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어? 검주가 왜 여기서 나와?(4)2019.03.02.
“닭인가?”
중원에서 비무행을 다니던 때라면 그것이 사람의 기척임을 단박에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처럼 감각을 늘 예리하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기에, 둔하게 해놓은 만우는 그것이 사람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파바박!!! 만우가 기와집의 기와를 밟고 가장 큰 건물의 지붕에 내려섰다.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은 사랑(舍廊)채로 이 집의 주인인 설미수가 생활을 하면서 접객을 하는데 사용되는 건물이었다.
“뭐야.”
그곳에는 감령이 만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우는 한창 쉬고 있었는데 자신을 부른 감령을 노려봤다.
“그, 그것이. 한번 들으실 일인 것 같아서.”
만우의 눈빛에 움찔한 감령이 말을 더듬었다. 그런 감령의 말에 만우는 감령이 손에 들고 있는 걸레짝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이거. 사람이야?”
“예? 예. 그렇습니다.”
만우는 혀를 쯧하고 찼다. 이건 숫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넝마였다.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약하게 숨을 쉬는 것을 보니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패다니.
“역시. 넌 산적왕이었어. 옥면산군은 무슨. 사람을 이렇게 패다니. 이 잔인한 놈!”
만우의 말에 감령의 얼굴이 기괴한 표정이 됐다. 사람을 잔인하게 패는 것으로 따지면 만우가 감령의 몇 수 위였다. 물론 지난 백 일 동안 맞은 짬이 있어 십령수를 패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만우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아마 감령이 초절정에까지 오른 강골이 아니었다면 회복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몸으로 직접 겪었기 때문에 만우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넝마주이가 된 십령수가 고개를 꿈틀거렸다. 만우의 목소리에 혼절했던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십령수는 정말 떡이 될 정도로 얻어맞았다. 얻어맞고 뻗은 것은 한양지부의 모든 하오문도가 똑같았다. 하지만 십령수처럼 맞은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만우의 손에 잡혀 이 꼴이 된 모든 과(過)를 하오문 때문이라고 생각한 감령은 지금까지 받았던 모든 것들을 풀어낼 요량으로 십령수를 늘씬하게 두들겨 팬 것이다.
“끄으으으…….”
십령수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몸의 여기저기 안 쑤시는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왜, 왜 이러시오. 내가 무슨 잘못을…….”
십령수는 더듬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는 정말로 억울했다. 한양에 갑자기 옥면산군 감령이 나타난 것도 놀라 자빠질 일인데 그에게 다짜고짜 얻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임수미가 검주의 행방을 중원 전역에 비싼 돈을 주고 팔아먹었을 때 십령수는 이미 한양으로 가기 위한 길을 떠났기 때문에 더욱 억울했다. 그 사실을 인편을 통해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몰랐으니까.
“아휴. 사람을 이렇게 때리다니. 정말 괜찮으시오?”
만우는 그런 십령수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그러자 십령수의 눈에 핑하고 눈물이 돌았다.
“끄흐흐흐.”
십령수의 주름진 얼굴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만우는 그런 십령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만우의 그런 따듯한 행동에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십령수의 감정이 가라앉았다. 십령수는 콧물을 닦아내고서는 만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복 받으실 겁니다.”
십령수는 눈에 눈물이 가득해 만우를 알아보지 못했다. 감령은 그런 만우를 무슨 질병에 걸린 사람을 보는 것처럼 쳐다봤다. 따뜻한 검주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다. 감령에게 있어 검주에게는 온갖 최악의 접두사를 붙여도 될 정도의 악마였다. 사람을 주먹으로 협박해서 오 년 동안 머슴으로 부려먹겠다니. 어쨌든 만우는 십령수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입을 열었다.
“복은 괜찮소.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다. 사해가 동도라고 했는데.”
“흑…… 고맙소. 정말 고맙소.”
십령수는 눈가를 훔쳤다. 그런 그의 눈은 잔뜩 부어 있었다. 감령에게 얻어맞았기도 맞았고 한참을 울었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그래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사람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헌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만우가 그렇게 말하자 십령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얼마든지 물어보시오. 내 이래봬도 중원에서는 유명한 하오문도요. 무엇이든 답해주지 못할 것이 없소.”
“옥면산군은 걱정하지 말고 말해주시오. 하오문에서 검주 만우의 소문을 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 그것은.”
십령수는 갈등했다. 그가 조선으로 온 이유는 무화 임수미가 비밀 지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의 중흥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오문에서도 기밀 중에 기밀이라 자신의 아내나 어머니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잘 모르겠소. 난 그저 하오문 한양지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선에 온 것이오.”
