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序. 암행어사 잡는 역졸2019.01.01.
역졸(驛卒). 역참(驛站)에서 심부름꾼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는 하층민인 그들은 대개 노비이거나 평민으로 하찮은 일을 도맡아하며 잡다한 심부름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잡역에 동원되고는 했다. 작게는 역참을 쓸고 닦고, 말에게 먹이를 주고 관리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 크게는 군병(軍兵)의 역할까지. 그중에서도 역졸이 가장 빛을 보는 때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암행어사와 함께 있을 때였다. 대개 한 현(縣)의 군졸들과 탐관오리들은 같은 공동운명체인 경우가 많아 암행어사들은 역참의 역졸들을 애용했다. 그들은 현의 이익 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노비였기 때문에 암행어사의 말에 거부할 수 없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암행어사를 보면 흔히 육모방망이를 든 역졸들을 기라성처럼 거느린 채 탐관오리를 한 번에 덮치는데, 유일하게 역참의 역졸들을 쓰지 않는 암행어사가 있었다.
“암행어사(暗行御史) 출두(出頭)야!!!”
우르릉!!! 찌그러진 갓, 꾀죄죄하기 그지없는 두루마기를 걸친 어사는 퀭한 눈을 들어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허리춤에 칼을 찬 남자 하나가 소리치자 사방에 천둥이 일고 뇌성이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허리춤에 칼을 찬 남자는 무인처럼 보였고, 그 뒤의 꾀죄죄한 차림새의 어사는 그 무인의 종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사자후에 평양 관청이 들썩이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평양은 과거 대고구려의 도읍지 중 한 곳으로 판평양부사(判平壤府事)는 정2품의 고위관직이었으며 노른자 중의 노른자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평양은 돈이 되는 도시였다. 평양은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들어올 때 필히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합법적인 조공무역도 가능했고 국경선과 가깝다는 이유로 밀무역도 가능했다. 이를 위해서는 필히 평양을 다스리는 판평양부사나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평안감사에게도 그 이득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판평양부사는 정계 진출을 위한 공식적인 축재가 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똥수깐보다 더 냄새나는 곳이로다!!!”
허리춤에 검을 찬 무인이 코를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뒤에 퀭한 눈을 하고 있는 어사를 쳐다봤다. 움찔. 곧 쓰러질 것 같이 병약한 모습이었지만 어사의 나이는 젊었다. 이제 막 이립이 되기 전이었다. 대부분 과거 급제자가 불혹 전후다. 거기에 암행어사로 나오기 위해서는 왕의 신임을 얻는 당하관의 젊은 관리여야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사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굉장한 기재였다. 그의 나이 불과 약관에 과거 급제를 하여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정4품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어사의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이 어사가 한양의 풍류공자란 것을 알아보지 못 할 것이다. 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옥 같이 매끄러운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볼은 움푹 들어가 헌앙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허리춤에 칼을 찬 무인을 두려운 눈으로 보기까지 했으니 왕이 임명한 당당한 암행어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뭐합니까 어사 나리.”
게다가 그 무인의 말투도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암행어사는 그에 대해 지적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역졸. 그래 역졸이다. 역참에서 하찮은 심부름이나 하는 그 잡역꾼.
‘그 역졸이 괴물이니까! 지랄 맞은 도깨비니까!’
암행어사는 속으로 절규했다. 눈앞의 역졸에게는 양반으로서의 지고한 신분도, 양반과 상놈이라는 반상의 도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한낱 역졸이며 상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으니까. 우르르르!! 그 순간 관청이 환해지면서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찌르는 듯한 살기가 새어 나왔다. 허리춤에 검을 찬 무인은 고개를 들어 평양관청의 현판을 올려다봤다.
“후. 한 번도 순순히 나와서 꿇질 않네.”
“역졸들이 너무 적어서…….”
“나 하나로 부족하단 말이오?”
