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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검주, 입궐!(3) (29/400)

029. 검주, 입궐!(3)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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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도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하여 어사를 파견했는데 그 어사가 급히 보내온 서찰이었다. 함경도에서 온 서찰이라면 모든 대신들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이름이 있었다. 상왕(上王). 왕위를 두고 상잔하는 자식들의 혈투를 지켜보지 못한 채 함경도에 들어가 버린 현 임금의 아버지이자 이 조선을 세운 조선의 태조. 현재 임금에게 태조는 아직까지도 옥새를 내어주지 않았다. 어린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임금을 지극히 미워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것이 이런 소문을 자꾸만 불러일으켰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임금은 거대한 분노를 토해냈다. 심지어 이것이 자신의 손으로 임명하여 보낸 어사가 보낸 서찰임에도 그러했다.

16553194126674.jpg“허나 조사단을 꾸리시는 것이.”

16553194126674.jpg“닥쳐라!”

아들인 임금에 대한 상왕의 분노가 어떠한지 아는 중신들이 임금에게 조심스레 건의했지만 임금의 진노에 그들은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16553194126674.jpg“전하!!!”

임금은 피로 만들어진 길을 걸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임금은 곧바로 모든 사병을 혁파하고 비대하게 커진 절들이 가지고 있는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여 나라의 재산으로 삼았다. 그리고 군을 강건하게 하였으며 나라의 기틀과 기준을 잡아 혼란을 종식시켰다. 비로소 조선이 나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지금의 임금이었다.

16553194126674.jpg“비록 이는 사특한 자들이 전하의 위엄을 손상케 하기 위해 퍼뜨리고 있는 정보이겠으나, 조심하여 나쁠 것이 없사옵니다!!!”

중신 중 건국공신인 조말생이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에게 고했다. 임금은 불을 쏘아 보낼 것 같은 눈으로 조말생을 노려봤다.

16553194126674.jpg“닥치시오! 아버님을 모함하려 하는 자, 그것을 퍼뜨리는 자! 가리지 않고 모두 찾아내어 목을 벨 것이오! 아셨소?”

16553194126674.jpg“하지만 전…….”

16553194126674.jpg“내금위는 들으라!!!!”

16553194126705.jpg“충(忠)!!!!”

조말생의 입이 다물어졌다. 내금위를 부르짖은 임금의 명에 따라 조정 안에 삼엄한 기세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16553194126674.jpg“이 시간 부로 이 일에 대해 입에 올리는 이들은 지위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잡아라! 잡아서 역모의 혐의로 국문해도 좋다!!!”

16553194126705.jpg“충!!!!”

내금위는 조선 최고의 무인들을 모아놓은 최정예 무사들이다. 그들의 설립 취지 자체가 역모를 위해서 만들어진 무력 집단이기 때문에 그들의 손속에는 사정이 없었다. 아무리 위세 높은 신료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검 앞에서는 그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았다. 오직 왕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왕권에 도전하는 이들을 향해서만 검을 겨누는 존재가 바로 내금위다.

16553194126674.jpg“아비와 아들의 사이는 천륜(天倫)! 이 천륜을 사특한 세치 혀로 더럽히는 놈들은 내금위를 볼 것이다!”

임금은 어마어마한 분노를 토해냈다. 그런 서슬 퍼런 임금의 태도 앞에 감히 입을 열 수 있는 신하들은 없었다.

16553194126674.jpg“회의는 이것으로 파한다!!”

임금이 씨근덕거리면서 옥좌에 앉았다. 왕의 축객령에 조정 신료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정전(思政殿)에서 나갔다. 몇몇은 살았다는 표정이었지만 몇몇 신료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왕이 구금령을 내렸으니 왕권에 도전할 생각이 아닌 이상 그 일을 입 밖으로 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6553194126674.jpg“후우.”

16553194126674.jpg“괜찮으십니까.”

임금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권희달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권희달. 조선의 제일가는 검(朝鮮第一劍)이라 하여 조선 무사들의 정점이자 왕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종2품 운검(雲劍)이었다. 제2 왕자의 난 때 넷째 이방간을 직접 잡아온 공로로 운검의 자리에 올랐다. 제2 왕자의 난 때 권희달 홀로 백 명의 적을 베었다 하여 백인참(百人斬)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어피로 싼 주홍색 칼집에 백은 장식과 붉은 끈과 수실을 단 검을 차고 있었다. 임금의 곁에서 검을 손에 쥐는 것이 유일하게 허락된 단 한 명의 무인이었다.