만우의 웃음이 굳었다. 그것을 본 감령이 흠칫하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높은 지붕의 기와 위였지만 순간적으로 감령은 이곳이 태산의 정상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발 하나 까닥하면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우 때문이란 것을 감령은 잘 알고 있었다. 백 일 동안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만우에 대한 눈치였으니까.
‘짜증났다!’
그리고 지금 저 표정은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만우가 십령수의 어깨에 손을 척 얹고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쩔 수 없지. 아마 이렇게 하면 나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있을 것이오.”
“무, 무슨 말이오 그게.”
십령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게도 원인 모를 오한이 들었기 때문이다. 밑바닥 생활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십령수의 감각은 예민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감령의 무차별 폭력으로 인해 그 감이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으, 으가아아악!!!”
만우가 손가락을 뻗어 퉁퉁 부은 십령수의 눈을 억지로 벌렸다. 그러자 그 안으로 동그란 십령수의 눈이 드러났다. 만우는 그가 자신의 얼굴을 잘 볼 수 있도록 얼굴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이래도 말을 해줄 생각이 안 드오?”
“…….”
십령수는 눈을 껌벅였다. 자신의 눈앞에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자 뇌가 순간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십령수의 모든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얼굴 근육이 삽시간에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경악을 보여주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 왜 검주가 여기서 나와?!?!?!?!”
***
“너.”
“예. 검주.”
“본주가 왜 살려 보내는 건지 알지?”
십령수는 이러다 고개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검을 빼든 것도 아니고 감령처럼 두들겨 팬 것도 아니다. 그저 부은 십령수의 눈을 열어 자신의 얼굴을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십령수가 얌전한 양이 되는 것은.
“예. 알고 있습니다.”
“무화 고년한테 제대로 전해. 내 정보를 팔아먹은 그 값. 제대로 내놓으라고. 아니면 내가 다시 중원으로 가는 수가 있다고.”
“예, 예!!”
“그리고!”
만우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십령수가 혼이 달아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너희가 싸울아비인지, 장보도인지 그걸로 뭘 하든 상관 안 해. 그런데 그것 때문에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만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동시에 만우의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일어나더니 십령수를 관통했다. 철컥. 서걱!! 주르륵. 만우의 검집으로 검이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십령수는 자신의 눈앞으로 스르륵 떨어져 내리는 자신의 앞머리를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번쩍!!!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며 땅바닥에 떨어지자 그제야 번쩍하는 검광이 휘몰아쳤다. 만우가 검을 휘두른 것보다 뒤늦게 검광이 터져 나온 것이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령은 경악했다. 중원에 쾌검(快劍)을 장기로 쓰는 무인들은 많았다. 그들의 검이 번쩍거리면 사람이 목이 떨어지고, 그들의 검은 휘몰아치는 폭풍도 가른다는 별의별 뻥들이 많았다. 하지만 방금 검주가 보여준 검의 기예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검을 뽑아서 휘두르는 것이 안 보일 수는 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데 소리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 내공이 받쳐주면 속도와 소리는 조종하고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주의 한 수(手)에서는 검광(劍光)이 일어나지 않았다.
‘빛보다 빠른 검격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뜨뜨. 뜨거라. 이놈의 싸구려.”
만우는 자신의 검집을 후후 불었다. 감령은 만우의 검집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만우의 검은 그냥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렴한 철검이다. 불순물이 잔뜩 섞여서 그리 단단하지도 않고, 날이 예리하지도 않았다. 사신 일행에 슬그머니 끼면서 대충 주워 온 평범한 철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순히 발검을 했다는 것만으로 검이 뜨거워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설령 지금 감령조차도, 검을 한 자루 줘놓고 그렇게 해보라면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검집이 붉게 달아오르다니.
‘순간적인 검속(劍速)에 의한 마찰력으로 인해 뜨거워진 검집이라니.’
빛보다 따른 검술. 감령의 두 눈이 경외로 물들었다. 검주 만우는 인간적으로는 감령의 원수이자 공포의 대상이지만, 무인으로서 볼 때 그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걷고 있는 초극(超克)의 무인이다. 그런 경지를 개척한 무인에게 같은 무의 경지를 걸어가는 무인으로서 경외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뭐야. 왜 그렇게 부담스런 눈으로 봐.”
만우는 감령의 얼굴을 보면서 떨떠름하게 말했다. 만우는 그런 감령을 무시하고는 십령수의 엉덩이를 뻥하고 걷어찼다.
“뭘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 얼른 가서 무화에게 전해. 알았어?”
“예. 예, 대협. 알겠습니다.”
십령수는 엉덩이를 걷어차였음에도 아픈 척도 낼 수 없었다. 혼이 반쯤 몸에서 달아나기 바로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혹여라도 만우가 자신을 붙잡을까 꾸벅 인사까지 하고 전력으로 경공을 발휘해 사랑채의 지붕 위에서 다른 쪽으로 사라졌다.