역졸인 남자가 흘끗 쳐다봤다. 그는 역졸임에도 지나치게 당당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하하하. 이제는 암행어사 나리께서 해결하셔야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내, 내가?”
암행어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서릿발 같은 살기가 쏟아지는 곳으로 역졸이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암행어사들이 역참에서 역졸들을 징발해 기습하듯 들이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졸은 단신으로 평양관청에 찾아와 암행어사가 도착했다고 널리 알리기까지 해버렸다. 아마 저렇게 나오는 이유도 암행어사와 역졸 단 두 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정4품인 암행어사와 달리 판평양부사는 최소 정2품의 당상관이니까. 여차하면 그냥 죽여서 입을 막을 수 있는 권력과 힘이 충분히 있었다.
“내가 왜 몇 달 동안 어사 나리를 가르쳤다 생각하시오.”
“…….”
‘그게 가르친 거냐! 심심풀이로 붙잡아 놓고 잡아 팬 거지!’
어사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난 후의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자신이 너무 허약하다는 이유로 지옥의 훈련이 시작된 지 어언 백 일이나 지났다. 얼마나 고생을 한 것인지 그 헌앙한 장부이던 어사가 피죽 한 그릇 못 먹는 폐병 걸린 폐인으로 변했지만 그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걱정하는 것이 잘못 입을 열었다가 역졸에게 혹독한 교육을 빙자한 고문을 받는 것이란 것을. 그러니까 평양관청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고?
‘강하니까! 억울하게도 너무 강하니까! 너무너무!’
평양관청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 어사는 똑똑했기 때문에 확률로 승패가 정해지는 투전놀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가문과 미래를 담보로 잡아도 좋다. 이 역졸이 나서면 백 명이든 천 명이든 소용없다.
“어서. 어서 나가시오.”
그런 역졸이 자신을 사지로 내몰고 있었다. 어사를 지키라고, 어사의 암행을 돕는 저 역졸이란 이름의 상전이 자신을 내몰고 있었다.
“쳐라!!!”
파바바밧!! 하지만 평양관청 안의 사병(私兵)들은 암행어사가 나서기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들이 사병이라고 확신한 이유? 간단했다.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무척 날랬고, 그들이 입은 갑옷과 착용하고 있는 무구들은 일반 군졸들에게 지급되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재산을 부정으로 축재하고, 장애물들을 치우기 위해 판평양부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사병들인 것이다.
“이 새끼들이.”
하지만 그런 그들이 역졸의 심기를 건드렸다. 역졸은 자신이 말할 때 방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살기를 드러내며 무기를 휘두르는 이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본주(本主)가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번쩍!! 철컥. 암행어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지난 백일 동안 역졸에게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개안(開眼)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단 한 번의 섬광. 서걱! 후두두둑!! 그 한 번의 섬광에 역졸과 어사를 향해 달려들던 십여 명의 사병들이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깔끔하게 잘리면서 육편이 되어 땅바닥에 나뒹굴었으니까. 쩍! 그것도 모자라 섬광은 사람을 지나 평양관청의 대문과 현판까지 갈랐다. 카각!!! 현판이 반으로 잘리면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균열이 일어나며 평양관청의 대문이 굉음을 내며 먼지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침묵. 기세 좋게 달려들려던 판평양부사의 사병들이 석상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사와 역졸을 향해 쏟아지던 살기들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한 사람의 존재감이 가득 채웠다. 역졸. 분명 역참에서 잡역이나 하면서 심부름이나 하는 가장 하찮은 이들. 하지만 눈앞의 역졸은 그냥 역졸이 아니었다. 천하제일역졸(天下第一驛卒). 역졸의 이름 앞에 천하제일을 붙이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그마저도 부족했다. 조선제일을 뛰어넘은 천하제일.
“이제 남은 놈들은 알아서 정리하시면 됩니다, 어사 나리.”
