 강화하고 도성의 순찰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내금위장이 절그럭거리는 갑주와 함께 설미수의 저택으로부터 멀어졌다.
“은공.”
설미수의 얼굴에 그림자가 깔렸다.
***
“일패 이왕 삼존 사주?”
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왕의 앞에는 오체투지를 한 설운이 엎드려 있었다. 왕은 자신이 내린 추상같은 명령을 면전에서 말린 설운을 하옥시키려 했다. 하지만 설운의 한 마디가 왕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중 검주라?”
“예. 소장이 설미수 판한성부사를 따라 대국에 다녀오는 길에 만났나이다.”
“검주…… 검주…… 검의 주인이라.”
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권희달을 쳐다봤다. 혹시 들은 바가 있냐는 표정이었기에 권희달은 부복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소장도 무림강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나이다.”
“왜 그자를 압송하면 안 된다는 것이냐?”
왕은 고개를 젓고는 설운에게 물었다. 설운은 이마를 땅에 쿵하고 박으면서 대답했다.
“그자는…… 검주 만우 그자는…….”
설운은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검주의 강함을 표현할 만한 합당한 표현을 찾지 못 했다. 만우와의 만남은 설운이 생각하던 세상의 한계를 깨버린 일이었다.
“전하.”
스르릉!! 그때 권희달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운검을 뽑아들었다. 동시에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원의 수만의 무인들 중 천하제일(天下第一)을 논하던 자였나이다.”
“검을 거두게, 운검. 내가 청한 자들이니.”
설운과 권희달의 표정이 굳었다. 특히나 운검인 권희달의 충격이 더 컸다. 왕의 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런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저 여인은 권희달이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수상한 자가 궁을 마음대로 활보한다는 것에 권희달은 왕에게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무슨 생각이냐 희달!’
자신의 감정이 화들짝 놀란 권희달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가 납검을 하면서 스르릉하는 소리에 마치 자신의 마음이 베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루주.”
“강녕하시었사옵니까, 전하.”
루주라 불린 여인은 여인치고는 신장이 컸다. 왕보다 손가락 하나 정도가 작을 뿐이었다. 대신 얼굴에는 검은 복면을 뒤집어 써 눈 밖에 보이지 않았고 체형도 쉽게 짐작이 되지 않았다. 스르륵. 검은 천이 바닥에 쓸렸다. 설운은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을 가린 루주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뭐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아.’
권희달도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여인이다. 그러니 설운이 알아채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막상 모습을 드러낸 후에도, 여인은 눈앞에 있음에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어나라.”
왕의 한 마디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던 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호박석이 박힌 듯한 밝은 황색의 눈동자가 특이했다.
“천하제일?”
“그렇사옵니다.”
“명국의 사람들은 허풍이 심하기로 유명하지. 일검에 바다를 가르고 일권에 산봉우리를 부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알려진 곳이네. 게다가 명 황제는 하늘의 자식이라 천자라 불린다지?”
“…….”
국왕은 냉소적이었다. 그가 시국이 불안정했을 때 왕자의 신분으로 명국에 다녀왔던 일은 유명했다. 그 일 이후로 왕은 중원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곳에서 천하제일이라. 하늘 아래 제일. 자네가 보기에도 그런가? 내가 보기에 천하제일은 중원에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권희달을 쳐다봤다. 권희달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지만 루주라 불린 여인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복면이 그에 따라 살랑거리며 움직였다.
“소녀도 운검께서 감히 견줄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옵니다. 허나.”
왕의 앞에서도 루주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철혈이란 소리를 듣는 왕 앞에서는 영의정조차도 함부로 저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검주 만우의 무예는 초극지경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극지경이라?”
중원에서 무예의 경지를 나누는 그 기준은 조선에서 익숙하지 않았다. 왕은 권희달을 쳐다봤다. 권희달은 왕의 시선에 루주를 쳐다봤다. 왕이 적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을 누르고 있었지만 루주라 불린 여인을 눈에 담자 속이 부글거렸다.
“이걸 말하는 것이오?”
촹!!! 왕 앞에서 유일하게 검을 패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왕이 원한다면 뽑아드는 것도 가능한 사람이 바로 운검이다. 권희달이 손에 쥔 검이 부르르 떨리더니 검 바깥으로 무형의 기운이 뭉쳐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우우웅!!! 동시에 검에서 벌떼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을 본 설운의 눈이 커졌다.
‘검명(劍鳴)! 그리고 검사(劍絲)!’
내공, 혹은 공력이라 부르는 힘을 설운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고절한 수준의 공력 운용법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설운으로서는 흉내조차도 낼 수 없는 기예였다.
‘조선제일검.’
과연 조선제일검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루주는 권희달의 검기(劍氣)를 보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운검께 여쭙겠습니다.”
루주는 권희달을 향해 말했다.
“운검께 검이란 무엇입니까.”
“검?”
갑작스러 튀어나온 철학적인 질문에 권희달의 눈썹이 치솟았다. 왕을 힐끗 바라보자 왕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권희달과 루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게 두 번째로 소중한 것이다.”
“첫 번째는…… 알겠습니다.”
루주의 복면이 나풀거렸다. 웃은 것이다. 운검에게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검이 아니라 바로 왕이었다.
“그럼 운검께서는 검주를 이기실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