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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검주, 조선으로 가다(3) (5/400)

005. 검주, 조선으로 가다(3)2019.01.15.

북경은 서안과 남경에 이어 하오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타다. 그렇기 때문에 하오문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북경 하오문을 조직했고 언제라도 단속이 뜨면 피할 수 있도록 토끼굴 같은 비밀 통로들을 북경 지하에 설치했다. 그리고 전주가 도착한 곳. 그곳에 도착한 만우는 검집으로 전주의 뒷목을 후려쳤다. 퍽! 꾸르륵. 입가에 거품을 문 전주가 무너져 내렸다. 만우는 그런 전주를 휙 내팽개쳤다.

16553187957598.png“이거 뭐야. 생각보다 규모가 엄청 나잖아?”

원래 만우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마침 자신의 돈을 훔쳐간 것이 하오문이니 오랜만에 들려 겁먹은 표정도 보고, 만향루 예약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분명 북경제일루라는 만향루도 하오문과 어떻게든 연결이 돼 있을 테니까. 기루와 하오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한 관계다. 그런데 북경 분타주를 만나러 오는 길이 멀었고, 그 규모가 상당했다. 하오문이 공을 들여 만든 곳이란 것은 알았지만 설마 지하에 총분타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6553187957598.png“아. 괜히 일 만들었나?”

그렇게 후회하는 척했지만 만우는 거침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아니, 사실은 거의 부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관진식으로 이뤄져 있는 문을 만우는 그냥 힘으로 부쉈다. 꽈직! 키가 크지만 덩치 자체가 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찍이 만우란 이름이 붙은 것도 만 마리(萬)의 소(牛)의 힘을 낼 수 있다 해서 붙었던 것이다. 그것이 기천을 수련하면서 만우는 가히 신력(神力)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힘을 가지게 된 것 뿐이다. 와지직, 와작. 만우는 확실하게 기관진식을 부숴버리고는 총분타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난리가 날 것이라고 예상한 만우와 달리 총분타는 지극히 조용했다. 기관진식을 부수고 들어온 만우의 등장에도 놀란 표정을 한 하오문도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만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강한 기운을 보유하고 있는 북경 총분타주가 하오문도들을 사열하게 한 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16553187957612.png“명예호법을 뵙습니다.”

16553187957617.jpg“명예호법을 뵙습니다!!!”

북경 총분타주로 보이는 사람의 정중한 인사와 함께 주변 하오문도들이 넙죽 허리를 숙였다. 만우의 눈가가 씰룩였다. 명예호법. 하오문도를 모두 전멸시킬 기세로 날뛰는 만우를 진정시키기 위해 하오문주가 극적으로 타협을 체결하며 만우에게 준 명예직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하오문이 있는 곳이라면 하오문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 명예호법.

16553187957598.png“날 기다리고 있었구나.”

16553187957612.png“송구스럽습니다.”

만우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만우는 그 주먹을 휘두를 수 없었다. 북경 총분타주. 고개를 숙인 총 분타주의 속눈썹은 서시의 그것처럼 짙고 길었고 그 아래로 떨어지는 용옥은 북경 최고 도기 장인이 심혈을 다해 만든 백자처럼 희고 고왔으니까.

16553187957612.png“소녀, 북경 총분타를 맡고 있는 임수미라 하옵니다.”

임수미. 무림에서는 은밀하게 떠도는 한 가지 소문이 있었다. [무림칠화(武林七花) 못지않은 꽃이 한 송이 더 있는데, 아무도 본 적이 없다하여 무화(無花)라 한다.] 무화 임소미. 소문으로만 떠돌던 하오문주의 딸, 임소미의 얼굴에서 하오문주의 얼굴을 본 만우가 얼굴을 팍 찡그렸다.

16553187957598.png“여자라 때릴 수도 없고 이걸…….”

움찔. 만우의 혼잣말에 임수미가 몸을 움찔했다. 사실 그녀는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검주 만우와 하오문이 부딪쳐 하오문이 입은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반면 검주는 딱히 세력이나 소속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 전무했다. 그냥 그는 전 중원을 돌아다니면서 하오문만 부수고 다녔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하오문은 거의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들이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고수들이 연달아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우는 여자조차도 가리지 않고 때린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16553187957598.png“예쁜 꽃은 꺾지 않는 주의라. 운 좋은 줄 알아라.”

하지만 이어진 만우의 말에 임수미는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그냥 예쁘기 때문에 때리지 않은 것이다. 멍든 꽃을 보고 싶어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16553187957612.png“이쪽으로…….”

