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타의에 의한 중원행(中原行)2019.01.05.
파츠츠츠. 뚝! 요란하게 울어대던 밤벌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스륵, 스륵, 스륵. 그러자 밤벌레들이 울어대던 그 소리 위로 갈대 위를 스치는 천소리가 은밀하게 울려 퍼졌다. 낮이라면 몇 촌(寸)도 벗어나지 못할 소리지만 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시끄럽게 들렸다. 적어도 만우에게는. 만 마리의 소만큼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해서 만우라 이름 지어진 만우는 판전교시사 김양항 대감집의 머슴으로 살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중원으로 넘어갔었다.
“만우야.”
“네, 대감마님.”
명나라 주원장에게 억류된 사신 유순을 송환시키기 위해 명나라에 왔다가 표전 문제로 억류된 김약항이 주름진 얼굴을 푸들거리면서 힘겹게 말했다.
“날 내려놓고 그만 가거라.”
“그, 그럴 순 없습니다, 대감마님.”
만우는 무슨 소리냐는 듯 손을 내저으며 학을 뗐다. 그런 그의 순박한 모습에 싱긋 웃던 김약항은 이내 목소리를 엄히 했다.
“내 너의 신력을 일찍이 알아보고 어린 나이에 대양진인에게 부탁해 기천(氣天)을 가르쳐 네가 범상치 않다고는 하나 나를 업고 칠주야를 달렸으니 지치지 않을 턱이 없다.”
“괜찮습니다, 대감마님.”
김약항의 말대로 만우의 굳건한 다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지만, 만우는 대감마님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쉬쉬식!! 조금이라도 발걸음이 느려지면 귀신 같이 따라붙는 저 그림자들 때문이었다.
“허허허. 내가 어지간히도 밉보였나 보구나.”
김약항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만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번뜩이는 만우의 눈빛이 터져 나왔다. 기천을 수련한 지 이제 오 년이나 되었지만 보(步)와 권(拳)만을 쓸 수 있는 3단계인 정인(正人)의 경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중원에서 살행으로 명성이 자자한 은월루의 자객들로부터 칠주야나 도망칠 수 있었다. 파바바밧!!! 만우가 싸울 생각으로 몸을 돌리자 검은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솟아오르면서 만우 주변을 포위했다. 살객들은 전부 검은색 피풍의를 입은 채 검은 복면과 삿갓까지 뒤집어 써 마치 그림자처럼 보였다. 은월루가 자랑하는 흑살수들이었다.
“광산군(光山君) 김약항. 맞나?”
흑살수 들 중 허리춤에 붉은 수실을 매단 이가 나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약항은 노쇠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만우마저도 화들짝 놀랄 정도로 정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얼굴을 가려 떳떳하지 못한 무뢰배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썩 꺼져라!”
김약항은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다. 하지만 추상같은 그의 서슬에 흑살수들이 움찔했다. 동이족 조선의 노인이라고 해서 무시했는데 그 위엄이 웬만한 북경의 고관대작들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봉인가, 정안군인가.”
김약항은 흑살수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흑살수들은 말없이 사방으로 퍼지며 만우가 도망갈 수 없게끔 모든 퇴로를 차단했다.
“치익.”
만우는 입 사이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김약항을 들쳐 맨 보자기를 도중에 풀리지 않도록 꽉 싸맸다.
“하압!”
기천은 중원의 무공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중원의 무공 중에서도 도가(道家)의 무공은 선(仙)을 위해 수련한다는 점에서 같을 수 있지만 그 사상과 체계의 궤가 완전하게 달랐다. 중원의 무공들이 앉아서 하는 좌선이나 누워서 하는 와선으로 수련을 해야 하는 반면, 기천은 서서하는 입법(立法)이란 것이 달랐다. 주천화부나, 오기조원이니 삼화취정 등의 단계도 달라, 기천은 총 7단계로 이뤄졌다. 행인, 공인, 정인, 법인, 도인, 진인 그리고 상인. 그중 만우의 단계는 정인이었는데 오 년 만에 정인에 도달한 사람이 산중에서 기천을 수련하는 도인들 중에서 아무도 없다고 했다.
“후우우우.”
짧은 시간 동안 서서 운기를 한 만우의 전신에서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조식(調息)을 통해 아랫배 부근이 크게 꿀렁였다. 진기를 끌어 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꽉 잡으십쇼, 대감마님!”
“오냐.”