16553194126674.jpg“멍청한 놈들. 신하라는 것들이…….”

임금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권희달이 쓰게 웃었다. 조선의 정국이 안정되자 태조와 임금 사이를 이간질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6553194126674.jpg“허나 상호군 박순과…….”

16553194126674.jpg“그만.”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임금은 계속해서 부정하지만 상왕을 다시 한양으로 모시기 위해 보낸 두 명의 차사를 태조가 활로 쏘아죽였기 때문이었다. 왕이 보낸 사신을 그렇게 대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역모였다. 상왕이라도 조선의 임금이 아닌 이상, 임금의 신하이기 때문이다.

16553194126674.jpg“그 둘의 가족에게는 보상을 충분히 해주었는가?”

16553194126674.jpg“예. 전하.”

권희달은 고개를 숙였다. 상호군 박순과 송유는 내금위 소속의 무인들이다. 그들의 가족들에게 부고를 전하는 것은 내금위의 역할이었다.

16553194126674.jpg“지아비를 잃은 가족의 상심이 어찌 재물로 풀어질꼬.”

임금은 고개를 저었다. 권희달은 희미하게 웃었다. 무거운 마음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임금은 임금답지 않게 아주 아랫것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아는 군왕이었다.

16553194126674.jpg“아니. 이 일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른 이야기는 없느냐.”

권희달이 잠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리 말재주가 뛰어난 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눈을 반짝였다.

16553194126674.jpg“오늘 세저저하와 충녕대군이 손님을 들였다 하옵니다.”

16553194126674.jpg“손님?”

16553194126674.jpg“예. 헌데 어찌나 즐거워하시는지 그들이 퇴궐하는데 거듭 내일도 입궐하라 명을 하셨다 합니다.”

16553194126674.jpg“그래?”

임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는 임금이라고는 하나 결국 아이의 아비였다. 그리고 그 아비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가장 즐겨했다.

16553194126674.jpg“충녕대군도 흥미를 보였단 말이냐?”

16553194126674.jpg“예. 대군마마도 즐거워하셨다 하옵니다.”

16553194126674.jpg“호오. 그것 참 신기한 일이로다.”

임금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첫째인 세자와 셋째인 충녕의 성격은 상극이었다. 첫째인 세자는 무장의 기질을 타고 난 것인지 말타기와 병기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셋째인 충녕은 책 읽기를 가장 좋아했다. 차라리 첫째와 셋째가 바뀌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임금은 매번 생각했다. 하지만 적서차별을 하여 적자상속의 대원칙을 세운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은 비록 다섯째였지만 나라의 뿌리를 굳건히 하기 위함이었다.

16553194126674.jpg“그래. 세자와 충녕이 초빙한 그들은 누구라고 하더냐. 대학자거나 무반이라도 되는 것이냐?”

임금이 자세하게 묻자 권희달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하지만 이내 임금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떨치고 일어섰다.

16553194126674.jpg“되었다. 직접 물어봐야겠다. 요새 정무가 바빠 세자와 충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음이니.”

비록 아침마다 문안을 드리러 오긴 했지만 그것 이외에는 사실상 아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16553194126674.jpg“동궁전으로 갈 것이다.”

임금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권희달이 임금의 뒤에 재빨리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런 임금의 뒤로 수십 명의 내관과 궁녀들이 따랐다. *** 쩔그렁.

16553194126674.jpg“호오. 이거 큰 손님이셨구만.”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삼부육조의 관청이 자리했고 북쪽으로는 시전이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시전과 더불어 양반들만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향락가가 조성되어 있었다. 가마를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북촌이 있었기 때문에 양반들이 드나들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기루에 기생들을 넣어주고 그들의 사생활과 편의를 돌봐주는 기둥서방은 조선을 통틀어 은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아는 이들이었다. 양반들은 기생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은밀히 해야 할 이야기들을 주로 기루에서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기둥서방들은 그것을 기록하여 보관했고, 정보를 요구하는 자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그 기둥서방 중 하나인 복원은 복면을 뒤집어 쓴 괴인이 내민 두둑한 전낭을 받아들면서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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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194126674.jpg“험험. 딱딱하신 분이군.”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침묵뿐이었다. 그에 무안해진 복원이 헛기침을 하면서 기루 옆에 난 뒷문을 열고 괴인을 들여보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창고로 쓰이는 곳에 들어서자 천장을 뚫고 여자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와 양반들의 멍청한 웃음소리가 조화를 이뤄 울려 퍼졌다.