“존경합니다, 대협.”
감령은 만우에게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원수이기는 하나 이렇게라도 그의 무의 경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만우는 남자의 그런 뜨거운 눈빛은 딱 질색이었다.
“남자는 됐어, 새끼야.”
빡! 만우의 딱밤이 감령의 이마 정중앙에 작렬했다. 감령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으면서도 피할 수조차 없는 딱밤이었다. 그조차도 감령이 감탄할 만한 무리(武理)가 담겨져 있었다. 감령은 골통이 짜개지는 고통 속에서도 두 눈을 빛냈다.
‘배워야겠다. 생각해 보니 검주만큼 강한 스승도 없어!’
산적인 그에게 스승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 있었을 리 없다. 그가 죽인 사람들이 스승이었다. 그들과 실전을 겪으면서 지금의 무공을 완성시켰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초절정의 벽에 막혀 수 년간 제자리를 답보하고 있어 답답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 초극의 고수인 만우가 나타난 것이다. 비록 그의 머슴으로 오 년 간 살아야 하나 이 벽을 깰 힌트라도 그에게 얻을 수 있다면 오 년쯤의 머슴은 일도 아니다. 십 년도 해줄 수 있었다.
“뭐야. 표정 안 바꿔?”
하지만 만우의 으름장에 감령은 얼른 표정을 바꿨다. 그리고 그는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된 것처럼 태도를 삽시간에 바꿨다. 헤헤헤. 일단 웃었다. 산적과는 연상이 되지 않는 멀끔한 얼굴로 웃으면 그 얼굴에는 침을 뱉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만우는 아름다운 미녀의 얼굴에서 수틀리면 침을 뱉을 수 있는 굵은 신경의 인간이었다. 빡!
“표정 바꾸라고.”
“그, 그런데 궁금하시거나 탐이 나시지는 않습니까?”
감령이 이마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러자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뭘.”
“그 싸울아비의 전투술 말입니다.”
“음.”
만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흥미가 동하기는 했다. 하오문에서 그토록 수백 년의 염원이던 무공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백제의 싸울아비의 전투술이라니.
“왜. 넌 궁금해?”
“네. 궁금합니다. 고대의 무예가 아닙니까.”
중원도 이런 장보도에 의해 여러 번 피로 물든 적이 있었다. 무인에게 있어서는 금은보화가 보물이 아니라 바로 이런 강력한 무공이 제일의 보물이었다. 때문에 이런 장보도가 흘러나올 때마다 항상 무림은 피로 씻겼다. 새로운 악당과 새로운 영웅의 출현.
“흥미가 생기기는 하는데. 썩. 내 것도 충분히 좋아서.”
불과 십오 년만에 만우를 검주라는 위치에까지 올려준 것이 바로 기천이다. 혈세천마를 그의 연무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 하게 만든 바로 그 무공.
‘기천도 고대의 것이니까.’
기천도 고대의 것이었다. 저잣거리에서 만나 설미수의 저택까지 동행한 수박희도 고구려의 조의선인이 배우던 무예라는 설이 있었다.
“함부로 안 덤벼드는 게 좋을 걸.”
“기껏해야 하오문 아닙니까. 하오문 정도면…….”
감령의 말에서 무림인들이 하오문에게 가지는 편견이 그대로 드러났다. 무공과 경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림에서 하오문은 가장 중요한 그 두 가지가 없는 집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산적과 수적에게도 무시를 받는 처지였던 것이다.
“너 혼자서 한 일만 명이랑 대적할 수 있으면 찾으러 가도 되고.”
만우의 말을 들은 감령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마, 만 명이요?”
그가 옥면대체라는 녹림에서 가장 큰 산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산채라고 해봤자 삼천 명이면 아주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숫자다. 삼천 명을 발아래 두고 생활해 왔던 감령에게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숫자였다. 그런데 만 명이라니.
‘아무리 하오문이라고 해도…….’
숫자로 밀어붙이면 답이 없다. 만 명이나 이 작전에 동원될 것이라고 만우는 예상하는 것 같았는데, 그 십분 지 일만 돼도 감령 혼자서 상대할 수 없다. 아무리 감령이 초절정으로 고강하다고 해도 그의 내공과 체력은 한계가 있을 테니까.
“됐어. 신경 꺼. 우리 일도 아니잖아. 난 무림에서도 은퇴했다고.”
만우는 고개를 털어 복잡한 상념을 떨쳐냈다.
“나한테만 피해 안 오면 돼. 나한테만.”
중얼거린 만우가 발의 앞부분으로 가볍게 사랑채의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