김약항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 만우가 땅을 힘차게 박찼다. 그러자 짓밟힌 갈대 몇이 뿌리까지 드러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기천보법. 하늘의 기를 담았다는 기천이라는 이름답게 만우는 나풀거리는 나비가 된 것처럼, 때로는 빠르게 날아다니는 벌처럼 땅을 밟으며 흑살수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죽여라.”
챙!!! 검날에까지 검댕을 입혀 달빛에도 반사하지 않게 만든 거무튀튀한 검날 수십 개가 만우의 전신을 노리고 쇄도했다. *** 파바바박!! 창! 창! 창! 허공에서 붉은 수실을 허리춤에 찬 흑살수와 만우의 팔이 어지럽게 얽혔다. 만우는 완전히 혈인이 되어 있었다. 만우의 얼굴부터 시작해 가슴팍을 지나 배와 허벅지까지. 어디 한 곳에도 상처가 나있지 않은 곳이 있었다. 하지만 만우의 등쪽은 아주 깨끗했는데 김약항을 지키기 위해 만우가 모든 검을 앞으로 맞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피와 흑살수들의 피로 흠뻑 젖은 만우는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흑살수를 향해 모든 힘을 쥐어짜냈다.
“이야아아압!!”
넓은 갈대 숲 사이로 만우의 기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반면 흑살수는 삿갓 아래로 차가운 눈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채채챙!! 요란스럽게 만우의 검과 흑살수의 검이 허공에서 불똥을 토해냈다. 단순히 검만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로 권과 각이 오가며 서로의 사혈을 노렸다.
“조금만 참으세요, 대감마님!”
만우의 단전에서 묵직한 진기가 솟아났다. 놀랍게도 만우는 전투를 하면서 정인에서 한 단계 위인 법인에 도달했다. 그러자 기천검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만우는 곧바로 살수의 검을 집어 들었다. 비록 기천검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조선검이 아니라 살수들이 쓰는 일격필살용 검이었지만 그것을 든 만우는 삽시간에 흑살수들을 고꾸라트렸다. 붉은 수실을 허리에 매단 흑살수가 무슨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만우의 검에서 솟아난 푸르스름한 검기가 주변의 모든 흑살수들을 도륙을 낸 것이다.
‘과연 무골이로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김약항은 만우의 분투를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기풍이 무(武)를 천시했기 때문에 그도 무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만우가 도달한 경지가 비범함은 그도 알 수 있었다.
‘검기(劍氣).’
검을 오랫동안 수련한 재능 있는 검객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다룰 수 있다 알려진 검기가 분명했다.
‘내 손자가 있으면 딱 이놈만 할 터인데.’
김약항은 오 년 전에 조선을 떠나 명나라에 와 평생을 이곳에서 유배를 지냈기에 아들과 손자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광산군이라는 거창한 관직을 내려주었지만 과연 아들과 손자가 새로 세워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주원장에게 밉보인 신하를 감싸줄 수 있는 힘이 조선에는 없었으니까.
“대감마님! 꽉 잡으세요!”
만우의 기합소리가 터져 나오자 김약항은 본능적으로 만우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그러자 주변으로 바람이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만우의 검이 흑살수의 요혈을 노리고 밤공기를 튕겨내며 쇄도했다. 쐐액-! 바람의 저항을 최대한 받지 않게끔 만들어놓은 살객의 검이었기에 만우의 공격은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그 순간 흑살수의 눈에서 살기가 폭사했다.
“에이익!”
그 살기에 만우는 설핏 놀랬지만 이를 악물고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만우의 노력이 하늘에 닿은 것인지 만우의 검이 흑살수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커헉!”
하지만 답답한 고통은 흑살수의 입이 아니라 만우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만우는 자신의 등이 뜨뜻해지자 기겁하며 흑살수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찬 채 뒤로 몸을 날렸다. 타닥! 푸화악!! 심장을 찌른 만우의 검이 빠져나가자 흑살수가 피를 분수처럼 뿜어대며 쓰러졌다. 하지만 만우는 그 흑살수의 손에 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감마님! 대감마님!”
아니나 다를까, 만우가 급히 포대기를 풀고 김약항의 상태를 살피자 김약항의 등판에 흑살수의 검이 꼽혀 있었다.
“쿨럭……. 그, 그놈 목소리 한번…… 우렁차구나.”
김약항은 뜨거운 불덩이가 등을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 울컥하면서 게워내자 속이 조금 편해진 김약항이 하얗게 질린 만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허허. 그놈. 잘 컸다. 잘 컸어.”