16553194126674.jpg“흐흐. 위에서 가끔 찐한 것도 펼쳐지는데. 관심 있으면 한 번 볼 수도 있소만?”

복원은 씩 웃었다. 가끔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양반들은 비싼 돈을 주고 그걸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몰래 보는 것이 더 흥분된다면서.

16553194209683.jpg“말이 많군.”

16553194126674.jpg“…….”

입을 다물고 있던 괴인이 입을 열자 복원이 입을 다물었다. 순간 차가운 물에 들어온 것처럼 오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복원은 생존본능을 발휘해 입을 꾹 다물었다.

16553194209683.jpg“난 정보를 묻고, 넌 정보를 판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을 듯하군.”

괴인의 목소리는 마치 무저갱 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거칠었다. 누군가 성대에 손가락을 넣어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체격이었지만 뒤를 힐끗 쳐다본 복원은 순간 까무라칠 뻔했다. 어두운 창고 속에서 괴인의 두 눈이 도깨비불을 담은 것처럼 시퍼렇게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16553194126674.jpg“무, 물어보십시오.”

자연스레 복원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기생을 몇 명을 새끼 치느냐에 따라 벌어들이는 돈이 다르기 때문에 기둥서방들은 뒷골목에서 제법 주먹을 잘 쓰는 이들만이 할 수 있었다. 가끔 기생에게 돈을 내지 않는 양반들이나 자기 새끼들을 노리는 이들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16553194209683.jpg“은월루.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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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들은 복원의 얼굴이 탈색된 것처럼 하얗게 변했다.

16553194126674.jpg“으, 은월루?”

16553194209683.jpg“그렇다.”

16553194126674.jpg‘똥 밟았다.’

전낭이 두둑하기에 돈 좀 벌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복원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16553194126674.jpg“왜, 왜 그들이 궁금하시오. 자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들에 대해서는…….”

16553194209683.jpg“말이 많다.”

괴인의 입에서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복원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16553194126674.jpg“이, 이게…….”

복원은 자신의 눈에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목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6553194126674.jpg“그,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소!”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에 복원이 일단 저지르고 봤다.

16553194126674.jpg“그들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죽은 사람이 수백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복원은 은월루에게 죽기 전에 이 괴인에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공포에 굴복한 복원은 자신이 아는 것을 총동원했다.

16553194209683.jpg“그러면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16553194126674.jpg“그, 그들의 목표가 된 대상을 처리한 후 그 위에 은으로 만든 초승달을 던져놓는다 하여…….”

16553194209683.jpg“의뢰를 하려면?”

16553194126674.jpg“그, 그건 양반이 아니면 모릅니다.”

16553194209683.jpg“…….”

16553194126674.jpg“은월루에게 의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의뢰금이 필요합니다. 양반이 아니라면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의뢰금이. 그래서 양반들만 알고 있습니다.”

복원은 부들부들 떨었다. 괴인은 복원의 눈을 한번 지그시 쳐다보고는 몸을 돌렸다.

16553194209683.jpg“다시 오겠다.”

16553194126674.jpg‘오지 마! 절대 오지 마!’

복원은 속으로 그렇게 절규했지만 그의 몸은 정직했다. 나가는 괴인의 뒤에다 대고 깊숙이 절을 하다시피 인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쉭! 털썩! 괴인이 사라졌나 싶었는데 어둠 속에서 두둑한 전낭이 날아왔다. 은병이 무려 다섯 개나 들어 있는 주머니를 본 복원의 허리가 더욱 깊숙하게 굽혀졌다. 그런 복원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돈을 보고 기쁜 것이 아니라 낭패감이 든 것은 복원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16553194126674.jpg‘망했다. 이걸 어찌 할꼬.’

복원은 이것을 은월루에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알리려고 해도 은월루를 찾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16553194126674.jpg“큰일이다. 큰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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