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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검주, 조선으로 가다(4) (6/400)

006. 검주, 조선으로 가다(4)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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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188190067.png“예.”

만우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룡상단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장사가 사람 장사라는 소문이 은밀히 떠돌던데, 그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16553188190067.png“그리고 삼과 청자를 비밀리에 들여오고 있다고 합니다.”

16553188190074.png“삼과 청자라.”

고려 때부터 삼(參)은 사사로이 개인의 거래가 불가능한 품목이다. 황제에게 보내는 공물로만 취급되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삼을 사사로이 유통시켰다는 것은 중죄지만, 황룡상단의 권세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16553188190074.png“돈이 제법 되겠는데?”

16553188190067.png“조금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임수미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황룡상단이 얻는 이문은 단순히 제법 정도가 아니었다. 황룡상단의 돈이면 자금성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16553188190074.png“그 정도라고?”

16553188190067.png“예.”

만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룡상단이 유명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16553188190074.png“황제가 그걸 두고 본다고?”

그 정도로 이문을 남긴다면 황제의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리고 황제는 그런 자를 제일 경멸했다. 황권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임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53188190067.png“금력이면 안 되는 일이 없더이다.”

16553188190074.png“허.”

그런데도 불구하고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조선 사신과 뭔가 쑥덕대고 있다는 뜻이다. 만우에게는 돈이란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었는데 황룡상단의 두가 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16553188190067.png“조선에서 가장 큰 상단인 남문상단을 통해 거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16553188190074.png“흐음…… 그러니까. 너희는 잡혀간 너희 문도의 복수를 하려는 거다?”

16553188190067.png“예. 하오문은 복수를 잊지 않으니까요.”

하오문은 방파라고 보기에는 초라한 무공만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 세력을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하류인생들이 모인 집단이고, 그렇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다. 한 손으로 열 손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자가 아닌 다음에야 시도 때도 없이 죽자고 달려드는 모든 사람들을 당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하오문은 부족한 무력을 독기로 채워 넣어 원한을 반드시 백 배, 천 배로 갚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런 하오문을 황룡상단이 건드린 것이다. 하오문의 복수는 상대방의 권세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 철칙이 있어야만 하류인생들이 그나마 마지막 보루로 자신들의 인생을 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똘똘 뭉친 하오문도는 대단히 끈질기고 귀찮았기 때문에, 무림의 방파들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하오문도를 잘 건드리지 않았다.

16553188190074.png“그러니까. 나보고 황룡상단을 건드려 달라?”

16553188190067.png“……하지만 거부하셨습니다.”

16553188190074.png“그리고 날 만향루로 안내했고.”

만우는 임수미를 향해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임수미는 쉬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만우에게 말했다.

16553188190067.png“만향루를 즐기고 싶으시면 들어가시면 됩니다. 단 그렇게 된다면 황룡상단의 대행수와 마찰이 일어날 것입니다.”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상인들을 경시한다.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인들도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각 지역의 대문파들은 그 지역의 상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상인들도 은연중에 무인들을 괄시한다. 자신들이 돈을 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면서 무인이랍시고 자존심을 세우는 꼴이 우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데, 만우는 자신이 검주란 것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만우가 저 만향루에 들어간다?

16553188190074.png“너희 수준에서 정리가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데?”

크그긍. 만우의 몸에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암만 보기에도 만향루 안에 있는 두주란 놈이나 그 곁에 있는 놈들은 어렵기는 해도 하오문이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였다.

16553188190074.png‘한 놈만 빼고.’

개중 한 무인의 기세가 독보적이었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맡기려고 했다는 것에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16553188190067.png“대, 대협! 그것이 아니라…….”

임수미는 누군가 어깨를 콱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임수미의 이마에 식은땀이 서렸다.

16553188190067.png‘잘못 말하면 죽는다.’

임수미는 강렬한 본능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았다. 아니, 만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업적을 무림독보를 하며 써내려왔는지 그것을 기억해냈다.

16553188190067.png“검주 대협. 소녀의 말을 조금만 들어보시지요.”

16553188190074.png“해봐.”