김약항은 만우를 손자처럼 대해주었다. 신분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 때문에 오지를 떠돌아야 되는 만우가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조선에 만우만 한 손자가 있을 터이기 때문에 더욱 만우에게 마음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만우 자체도 순박하기 그지없어 정을 줄 수밖에 없었다.
“만우야.”
“예. 대감마님.”
만우는 눈에서 눈물을 찍어냈다. 소매에 묻은 살수의 피와 눈물이 섞여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만우는 그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 너를 중원에 데려와 참 몹쓸 짓을 했다 생각했느니라.”
“아니에요 대감마님. 대감마님 덕분에 따듯한 밥도 실컷 먹고, 이렇게 무예까지 알려주셨잖아요.”
“허허허.”
김약항은 만우에게 무예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글을 가르쳐 주고 기천을 수련하는 이들로부터 받은 무예서를 주었을 뿐이다. 유배란 것이 원래 그토록 시간을 죽이며 할 것이 없는 곳이라, 만우는 열 살 때부터 글을 배워 홀로 무예서를 읽었다. 그러고는 십년 만에 검기를 뿜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스승도 없이 저 경지에 이르렀으니. 불쌍하다 해야 할까 아니면 대단하다 해야 할꼬.’
얼마나 어린아이가 할 것이 없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의 무(武)에 대한 재능이 김약항은 놀라웠다.
“아마 곡산 척가의 아이들도 너보다는 무(武)에 대한 재능이 없을 것이야. 쿨럭.”
김약항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하지만 김약항의 눈빛은 더욱 또렷해졌다. 회광반조(回光返照)였다. 죽기 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김약항을 보며 만우는 소매로 눈가를 닦아냈다.
“이리로 오거라.”
“예. 대감마님.”
만우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김약향의 손을 잡았다. 김약항의 주름진 손이 만우는 돌아가신 자신의 할아버지 손 같다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나면, 더 이상 너를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죽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대감마님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만우는 사족을 달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끅끅거리는 울음이 입 밖까지 튀어나오려 했지만 만우는 그것을 속으로 욱여넣었다.
“그러니, 부디 너는 이 넓은 중원이란 세상을 돌아 보거라. 네가 식견을 넓히든, 무(武)를 쌓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거라.”
“대감마님.”
만우는 고개를 숙였다. 김약항의 목소리에서 따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조선에 있을 때는 무서운 대감마님이었지만, 십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김약항은 만우에게 좋은 할아버지이자 때로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항상 같은 방에서 잠을 잤고, 같은 밥을 먹었으며 같이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김약항과 만우 사이에는 엄격한 유가의 법도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반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만약 네가 조선에 가게 되거든.”
김약항은 한참을 숨을 몰아쉬었다. 점점 숨이 모자란 것이다. 헐떡이는 김약항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내 아들…… 선이와 손자 문이, 그리고 손녀 향이의 행방을 찾아다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염치 불고하고 도와달라 부탁하고 싶구나.”
“그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감마님.”
“그래. 그래. 좋구나, 좋아. 후욱.”
김약항은 뭐가 그리 좋은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만우를 보고는 편한 표정을 지었다.
“절 받으세요. 대감마님.”
“후욱, 후욱.”
김약항은 밤하늘을 지그시 올려다봤다. 회한이 담긴 그의 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만우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 만우는 마지막으로 김약항을 향해 인사를 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아홉 번. 구배지례(九拜之禮)를 한 만우가 숨을 몰아쉬는 김약항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가 무식해서 뭘 잘 모르지만, 글을 가르쳐 주시고 무예도 가르쳐 주신 대감마님을 스승님이라 부르고 싶었어요. 마지막이니까 봐주세요.”
“후욱, 후욱.”
김약항이 만우를 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만우도 그런 김약항을 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김약항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크게 요동치던 그의 가슴이 잠잠해졌다. 동시에 한 방울의 눈물이 김약항의 눈가에 깊이 패인 고랑 같은 주름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편히 가세요. 대감마님.”
만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김약항의 혼이 외롭지 않도록 그의 곁을 밤새 지켰다.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 만우는 김약항의 시신을 포대기에 아주 꼼꼼히 말아가지고는 산에 올라 들짐승들이 절대로 팔 수 없는 곳에 그의 시신을 묻었다. 그러고는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절을 한 만우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물이 그렁거리며 끅끅대던 만우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은월루. 삼봉. 그리고 정안군.”
만우의 두 눈이 싸늘한 한광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