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검주, 머슴이 되다!(3)2019.02.09.
“좌익찬 나리.”
“어? 어??”
만우가 검을 쫙 털어 핏물을 털어냈다. 사실상 만우의 검에 묻은 것은 골육(骨肉)을 베어 묻은 것이 아니다. 구타. 검을 마치 몽둥이처럼 사용하느라 그 와중에 피가 묻은 것이다. 설운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서는 대답했다.
“저거. 정리해야 빨리 떠날 수 있지 않을까요? 헤헤.”
만우가 웃으면서 굽신거렸다. 호쾌하게 스무 명이 넘는 절정 고수들을 검면으로 때려눕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모든 이들은 경악스런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심지어 짐꾼들 사이에서는 만우가 사신인 설미수를 지키기 위해 명 황실에서 파견된 신비고수라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었다.
“그, 그래야지. 어서 나와서 저…… 것들을 한쪽으로 치워라!”
시체가 아니기 때문에 설운은 황급히 말을 고쳤다.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그들 모두가 설운과 맞먹을 정도의 실력자다. 십만이 넘어가는 산적과 수적 중에서도 정점에 속한 채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모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니. 새삼스레 만우에게 얻어맞은 곳이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흐흥.”
만우는 자신을 피해 달려나간 짐꾼들과 병사들이 떡이 된 채주들을 치우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끌고 온 감령과 필두를 내던졌다.
“히익!!”
“아! 사신 나리. 죄송합니다. 여기 계신 줄 모르고.”
그렇게 말하는 만우의 눈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만우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설미수는 만우의 의중을 이해했다.
“하던 일 하시게. 하던 일.”
만우는 지금 무력시위중인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과 설운에게 공포감이라던가, 자신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인해 나중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귀찮은 일들을 피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 귀찮음이란 것이 양반들이 일이 안 풀릴 때 흔히 택하는, 암살이라던지 모략이라던지 이런 것들이지만. 하지만 설미수는 장담할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냥 모조리 때려 부술 놈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권모술수를 발휘하고, 암살자를 아무리 보내도 저 무식한 놈은 주먹으로 깨부수고 나올 놈이었다. 그 정도의 무력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며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식해. 하지만 동시에 치밀해.’
쫙! 쫙! 설미수는 자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만우가 기절한 감령과 필두의 뺨을 내려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찰진 소리가 마치 악마의 소리처럼 들렸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만우는 마치 장단이라도 타듯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처럼 감령과 필두의 볼을 내리쳤다. 동시에 설미수는 봤다. 감령과 필두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리는 것을.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수치심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성질 더러운 만우와 마주하고 싶지 않아 기절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 되겠네. 어차피 내 몸종으로 쓸 놈인데. 쓸데도 없는 여기나 터뜨려버릴까.”
이번에는 설미수가 자신의 중심부를 슬쩍 소매로 가렸다. 만우의 발이 감령과 필두의 고간을 툭툭 건드렸기 때문이다.
“흐허어억!”
“알았소. 일어났소. 일어나!”
역시 남자는 모두 같은 생물이었다. 그리고 제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고 하더라도 남성의 상징은 강화시킬 수 없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어느 정도는 강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화한다고 해봤자 다른 곳처럼 도검불침, 금강불괴는 불가능했다. 그저 실수로 부딪치거나 오해를 한 낭자가 발로 걷어찼을 때 터지지 않을 정도? 제 아무리 무공이 고강해도 그건 모두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을 공격하는 것은 설사 정파와 마교처럼 성향이 아주 달라도 금기되는 일이었다.
“호오. 일어났네?”
하지만 만우는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 만우를 보면서 감령과 필두는 부르르 떨었다.
“어차피 무림 은퇴하는 거, 하지 말라는 거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터뜨릴 셈이었단 소리다. 감령과 필두는 뺨을 얻어맞아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이제 어떻게 생각해? 아까 내가 말한 거 다 들었잖아.”
