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조선 사신(1)2019.01.22.
“오늘은 영업 안 합니다.”
만우가 자연스럽게 만향루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가 만우의 앞을 막아섰다. 삿갓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피풍의로 몸을 감싼 만우는 확실히 이런 고급 기루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영업을 왜 안 해. 저렇게 문 활짝 열어놓고 음악 소리도 들리는구만.”
만우가 무작정 밀고 들어가려고 하자 경비가 만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고 싶지 않다면 썩 꺼지거라. 이 안에 계신 분이 누군 줄 알고.”
일개 경비라고 보기에는 비싼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만향루의 경비가 아니었다.
“호오. 경비까지 다 물렸어?”
딱 봐도 황룡상단의 무인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류 수준. 물론 이류 수준만 되도 일반 관청의 병사를 삼십 명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호위 삼아서 우르르 데리고 다니기에는 딱 적당한 실력이다.
“그럼. 네놈은 이 몸이 누구신지 알고?”
“뭐라?”
황룡상단의 무인이 만우의 아래위를 훑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그냥 낭인이었다. 제법 노련해 보였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내공도 보잘 것 없었다.
“왜. 네놈이 검주라도 되느냐?”
낭인 중에 가장 유명한 이는 검주였다. 사문과 소속을 밝히지 않고 떠돌아다녔기 때문인데 만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나를 알아?”
“하!”
황룡상단의 무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네놈이 검주면 나는 일패다.”
일패(一覇) 혈세천마. 십만마도의 정점인 마교주 혈세천마는 일 수에 마교의 본거지가 위치한 십만대산의 봉우리 하나를 지울 수 있다 알려진 초극 고수다.
“그냥 배 나온 아저씨던데. 넌 아니야.”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만우는 혈세천마를 만난 적이 있다. 비무행을 돌아다닌 만우가 혈세천마를 못 만났을 리 없다. 만우가 꺾은 검마 이정학의 주관으로 비밀리에 만우는 마교에 들어가 혈세천마를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혈세천마는 만우에게 공석인 부교주와 호법의 자리를 제시했다. 그 말인즉슨 만우가 혈세천마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라는 것.
‘이상하게 그 아저씨는 배가 나왔더라.’
하지만 만우에게 혈세천마는 그냥 배가 나온 특이한 아저씨였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특별한 무공이 아닌 다음에야 극한까지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특이한 체질이었다. 무시무시한 마교주가 아니라 그냥 동네에서 만두집을 운영하는 아저씨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혈세천마가 비무에 응하지 않아 만우는 별 소득 없이 십만대산에서 하산했다. 그리고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마 이정학은 이 일로 인해 한 달간 근신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절대로 꺾여서는 안 될 마교주에게 위험천만한 인물을 데려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러니까 혈세천마가 질까봐 꼬리를 말았다는 소리였다. 혈세천마는 지면 잃을 것이 많은 반면 만우는 잃을 것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허어. 이거 이놈 완전 미친놈이네?”
자신을 앞에 두고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황룡상단의 무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발을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만우의 몸을 차려고 했다. 텁.
“어?”
“뭐야. 사람 생각 중인데 차는 게 어디 있어?”
만우의 손에 무인이 다리가 잡혔다. 당황한 그 무인이 발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만우의 손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거기! 움직이지 마라!”
촤차자장!!! 이상함을 느낀 황룡상단 무인들의 반응은 빨랐다. 동시에 모두 검을 빼든 것이다.
“호오. 꽤나 훈련을 잘 시켰잖아?”
이상함을 느끼면 곧바로 반응한다. 말이 쉽지 사실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어려운 법이다. 본래 인간이란 한번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그 의심이 끝도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계를 정해놓는 것이 어려운 법인데, 이 황룡상단의 무인들은 꽤나 실력 있는 이들에게 사사한 듯 그 움직임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곳은 황룡상단이 하루 동안 전체를 빌린 것이다. 그러니 손님을 받을 이유도, 받을 수도 없다.”