임수미는 만우를 대접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만우가 먼저 손을 딱하고 내밀면서 입을 열었다.

16553187957598.png“됐어. 나 은퇴했어. 그러니까 이제 무림에 없는 사람 취급해. 그냥 만향루나 쓰게 해줘.”

16553187957612.png“예? 하, 하지만…….”

16553187957598.png“일부러 날 전대치기 하면서까지 이쪽으로 유도한 거면, 급한 일이 있다고 이해를 하겠는데. 여기선 안 돼. 북경이야.”

만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무림의 은원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여기는 무림인이 활동할 수 있는 남경이나 섬서성이 아니라 북경이다. 무려 쳘혈의 영락제가 있는. 원의 잔당을 완벽하게 소탕한다는 미명하에 영락제는 북경으로까지 천도를 하면서 잡아 죽인 사람이 수 만 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원의 잔당도 있었지만 그의 반대 세력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 세력 안에는 영락제와 같은 핏줄도 있었다. 그런 황제가 버티고 있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 십 할로 자신의 검이 필요하다는 것에 만우는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16553187957598.png“그러니까 안 돼.”

만우는 평온하게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자신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이 만리타향에서 돌아가신 김약항 어르신의 부탁을 들어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원도 이제 신물 날 정도로 구경했으니, 돌아갈 시간이다.

16553187957598.png‘마지막으로 만향루만 가고.’

16553187957612.png“그러면 만향루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임수미는 순순히 만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물어보지도 않았다. 순순한 그녀의 승낙에 만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16553187957598.png“어쭈. 만향루에 너희가 처리하고 싶은 골칫덩어리가 있는 모양이네.”

16553187957612.png“……예.”

임수미는 만우에게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 만우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잔혹한 대가로 돌아오는지 어머니인 하오문주에게 고막이 터져라 들었다. 검주에게 거짓을 고해 자신들의 검으로 사용했던 중원 오대 상단 중 하나인 파촉상단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검주에 의해 네 조각으로 나뉘어 나머지 사대 상단에 흡수됐다. 세력권 싸움에서 상대 방파를 악독한 사파로 몰아갔던 호북성의 정파인 무정파가 하룻밤 만에 봉문했고 문주는 폐인이 되어 무림에서 은퇴했다. 이것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든, 검주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은 곧장 검주의 방문을 받아야만 했다.

16553187957598.png“분타주.”

16553187957612.png“예. 검주.”

임수미가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그러자 일부러 헐렁하게 입은 비단 장삼이 벌어지면서 탐스런 속살이 만우의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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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187957598.png“험, 험. 그건 좀 가리고.”

민망함에 헛기침을 한 만우가 손을 까닥이자 임수미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허리를 폈다. 임수미가 눈을 부릅떴다.

16553187957612.png‘이정도 내공이라니.’

손 하나 까닥해서 사람의 몸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공력이라면 하오문 전체가 덤벼들어도 상대도 안 되는 고수다.

16553187957612.png‘더 강해졌어.’

그렇다는 말은, 하오문과 만우가 마지막으로 부딪쳤을 때보다 그가 강해졌다는 뜻이었다. 무인인 임수미의 눈에도 존경스러울 정도.

16553187957598.png“두 번 같은 말은 하지 않으마.”

하지만 만우는 가차 없이 임수미의 기대를 꺾었다.

16553187957598.png“만향루로 안내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수미의 표정이 밝아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향루로 안내하라는 뜻은 하나였다. 만향루 전체를 누가 전세를 냈어도, 자신을 안내하라는 것.

16553187957612.png“감사합니다, 대협.”

임수미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 만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북경 저잣거리를 걸었다. 북경 저잣거리는 확실히 새로운 수도기 때문인지 남경과는 다르게 훨씬 더 화려했고 활기가 넘쳤다. 길거리 곳곳에서는 이문을 남기려는 장사치들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흥정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광대들이 공연을 펼쳤다.

16553187957598.png“남경은 너무 조용해.”

사실 그 조용한 이유가 검을 허리춤에 찬 무림인들이 돌아다녔기 때문이지만 만우는 빙긋 웃었다.

16553187957612.png“저깁니다, 대협.”

임수미는 그런 만우의 옆에서 조용히 그를 안내했다. 만우에게서는 정말 은퇴를 앞둔 노고수 같은 헛헛함인 느껴졌다. 더 이상 미련이 없는 것처럼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즐거워할 수 있는 것.

16553187957612.png‘정말 떠나시려는 거구나.’