감령과 필두의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러니까 일어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뺨을 계속 쳤다는 소리다. 하지만 패자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인 법이다.
“…….”
“…….”
패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만우는 그런 감령과 필두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내가 기라면 기고, 핥으라면 핥어. 왜?”
“끄으윽!”
“끅!!”
만우와 충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초절정 고수인 감령과 필두의 몸에는 별다른 외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한 가지의 사실로 이어진다. 내상을 입었다는 것. 그 상태로 만우의 몸에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코앞에서 그 기세를 받아내고 있는 감령과 필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살기. 혹은 투기, 아니면 패기 혹은 위압감.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었다. 검주 만우가 이런 존재였다는 것을 그들의 뇌리에 박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덜덜덜. 감령과 필두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말 한 마디로 수천, 수만의 산적과 수적을 호령하던 녹림과 장강의 절대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얌전히 굴어라 얌전히. 너희들의 과거는 더 이상 없으니까.”
원래 노비인 만우의 머슴이 된 두 남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후우. 알겠소.”
“감령!!”
“그럼 어쩌자고!”
감령이 눈을 부릅뜨며 필두를 노려봤다. 감령의 두 눈에서는 시퍼런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대신! 틈이 보이면 검주 당신의 목을 내 손으로 딸 것이오!”
감령의 이글거리는 눈이 만우에게 와 닿았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복수를 천명한 사람만 수레로 열 수레가 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안 돼.”
퍼억! 만우의 주먹이 감령의 얼굴에 작렬했다.
“너는?”
“따, 따르겠소.”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터져 나오는 폭력은 제 아무리 장강 수적의 총채주인 필두라고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십초지적. 초절정인 자신이 십초지적이라면 실제 살기를 품는다면 오초지적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노비건, 머슴이건. 곧 죽어도 이승이 저승보다는 더 나아!’
기절한 감령 옆에서 필두가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응?”
그렇게 두 명의 머슴이 생긴 만우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시퍼렇게 질린 채 숨을 꼴딱이고 있는 설미수가 있었다. 자신의 실책을 알아챈 만우가 혀를 한번 쯧 하고 찼다.
“아. 죄송합니다, 사신 나리.”
“케헥, 커윽. 후욱.”
만우가 설미수의 혈도를 짚었다. 그러자 설미수는 자신의 목을 옥죄어 오던 고통스런 질식에서 벗어나 숨을 몰아쉬었다.
“쯧쯧. 사신 나리. 아무리 책이 좋다지만 운동도 좀 하십시오. 이게 뭡니까.”
일반인인 설미수 앞에서 검주의 기세를 그대로 발산했으니 설미수의 숨이 넘어갈 뻔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나마 그가 촌무지렁이가 아니라 조정에서 여러 대신들이나 왕의 기도를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숨이 붙어 있는 것이지 아니었으면 그냥 즉사했을 것이다.
“저, 나리.”
설미수가 눈에 고였던 눈물을 훔쳤다. 어떻게 된 것이 명 황제를 봤을 때보다 더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 설미수가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가 고개를 슬쩍 숙이면서 말했다.
“저 두 놈들 교육이 제대로 끝나지 전까지 시키시는 일에서 빠져도 되겠습니까?”
만우의 태도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나무랄 부분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묘한 기운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그러시게.”
무려 정2품의 판한성부사인 설미수였지만, 지금만큼은 그냥 병사들이 부러워졌다. 병사들이라면 저 괴물을 직접 마주할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 왜 이러시오. 우리는 분명 검주를 따르겠다고…….”
퍼억! 설미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딱 봐도 산적이나 수적처럼 험상궂게 생긴 필두가 만우의 주먹에 비명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그가 언제 이렇게 적나라한 폭력을 본 적이 있겠는가. 그것도 사람을 저렇게 늘씬하게 두들겨 패는 광경이라니.
“아니. 너희는 정신 교육이 필요해. 머슴이 감히 주인에게 토를 달아?”
노비 출신인 만우는 조선에서 노비나 머슴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는 저들을 교육시키기에 가장 최적의 조교이자 교관이이었다.
