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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어? 검주가 왜 여기서 나와? (16/400)

016. 어? 검주가 왜 여기서 나와?(2)2019.02.23.

제투부혼(濟鬪夫魂)이라 쓰인 낡은 장보도. 벡제(濟)의 싸울아비(鬪夫)의 혼. 장보도의 정체는 바로 멸망한 고대 국가인 백제의 싸울아비의 전투술을 기록해 놓은 곳이 표시된 지도였다.

16553190898925.jpg“동이족이라니. 굳이 그런 것까지…….”

하지만 하오문 간부 중 하나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백제의 싸울아비의 전투술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검증이 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1655319089893.jpg“여러분들.”

무화 임수미는 간부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런 임수미의 눈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여인의 몸으로 하오문의 북경 총분타를 이끌어 온 임수미다. 그런 그녀의 기도가 평범할 리 없었다.

1655319089893.jpg“비록 멸망한 국가라고는 하나 백제의 근초고왕은 이 북경과 산동, 강소, 절강까지 병탄한 대제국이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1655319089894.jpg“허어…….”

임수미의 말에 하오문 간부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1655319089893.jpg“하지만 동이족이라 무시하여 역대 황제들은 이런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으니. 허나 이 싸울아비들이 있었기에 그런 대제국의 건설이 가능했던 겁니다. 헌데 동이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버리실 겁니까?”

임수미의 목소리에 한기가 서렸다.

1655319089893.jpg“밑바닥에서 벗어나고자 뭉쳤으니 우리의 신세는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명성을 날렸다고는 하나 여전히 무림동도들에게 우리 하오문은 없어도 그만, 있으면 편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임수미의 목소리는 그간 하오문도라는 이유로 겪어야만 했던 수치와 굴욕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1655319089893.jpg“그것이 모두,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오문은 바다 건너의 동영(東瀛)의 것이라도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동이족? 그 동이족에게 짓밟힌 구대문파의 역사를 잊지 마십시오.”

하오문 간부들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현재의 무림인들은 애써 부인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동이족이라 경원시하는 이들에 의해 중원무림이 허무하게 짓밟힌 사례들은 꾸준히 있어왔다. 수나라 시절 수나라에 포로로 끌려왔던 고구려의 개소문이 탈출하여 수에서 비무행을 행하였던 것부터 시작하여 장백산(백두산)에 있다는 신비문파의 장백선인까지.

1655319089893.jpg“그리고 검주. 그도 동이족입니다.”

거기에 최근에 조선으로 돌아간 검주 만우까지.

1655319089893.jpg“우리가 그토록 무시하는 동이족인 그들이 가진 저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아니, 다른 이들은 그렇게 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오문만은.”

임수미가 말을 멈추고는 두 눈을 번쩍였다. 그녀의 강렬한 눈빛이 하오문 간부들의 얼굴을 하나씩 차례대로 훑었다.

1655319089893.jpg“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1655319089894.jpg“…….”

임수미의 말이 끝난지 한참이 지나도록 반박하는 하오문 간부는 없었다.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1655319089893.jpg“그러면 제 뜻에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이 일이 바깥에 새어 나기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근시일 내에 조선으로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16553190898925.jpg“무화께서?”

16553190898925.jpg“총분타주께서 나서실 필요는…….”

북경 총분타주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데에는 무화의 능력이 80%이상 작용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조선으로 간다는 것은 북경 총분타가 마비된다는 뜻이었다.

1655319089893.jpg“아니. 지금 이 일이 우리 하오문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되는 겁니까.”

임수미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자 간부들이 입을 다물었다. 임수미는 눈을 번뜩였다.

1655319089893.jpg“그리고 미끼로 큰 정보를 하나 풀 겁니다. 승냥이와 삵 같은 다른 무림 세력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또한 하오문 한양지부에도 준비하라 이르세요.”

임수미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숨을 고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1655319089893.jpg“하오문 지부를 조선 전역으로 확대합니다. 조선의 모든 정보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도록.”

1655319089894.jpg“예. 분타주.”

간부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

16553190916029.jpg“저기야.”

방매의 손가락이 다 똑같이 생긴 북촌의 기와집 중 하나를 가리켰다.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웬만해서는 구분이 가질 않았다. 다들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16553190916033.jpg“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만우가 신기해하자 방매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16553190916029.jpg“많이 돌아다니면 알게 돼. 다 다르게 생겼거든.”

16553190916033.jpg“다 다르다고?”

만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비슷하게 생긴 기와지붕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찾아왔다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16553190916033.jpg“그럼 고마웠어. 잘 가.”