만우는 팔짱을 낀 채 고압적으로 말했다. 임수미의 어깨를 누르는 힘이 더 강해졌다. 만우란 남자는 그녀의 머리로 재단할 수 있는 성격의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임수미는 해야만 했다. 하오문의 철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16553188190067.png“오해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검주께서 생각하신 바가 맞습니다. 소녀는 검주 대협을 이용하기 위해 이곳으로 안내하였습니다.”

16553188190074.png“나도 안다.”

임수미는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래도 자신이 서 있을 정도로만 압박하는 것으로 봐서는 만우에게 설득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 만우가 정말로 거슬렸다면, 임수미는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됐을 것이다.

16553188190067.png“허나 이럴 수밖에 없는 소녀의 처지를 긍휼하게 생각하시어…….”

16553188190074.png“아는 말을 계속 하는구나?”

16553188190067.png“죄송합니다, 대협.”

임수미의 말에 만우가 인상을 쓰자 임수미가 고개를 숙였다.

16553188190074.png“하아.”

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남자였으면 때렸을 텐데, 임수미는 때리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아무리 무림에 남녀의 구별이 없다는 하나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는 미녀를 때릴 수는 없었다.

16553188190074.png“두가 놈이랑 같이 있는 사람은?”

임수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만우가 당장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것만 해도 큰 소득이다. 적어도 설득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임수미는 만우가 여자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도박이었다. 특히나 자신 같은 미녀라면 아무리 만우라고 해도 함부로 손을 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시도했지만 그게 들어맞은 것이다. 만향루 안에는 두 명이 있었다. 한 사람이 대행수라면 다른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행수와 독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16553188190067.png“조선의 사신입니다.”

16553188190074.png“조선의 사신?”

조선이란 말에 만우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임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188190074.png“조선의 사신이 연경에 있단 말이냐?”

16553188190067.png“예.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조선에서 설미수라는 자가 사신으로 와있습니다. 황제께서 조선의 왕과 각별한 인연이 있으시기 때문에 총애하신다는 소문이 북경 바닥에 쫙 깔렸습니다.”

16553188190074.png“황제가 조선의 사신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16553188190067.png“예. 예로부터 조선의 선비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야만스럽던 원이 물러가고 명이 유학을 신봉하니, 더욱 그런 풍조가 강해졌습니다.”

본래 유학은 중원을 거쳐 조선으로 유입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원이 통치하면서 원은 유학을 등한시했다. 그동안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동이라 불렸던 그들이 성인인 공자의 말씀을 더 중요시 여겼고,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16553188190074.png“그럼 더 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만우는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숫제 저승사자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황제가 총애하고 있는 조선의 사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원제일상단 대행수을 죽여 달라니. 아무리 만우가 검주라고 해도 명의 황제와 적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임수미가 깔아놓은 판은 그냥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16553188190074.png“그냥 너희를 싹 다 죽이고 저 인간한테 알려주는 게 나한테 더 이득이 아닐까?”

만우의 몸에서 은밀한 기세가 일어나자 임수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얼굴을 보니 심통이 나도 보통 심통이 난 것이 아니었다.

16553188190074.png“안 그래? 내가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조선의 사신이라면…… 내가 돌아가는 길에 신세도 질 수 있을 테고.”

임수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만우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임수미도 미처 예상을 하지 못 했다. 하지만 역시, 만우는 임수미가 절대 머리로 재단할 수 없는 남자였다.

16553188190074.png“그게 이치에 맞아. 효율적이기도 하고.”

만우의 기세가 점점 더 크게 일어나자 임수미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이제는 숫제 거인이 힘을 줘서 어깨를 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기세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만우가 단순히 기세만으로도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16553188190067.png“허, 허나.”

16553188190074.png“너희의 원한은 너희 손으로 갚아야지. 남의 손으로 갚으려고 해서야 쓰나. 그저 조선으로 넘어갈 내 손으로 저놈을 처리하고, 너희는 모른 척할 생각은 아니었겠지?”