“옆에 그놈 깨워!!!! 그리고 빠릿하게 움직이란 말이다!”
퍼버버버벅!!! 녹림총채주와 장강총채주의 몸 위로 만우의 무지막지한 구타가 떨어져 내렸다. 꿰애애애액! *** 한양(漢陽). 한양이란 지명은 원래 북한산 이남부터 한강 이북까지를 지칭하는 옛 지명이다. 이것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고 한성부(漢城府)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렀다. 과거에는 남경이라 불린 곳을 한양, 한성부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도읍으로 지정하여 새 시대를 연 것이다. 따각, 따각. 북경에서 한양까지의 거리는 삼 개월이 약간 넘는 백 일이었다. 하지만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성을 거치며 휴식을 취하고, 명 황제가 하사한 하사품들을 가득 싣고 돌아온 설미수의 사신단 일행은 보무도 당당히 한양의 성문을 지나쳐 도성 안으로 들어섰다.
“호오.”
움찔. 무려 백 일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만우에 대한 설미수나 설운의 공포는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많이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잊을 만하면 자신의 무력을 각인시키기라도 하듯 설운이나 감령, 필두를 상대로 푸닥거리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가 한양이오?”
“그렇소! 여기가 한양이오! 후우. 드디어 돌아왔구려.”
말을 타고 온 설미수나 설운은 아니지만 다른 병사들은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얼굴에 역력했다. 게다가 그들은 만우와 큰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가끔 좌익찬 설운과 푸닥거리를 할 때면 놀란 표정을 보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에게까지 만우가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들어오면서 마적떼나 조선의 산적을 만났을 때 만우와 그 휘하의 감령, 필두의 도움이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다. 설미수나 설운도 굽신거리는 만우가 그들에게 먼저 격의 없이 다가왔고, 똑같이 먹고 자고를 했기 때문에 전우애까지 생길 정도였다.
“크으. 이게 몇 년 만인지. 사실 기억도 가물가물 합니다. 하하하.”
만우가 웃음을 터뜨리자 친한 병사가 말했다.
“걱정 말라고. 만 대협이 돌아다닌 중원이나 북경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되는 크기니까!”
“그런가요?”
만우의 기억 속에 한양은 정말로 거대했다. 그때는 그가 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고래 같은 김약항의 기와집도 거대하기만 했는데, 십오 년 만에 돌아온 한양의 기와집들은 작았다.
‘내가 큰 건가?’
묘한 여운에 만우가 젖는 것도 잠시 만우가 손을 들어 감령과 필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빡! 빡!
“악!”
“으악!”
“하려면 좀 조용히 하던가. 아니면 조심이라도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머리라도 쓰던가!”
감령과 필두는 백 일이나 지나 얌전해졌지만 만우의 마수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의지는 아직도 여전했다. 그 정도 끈기나 독기도 없었다면 산적과 수적의 신분으로 초절정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만우는 그들의 손에 들린 단검을 보면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만우의 뒤를 찌르려다가 들켰다. 그들이 반란을 꿈꾸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지만, 하다가 걸렸을 때의 뒷감당도 온전히 그들이 져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뒷감당은 구타였다. 뻐버버버벅!!!! 백 일 동안 얼마나 이들을 많이 두드렸는지 기천의 권법이 한 단계 더 오른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후우.”
사람들이 있는 저잣거리에서 만우가 주먹을 휘둘렀지만 주변 사람들 중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그들을 징벌하기 위해 은밀한 방법까지 개발하여 그들을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라 그래야 되나. 은권?’
숨길 은(隱)자를 붙여야 하나 고민하던 만우가 피식 웃었다. 그 와중에도 사신단 일행은 천천히 나아가 궁문에까지 도달했다.
“사신 나리. 전 어쩔까요?”
그러자 만우가 일행을 거슬러 올라가 설미수에게 물었다. 설미수가 고삐를 쥔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을 주면서 뒤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