임수미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가면 당장 모든 분타와 총본부에 알려야 했다. 검주가 은퇴를 하고 난 다음 바뀔 무림 정세에 대한 보고를 올리라고.

16553187957612.png“저, 대협.”

16553187957598.png“응? 왜.”

만우는 기분이 좋았다. 하오문이 머리를 굴렸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뻔 했지만 만향루에 간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옆에서 자신을 안내하는 것이 시커먼 남자가 아니라 어여쁜 여자라는 것도 한몫했다.

16553187957612.png“어디로 가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임수미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서시가 있다면 이러할까. 수많은 무림의 미녀를 만나본 만우지만 무화 임수미의 미모는 가히 천하일절이었다.

16553187957598.png“조선.”

16553187957612.png“그 먼 곳에는 왜…….”

조선은 명과 형제국이다. 무림과 관이 서로 상관치 않는다고 하지만 무림도 명에 속해 있다. 원이 다스릴 적 무림이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생각해 본다면, 무림이라고 해서 국가 정세에 귀를 닫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조선에 대해 많이 알려진 것은 없었다. 동이족이라 하여 중원에서 계속해서 넘봤지만 중원의 힘을 막아낸 저력 있는 소국 정도?

16553187957612.png“그곳은 강호무림이 없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하여…….”

16553187957598.png“강호무림이 없다?”

혹시나 만우가 불쾌할까 걱정되어 뒤늦게 설명을 하던 임수미가 만우의 반문에 힘을 얻어 말했다.

16553187957612.png“예. 그곳은 워낙 소국이어서 귀족들도 사병을 양성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들었습니다. 당연히 무인을 키우는 세가나 방파도 금지되어 있고요.”

16553187957598.png“흐음…….”

만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워낙 어릴 적 떠나온지라 기억이 가물거렸다. 그리고 그때는 조선이 막 건국되었을 시기다. 바로 그전인 고려에서는 조선의 건국왕인 태조도 가별초라 불리는 사병을 양성했었다.

16553187957598.png“상관없다. 무림인이 되려 가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만우는 개의치 않았다. 무림인이 되고자 했으면 그냥 중원에 있었을 것이다. 그가 조선에 가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16553187957598.png“은원이다. 더 이상 묻지 말거라.”

은(恩)과 원(怨). 그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검주와 원(怨)을 쌓은 상대에게 임수미는 속으로 명복을 빌어주었다.

16553187957612.png‘동이족이란 말이 맞았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검주는 동이족이 맞았다. 그의 출신성분에 대해 소문이 떠돌기는 했지만 한 명도 직접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소문대로 그가 패나 왕, 존이 되지 못하고 주(主)에 머무른 것이 동이족이기 때문이라는 것의 가설이 힘을 받을 것이다.

16553187957598.png“호오. 여기가 만향루냐?”

임수미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무려 오 층 높이의 화려한 장식으로 사치스럽게 꾸며진 전각에서 흘러나오는 음률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16553187957612.png“그렇습니다, 대협. 이곳이 만향루입니다.”

오 층 높이의 전각에는 일필휘지로 명필이 쓴 것이 분명한 만향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붉은 등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다. 외장에 상당히 공을 들인 듯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색으로 치장을 한 건물은 멀리서 보기에도 굉장히 화려했다.

16553187957598.png“그런데 이 넓은 곳을 두 명이서 쓰고 있네?”

만우의 시선이 만향루의 오층으로 향했다. 만우의 기감이 순식간에 만향루 전체를 훑었다.

16553187957598.png“음. 누군데?”

앞뒤 없이 만우가 말했지만 임수미는 비상한 눈치가 있었다.

16553187957612.png“황룡상단 두주입니다.”

16553187957598.png“황룡상단?”

만우가 눈을 크게 떴다.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황룡상단이면 그 규모로는 명나라 전체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거대 상단이다. 특히 황실과 인연이 깊은데, 황룡상단이 명나라 건국에 큰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 때문에 거의 고위관료나 다름없는 예우를 받았다.

16553187957612.png“황룡상단의 대행수인 두주는 현 황제가 연왕 시절부터 연을 맺어온 사이입니다. 그 때문에 현 황제의 등극에도 금력으로 그의 뒤를 받쳐주었습니다.”

16553187957598.png“한마디로 실세다.”

16553187957612.png“예.”

16553187957598.png“그거랑 너희랑은 무슨 상관인데.”

만우는 임수미를 쳐다봤다. 임수미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16553187957612.png“인신매매 때문입니다. 순진하거나 돈이 필요한 어린 여자 아이, 기생들을 꾀서 외국에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16553187957598.png“외국?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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