인신매매? 인삼? 그게 만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 그는 무림에서 은퇴하여 조선에 가 김약항이 부탁한 일을 해주고 평안하게 살면 될 것을. 기천 때문에 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데다가 중원에서 칼 쓰는 법을 익혀 배 곯을 일도 없을 것인데 무엇 하러 가는 길에 은원을 만들겠는가. 그 때문에 만우는 임수미의 제안에 코웃음을 쳤다. 들어주기에는 일언반구의 가치도 없었다.

16553188190074.png“무화라고 하길래 내 기대를 많이 했다만. 그저 그런 여아구나.”

16553188190067.png“…….”

임수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무화라고, 하오문을 이끄는 차세대 동량이라고 해서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우의 말에 수치심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16553188190074.png“고작 세 치 혀로 본주를 꾀어내기에는 아직 협상의 근본이 없으니. 쯧쯧.”

황제가 총애하는 조선의 사신과 독대를 하는 거대한 상단의 대행수를, 하오문도를 구출해내기 위해 쳐들어가서 족쳐라? 너무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만큼 만우가 하는 일이 크다면, 하오문에서 만우에게 줄 대가도 거대해야 한다. 무려 검주를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16553188190074.png“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새로운 제안을 한다던가?”

16553188190067.png“…….”

임수미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속으로 갈등했다. 하지만 잡혀간 하오문도를 구해내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만우 같은 초고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하오문은 그들이 만족할 만큼의 보상을 할 수 없다. 아니, 검주를 제외한다면 하오문이 얼굴을 감히 보자고 할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16553188190074.png“나 안 한다. 알았지?”

만우는 만향루 앞에서 몸을 홱하고 돌렸다. 한번 경험해 보고 싶기는 하지만 굳이 짐을 만들면서까지 경험해 볼 필요는 없다.

16553188190067.png“대, 대협!”

16553188190074.png“야. 잡지 마. 그나마 너 얼굴 때문에 참는 거야. 알아?”

다른 협객이었다면 임수미의 말에 넘어가 헬렐레 하면서 따랐을지도 모른다. 정의를 지키는 일을 미녀가 부탁을 하니 거부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정사마로 나뉘는 무림의 법도에 따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자기 기준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 원하는 대로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마음껏 살아라. 김약항이 죽으면서 만우에게 남긴 말이 그에게는 좌우명이 됐다. 그래서 그는 항상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다보니 막아서는 사람이 점점 사라졌고 어느새 그는 검주라는 지고한 위치에 올라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전각 최상층에서 낯익은 이름이 낯선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왔고 그것이 만우의 귀까지 흘러 들어왔다. 털썩.

16553188190067.png“대협.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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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188190074.png“안 통해. 놓으라니까.”

임수미는 길거리에 무릎을 꿇고 만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만우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무화는 꽃처럼 예쁜 여인이지만, 고작 여인의 미모 따위에 넘어가기에는 만우가 이룩한 경지가 결코 낮지 않았다.

16553188338924.jpg[아. 광산군을 아십니까?]

16553188338924.jpg[예. 그분께 필요하신 물건들을 직접 조달해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분이 비명횡사하실 줄은…….]

광산군. 김약항이 조선으로부터 하사받은 군(君)의 품계다.

16553188190074.png“빌어먹을.”

만우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만향루 안에서 흘러나온 두 사람의 대화에 만우의 귀가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임수미가 흠칫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서 어르신의 이름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만우는 상황이 고약하게 돌아가는 것에 혀를 쯧하고 찼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임수미에게 말했다.

16553188190074.png“야. 취소.”

16553188190067.png“예?”

임수미가 고개를 들었다. 만우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임수미를 간단한 몸짓으로 떼어 놓았다. 그러고는 전각 오 층을 쳐다보며 말했다.

16553188190074.png“일단 머릿속으로 튕기고 있어봐.”

16553188190067.png“뭘 말씀이신지…….”

만우가 무슨 그런 초짜 같은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임수미를 쳐다봤다.

16553188190074.png“주판알. 왜 갑자기 멍청해진 거야?”

만우의 독설에도 임수미의 표정이 밝아져다. 그가 하려는 말을 눈치를 챈 것이다.

16553188190074.png“내 보수. 황룡상단 대행수와 조선 사신이다. 잘 계산해.”

16553188190067.png“예! 대협!”

임수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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