만우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방매에게 말했다. 하지만 방매는 그런 만우의 소맷자락을 덥석 붙잡았다.

16553190916029.jpg“잠깐!”

16553190916033.jpg“응?”

만우가 돌아보자 방매가 손가락으로 기와집의 대문을 가리켰다.

16553190916029.jpg“나도 들어가게 해줘.”

16553190916033.jpg“너가? 들어가서 뭐하게.”

그러자 방매가 자신의 봇집을 가리켰다. 안에서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16553190916029.jpg“내가 이래봬도 한양제일매분구인데. 저 집은 못 들어갔단 말이야. 맨날 필요 없다고만 말하고. 하지만 여인네가 화장품이 필요 없는 법이 어디 있어. 분명 나 말고 다른 곳에서 구입하는 거야.”

16553190916033.jpg“그래서. 뚫겠다고?”

16553190916029.jpg“응.”

방매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풀썩 웃었다. 그 정도 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16553190916033.jpg“좋아.”

16553190916029.jpg“최고!”

방매가 팔짝 뛰면서 기뻐했다. 만우는 그런 방매와 함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향해 걸어갔다. 양반들이 모여 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시전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크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 활기가 이곳까지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19089894.jpg“와아아아아!!”

1655319089894.jpg“공격!!!!”

1655319089894.jpg“으랴아아아아!!”

그런데 그때 골목길 귀퉁이에서 일련의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다들 콧물을 흘리고 있는 코흘리개들이었지만 손에는 나무 막대기들이 들려 있었다.

165531909485.jpg“으아! 만 대협!”

그런데 그때 필두가 그 귀퉁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만우를 발견한 필두가 반갑다는 얼굴로 뛰어왔다.

16553190916033.jpg“여기서 뭐해. 사신 나리 집에 가있으라니까 애들이랑 노는 거야?”

누가 봐도 애들이 필두를 뒤쫓고 있는 모습이었다. 장강의 공포인 그가 아이들에게 쫓기는 모습은 꽤나 희극적이었다.

165531909485.jpg“사고를 치지 말라고 하셔서…….”

우르르 몰려나오던 아이들이 만우와 방매를 보고서는 멈춰섰다. 필두는 험상궂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16553190916033.jpg“노력하네.”

만우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었다. 공포로 군림하던 장강 총채주가 사고도 치지 말고, 무림인인 것도 티내지 말랐다고 아이들에게 쫓기고 있었으니까.

16553190916033.jpg“흠.”

만우는 필두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서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아이들 중 몇몇은 그냥 저잣거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8살이나 9살 정도 됐을까. 하지만 무명천으로 만든 옷이 아니라 염색이 되어 있는 고급스런 옷을 입고 있었다.

1655319089894.jpg“사, 산적과 한패다!”

1655319089894.jpg“공격하라!”

1655319089894.jpg“와아아아!!”

서로 전쟁놀이라고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꼬질꼬질했다. 고급스런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라도 이 나이대에는 그리 큰 차이가 머릿속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급스런 옷을 입고 있는 아이가 이 무리의 대장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머슴이나 노비의 아이들과 비슷하게 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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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19089894.jpg“산적 두목이 예쁜 여자를 납치했다!”

1655319089894.jpg“여자를 놔줘!”

만우는 어느새 산적 두목이 되어 있었다. 필두는 머리를 긁적였다. 수적에게 산적이라고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곳은 조선이고 상대는 아이들이다. 그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이다.

16553190916029.jpg“나보고 예쁜 여자래!”

방매는 만우의 허리를 쿡쿡 찔렀다. 아이들이 예쁘다고 하는 것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190916033.jpg“글쎄. 아이들은 순수하잖아. 그러니까 못생겨도 못생겼다고 말을 못 하겠지.”

16553190916029.jpg“왜 이래. 순수하니까 더 솔직한 거지.”

방매는 만우의 말에 발끈하지 않았다. 오히려 능글맞게 맞받아치면서 아이들에게 걸어갔다.

16553190916029.jpg“자. 도련님. 들어가셔야죠. 이렇게 놀고 있으시면 마나님께서 걱정하세요.”

16553190898925.jpg“우리 어머니를 알아?”

개중에서 가장 고급스런 옷을 입고 있는 아이였다. 물론 얼굴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꼬질꼬질했지만.

16553190916029.jpg“네. 한양에 사는 사람 중에 어떻게 마나님을 모를 수가 있겠어요.”