역졸이 씩 웃으며 어사의 등을 떠밀었다. 어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어사를 이런 전장터의 한복판으로 떠밀었으니까. 이래야 강해진다면서.
‘난 무관이 아니라 문관인데!’
이렇게 항의를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문관은 칼 맞고도 안 죽냐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모든 것을 준비하라면서. 분통이 터지게도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기에 어사는 이제는 그의 말에 웬만하면 반박하려는 생각을 버렸다. 성균관 경연에서 대제학도 꺾은 어사도 그의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는 것일까. 그의 하늘에 닿은 검술만큼 그의 구강신공(口腔神功)도 하늘에 닿아 있음이 분명했다.
“마, 만우 장사. 아니 검주 대협!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런데…….”
어사는 한번 튕겨보려고 했으나 역졸의 눈이 매서워지자 얼른 자신의 말을 주워 담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가 역졸을 부를 때 사용한 이름을 명나라의 누군가가 들으면 대단히 놀랄 것이 분명했다. 검주(劍主). 그 이름을 듣고 이를 가는 사람들만 해도 수백 명이 넘었고 그의 소문을 궁금해하는 이들은 수천 명이 넘었으며 그를 동경하는 자들은 수만 명이 넘었으니까. 그런 동경의 대상이 조선에서 미천한 역졸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면 뒷목을 잡으며 넘어갈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 아니오. 이럴 때야말로 한번 땀을 흘려줘야지. 검주 대협이 알려주신 것이 아니오. 흐하하하.”
그는 억지로 웃어보이고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검을 붙잡고 앞으로 나섰다. 판평양부사의 사나운 사병들은 범 앞의 쥐새끼처럼 바짝 굳어 있었다. 판평양부사가 대국에서 무공으로 이름 높은 고수를 초빙하여 무공을 가르쳐 그네들끼리는 폭풍검대(暴風劍隊)라 부른다고 하지만 지금은 미풍검대(微風劍隊)라 부르기도 아까웠다.
“흡!!”
짧게 기합을 불어 넣어 힘을 북돋운 암행어사가 보법을 밟으며 미풍검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지럴 검주! 망할 검주! 으아아아아!!!”
검주, 그런 이름을 가졌었던 만우가 검을 빙그르르 돌리면서 피식 웃었다. 어사의 기합 속에 자신에 대한 원망이 담뿍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어사 나리 잘되라고 하는 거야.”
만우는 어사를 향해 중얼거렸지만 어사는 만우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사병들이 어사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어, 어? 나 어사야. 어사라고!”
“쳐! 죽여라!!”
폭풍검대는 상대가 어사이건 말건 살기를 뿌려대면서 달려들었다. 기겁한 어사는 살아남기 위해 검을 들어올렸다. 챙, 챙, 챙! 일 대 다수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암행어사는 검을 제법 잘 다루었다. 얼굴은 완전 죽기 바로 직전처럼 허옇게 질려 있었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봐. 하면 는다니까.”
“으아아아! 망할 놈의 만우! 망할 놈의 역조오오올!”
아니, 오히려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만우를 떠올리자 저절로 검격 하나하나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놈의 성격하고는.”
만우는 어사의 처절한 절규를 들으면서도 피식 웃었다. 암행어사는 활쏘기나 가끔 했지 평생을 서책만 파면서 살아온 서생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로 사병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사병들이 크게 위축된 것도 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몸을 단련한 무인들이다. 게다가 껍데기뿐이라도 무공을 배운 이들인데 그들 수십 명을 대상으로 능히 맞상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어사를 지나쳐 무너진 평양관청의 대문을 넘어간 만우가 문을 거세게 걷어차면서 소리쳤다.
“어이! 판평양부사 최청도! 본주(本主)의 말에 흡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으면 특별히 팔다리는 그 쓸모없는 몸통에 고이 붙여놔 주마!”
쩌렁쩌렁! 절정의 사자후에 평양관청 전체가 우르르하고 한차례 몸을 떨었다.