무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나와 말했다. 아마 이들이 황룡상단이 자랑한다는 황룡대일 것이다. 절정고수. 황룡대의 대주는 절정고수였다. 절정고수나 되는 이를 금력으로 붙잡을 수 있는 곳은 황룡상단밖에 없다.
“더 이상 움직이면 벤다. 그러니 물러서라.”
황제가 머무는 자금성이 있는 북경이지만 황룡대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다. 사람 한 명 죽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는 자금력과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곤란하고. 내가 위에 올라가 봐야 돼서.”
만우는 부드럽게 자신의 손에 발이 잡힌 무인의 어깨를 밀었다. 그러고는 다른 발로 지탱하고 있는 그 무인의 다리를 툭하고 쳤다. 분명 툭하고 쳤다. 와장창창!!! 하지만 툭하고 치인 무인은 툭하고 날아가지 않았다. 팽이처럼 몸이 빙그르르 돌더니 빨려드는 것처럼 만향루의 일층 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요란하게 날아간 무인이 요란하게 물건들을 부수는 소리가 바깥에까지 흘러 나왔다.
“상대는 최소 절정고수. 차륜진(車輪陣) 전개.”
황룡대 대주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그 간단한 한 수(手)에 무시할 수 없는 깨달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황룡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만우 주변을 포위했다. 만우는 절정고수의 기세를 내뿜는 대주를 보면서 혀를 찼다.
“쯧. 쓸 만한 실력인데 왜 여기서 왕 노릇을 하고 있냐. 실력 키우는 데나 집중하지.”
중원에 일류와 이류, 삼류 고수는 많다. 하지만 절정고수부터는 그 수가 확 줄어든다. 깨달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절정고수는 어딜 가든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절정고수들이 즐비한 구파일방이나 무림맹, 마교에 투신한다면 모를까 중소문파에서는 호법 대접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절정 고수다.
“사람마다 사정은 있는 법.”
대주는 적과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그 의기가 꽤나 대단했기 때문에 만우는 다짐했다.
“특별히 내상이나 외상은 없게 해줄게.”
“진(陣) 전개!”
대주는 만우의 말을 무시하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최소 이류, 최대 일류로 구성된 황룡대가 만우의 주변을 포위한 채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달려들었다. 후웅! 후웅!! 한 명의 검이 베고 지나가면 곧바로 그 다음 검이 베고 지나갔다. 차륜진의 무서움은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끊임없이 몰아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검격 속에서 만우는 마실을 나온 것처럼 유유히 몸을 움직였다. 마치 버드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은 보법이었다. 퍼버벙!!!
“크억!”
“크윽!!”
그리고 만우의 팔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차륜진이 단박에 깨져나갔다. 대주의 표정이 굳었다. 찰나의 순간에 만우의 장(掌)이 차륜진의 빈틈을 노리고 정확히 황룡대원들의 복부를 후려쳤다.
“초절정 고수가 어찌하여.”
절정 고수 정도가 아니었다. 최소한 초절정 고수다. 그러자 대주의 눈이 커졌다.
“정녕. 정녕 검주?”
“뭐, 안 믿은 건 너희니까.”
황제가 사는 북경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지양해야 했지만 만우는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믿지 못 한 것은 황룡대의 불찰이다.
“흐압!!!”
한 사람당 일 격에 차륜진을 펼치던 황룡대원들이 모두 쓰러지고 대주만이 남았다. 검주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대주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검주라고는 하나 각오하시오.”
상대가 검주란 것을 확인한 순간 대주의 기세가 바뀌었다. 생사대적을 눈앞에 둔 것처럼 비장해진 것이다. 동시에 그는 강자에 대한 예우로 말을 높였다.
“그래. 근데 그전에 내가 좀 바빠서.”
뻐억!!! 대주의 눈이 흔들렸다. 분명 눈앞에 있던 검주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이형환위…….’
눈앞에 서있다고 생각한 검주의 모습은 잔상이었다. 그 잔상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대주가 눈을 까뒤집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흐흥~!”
황룡대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박살 낸 만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만향루 안에 들어섰다.
“히야. 삐까번쩍하네.”