설미수의 부인은 꽤 유명한 권문세족의 여식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녀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녀의 외모였다. 개경제일미녀(開京第一美女)! 그녀를 주제로 문인들이 모여 시조를 짓고 풍류를 읊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그녀의 유명세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16553190916029.jpg“그리고 저 사람들은 산적이나 산적 두목이 아니라 대감님 손님이시래요.”

16553190898925.jpg“아부지?”

하지만 설미수와 그 부인은 자식복이 없었다. 혼인을 올린 지 몇 해가 지났음에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껏 얻은 아이들이 전부 이른 나이에 요절을 하고, 아주 뒤늦게 불혹이 넘어 얻은 것이 바로 방매가 도련님이라 부르는 아이였다. 설윤도. 판한성부사인 아버지와 개경제일미녀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설윤도는 금수저에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해 장성했을 때의 모습이 기대되는 아이였다.

16553190916029.jpg“자. 어서 들어가요.”

16553190898925.jpg“흠…… 응. 애들아, 내일 또 놀자.”

1655319089894.jpg“그래!”

1655319089894.jpg“네! 도련님!”

어리더라도 아이들은 신분에 민감했다. 정확히는 그들의 부모님으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기 때문이다. 노비나 머슴의 아이들은 꾸벅 인사를 했고 같은 양반의 자제인 아이들은 손을 흔들었다. 윤도의 한마디에 해산하는 것을 보니 역시 윤도가 그 무리의 대장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16553190898925.jpg“정말 우리 아부지 손님이야?”

윤도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만우와 필두를 쳐다봤다. 특히 필두는 머리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하나는 더 커 윤도의 목이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16553190916033.jpg“그래. 사신 나리 손님이다. 사신 나리가 퇴궐할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하시더라.”

정확히는 만우가 압박을 했기 때문에 그러라고 한 것이지만. 만우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필두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방매와 윤도는 만우의 무시무시함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검도 쓰지 않고 두 주먹으로 초절정인 자신과 감령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었으니까. 무림에서는 무공이 강한 사람이 귀신이고 왕이고 악마다.

16553190898925.jpg“아저씨! 나 왔어!”

윤도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문을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 안에서 혈색 좋은 장년의 머슴이 뛰어나와 윤도에게 허리를 숙였다.

16553190898925.jpg“오셨어요, 도련님!”

16553190898925.jpg“응! 나 놀고 왔어. 그런데 아부지 손님들이래.”

설미수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일복이 집안어른인 설미수의 손님이라는 것에 만우 일행을 쳐다봤다.

16553190898925.jpg“정말…… 이십니까?”

설미수의 손님이라고 하기에는 일행들의 차림새가 볼품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양반일까 싶어 일복이 존댓말을 했다.

16553190916033.jpg“네. 북경에서부터 동행한 짐꾼입니다. 이 친구도요. 하하.”

만우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동시에 필두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만우가 억지로 뒤통수를 눌렀기 때문이다. 만우가 하라서 하긴 했지만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웬 집안의 머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 하다니. 명에서는 고관대작을 만나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는데.

165531909485.jpg‘약하니까. 약한 게 죄다.’

만우는 필두가 뭐라고 생각하건 말건 일복을 보면서 사람 좋게 웃었다. 여기는 조선이다. 그리고 자신은 무림을 은퇴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노비로 살거나 무공이 필요한데도 숨기고 살 생각은 없었지만 검주로 살던 그곳은 명이고 이곳은 조선이다.

16553190916033.jpg[그러니까 너도 역수교어니, 총채주니. 이런 생각은 버려. 말이나 빨리 배우고.]

필두의 고개가 찔끔하는 것이 보였다. 만우는 일복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16553190916033.jpg“저 친구는 명나라 사람이라 조선말을 못 하니까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16553190898925.jpg“흠. 그렇군.”

일복은 상대가 양반이 아니라는 것에 긴장이 풀렸다. 이 집에서 30년이 넘게 일하면서 설미수를 모셨지만 반상의 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매번 어려웠다.

16553190898925.jpg“그럼 자네들이 왜 이곳에 온 것인가?”

16553190916033.jpg“설 대감님께서 퇴궐하실 때까지 이곳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오시면 따로 부르실 겁니다.”

16553190898925.jpg“그래? 그럼 잠시 머물 곳을 내주면 되겠구먼.”

대소사를 관리하는 일복이었기 때문에 그는 만우와 필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만우의 말만 믿고 들여보내기에는 약간 믿을 수 없었지만 만약 이게 사실인데 저들을 홀대했다가는 경을 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평민이라도 설미수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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