아쉬운 점이라면 기녀들이 나와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화려한 안의 장식만 보더라도 충분히 눈요기가 됐다. 그것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는다는 1층이 이 정도였다. 저벅, 저벅. 만우는 조금 더 화려한 2층과 칸막이가 생긴 3층. 그리고 아예 기녀들의 재주를 볼 수 있도록 무대가 설치된 4층을 지나 5층까지 거침없이 올라갔다.
“나중에 기녀가 있을 때 와봐야겠네.”
기녀가 없는 기루에 대체 무슨 재미가 있다고. 만우는 그럴 거면 왜 만향루에서 만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 층에 올라섰다. *** 정2품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설미수는 불편한 기색을 티내지 않으려 애쓰며 술잔을 집어 들었다.
‘장사치 주제에.’
장사치. 제 아무리 중원제일상단에 만금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지만 황룡상단의 대행수인 두주는 설미수에게 있어 한낱 장사치일 뿐이다. 본래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따라 상인은 조선에서 가장 괄시받는 직업이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일개 장사치라고는 하나 대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사치였다. 그 장사치가 독대를 청했기에 설미수는 감히 그를 거절할 수 없었다.
“중원과 조선의 물과 풍토가 달라 배앓이를 하는 사람이 많다 들었는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두주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차림새였다. 돈이 넘쳐난다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그는 오색비단 옷을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휘황찬란한 보석 장식들은 황제의 의장보다 더 사치스러웠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공(公). 괜찮습니다.”
“제가 십 년 전에 광산군을 모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조선이란 나라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설 부사를 뵙고 싶었습니다.”
“아. 광산군을 아십니까?”
“예. 그분께 필요하신 물건들을 직접 조달해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분이 비명횡사 하실 줄은…….”
이런 저런 예의 상 대화를 나누던 설미수는 점점 이 자리가 더 불편해졌다. 무식한 장사치라 그런지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두주의 입에서는 입만 열면 돈, 돈, 돈 이야기만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이 자리가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두주의 눈치는 비상하게 빨랐다. 설미수도 여러 풍파를 겪은 정치인이지만 중원의 금력을 한 손에 놓고 주무르는 두주에게는 모자란 상대다.
“제가 술을 잘하지 못하여…… 송구스럽습니다.”
설미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모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모셨습니다.”
중원 사람들에게 조선은 그냥 변방의 동이족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두주의 태도가 지나치게 공손했다. 설미수가 사신이라고 하지만 똥개도 제 앞마당에서는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말씀하시지요.”
상대가 정중하게 나왔기 때문에 설미수가 같이 그에 응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가져오신 공물(貢物) 중에 조선삼(參)이 있다 들었습니다.”
두주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그중 일 할을 저희에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설미수가 속으로 끄응하고 신음을 삼켰다. 사실 매번 조선에서 오는 공물들 중 일부분이 이런 자들의 주머니도 들어간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려 황제에게 진상되는 물건이다.
“황상께서 아시면 큰일이 날 터인데…….”
“하하. 괜찮습니다. 진상하는 공물의 수량은 조정하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두주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참 대범한 자로구나. 아니, 광오한 자로구나. 황제를 속이겠다는 말이 아닌가.’
설미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이름을 걸고 나온 외교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봐도 꾹 참아야 했다.
“그리고 공녀 말씀이온데…….”
공녀라는 말까지 나오자 설미수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두주는 설미수의 표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반반한 계집이 있더이다. 제가 몇 명 골라도 되겠는지요.”
공녀를 바친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다. 하지만 설미수는 한 번 더 꾹 참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서를 한 번 고치나, 두 번 고치나 고치는 것은 똑같은 법이다.
“대신 내 남문상단을 통해 비단과 노비들을 많이 보낼 터이니 섭섭해하지는 마십시오. 하하하.”
그렇게 두주가 웃음을 터뜨릴 때, 그의 옆을 늘 지근거리에서 지키고 있는 호위가 검을 뽑아들었다.
“웬 놈이냐!”
“나?”
만우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